아빠의 두 팔, 사랑의 엘리베이터
책장 정리를 하다가 빛바랜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그 옛날, 집 앞에 찍은 남편과 어린 두 딸의 모습입니다. 딸들은 아빠의 양 팔에 매달려 웃고 있었습니다.
팔을 모두 내어준 남편도 행복해보입니다.
저는 집 안에 힘든 일이 있거나, 부부 사이에 위기가
올 때마다, 이 사진을 보면서 가장의 역할과 아버지의
자리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큰 자원이
되어준 이 사진엔 또 다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큰 딸과 여행을 갔을 때, 유독 기억에 남았던 체험이
있습니다. 이태리의 휴양지인 친퀘테레에서 우리는
리오마조레 마을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습니다. 숙소는 마을 언덕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역에서 내려
언덕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걸었지만, 택시나 마을버스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습니다. 딸은 당황하며 “엄마, 어떡하지. 언덕을 올라갈 수 있겠어?”라고
물었습니다. 태양은 뜨겁고 저는 이미 지쳐서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더 한 것도 참고 인내하며 살아왔는데, 뭐 이거라고 못하랴’ 하는 마음으로 힘을 냈습니다.
딸은 헉헉거리며 따라오는 저를 보더니 미안한 듯
제 캐리어까지 밀면서 올라갔습니다. 죽도록 힘든
고행길이었습니다. 숙소에 겨우 도착해 기진맥진해진
우리를 보고, 호스트가 깜짝 놀랐습니다. 역에서 나오면 왼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못 본거냐, 택시가 없을
경우, 자기한테 연락하면 픽업해주겠다고 이메일에
썼는데 왜 힘들게 올라온 거냐고 하는 겁니다.
맙소사! 민폐를 싫어하는 딸은 핸드폰 앱에만 의지하다 결국 오르막길을 택한 것입니다. 짐을 푼 뒤 야경을 보기 위해 나섰는데, 정말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편하고 빠르게 올라올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죽을힘을 다해 언덕을 올라오다니.
딸은 그제야 엄마가 말해 준 소화 데레사 성녀의
‘엘리베이터 영성’이 가슴에 콕 박힌다고 했습니다.
그 엘리베이터는 인간적인 힘을 내려놓고, 아이처럼
쉽게 매달릴 수 있는 주님의 두 팔이었던 겁니다.
“저도 예수님께서 계신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고 싶어요. 완덕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에 저는 너무 작으니까요. 저를 하늘까지 들어 올려주는 엘리베이터는 오, 예수님, 당신의 팔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클 필요가 없이 어린 아이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중)
주님께서는 작고 약하면서도 큰 존재가 되려고 안간힘을 썼던 딸에게 일깨워주신 겁니다. 어릴 적, 힘 있고 든든한 네 아빠의 팔에 매달려 행복했던, 그 작은 너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그 아빠의 두 팔이 너의 엘리베이터였던
거라고 말이지요. 그때 그랬던 것처럼 주님의 두 팔에도 매달려 보라고요. 딸은 그 이후 모르면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사랑의 엘리베이터를 타는것 같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 아빠에게 매달려서 활짝 웃는 딸의 어릴 적 모습이, 참 행복해보입니다. 날마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처럼 말이지요.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