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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제자의 삶
김상수 목사(안흥성결교회 담임목사)
목 차
1. 자녀와 제자의 차이점
2.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위한 전제조건
3. 수직문화와 수평문화
4. 제자의 삶을 살기위해서 가져야할 사고구조의 틀
(1) 위하여(For)와 더불어(With)
(2) 모든 것의 주인(主人)은 하나님이시다
(3) 성경말씀이 행동윤리의 기준이다
5. 성경이 요구하는 제자의 삶
(1) 온전한 복종
(2) 섬김과 대리사상
(3) 성결한 삶
(4) 세월을 아끼라
6. 제자와 성령충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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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녀와 제자의 차이점
자녀와 제자의 차이점은 훈련에 있습니다. 자녀는 훈련과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영접(迎接)했을 때 됩니다. 그러나 제자는 훈련(訓練)으로 되어갑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사상, 모습, 언어등 모든 것이 예수님처럼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아기를 낳았다해도 자녀를 제자로 만들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돈이나 세상적인 개인주의 논리로서 가르치는 것은 양육(養育)이 아니라, 사육(飼育)입니다. 예컨데 박한상 사건이나 이번에 발생한 빨간마후라 비디오 사건은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거듭남으로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아름답게 양육되어지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출생(영접)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당연히 성장(양육)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저희 아기를 보면서 지금의 모습이 예쁘지만 언제까지난 지금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아름답게 성장해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향한 하나님의 바람도 동일합니다.
2.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전제조건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보는 우리의 관점(시야)’ 즉 세계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성경중심으로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면의 사고구조의 틀(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가치관이 바뀌면 생각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면, 행동도 변합니다. 모든 행동은 마음 속에 있는 생각에 따라 좌우되고, 그 생각은 어떤 사고구조의 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강도 짓을 계속 생각하면 실제로 강도 짓을 합니다. 그러나 생각 이전에 이미 강도 짓을 범상(凡常)하게 생각하는 사고구조의 틀을 이미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세계관’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 한인교회에서 있었던 어느 장로님이야기 입니다. 이 장로님께서 얼마전에 유행했던 ‘한명회(韓明會)’라는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장로님이 앞으로 어떻게 이 드라마가 전개될 것인지가 너무 궁금해서 미리 방영될 드라마 비디오를 방송국에서 구입해서 밤새껏 시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이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주일아침 예배 시간에 이 분이 공교롭게도 대표기도를 하게되었습니다. 마이크 앞에선 장로님이 눈을 감고 첫 마디 기도하기를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성은이 망극 하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도들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에 무엇이 가득차 있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이제 사고구조의 틀 또는 가치관의 변화를 위해서는 수평문화와 수직문화의 차이를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3. 수직문화와 수평문화
현용수 교수는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라는 책에서 문화(文化)를 크게 두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수직문화와 수평문화가 그것 입니다. 수직문화란 인간의 내면적(內面的)인 것에 가치를 둔 문화로서 인간의 가치관을 결정짓는 정신적(精神的)인 문화유산을 말합니다. 예컨제 전통, 관습, 종교, 사상, 철학, 고전 등 입니다. 수직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수평문화란 인간의 외형적(外形的)인 것에 가치를 둔 것으로, 일시적이고, 쾌락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수평문화를 표면문화(表面文化)라고도 합니다. 예컨데 부귀영화, 권력, 명예, 외모, 유행, 청바지 문화, 햄버거 문화, 마돈나 문화등입니다. 이런것들은 일시적이고 뿌리가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다른 것으로 바뀌는 문화입니다. 이러한 수평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 깔려있는 근본은 인본주의(人本主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이도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수평문화를 이루는 인본주의는 4 가지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곧 개인주의, 물질주의, 과학만능주의, 쾌락주의가 그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현세대들의 특징이 이 네 가지 범주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문화는 수직문화입니다. 그 중심에는 ‘야훼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었던 바울은 이 세대 즉 수평문화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당부합니다(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현대 우리나라 청소년, 청년들은 사상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 청년들에게는 수평문화가(개인주의, 물질주의, 점수문화, 마돈나 문화 등)가 판칩니다. 사상과 가치관은 종교에서 나옵니다.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 이후 학교에서 종교교육이 없어졌고,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흔히 ‘한국교육 이대로 안된다’고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과 기준은 있습니까? 사실상 그 기준은 없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根源的)인 영적(靈的)인 문제까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그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러기에 복음 안에 이 나라, 이 민족의 살 길이 있는 것입니다.
수평문화에 젖어있는 사람은 인생의 외풍(外風)이 불어올 때 파도에 따라 자신의 주체의식이나 신앙이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수직문화에 기반을 둔 사람은 어떠한 외풍에도 든든합니다.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의 수직문화의 기반은 성경(聖經)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자와 같으니(마7:24)”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원한다면, 우리들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제자의 삶이라는 말은 한낱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제자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삶은 방향(또는 사고의 구조)은 무엇일까요?
4.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가져야할 사고구조의 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지향해야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가치관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위한(for), 예수님과 함께(with)하는 삶’입니다.
둘째는 ‘모든 것의 주인(主人)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경말씀이 모든 행동윤리의 기준’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이 지녀야 할 가치관의 기본입니다. 이것이 머리 속에서 분명한 사고구조의 틀로서 자리잡아야 만이 제자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치관이 분명할 때 생각이 바뀌고,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치관 즉 생각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적인 노력과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訓練)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1) FOR와 WITH(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3:16)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명심해야할 첫 번째 기반은 For와 With라는 생각구조입니다. 즉 ‘제자의 삶은 곧 예수를 위한 삶이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항상 ‘남을 위한’ 삶을 살으셨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당연히 이웃을 위하고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개인중심의 ‘For Me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 For Jesus & For Others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 하바드 대학교의 교육심리학자 콜벅은 말하기를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의 도덕률이 가장 낮고,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의 도덕률이 가장 높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for) 고난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와 함께(with) 고난을 받고 계십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들이 소외되고 가난한 우리 이웃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그것은 온전한 제자의 삶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2) 모든 것의 주인(主人)은 하나님이시다(시119:94, 시143:11-12)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를 찾았나이다 (시119:94)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시143:11-12)
이 말은 하나님의 나의 주인이시며, 나는 청지기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나의 인생(人生)의 주인이시며, 내 생명(生命)의 주인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분명할 때 인생의 목표가 설정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보이지 않는 시간과 인생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3) 성경말씀이 행동윤리의 기준(基準)이다(시119;9, 시119:11, 시119;105, 딤후3:16)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119:11)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우리들의 모든 윤리와 행동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청년들은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다른 불신자들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상스러운 말을 마구 해대고 마치 그것이 용기있는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이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들은 인간중심의 수평문화로서 우리들의 행동윤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악(惡)의 길이 옳다고 달려간다해도 그 반대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眞理)의 길이라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5. 성경이 요구하는 제자의 삶
(1) 제자의 삶 : 온전한 복종(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마4:19)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철저한 복종 즉 순종 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준엄하고, 비장한 한 마디를 명령하십니다. 그것은 “나를 따라 오너라(fellow me)”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 앞에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철저한 복종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세상을 향하여 관심을 가진 여러분을 향하여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하나님의 일군으로 헌신(獻身)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 명령에 대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복종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길을 갈 때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十字架)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영광(榮光)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십자가의 고난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과 함께(with) 고난을 받고, 예수님과 더불어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2) 제자의 삶 : 섬김과 대리사상(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막10:45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섬김과 대속물’이라는 말씀으로 요약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섬김과 대리사상(代理思想)’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고난을 통하여 모든 인류를 대리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최고의 섬김이요, 최고의 대리입니다. 뿐만아니라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섬김과 대리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대신지시고, 대리하였던 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대신해야 합니다.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것에서부터 교회 안에 온갖 일들을 대리한다는 생각을 갖어야 합니다. 더나아가 이 시대(時代)와 이 민족(民族)과 한국교회의 고난과 고통을 우리 크리스찬 젊은이들이 대리하겠다는 대리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섬김과 대리사상은 필연적으로 이 민족과 세계영혼에 대한 책임감(責任感)을 갖게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일을 대리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작은 일면이지만 제가 경험한 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몇 년전 대만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만의 중부에 있는 타이중시(大中市)의 중타이신학교(中大神學校)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동양선교회’선교사들이 여러명 있었습니다. 그중에 영국출신의 남자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 분은 키가 2m에 가까운 분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그분의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님이 차의 맨 뒷자리 짐 싣는 곳에 움크리고 앉아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보이는데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문제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라고 하면서 밝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런 것이 섬김입니다. 작은 일 같지만 자원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이 받을 고통을 자신이 먼저 대리해서 감당하려는 마음 말입니다. 우리 교회와 청년들이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제자의 삶 : 성결(聖潔)한 삶(딤후2:20-21, 딤전4:7-8)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2:20-21)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7-8)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결한 삶을 산다는 것은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며, 죄를 몸서리치게 미워하며,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同行)하는 삶을 말합니다.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깨끗이 닦은 다음 음식을 담습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원할진데, 먼저 성결한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제자의 삶을 성결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기본 경건훈련(敬虔訓練)입니다. 즉 묵상과 기도 그리고 성경암송, 성경읽기 등입니다. 제자들의 이 모든 것을 날마다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주일 하루 예배드리는 것만으로 제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일 주일 중 대부분의 시간을 신앙과 관계없는 것들로 시간을 보냅니다. 신앙교육은 불과 5% 미만의 시간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같이 인간은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 주일동안 계속해서 세상적인 불신앙의 공부와 환경 속에 있었다면 그의 행동은 비신앙적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매일(每日) 경건훈련입니다. 최소한 우리들은 하루에 성경3장, 기도30분, 묵상30분 정도는 해야 합니다.
(4) 제자의 삶 : 세월을 아끼라(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5:16)
아담이 타락한 이후 시간(時間)도 함께 악(惡)해 졌습니다. 이 말은 시간 자체가 악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사는 모든 것이들이 악해졌으므로 시간이 악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타락 이전에는 축복이 시간이었지만, 타락 이후에는 저주의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쓰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악해지기도 하고 선해지기도 합니다.
시간에 대해서 우리들이 가질 시각은 ‘모든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우리는 시간의 관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인생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듯이 또한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쓰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의 십일조는 약 2시간 20분입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경건과 기도 등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할 것입니다.
6. 제자와 성령충만한 삶(엡4:22-31, 갈5:25-26)
이제 강의를 마치면서 결론적으로 모든 제자의 삶을 가능케하는 성령(聖靈)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폭탄이라해도 뇌관이 불이 붙어야 폭발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이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해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의 도움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흔히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사실 깊은 영성과 성령충만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방이라 할지라도 빛이 비치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빛이 강하면 강한 만큼 어두움은 더욱 자리잡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 속에 성령의 불이 강하면 강할수록 어둠의 세력들은 틈타지 못합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그 인생에서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갈5:25-26))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5:25-26)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엡4:30)
엡4:22-31에서 성령이 근심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이 제자답지 못할 때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이 올바른 사고구조와 가치관을 갖고, 그것을 바탕으로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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