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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구덩이
이 홍사
옛날에 재래식 화장실, 말을 고치자.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화장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화장실이 아니라 변소였다. 화장실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졌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수세식으로 바뀌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옛날 농촌에서 변소를 푸면 밭둑에 있는 호박구덩이에 붓는다. 부지런한 어른들은 매일 새벽, 변소를 한 단지 퍼서 지게에 지고 밭으로 나가 호박구덩이에 붓는다. 육칠십 년대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변소에 있는 양이 모자라면 도랑물을 퍼서 변소에 부어 양을 늘린다. 아예 도랑가에 변소를 만들고 물을 퍼서 넣는 구멍을 만들어둔 집도 더러 있었다. 거름을 확대 재생산하는 셈이다.
어린 시절 강변의 비탈진 밭둑에서 놀다가 호박구덩이에 빠지면 바로 둑 너머 개울로 가서 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똥독이 올라 종아리가 벌겋게 되고 심하면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나는 상처가 된다. 나도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그곳에 빠진 경험이 있다. 당시에 놀이터가 없던 시골 아이들은 호박구덩이 옆에서 두꺼비집을 짓는 흙장난을 하며 놀다가 호박구덩이로 밀어 넣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어른들은 욕을 심하게 하는 놈을 보고, 저 자식 아가리는 호박구덩이네. 라고 말했다. 그만큼 더럽다는 말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요즘 내 입이 호박구덩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 나오는 욕지거리를 제어할 수가 없다.
아 그렇게 욕을 하려면 신문 좀 보지 말아요. 제발.
아내의 핀잔이 가미된 지청구를 새벽마다 듣는다.
여보! 심청이가 뛰어내린 인당수가 어딘지 알아? 신문을 끊어버리든지 해야지.
머쓱해진 나는 신문을 난폭하게 덮으며 변명삼아 엉뚱한 사설을 풀어놓아 아내의 입을 닫아버린다.
이게 요즘 우리 집 새벽의 일상이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들어오고부터 집안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그게 되지 않는다. 이 정권의 홍보물이 되어버린 텔레비전 앞에는 얼씬 거리지도 않고 신문은 보는데 자고나면 상상을 초월하는 초유의 사태가 지면에 올라오곤 한다.
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을까?
로맹가리는 하필 페루를 새들의 무덤이라고 했을까? 새들의 무덤은 허공에 있는데. 쩝.
다른 생각을 하며 잊고 있다가도 신문만 보면 짜증이 인다. 이 정부와 여당이 완전히 언론을 장악한 것이다. 엄정한 중립을 지키며 정론을 펼쳐야할 언론이 정치에 슬그머니 편향되어, 비판이나 비평의 가시밭길을 마다하고 수월한 마차꽁무니에 올라탄 격으로 눈이 먼 추종자가 되었다. 윤사월 산지기집 눈 먼 처녀가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있다. 무엇을? 내 입에서 나오는 욕설을.
신문을 보면 입을 비집고 나오는 욕을 제어할 수가 없다. 엄정하게 선을 그으면 나도 진보 좌파에 속하는 인물이라 지금 이 정부를 목 놓아 지지했는데 지금은 저어기 실망이다.
좌우논리?
어느 쪽을 보든 고리타분한 아집이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가릴 필요가 없다.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민생 경제가 튼실하고 국민이 배가 부르게 하면, 그게 지도자로서 지녀야할 첫 번째 덕목인데 작금의 정부는 그런 기본적인 것에 소홀하고 있다. 소홀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턱도 없이 높은 하늘에서 배회하는 독수리를 잡겠다고 장대를 쳐들고 설치는 바람에 꿩도 매도 다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 안보, 외교, 어느 측면을 보더라도 빵점이다. 항상 자랑하고 자부하던 긍정의 힘은 어디로 갔을까? 왜 부정적인 측면과 요소들만 보이는 걸까?
요즘은 내가 호박구덩이에 산다.
오늘아침에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더럽다는 호박구덩이에서 새싹을 피워 올리고 넝쿨이 퍼져나간다. 그걸 자세히 관찰하면 한참 자랄 때는 하루에 한 뼘 정도 넝쿨이 제 영역을 차지하고 퍼져나간다. 그 때 여린 잎을 따다가 밥 위에 쪄서 된장과 쌈을 싸서 먹으면 죽여주는 고향의 맛이다. 똥을 거름으로 먹고 자란 호박잎, 그걸 또 먹는다? 이상할 게 없다. 그게 자연의 순환원리이고 재생산의 이치다.
어릴 때는 참 맛있게 먹었는데 아내는 그걸 할 줄을 모른다. 집에서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 아내는 도회에서 자라서 그런 걸 먹는다는 생각을 못하는 모양이다. 헌데, 어제는 현장을 둘러보고 들어오다가 외갓집에 들러 호박순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호박잎이었다.
외갓집은 시내로 편입된, 공단 저쪽 변두리라 현장을 다니면서 가끔 그 마을 앞을 지나치지만 어린 시절과는 달리 자주 들르지 못한다. 그 점이 늘 미안하고 죄스럽지만 한번 들리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외할머니보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 돌이키면 가슴이 시린 일이지만 어머니 안계시고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시니 외갓집으로 향하는 발길은 더 뜸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그게 보편적인 사고다. 그러나 그 보편적이라는 사고를 나는 뒤엎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주 들러야지.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나는 외갓집과 살갑게 지내는 편이다. 같은 도회에서 살아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제는 그 마을 앞을 지나다가 차를 돌려 외갓집에 들어갔다. 점심나절이었다. 불쑥 들리니 외숙부와 외숙모는 대청에서 점심을 자시고 계셨다. 내가 미처 인사를 하기 전에 골목으로 들어서는 나를 외숙모가 먼저 보신 모양이다.
-아이구, 이 사람아! 오시는가?
그 살가운 인사가 자주 들르지 못하는 마음을 더 죄스럽게 했다. 인사를 하고 대청에 올라가 차려놓은 밥상을 둘러보았다. 외숙부의 밥은 흰쌀밥 반 공기였다.
-잡수시는 건 좀 어떠세요?
-의사 말대로 조금씩 자주 먹네.
외숙부께선 얼마 전에 두 번째 위암수술을 하셨다. 연세가 있어서 회복이 더딜 줄 알았는데 지난번에 들리니, 병원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젊은 사람처럼 완쾌가 되었으니 이제 일을 하셔도 좋겠다는 호탕한 비유의 소견을 받아서 흡족해 하셨다. 다만 위가 작아져서 포만감을 빨리 느끼기에 조금씩 자주 자신다고 했다. 외숙부는 연세가 일흔 후반이다.
두 분이 자시는 점심상에 끼어 앉았다.
밥상을 둘러보니 반찬은 외숙부가 자시는 것 따로 외숙모가 자시는 것 따로 차렸다. 외숙부의 반찬은 계란찜과 두부 같은, 부드러운 것이고 외숙모 반찬에 호박잎을 찐 게 있었다. 뚝배기에 된장도 감자와 풋고추를 듬뿍 썰어 넣어 뻑뻑하게 끓여놓아 구미가 당겼다.
-외숙모! 혹시 보리밥은 없어요?
내가 먹을 밥 한 공기와 수저를 챙겨오는 외숙모에게 물었다.
-왜 없어. 이 사람아? 있지. 호박잎을 보니 보리밥이 댕기는가?
외숙모는 되돌아가서 내 밥을 다시 밥솥에 붓고 보리밥을 한 그릇이 아닌 두 공기를 챙겨왔다. 식은 보리밥이었다. 호박잎과 된장에는 식은 보리밥이 제 궁합이다. 외숙모도 보리밥이 잡수시고 싶었는데 외숙부께서 군침을 삼킬까봐 눈치를 보느라고 못 먹고 있었노라 했다. 외숙부는 이제 미음을 끊고 연한 쌀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아직 보리밥은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이 사람아! 자네가 오시는 바람에 내가 식미대로 먹겠네. 둘이 있으면 눈치가 보여 당최 내 맘대로 먹을 수가 없어.
-호박잎이 어디서 났어요?
호박잎을 손바닥에 펼쳐놓고 된장을 푹 퍼서 쌈을 싸며 물었다. 길 건너 철도변 울타리 밑에 심었단다. 세 구덩이 파서 심었는데 지금 한창 순이 퍼져나가고 여린 잎을 매일 따다 먹는다고 했다. 호박을 심는 목적은 가을 즈음에 누런 호박을 수확하는데 있지만 중간 중간에 동실동실한 애호박을 썰어서 호박전을 부쳐 먹을 수가 있고 이렇게 야들야들한 호박잎을 덤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다 수세식화장실인데 거름은 뭘 주나요?
밥을 먹는 자리라 똥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다.
-이 사람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 요즘 비료가 너무 잘 나와. 사흘에 비료 한 줌씩만 주면 돼. 그러면 쑥쑥 자라는 게 보여.
우리는 쌈을 싸서 우악스럽게 먹는데 반해 외숙부는 잡수시는 속도가 느리다. 누가 못생긴 여자를 보고 호박이라고 비유했는가? 호박이 꽃 봉우리 밑에 조막만한 열매를 맺어 커갈 때면 얼마나 예쁜데, 그건 호박이 커가는 것을 보지 못한 작자의 적절치 못한 비유라고 생각하며 호박잎에 된장을 한 숟갈 얹고 보리밥을 싸서 입에 쑤셔 넣었다.
-요새는 호박구덩이에 빠져도 괜찮겠네요.
-호박구덩이가 더럽다는 것도 옛말이지.
그 말씀을 대꾸로 하시고 외숙부는 점심을 자시고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 내가 놀라자 시에서 노인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만든 일인데 거리에 나가 휴지와 담배꽁초를 줍는 일이라고 했다. 세 시간을 일하는데 사흘에 한 번씩 나간다고 했다.
-일하러 간다고 좋아서 못사네! 꼭 어린아이 같다니까. 이 사람아! 저기 조끼하고 모자 좀 봐.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외숙모가 가리킨 곳은 문이 열린 방안의 바람벽이었다. 노란조끼가 옷걸이에 걸려 바람벽중간에 걸려있었고 그 위에 시의 상징인 로고가 새겨진 노란모자가 걸려있었다. 외숙모의 말에 의하면 사흘에 걸쳐 하루에 세 시간을 하고 이십만 원 남짓 받는데 그게 쌀 세 가마니 값이 넘으니 그게 어디냐고 했다.
-무리하시는 것 아니에요?
외숙부께선 시청의 감독이 차 조심하고 설렁설렁 하라고 한단다. 운동 삼아서 하는데 일전에 노인 하나가 차에 치어 죽었단다. 어쩌다가? 휴지를 줍다가 덥다고 화물차 앞 그늘에 앉아 쉬는데 운전수가 그곳에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차를 출발시키는 바람에 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 사고가 나자 공무원들이 청소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노인들의 안전에만 신경을 쓴다고 했다.
빌어먹을 새끼들! 그냥 주지.
그 말을 속으로 꿀꺽 삼키고 마음에도 없는 전혀 다른 말을 뱉었다.
-새로운 소일거리가 생겨서 다행이네요.
-이 양반은 일거리가 생겨서 다행이지만 관철이 회사가 문을 닫았어.
외숙모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다. 호박잎에 쌈을 싸던 손이 멈칫했다.
-관철이 회사가요?
-그렇다니까 이 사람아! 보통 일이 아니야. 시방 경기가 그렇게 안 좋은가?
관철이는 외사촌 동생이다. 장가를 가서 아이들이 있고 학군이 좋다는 인근 동네 아파트에서 딴살림을 하고 있다. 학군은 핑계고 외숙모의 컬컬한 성격에 며느리 모시기 싫어서 일찌감치 딴살림을 내준 것이다. 결혼시키고 삼 년을 집에 데리고 살았는데 살아보니 며느리는 데리고 사는 게 아니라 뫼시고 사는 게야. 이 욕쟁이가 욕도 못하고 늘그막에 그런 시집살이가 없지. 지옥이 따로 없어. 언젠가 외숙모가 하신 말씀이다.
-시방 공단경기가 그렇게 안 좋아?
외숙모가 채근했다.
-경기야 안 좋지만, 그 회사는 문을 닫으면 안 되는 회산데?
내가 알기로는 관철이가 다니던 회사는 특수 화공약품 제조사다. 브라운관과 모니터 뒷면 반사체에 들어가는 무슨 화공약품을 생산하는 업체라 그런 회사는 경쟁업체가 아니라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없어지지 않는 한 문을 닫지 않고 존속해야할 회사다. 외숙모의 말에 의하면 작년부터 베트남인가 중국인가 어디에 공장을 또 짓기에 회사를 확장하는 줄 알았지 정작 한국 공장이 문을 닫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했다.
-관철인 지금 뭐하나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니는 모양이라고 했다. 회사 다닐 때는 조석으로 들락거리더니 요새는 집에도 자주 안 온다며 생질이 발이 넓으니까 자리를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참 난감했다. 호박잎의 된장 맛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알아보긴 하겠는데, 공단경기가 워낙 죽어서 우리도 일이 뜸해요. 노가다는 공단경기로 먹고 사는데.
사실이다. 그걸 외숙모께 다 얘기하자면 사설이 길어진다. 일이 줄었다. 처량하다 못해 처참한 정도다. 기사들 월급 맞추기가 벅찬 지경에 이르렀다.
외숙부께서 마을회관에 모인다며 자전거를 끌고 나서는 것을 보고 나도 자리를 털었다. 외숙모가 호박잎을 좀 따서 싸줄까 물었지만 입맛이 떨어진 뒤여서 사양했었다.
헌데, 오늘 아침 조간을 보니 고용지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보도다. 통계청 자료에는 그렇게 되어 있겠지. 그걸 보니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장부터 아내에게 또 입이 호박구덩이라는 핀잔을 먹었다.
-이 여자야! 내 입이 호박구덩이가 아니라 세상이 호박구덩이야. 당신이 호박구덩이에 빠져봤어?
한다는 대꾸가 고작 그거였다.
관철이 얘기는 아내에게 하지 않았다. 알아봐야 도움이 될 것도 없고 애만 닳을 것 같아서 입을 닫았다. 고용지표를 면밀히 관찰하면 육십오 세 이상의 노인 일자리는 늘었고 상대적으로 삼사십 대 고용지수는 줄었다. 쥐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눈 감고 야옹이다. 외숙부의 경우에도 고용인으로 통계에 잡힌다. 세금을 풀어서 단기 일자리를 늘려놓고 정작 한참 일을 해야 할 삼사십 대 일자리는 줄었는데 고용지수가 올라간다고 낙관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금으로 충당하는 선심성 일자리가 늘었는데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알뜰히 걷어서 비축해둔 세금이 많이 쌓였으니, 정부야 이곳저곳 선심성으로 마구 쓰니 경기가 좋겠지만 민생을 들추어보면 전혀 아니다. 정말이지 호박구덩이 같은 통계자료다.
관철이는 호박구덩이에 빠졌다. 똥독이 오르기 전에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비단 호박구덩이 빠진 이는 관철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같은 중기 임대업자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들어오고부터 건설은 버린 자식이고 오로지 복지다. 그래도 공단 경기가 있을 적에는 공장에서 무엇을 철거하고 다시 고치고, 짓는 바람에 거기에서 파생되는 일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공단 경기가 죽으니 데리고 있는 기사들 월급 맞추기가 빠듯한 실정인데 장마는 곧 다가온다고 하고 심히 어려운 시기를 넘겨야할 것이다. 옛날에는 장비 기사의 임금이 비교적 낮아서 일주일의 수익금이 월급으로 들어갔다면 지금은 보름치의 수익금이 월급으로 날아간다. 가동률이 70% 남짓이니 차주의 수익금이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사 반 차주 반이라는 건 옛말이다. 곧 장마가 다가온다니 초조해질 수밖에 없는 이치다. 우리 같은 장비 임대업자는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을 산다. 내일 일이 잡히지 않으면 오늘밤 잠을 설치고 일이 잡히더라도 하늘의 눈치를 보아야하는데 장마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얼마나 잠을 설쳐야 하는가.
이 공단도시는 공단경기가 최우선이다.
철야에 삼교대로 공장이 돌아가야 음식점부터 술집까지 심지어 목욕탕 때밀이까지 장사가 되고 활기를 띠는 도시다. 이 도시에서는 원룸 수요자가 빠져나가면 모든 경기가 끝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공사나 공단의 일용직 인부들이 타지에서 들어와서 원룸을 채워야 도시가 산다는 말이다. 헌데 지금은 원룸이 거의 텅텅 비어 있는 실정이다. 원룸뿐만 아니라 장사가 그렇게 잘 된다던 역전의 일번 도로에 가게가 비어서 임대를 한다는 현수막을 붙이고 있는 실정이다. 예전에 IMF시절도 모르고 지나간 공단도시인데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정말이지. 이 도시는 IMF를 모르고 지나갔다. 오히려 그때가 호황이었다. 나는 그때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훑어보고 중고장비 경매를 보려 다녔다. 다른 도시에서 부도를 맞아 할부납입금을 넣지 못하고 경매로 나온 장비들을 낙찰 받으러 완도까지, 위로는 파주까지 경매물건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전에서 한 대를 낙찰 받았는데 가지고 와서 사 년을 굴리다가 중고로 팔았는데 낙찰가보다 더 받고 넘긴 적도 있다. 헌데, 지금은 이 도시가 호박구덩이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비유할 수밖에는 없다. 호박구덩이 빠진 건 비단 이 도시뿐만이 아닐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위축되어 있다. 호박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려면 국민들의 안일한 인식에 혁명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그런 건 기대하기 어렵고 호박구덩이에 호박의 씨를 뿌리고 떡잎이 올라와 새순이 되고 넝쿨이 줄기차게 뻗어나갈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렇게 될 날까지 호박구덩이에 거름을 계속 지게로 져다 부어야 하는가?
해장부터 웬 호박구덩이 타령인가.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다는 말이 있다. 속칭 대박이 터진다는 말이겠지만 그런 날이 언제 다시 오려나? 무슨 정치를 어떻게 하기에 세계의 경기는 호황이라는데 국내경기는 식어서 싸늘하기만 하고 민심은 흉흉해져서 생활고에 시달린 국민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심심찮게 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런 건 이제 식상해서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세상이다. 해장부터 그런 서글픈 생각은 그만하자. 오늘도 신문을 난폭하게 접어서 탁자 위로 던졌다.
-여보! 호박잎 먹어봤어?
아침을 준비하느라 개수대에 돌아서있는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마디 던졌다.
-아침부터 난데없이 웬 호박잎 타령이요?
-어제 외갓집에서 보리밥이랑 먹었는데 엄청 맛이 있던데, 된장도 그렇고, 우리도 저쪽에 학교 울타리 밑 공터에 호박이나 좀 심어볼까?
-호박을 심기에는 늦었고 시장에 가면 요즘 호박잎이 많이 나올걸요?
-시장에서 호박잎도 파나?
미처 나는 보지 못했지만 인근 시골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와 시장 귀퉁이에 난전을 펴놓고 파는 게 있단다. 그런 할머니들께 가면 없는 게 없단다. 양은 많지 않지만 시골에서 나오는 것이 조금씩 다 있노라고 했다.
-그런 게 보이면 좀 사오지. 당신 여태 살아도 내 입맛을 제대로 알기나 하나?
-해장부터 왜 시비조요. 당신 전화 메시지 들어와요.
할 말이 궁했든지 방을 향해 아내가 말했다. 내 방에 던져둔 휴대폰에서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 알림소리를 아내가 들은 모양이다. 아마도 오늘 고등학교 동기들 모임인데 확인 문자가 들어온 모양이라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가 메시지를 확인했다.
*새벽에 텃밭에 갔다가 호박잎과 풋고추를 따서 대문 아래 밀어 넣어놓았슴돠. 시들기 전에 드시와요.^^*
강교수다.
강교수가 말하는 텃밭이란 구획정리지구에 집을 짓지 않은 빈 땅을 말한다. 언젠가는 아담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마련해둔 땅인데 아직까지 그 언젠가가 되지 않았는지 빈 땅으로 묵혀두고 낡고 좁은 형곡동의 연립주택에 그대로 살고 있다. 주위에는 원룸 빌라들이 들어선 지가 오래되었지만 강교수의 땅만 공터로 남아있다. 작년부터 그 공터에 소일거리로 텃밭은 만들어 심심풀이 농사를 짓고 있다. 그 구획정리지구가 바로 우리 동네다.
-여보! 호박잎을 들먹이니 호박잎이 왔네. 부르면 온다니깐. 잠깐만! 호박잎을 쪄서 먹자.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그렇게 말하고 슬리퍼를 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대문 밑을 보니 과연 검정색 비닐봉지가 큼직한 게 하나 있었다. 열어보니 가지런히 정리된 호박잎과 풋고추가 한줌정도 그리고 애호박이 하나 들어 있었다. 대문 밖을 훑어보니 강교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자식이 왔으면 대문을 두드리든가, 전화를 해서 얼굴이나 보고 가지. 못 본 지가 한참이나 되었는데.
입맛을 다시고 그걸 들고 들어와서 아내에게 건넸다.
-아침이 조금 늦어도 호박잎을 쪄서 먹자.
-호박잎이 어디서 났어요?
-내가 부르면 온다니깐?
그렇게 아침메뉴를 주문하고는 내 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강교수의 메시지에 답을 날렸다.
*꿀을 바른 호박잎이네. 그렇잖아도 호박잎이 먹고 싶었는데 꿀맛으로 먹겠음. 잠깐 들렀다가지. 감솨^^*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금세 또 답신이 왔다.
*호박잎을 따다가 호박구덩이에 빠졌슴돠. ㅠㅠ^^*
*푸하하하.^^*
메시지를 날리며 웃었다. 호박잎을 따다가 호박구덩이에 빠졌다? 그래서 못 들어왔다? 호박구덩이에 빠진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강교수는 고등학교 후배인데 가끔 만나서 술을 마시는 술친구로 발전을 했다. 남들은 한참 일할 나이인데 늦게까지 공부를 해서 지역에 있는 전문대학에 교수로 임용을 받았다. 하여 결혼이 늦어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닌다. 그 전문대학이 간호학과를 사 년제로 만들고부터는 전문대학이란 교명을 쓰지 않고 지역대학이란 교명을 쓰고 있는데 대학교라는 교명을 쓰지 못하고 대학이라는 교명을 쓰는 학교는 거의가 그런 학교다. 그런 학교는 학생들 모셔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강교수는 이학기가 되면 아이들을 모집하고 학교를 홍보하느라 지역의 고등학교에 출장 방문하는 하는 날이 많다. 그 기간이면 어김없이 저녁에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부러울 정도로 가장 괴롭고 힘이 드는 기간이라고 했다.
아예 방문을 포기하고 시장 저자거리에서 나랑 낮술로 막걸리를 마시는 날도 있었다.
같이 술을 자주 마셨지만 강교수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걸 작년에 알았다. 강교수가 호박구덩이에 빠진 건 비단 오늘 새벽이 아니다. 벌써 이 년째 호박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빨리 빠져나와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대학은 엄청 늘었고 학생들이 줄었다. 눈치를 보니 정원을 다 채우는 학과가 거의 없는 모양이다. 나라에는 백성이 있어야 하고 학교는 학생이 있어야 사는 건 당연한 이치. 그 결과 교육부로부터 F학점을 받은 대학으로 분류되어 정부의 지원금이 끊긴 학교가 되었단다. 비단 그런 학교가 강교수가 몸담고 있는 대학만이 아니란다. 하여 강교수가 이 년째 반쪽 월급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부터 술값은 내 주머니를 풀었다. 내가 일을 나가고 없어도 강교수는 학교를 나와 친구의 타이어 가게에 죽치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현장을 돌다가 느지막하게 타이어 가게에 가면 늘 강교수가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친구의 일을 돕고 있었다.
-강교수! 평일에 웬일이야? 오늘이 개교기념일이가?
-아닙니다, 형님!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광복절이 시월로 바뀌었나?
그 다음에 타이어가게서 만나면 다시 묻는다.
-오늘이 광복절이가?
-아니, 개교기념일입니다.
그러면서 웃어넘기고 만다.
학교에 있으면 숨통이 막혀서 미칠 것만 같단다. 그래서 수업이 없으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타이어가게 친구는 강교수를 보고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강교수는 가끔 지갑을 두고 와서 카드도 없다면서 기름 값을 빌려가곤 했다. 그게 두세 번이나 된다. 나중에 술좌석에서 실토를 하는데 들으니 반쪽 월급을 이년 째 받고 있다고 했다. 비단, 그런 경우는 강교수는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강교수의 말에 의하면 다른 도시의 어느 학교는 교수들이 월급을 이 년째 한 푼도 못 받아 교수들이 수업을 중단하고 데모를 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고 했다. 사학재단의 비리를 따지기 전에 곧 문을 닫아야할 학교라고 했다.
강교수는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눈치를 보니 학교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그즈음 강교수 모친께서 입원을 했다. 연세가 있어 무릎의 연골이 뭐가 잘못되어 입원을 한 것인데 의료학과 교수로 있는 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의료비가 싸면서 좋다는 병원에 모셔다 놓고 강교수는 어머니가 혼자 하던 식당을 꾸려갔다. 그 바람에 강교수의 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은 모양이다.
명색이 대학 교수인데 식당일하다니?
학교 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로서 용서가 안 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지금 강교수는 학교를 이 년 휴직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꾸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신경전을 한참 벌인 모양이다. 남들은 다 아들이 대학교수로 알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앞치마를 걸치고 식당에 있으니 어머니 체면이 말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예상하건데, 강교수는 이 년 후에 복직을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어쩌면 이 년 후에 그 대학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갈등은 강교수보다 강교수의 어머니가 더 많이 하셨을 것이다.
식당으로 들이자니 학교가 아깝고 아들인 강교수에게 들으니 학교를 그만 두는 게 마땅하고, 하루는 그러자고 했다가 저녁에 찾아와서는 안 된다고 번복하기를 여러 차례, 이제는 동네사람들도 다 알아버렸고 아들이 교수라는 걸 포기하신 모양이라고 했다.
강교수는 그 점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학교를 박차고 나오고부터 강교수의 성격이 호탕하게 변했다. 가끔 전화를 하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었다. 그건 전화를 하는 상대방이 더 잘 안다. 강교수는 홀어머니가 꾸려가던 식당을 다시 일으켰다. 일전에 보건복지부에서 백년가게로 선정이 되어 매스컴을 타고부터 일요일이나 휴일이면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 잘된 일이라고 타이어가게 친구도 나도 박수를 쳐주었다. 그 다음부터 가끔 강교수를 만나 술을 마시면 계산은 눈치를 보고 강교수가 먼저 해버리는 것이었다. 지난 학기부터 그랬으니 그게 벌써 반 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 강교수가 오늘 새벽 호박잎을 싸들고 다녀간 모양이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니 강교수는 호박구덩이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호박구덩이에서 이미 빠져나왔다. 정작 호박구덩이에 빠진 이는 나나 관철이다. 대기업이 규제를 피해서 해외로 나가니 일차밴드나 이차밴드도 따라서 나간다. 관철이는 아무래도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기가 어렵겠다. 생각하니 해장부터 입맛이 쓰다. 이러다가 또 아내에게 호박구덩이 소리를 듣겠다.
-여보. 호박잎은 밥 위에 쪄야 맛있는데?
아내는 냄비에 텅스텐 재질의 구멍이 숭숭 난 깔판을 올려놓고 호박잎을 찌고 있다. 냄비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오고 있다.
-알고 있어요. 밥은 이미 어제 저녁에 해놓은 밥인데, 뭘 새삼스럽게?
-그럼 된장이라도 맛있게 끓여!
아무래도 오늘 아침은 좀 늦을 거 같다. 아침을 먹고 어느 현장을 인사차 둘러보아야 하나? 일감이 없는데 너무 자주가면 그 또한 눈치가 보이는 법이다. 어디까지 추락을 해야 하나? 가장 밑바닥이 어디일까? 밑을 짚어도, 짚어도 허공이다. 바닥이 어디일까? 불황에 재벌이 나고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재벌을 잉태하는 그런 불황은 아닌 듯하다.
아, 호박구덩이가 되어 버린 세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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