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take / 김유수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코트가 차갑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ㆍ줍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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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분석
이 시는 시적 화자인 노숙자가 서울역 인근에서 쓰레기를 주으며 사유하는 시로 볼 수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자유경쟁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는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고통스러운 지옥으로의 초대가 되었다고 한다. 문명은 새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으로 끊임없이 여분의, 불필요한, 쓸모없는 것을 잘라냈고, 그 덕분에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 탄생했다. 2008년에 출간된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은 ‘인간=쓰레기’라는 매우 파격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본질을 새롭고도 밀도 있게 진단한다. 현대사회의 안팎에는 저마다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유령들이 배회하고 있다. 노인, 여성, 청년 백수, 조기 퇴직자, 비정규직 근로자, 노숙자, 이주 노동자, 불법 체류자, 난민, 망명자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책 제목처럼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책에서 말하는 쓰레기란 잉여의, 여분의 인간들, 즉 공인 받거나 머물도록 허락받지 못했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인간집단을 총체적으로 지시하는 용어이다.
뉴기니아 마당족의 예언자 얄리는 자본주의 재분배적인 교환제도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나를 그들의 삶의 태도를 통해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다.자본주의적 교환 방식에 의한다면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속에서 피지배자는 지배자에게 모든 소유권을 이양해야 하며,지배자는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해 피지배자의 노동력을 싼값에 사들인다.
그러나 마당족과 같은 원주민들에게는 '부를 소유할 사람들은 그 부를 분배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빼앗긴 자는 쓰레기인가?
인생은 give and take 여야 한다. give는 없고 take만 있는 자본주의 승자가 어찌보면 쓰레기가 아닐까! 노숙자는 시스템과 탐욕스러운 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뿐 쓰레기는 아니다.희생자일 뿐이다.
제도, 법률, 시스템을 이용해 더 많이 가진자는 승리자가 되고 이 시스템의 희생자 즉 빼앗긴 자는 실패자, 쓰레기가 되는 사회이다. 시적 화자는 빼앗긴 자에 대해 사유한다. 그들은 쓰레기가 아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는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빼앗기만 하고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 혹은 사람이 실상 쓰레기일 것이다.본인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실상은 상속, 인맥, 지연, 학연 등의 자원으로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take / 김유수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줍는 것은 매우 이타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이다. 시적 화자는 착한 사람이며 진정한 쓰레기는 누구인가에 대해 사유한다)
(시적 화자는 노숙자라고 불린다.사람들은 시적 화자를 실패자, 쓰레기라고 부르지만 이 매정한 사회의 시스템의 희생양일 뿐이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지나가는 그것은 일시적 존재인데 시적 화자를 실패자라고 불렀다)
(시적 화자는 그것이 규정한 프레임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코트가 차갑다
(이 매정한 사회는 추운 사회인데 그것이 배회한다.그것이 내뱉는 말은 인정사정없는 차가운 말이다.그것은 남들에게 빼앗은 권력으로 아름답게 치장한다. 코트를 입은 그것은 매우 이기적이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시스템에서 소외된 시적 화자와 같은 사람들을 무슨 근거로 쓰레기와 동일시할까? 왜 시적 화자처럼 깊이 사유하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 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어떤 부부는 시적 화자와 같은 소외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화 즉 가구 등을 사유한다.어떤 직장인은 자유를 저당잡히고 따분한 쓰레기인 신자유주의의 부품인 재생산업무를 수행한다. 어떤 시인은 소외자들에 대한 시를 쓴다(혹은 위선적 시를 쓴다). 시적 화자는 직업도 돈도 지적 능력도 없어 그런 일은 할 수가 없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으면서 옷을 건네주는 것은 매우 위선적인 태도다.그러므로 코트로 덮으며 그 위선을 거부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진리의 죽음을 시도한다. 시적 화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포한다.시적 화자는 비록 이 시스템의 희생양이기는 하나 피해자의 얼굴을 한 위선자는 아니다. 이 신자유주의의 작동원리를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자이다.그런데 몰염치하고 무자비하고 불합리한 그것이 자신이 진리를 잘 사유하는 척한다. 시적 화자의 자리를 탐낸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도덕적 피해자라는 자리를 탐내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노숙자이기는 하기는 하지만 도덕적 노숙자는 아니다)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노숙의 막판인 서울역에서 담배꽁초를 주으며 무엇이 진정한 쓰레기인가를 시간을 들여 사유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쓰레기인가?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쓰레기인가?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인가?)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것으로 상징되는 무자비, 불합리 등 진정한 쓰레기가 서울역으로 상징되는 공공의 장소, 공동체안에서 사유된다.사유의 시간이 공동체 안에서 마치 자신들의 생각 즉 약육강식이 진리인양 일반화, 보편화를 시도하고 있다.적자생존은 사회진화론자로 악명이 있었던 허버트 스펜서(1820- 1903)가 고안한 용어인데 이 낡은 사회적 진화론이 현대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불평등 및 전쟁과 식민지 정복을 합리화하려는 동기에서 생겨난 것이 사회적 진화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