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쇼핑 카트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사물이다. 그 안에 물건들이 쌓이고 섞여 혼돈 상태를 이룬다. 어떤 이들은 마치 벽돌을 쌓듯이 물건들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쌓아 질서정연하게 정리해놓지만, 어떤 이들은 세제 위에 채소, 채소 위에 생산, 생선 위에 해, 햄 위에 음료, 음료 위에 초콜릿을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쌓아놓는다. 하지만 쇼핑 카트는 그런 것들에 전혀 무관심하고, 일절 동요하지 않는다. 안에 무엇이 담기든, 쇠창살로 된 적재칸에 네 바퀴가 달린 쇼핑카트의 모양에는 변함이 없다. 담담하게, 놓인 곳에 그대로 있으며 안에 무엇을 넣든 완벽하게 무감각하다. 영혼이 없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물이 어디 있느냐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재 칸의 이 질적인 사물들이 자아내는 혼돈과 비교할 때 쇼핑 카드 자체의 부동성은 뚜렷하게 부각된다. 쇼핑 카트는 '순수한' 그릇이다. (중략) 우리에게도 오직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기 위해서만 구르는, 쇠처럼 강한 정신이 필요하다. (중략)
아내와 함께 쇼핑카트를 밀면서 '산책'을 즐긴다. 당신은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아내와 카트를 번갈아 쳐다본다. 흡사 곧 태어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빠 같은 모습이다. 신도시에 사는 당신 집 주위에는 다른 대형마트가 두 개 있다. 어디로 산책을 가든지 커다란 사각형 철제 수레를 미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 사물은 제 안에 견고하고 넓고 깊은 빈 공간을 열어 놓음으로써 어떤 물건이라도 무사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는 안도감을 준다. 콘플레이크, 생선, 샴푸, 신발, 자동차용품과 조립용 의자까지 빼곡히 담겼다. 무엇이든 수용하는 무차별성이 이 사물의 '톨레랑스(관용)'를 보여준다.
180도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바퀴는 유연성을, 브레이크가 없으면서도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정지하고 뒤로 밀리지 않는 감각은 예민함과 뚝심을 드러낸다. 그래서 당신은 또다시 어떤 물건을 향해서라도 쉽고 빠르고 우아하게 다가갈 수 있다.
쇼핑카트는 생명체처럼 자라며 진화하고 있다. 사각형은 커지고 더 튼튼해지며, 투박했던 인상은 갈수록 부드러워진다. 손잡이에 항균제를 그립감이 좋은 플라스틱 외모를 한 채 구매자 주변에 있는 추천상품 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해 주는 태블릿컴퓨터가 부착된 카트도 등장했다. 관용과 유연성에 '건강'과 '똑똑함'까지 갖춘 것이다.
쇼핑카트를 단지 커다란 장바구니라고 여기는 것은 오해다. 오늘날 이 사물은 일주일마다 반복되는 도시 산책의 친절한 동반자요, 아직 아기가 없는 당신에게는 유모차를 대신한다. 이 사물은 소중히 보듬어야 할 일용할 양식과 일상을 당신 차까지 가이드한다.
대형마트는 상점 주인과 얼굴을 대면하지 않는 익명성, 농산물(생물)에서 가전제품(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일상 자체를 통째로 옮겨놓은 완벽한 재현성, '1+1' 형태 덕용포장의 미덕까지 갖춘 도시의 인공화된 '자연'이자 '학교'다. 거기에 놓인 카트 내부의 빈 사각형은 무엇이든 가득 채우는 게 미덕이라는 공리주의를 가르친다. 학생이 되거나 욕망의 해방자가 되거나 혹은 금욕적인 수도사가 되거나, 어쨌든 이곳은 주체의 의지를 시험하는 장소다.
니체나 푸코 같은 철학자는 권력이란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전근대 사회의 권력은 '하지 마라'(금지)고 명령했다. 오늘날 권력은 '무엇이든 행하라'고 권유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견고하고 부드러운 사각 프레임이 곧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