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부. 신들의 영역
제1장. 신들도 서로 달랐다.
작가는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인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존재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신이라고 불렀다.
어떤 신은 인간에게 복을 주었다.
어떤 신은 인간의 잘못을 벌했다.
어떤 신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었고, 어떤 신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 주었다.
작가는 처음에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신이라면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인간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보지 못하는 세상의 이치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 앞에 펼쳐진 신들의 세계는 자신이 상상했던 모습과 달랐다.
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도 있었다.
작가는 창조자에게 물었다.
“신들도 서로 다릅니까?”
창조자가 대답했다.
“그렇다.”
“신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창조자는 작가를 바라보았다.
“인간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이냐?”
작가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조자가 말을 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을 완전하다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존재가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면 실망하지. 그러나 완전하다는 말과 모든 존재가 똑같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작가는 고개를 들어 신들을 바라보았다.
한 신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하고, 그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 다른 신이 반대했다.
“인간은 자유를 얻으면 그 자유로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힘이 있는 자는 약한 자를 억압하고, 욕망이 강한 자는 다른 사람의 몫까지 빼앗으려 할 것이다.”
첫 번째 신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선택할 기회 자체를 빼앗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저지른 잘못은 누가 책임지는가?”
“자신의 선택으로 저지른 잘못이라면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그 잘못으로 다른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어도?”
두 신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느 쪽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작가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신이 인간 세상에서 보았던 수많은 장면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선한 마음으로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선택 때문에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인간의 세상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신들의 세계에서도 같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작가가 창조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신들은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창조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작가는 잠시 생각했다.
“인간이 잘못된 길로 가면 신이 바로잡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면 잘못된 결과도 미리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하면 인간은 무엇을 배우겠느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가 언제나 네 잘못을 대신 바로잡아 준다면, 너는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겠느냐?”
작가는 입을 다물었다.
창조자가 다시 물었다.
“누군가가 네가 걸어갈 길을 모두 정해 놓고, 네가 잘못된 방향으로 한 걸음만 옮겨도 즉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면, 너는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렇다. 그러나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역시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자유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창조자의 말을 곱씹었다.
신이 인간을 돕는 것과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경계가 있었다.
돕지 않으면 고통을 버려뒀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반대로 지나치게 개입하면 인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었다.
작가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신에게도 자신의 역할이 따로 있습니까?”
창조자가 대답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더냐?”
작가는 신들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았다.
어떤 신은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신은 벌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신은 인간이 고통 속에 있을 때 그 고통을 줄여 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신들은 서로 달랐다.
그 차이는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졌다.
작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신마다 맡은 역할이 다르므로 생각도 다른 것일까요?”
창조자는 작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 말에 작가는 다시 신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에게 벌을 주는 신은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려는 신은 그것이 인간을 존중하는 길이라고 믿을 것이다.
고통을 없애려는 신은 자비를 실천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신들이 각자의 믿음만을 옳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비가 정의와 충돌하고, 자유가 보호와 충돌하며, 벌을 주는 일이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면 누가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할까?
작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신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판단이 맞는다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창조자에게 다시 물었다.
“신도 자신의 역할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까?”
창조자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의 역할을 안다고 믿는 것과 그 역할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작가는 그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인간 세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녀의 선택을 대신 하려 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지킨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입을 막기도 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정의를 실현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들의 세계라고 해서 그런 모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 질문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때 멀리서 한 신이 인간 세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인간의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던 작은 분쟁이 화면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이 한 가지 물건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한 사람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자신이 정당하게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각자 한쪽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했다.
마침내 한 신이 말했다.
“저들의 다툼을 끝내야겠다. 누가 옳은지 내가 판단하겠다.”
그러자 다른 신이 물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는가?”
“아직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판단하려는가?”
“오랫동안 인간을 지켜보았으니 그들의 본성을 알고 있다.”
다른 신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의 본성을 안다는 것과 지금 이 두 사람이 무엇을 겪었는지 아는 것은 다르다.”
작가는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분명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잘못처럼 보였던 일이 사실은 여러 사람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일 수도 있었다.
물론 사정이 있다고 해서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잘못을 판단하는 일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단정하는 일은 분명히 달랐다.
작가는 그 차이를 생각했다.
그때 창조자가 말했다.
“신의 역할은 인간을 내려다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창조자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 개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키려는 가치가 다른 가치와 충돌할 때, 어느 한쪽의 이름만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들의 역할은 인간이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복을 주는 것만으로 선한 신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벌을 주는 것만으로 정의로운 신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을 돕는 일에도 판단이 필요했고, 인간에게 선택을 맡기는 일에도 책임이 따랐다.
작가는 문득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을 떠올렸다.
그는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이 살아갈 세계를 만들었다.
어떤 인물에게는 행복을 주었고, 어떤 인물에게는 고통을 주었다.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 인물의 삶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창조자이므로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인물의 고통을 바라보며 질문하기 시작한 뒤로는 예전처럼 쉽게 결말을 정할 수 없었다.
이야기 속 인물에게도 그 인물만의 삶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세계라고 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저절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창조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창조자께서도 자신의 역할을 돌아보십니까?”
이번에는 창조자가 작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창조자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창조자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 말을 듣고 가슴 한쪽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이야기를 만들면서 인물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가.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는 같은 질문을 충분히 던지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왜 그 인물에게 그런 고통을 주었는가.
그 고통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가.
작가는 천천히 신들의 세계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서로 충돌할 때 무엇이 가장 옳은지 결정해 줄 존재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는 창조자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신들의 역할이 서로 다르다면, 그 모든 역할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도 창조자의 역할입니까?”
창조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멀리서 신들의 논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자유를 주장하는 신과 보호를 주장하는 신, 정의를 앞세우는 신과 자비를 앞세우는 신이 서로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었다.
창조자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조화란 모두가 같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서로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작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생겨나고 있었다.
신들은 자신의 역할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그리고 서로 다른 신들의 판단이 충돌할 때, 그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작가는 그 질문들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신들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완벽하게 정리된 세계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믿음이 부딪치고, 각자의 역할이 충돌하며,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세계였다.
그 순간 작가는 깨달았다.
신들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지, 그 행동이 누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는지도 물어야 했다.
작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창조자님, 다음에는 신들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하는지 직접 보고 싶습니다.”
창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 너는 신들의 말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 신들의 세계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가 다음에 보게 될 장면이 신의 자비를 증명하게 될지, 정의의 한계를 드러내게 될지, 아니면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지금까지 품어 온 믿음 자체를 흔들어 놓게 될지.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신에게도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에는 반드시 물어야 할 책임이 따르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그 질문을 품은 채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