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과 생초 국제 조각공원 그곳엔 과연?
글/김덕길
“자기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이 황매산이라고 하네. 거기 갈까?”
아내의 말에 내가 대답합니다.
“황매산 가는 산악회 버스 있던데 그거 타고 갑시다.”
나의 말에 아내가 깜짝 놀랍니다.
“안 돼! 버스는 밀폐된 곳이라 위험해요. 우리차로 가요.”
할 수 없이 검색을 하니 용인에서 차로 3시간 30분이 걸립니다.
‘너무 멀어 안가!’ 라는 말이 입안에서 수없이 맴도는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합니다.
사실은 나도 전부터 황매산을 가고 싶었거든요.
안개비는 아스팔트를 누비다가 내 차의 질주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길을 열어줍니다.
나는 모릅니다. 안개를 가르며 내 차가 달리는지, 내 차를 타고 넘으며 안개가 몰려오는지…….
바람은 비에 젖어 축축했고 바퀴에 채이는 물보라는 사방이 목적지인 듯 정처 없이 흩어집니다. 라디오 여성시대를 듣습니다. 역대 남성 진행자중 서경석씨가 칭찬을 제일 멋지게 한다는 여성시대 진행자 양희은님의 멘트가 경부고속도로에 퍼집니다.
1,113m의 황매산은 해발 900m 의 고원에 300m 높이의 봉우리를 올려놓은 모습입니다. 과거 목장이었는데 목장 길을 지금은 등산로로 이용합니다. 온 산이 철쭉군락으로 덮여 4월과 5월은 산이 온통 핑크빛입니다. 차가 너무 많아 주차하기도 힘들 거란 예상과 달리 주차장은 제접 한산했습니다. 꽃은 이미 활짝 피던 날을 지나 대부분 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넘기지 못하는 말을 우리는 흘려듣곤 하는데 황매산은 그 말뜻을 절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철쭉 동산 그늘에 앉아 아내가 지어온 찰밥 도시락을 맛있게 먹습니다. 나는 밥이 싱겁다 하고 아내는 짜다고 말합니다. 계란말이가 맛있어서 아내에게 묻습니다.
“계란말이가 영어로 에그 프라이 맞지?”
내가 단정 지어 말했더니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아니 계란말이는 롤 오믈렛 (rolled omelet)이고 계란전은 에그 팬케익(egg pancake)이야.”
“아니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내가 우쭐해 하더니 폰을 보여줍니다. 나는 환하게 웃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힘을 내서 황매산을 오릅니다. 드디어 고원 능선입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와! 멋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걸 나조차 어쩌지 못합니다.
고원으로 연결된 도로는 마치 천상의 화원에 펼쳐놓은 하늘다리 같습니다. 길은 철쭉 꽃 밖에서 도드라져 보입니다. 꽃이 없어도 이 풍경 하나로 이미 황매산은 최고일 듯합니다.
길이란 무엇일까요?
이 아름다운 풍경도 길이 없으면 찾아와 볼 수 없겠죠. 길은 자연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통로입니다. 황매산 고원능선에서도 사람들은 꽃과 길을 찍습니다.
나는 가끔씩 길에게 글을 묻습니다. 여행기를 자주 쓰는 나에게 길은 생명의 핏줄 같습니다.
안개가 몰려와 산을 반쯤 가리고 길을 반쯤 가려도 마냥 좋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길 따라 걸으면 내가 원하는 곳에 가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가끔 사람의 마음속으로 가는 길을 몰라 헤맵니다. 때론 오해하고 때론 토라지기도 하지요. 그런 때는 상대방이 스스로 길을 알려줘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도 없고 나침반도 없잖아요. 남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보다 내 마음을 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생초 국제 조각공원에 들립니다. 산악회 버스로 왔으면 둘러보지 않고 통과했을 관광지이지만 자가용으로 오니 이런 점이 좋습니다. 여러 군데를 둘러볼 수 있으니까요.
이른 저녁은 생초 면에 있는 찬미식당으로 향합니다. 맛집은 매운탕을 검색하고선 밥은 눈에 보이는 정육 식당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삼겹살을 주문합니다.
“4년 묵은 김치라 예, 많이 드이소......”
결코 상냥하지 않은 경상도 특유의 손님맞이에 조금은 얼떨떨하지만 나름 편합니다. 과잉 친절보다 손님을 가족처럼……. 이런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묵은지에 싸 먹는 삼겹살 맛이 끝내줍니다.

커피 한잔을 들고 뚝방길로 나갑니다.
경호강의 넘실거리는 강물과 물고기를 잡는 낚시꾼 한 명이 보입니다.
뚝방길에는 꽃잔디 외 수많은 꽃들이 아기자기 피고지고를 반복합니다. 자연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놓은 산책로가 여느 관광지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마치 고등학교 어느 남선생님과 여중학교 어느 시골 여선생님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이 경호강 뚝방에 살포시 자리할 것만 같은 소설적 상상도 해 봅니다.

국제조각공원의 담벼락엔 벌써 장미가 탐스러이 피었습니다. 공원전체가 꽃잔디인데 더 지나면 양귀비꽃이 천지를 이룰 것 같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꽃잔디를 손바닥으로 살포시 쓰다듬습니다. 원 없이 공원의 아름다움에 취해봅니다. 스쳐지나갔으면 몰랐을 곳인데 눈으로 호강하고 가슴으로 담아가니 이보다 더 한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내가 글을 쓸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