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때 토번, 즉 지금의 티베트.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은데...
중국의 서남공정의 결과인지 당나라 최대의 적이었던 티베트는 왠만큼 자세한 중국사를 읽지않는한 그 존재감을 찾기도 힘이 듭니다. 그런가보다 넘어가지만, 사실 가장 당을 괴롭혔던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전 당과 토번의 자세한 전쟁은 잘 모르고 대략 669년과 675년 당과 토번과의 대규모전투가 있었는데 결과는 두번 모두 당이 대패했다는 것, 고선지의 서역정벌의 주목적은 토번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한때 장안이 토번에게 함락당하기도 했다는 놀라운 사실!!
이 정도만 봐도 토번의 힘을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토번은 원래 얄룽을 중심으로 하는 소국이었다가 점점 세력을 키워 그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토번의 왕들은 이름이 다 비슷비슷합니다. 치송데챈, 치데송챈, 치송챈포 요딴 식으로 비슷하게 지으니ㅡㅡ;;;) 토번판 광개토대왕인 쏭첸캄포의 아버지대에 라사로 천도하고(이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책에 반발한 귀족들에 의해 암살당하여 대략 고구려의 고국원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쏭첸캄포대에 이르러 비로소 서역을 통일하고 강대국이 되었지요.
개인적으로 당태종은 이때 외교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온 국력을 다 기울여 고구려를 침공하였는데 이것은 상대적으로 배후의 토번을 별 견제없이 그대로 방치하는 원인이 되었고 게다가 쏭첸캄포라는 희대의 영웅을 군주로 둔 토번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669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어느정도 군사적인 여유가 생긴 당은 그제서야 토번에 대한 공세로 나갔지만 결과는 설인귀가 이끄는 당군은 재상 가르친링이 이끄는 토번군에게 대패했습니다. 설인귀는 그동안의 전공이 인정되어 간신히 현상유지만을 했지요.
675년 당은 다시 토번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도 대패합니다. 전투의 자세한 정황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어렴풋이 듣기로는 당군이 토번군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빠진 것을 흑치상지가 자기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끝까지 자기자리를 버텨 완전한 포위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덕분에 당군은 전멸을 피했다고 하더군요.
그뒤 토번의 업적(?)은 치송데챈 치하에서의 최전성기, 실크로드 강탈(?), 돈황점령,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직통되는 새로운 루트의 개발 등이었습니다. 위에 적은대로 고선지의 서역정벌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을 복속시키거나 정복하여 토번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고선지만한 인물이 직접 처들어가지 못하고 그렇듯 간접적인 공세를 취했다는건 당시 토번의 힘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지요.
한때 장안까지 함락시키며 위세를 떨치던 토번은 불교의 힘을 빌어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과 이러한 왕에 반발하고 또한 불교의 도입으로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토종종교(뵌포교, 샤머니즘과 비슷하다고함)와의 내분으로 분열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만약 토번이 그 전성기를 당의 쇠퇴기까지 이어갔다면 당으로서는 정말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지도 모르지요. 보통 위험하게 자랄 수 있는 싹은 미리부터 자르는게 냉엄한 국제질서의 한 단면입니다. 그런데 당나라는 전혀 그렇게 하질 못했고 토번이 강대국이 되도록 그냥 방치해뒀습니다. 그 이유인 즉, 고구려에만 매달리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당나라군은 토번군앞에서는 말그대로 오합지졸이 되버렸습니다.
고구려와는 잘만 타협하면 서로 잘 끝낼수도 있었던 사이였고 고구려가 그리 중국에 군사적인 도발을 일삼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토번은 중국에 대해 필요하면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구려와 토번 중 누가 더 쎘는지는 대결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전면전에 있어서는 토번이 더 강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단 당-고구려와 당-토번 전쟁을 보면 고구려의 싸움방식은 뭐 다들 아실테고 토번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전면전을 벌여서 당군을 패배시켰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민족은 아마 전통적으로 전면적 회전에는 약한가 봅니다. 주로 수성전등을 통해서 성공을 거두거나, 게릴라식 지연전에 능숙했지요.
그렇다면 당이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야 뒤늦게 토번에 대한 대책을 세웠느냐? 그건 아닙니다. 이미 당은 토번에 공주를 시집보낸적이 있지요. 비록 형식상으로는 토번왕이 요청하여 혼인이 성사되었지만 일단 "천하의 당이 공주를 시집보냈다" 바로 이게 중요합니다. 중국이 타국과 황실의 처자를 주면서 혼인을 성사시킨다는 것은 그나라가 그 만한 강대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죠. 즉 일단 당은 토번을 타이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지은 것입니다. 하기야 토번의 지형이 쳐들어 가기는 어렵고 지키기는 쉬운 지형이니까요..
그렇다면 태종은 잘만 타협하면 서로간의 평화와 이익을 지킬 수 있었던 고구려를 적으로 돌려 끝까지 온 국력을 동원하여 싸우고 호전적이던 토번에는 반대로 혼인관계를 맺는 잘못된 외교를 한것이 아닐까요? 태종이 비록 미래를 일일이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외교정책은 실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당태종이 국력을 기울여서 토번을 격파했다면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영류왕 연간까지 고구려에 대한 당의 입장은,ㅡ언젠가 밟아야되는데...였지 완전히 침공 계획을 구상하고있지는 않았던듯 합니다. 언젠가는 터질 전쟁이었지만, 당도 쉽게 고구려를 두들길 기회를 잡지는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은 후론 그게 완전히 ㅡ더 놓아둘 수 없다ㅡ로 바뀐듯 합니다. 연개소문의 정변이후 정국의 구도가 연씨가와 동부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는 연개소문의 통치가 안정되고 정상궤도에 오르면 고구려가 당에 공격적이 될것이라는 예측을 했겠지요.
기존 귀족연립체제가 뜨뜻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대 신라전은 훨씬 적극적이고 강력한 형태로 전개될 것이고, 혹여 연개소문의 대 신라공세가 효과를 거두면,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의 영향력은 더더욱 커졌겠지요. 광개토대왕 때의 활발한 대외진출이 강력한 왕권과 중국의 혼란 때문에 가능했다면, 그 동안 중국에대한 고구려의 방어적 태도는 귀족 연립체제가 가지는 현상유지 선호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연개소문이 통치체계를 굳히고, 신라에게 큰 타격을 주고 막대한 영토를 회복한다면? 구 고구려의 귀족 세력은 더욱 강대해진 연개소문의 세력에
얄짤없이 굴복하게 될 겁니다. 더군다나 신라와 백제가 손을 잡고 고구려에 대항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구요. 당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도 매우 위협적인 세력이 되었을게 분명합니다. 한반도 남부를 석권하는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요동 방어선이라는 강력한 방어선을 소유한 강력한 국가가 자리잡게 되는겁니다. 그 때도 고구려가 만약 중국이 약화되었을 때 예전처럼 가만히 지켜만 볼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변 때문에 국력이 쇠약해진 고구려를 두들겨야 하는겁니다. 요와 금이 고구려보다 훨씬 작고 취약한 상태에서 그렇게 강대한 국가를
고구려로선 인구 300만명정도의 국가가 열배가 넘는 나라를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토번은 어느정도 규모였는 지는 모르겠군요. 토번쪽은 거의 백지라서.... 지형적인 부분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한반도와 중국은 발해만이 있어서 돌아와야 하는 형태지만 토번과 당은 거의 개방되어 잇다고 볼 수 있지 안겠습니까?
글쎄요, 요하 서쪽에 거점을 두었을때는 고구려가 곧잘 중국으로 출병한 적이 많았습니다만, 역시나 여수전쟁 후 무려라 성을 빼앗긴 후에는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죠. 도하포인트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고구려가 중국을 공략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것을 보여준게 강이식 장군이 지휘하고 전쟁 대부분이 수나라 영지에서 일어난 1차 여수전쟁이죠.
당의 입장에서 고구려는 간접 전략으로도 충분히 견제 가능합니다. 고구려의 국지적 침공은 요서, 북경 방면에 충분한 병력을 대기시키면 끝나는 문제고, 이미 복속한 돌궐 방향에서 구 부여 지역으로, 당고종이 "결국" 그랬듯이 백제를 침공해 신라에게 줘서 힘을 실어준다면 대규모 전면전 없이도 고구려의 고립이 가능합니다. 분명히 대규모 회전에선 당이 고구려보다 앞선 승률을 보여주므로 참다 못한 고구려가 10만 단위로 침공해 온다면 홈그라운드에서 훨씬 편안히 대처가 가능합니다.
괜히 엄한 병력을 머나먼 요동 땅에 보내서 결정적인 성과 없이 공성전에서 소모시키느니 명백히 더 위협적인 토번쪽에 집중시키고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고구려가 전면적인 침공을 단행한다면 토번하고 적당히 화친하고 홈그라운드에서 편안히 싸울수도 있고요. 후자쪽이 고구려의 국력을 소모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을텐데....역시 당태종의 지나친 자신감, 수나라 이래의 원한 등 감정적인 면도 고구려 원정에 많이 작용한듯 합니다.
당이 아무리 강한 국력을 자랑해도, 토번을 정복하며 요서에서 고구려를 압박하고 동시에 백제를 멸할 군대를 동원하기란 쉽지 않았을겁니다. 양쪽 국경을 유지할순 있어도 한 나라를 멸하며 다른 국경을 유지할수 없다면 당은 기회비용을 따져봐야 합니다. 만약 더 시간이 흐른뒤에도 위협적인 국가는 어느쪽일지. 당시 당 다음으로 고도로 조직된 통치체제를 가진 국가들은 삼국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고구려는 요동의 요충을 점하고, 그안을 통치를 굳히고 있다면 항구적인 위협이 되었을겁니다. 만약 당이 최정예 병단과 태종, 이세적등 자자한 명장들이 티
벳에 가 있다면 백제와 고구려가 좋다고 신라를 바를겁니다. 정예병단이 빠진 당군이 고구려에 얼마나 시위가 될지도 모르구요. 토번도 강국이었던 만큼 토번을 멸할때 즈음되면 오히려 고구려가 토번이 했던 짓, 거란과 초원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당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이 국가는 유목적 성격이 강했던 토번처럼 일시적인 강국이 아니라 강고한 방어선과 통치조직을 가진 항구적인 적국이 되겠지요.
어차피 당으로서도 고구려, 티벳 양국 중 하나라도 정복해서 직할지로 삼기엔 지리적 거리 효용 문제가 큽니다. 실제로 고구려를 완전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숫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부흥군이 활동하자 바로 요동으로 철수하지 않았습니까? 목표는 정복이 아니라 양국 군사력에 타격을 주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중국의 전형적인 조공 외교 체제에 편입시키면 됩니다.
신라가 망해도 고구려와 백제의 원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 둘에게 싸움을 붙일 수도 있지요. 역동적인 신왕조인 당과 달리 7백년 동안 이미 "많이 먹을 만큼 먹어" 지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고구려가 적극적인 군사전략을 추구할지 조차 의문시됩니다. 당과 같은 역동적인 신왕국 티벳과는 또 틀리죠. 수백년에 걸쳐 강고한 방어선과 통치조직을 가졌지만, 그 속에서 안주하는 한계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중국질서 편입이 당의 목표가 아니란 겁니다. 세상에 명분만으로 그정도 희생을 감수할 나라는 없습니다. 당의 목표는, 고구려라는 국가의 해체입니다. 고구려가 살살 기었어도 당은 기어코 고구려를 해체했을겁니다. 요동과 중원은 요하와 일련의 산맥을 넘으면 큰 무리 없이 밀고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주에서 흥기한 유목민들도 그랬구요. 그런데 그 방어라인은 고구려의 소유입니다. 이쯤 되면 배후에서 고구려를 견제해줄 세력이 있어야, 즉 한반도에 강력한 견제세력이 상주해야 합니다만, 백제와 신라에게 고려가 거란, 여진에 가했던 이상
의 압력을 요구하기는 어렵겠지요. 더군다나 백제가 신라의 일부를 통합한다쳐도, 지형상 방어라인을 형성하기 어려운 백제는 국력에 우위가 있거나 고구려에 이상징후가 없다면 쉽게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어렵겠지요. 더군다나 항구적인 위협은, 언제 고구려가 당에게 공세로 나올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장보면 토번이 더 공격적이지만, 불교 도입이후 순식간에 취약해진데서 보듯 토번의 흥기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약 안녹산의 난이 벌어졌을 때에도 고구려가 있었다면,그 때도 고구려가 가만히 있어줬을지는 모르는겁니다.
토번의 공세는 감숙회랑에서 우위를 확보하고도 추수기에 일시적인 기습을 하던지,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일시적인 점유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고구려의 공격은 토지를 빼앗고, 그 지역에 성을 쌓은뒤 자기네 지배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이 강성할 때야 토번이 더 귀찮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때는 정주국가가 더 무섭습니다. 당은 고구려든 백제든 신라든, 그들이 중국 세계관에 편입되었든 말든 해체하거나 한반도로 밀어넣어 고립시켜야 했습니다.
하나만 덧붙이면, 중국 본토를 점유한 국가는 동북지방이나 몽골고원에서 나왔지, 서장에서 나온적은 없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어떤 계기로 폭발적인 결집력을 모을 수 있다면ㅡ 그리고 그시기는 일반적으로 중국이 약해졌을 때와 겹치지요ㅡ고구려가 요나 금처럼 토번보다 훨씬 큰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요
비잔티움도 수백년 묵은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국가였지만 급격한 영토확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도 비슷합니다. 어쩌면 연개소문의 쿠데타도 고구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연개소문의 독재는 당의 연이은 침공에 따라 왜곡되고 기형적인 형태로 진행되어버렸지만, 반대로 당이 고구려를 내버려뒀다면, 어떤 방식의 개혁적 조치가 취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연개소문의 쿠데타 자체가 기존 귀족세력간의 세력균형이 붕괴되생긴 것이니만큼, 상처가 치유된다면 더 집권적인 체제가 구성되었을지도 모르구요
흠... 개소문이의 쿠데타에 대한 평가가 미묘하게 변화하신 것 같군요. 그런데 개소문이의 집권이 기존 권력층의 세력균형붕괴에서 생겼다라면 개소문이의 집권은 고구려 지배층의 분열의 원인이 아닌 결과인 것인가요? 개소문이 이전에 집권층 세력균형 붕괴의 조짐이 있었던 겐가요?
그 전까지는 단순히 대당 노선의 차이로만 봤는데,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든 듯 합니다. 귀족 연립체제란게 원래 귀족들끼리 상호 견제와 균형이 뒷받춰 줘야 하는데, 그 중에서 연씨 가문의 힘이 급격하게 강해진 거지요. 남생 묘비에서도 연개소문의 조상들이 동부를 맡아 가업을 계승하고 군대를 잘 길렀다고 하는데, 연씨가가 동부의 군사력을 독점하며 세력을 키웠던 듯 합니다. 결국 귀족 회의체에선 연씨가를 견제하기 위해 개소문씨가 성질 드럽다는 이유로 동부 대인 계승에 반대했지만, 무릎을 꿇고 사정했든 어쨌든 개소문씨가 직위를 이어받았다는건 귀족 회외체에서도 함부로 견제하기 힘들만큼 연씨가가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사실 귀족연립체제란게 조금 성질이 사납든 뇌물을 깨작거리든 서로서로 봐줘야 돌아가는체제 아닙니까-_- 그런데 그걸 가지고 태클을 걸었다는건 그만큼 연개소문의 세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젠가 손을 대야 했을 체제고, 쿠데타가 어떤식으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해도, 당의 침공을 눈앞에 두고 극단적인 대립을 낳고, 더불어 쿠데타를 일으켜 고구려의 체제 자체를 뒤흔들었다는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세상에는 변신 로봇이 합체하는 동안 가만히 있어주는 악당은 없으니까요-_-
첫댓글 ㅡㅡ;; 고구려 보다 토번을 먼저쳐야할 이유가 없습니다.수나라의 죽은 군인들은 중국인이고 그들의 시체를 당이 제사지내고 고구려의 승첩비를 훼손한 행위부터 생각해 보시면 왜 토번보다 고구려를 처야 하는지 나머지 뱀다리들은 따라올듯.
아니지..당=부시 고구려=김정일 중국=토번 ㅡ,.ㅡ
영류왕 연간까지 고구려에 대한 당의 입장은,ㅡ언젠가 밟아야되는데...였지 완전히 침공 계획을 구상하고있지는 않았던듯 합니다. 언젠가는 터질 전쟁이었지만, 당도 쉽게 고구려를 두들길 기회를 잡지는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은 후론 그게 완전히 ㅡ더 놓아둘 수 없다ㅡ로 바뀐듯 합니다. 연개소문의 정변이후 정국의 구도가 연씨가와 동부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는 연개소문의 통치가 안정되고 정상궤도에 오르면 고구려가 당에 공격적이 될것이라는 예측을 했겠지요.
기존 귀족연립체제가 뜨뜻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대 신라전은 훨씬 적극적이고 강력한 형태로 전개될 것이고, 혹여 연개소문의 대 신라공세가 효과를 거두면,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의 영향력은 더더욱 커졌겠지요. 광개토대왕 때의 활발한 대외진출이 강력한 왕권과 중국의 혼란 때문에 가능했다면, 그 동안 중국에대한 고구려의 방어적 태도는 귀족 연립체제가 가지는 현상유지 선호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연개소문이 통치체계를 굳히고, 신라에게 큰 타격을 주고 막대한 영토를 회복한다면? 구 고구려의 귀족 세력은 더욱 강대해진 연개소문의 세력에
얄짤없이 굴복하게 될 겁니다. 더군다나 신라와 백제가 손을 잡고 고구려에 대항하기도 쉽지 않아 보이구요. 당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도 매우 위협적인 세력이 되었을게 분명합니다. 한반도 남부를 석권하는건 불가능할지 몰라도, 요동 방어선이라는 강력한 방어선을 소유한 강력한 국가가 자리잡게 되는겁니다. 그 때도 고구려가 만약 중국이 약화되었을 때 예전처럼 가만히 지켜만 볼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변 때문에 국력이 쇠약해진 고구려를 두들겨야 하는겁니다. 요와 금이 고구려보다 훨씬 작고 취약한 상태에서 그렇게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다는걸 고려해 보면, 그걸 몇개 묶은 국토와 강력한 방어선, 고도의 통치체계를 가진 영토국가가 당이 약해졌을 때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기 어렵습니다. 당의 입장에선 오히려 일시적으로 취약해진 고구려를 밀어버리는것이 현명했을 겁니다.
고구려로선 인구 300만명정도의 국가가 열배가 넘는 나라를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토번은 어느정도 규모였는 지는 모르겠군요. 토번쪽은 거의 백지라서.... 지형적인 부분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한반도와 중국은 발해만이 있어서 돌아와야 하는 형태지만 토번과 당은 거의 개방되어 잇다고 볼 수 있지 안겠습니까?
대체적으로 중국에서 쳐들어오기도 힘들지만 쳐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글쎄요, 요하 서쪽에 거점을 두었을때는 고구려가 곧잘 중국으로 출병한 적이 많았습니다만, 역시나 여수전쟁 후 무려라 성을 빼앗긴 후에는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죠. 도하포인트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고구려가 중국을 공략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것을 보여준게 강이식 장군이 지휘하고 전쟁 대부분이 수나라 영지에서 일어난 1차 여수전쟁이죠.
당의 입장에서 고구려는 간접 전략으로도 충분히 견제 가능합니다. 고구려의 국지적 침공은 요서, 북경 방면에 충분한 병력을 대기시키면 끝나는 문제고, 이미 복속한 돌궐 방향에서 구 부여 지역으로, 당고종이 "결국" 그랬듯이 백제를 침공해 신라에게 줘서 힘을 실어준다면 대규모 전면전 없이도 고구려의 고립이 가능합니다. 분명히 대규모 회전에선 당이 고구려보다 앞선 승률을 보여주므로 참다 못한 고구려가 10만 단위로 침공해 온다면 홈그라운드에서 훨씬 편안히 대처가 가능합니다.
괜히 엄한 병력을 머나먼 요동 땅에 보내서 결정적인 성과 없이 공성전에서 소모시키느니 명백히 더 위협적인 토번쪽에 집중시키고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고구려가 전면적인 침공을 단행한다면 토번하고 적당히 화친하고 홈그라운드에서 편안히 싸울수도 있고요. 후자쪽이 고구려의 국력을 소모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을텐데....역시 당태종의 지나친 자신감, 수나라 이래의 원한 등 감정적인 면도 고구려 원정에 많이 작용한듯 합니다.
사실 송첸캄포 당시 당나라도 토번에 대한 위협을 느껴서 공주를 시집보내서 불교도 전하고 양잠 기술도 전해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당이 아무리 강한 국력을 자랑해도, 토번을 정복하며 요서에서 고구려를 압박하고 동시에 백제를 멸할 군대를 동원하기란 쉽지 않았을겁니다. 양쪽 국경을 유지할순 있어도 한 나라를 멸하며 다른 국경을 유지할수 없다면 당은 기회비용을 따져봐야 합니다. 만약 더 시간이 흐른뒤에도 위협적인 국가는 어느쪽일지. 당시 당 다음으로 고도로 조직된 통치체제를 가진 국가들은 삼국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고구려는 요동의 요충을 점하고, 그안을 통치를 굳히고 있다면 항구적인 위협이 되었을겁니다. 만약 당이 최정예 병단과 태종, 이세적등 자자한 명장들이 티
벳에 가 있다면 백제와 고구려가 좋다고 신라를 바를겁니다. 정예병단이 빠진 당군이 고구려에 얼마나 시위가 될지도 모르구요. 토번도 강국이었던 만큼 토번을 멸할때 즈음되면 오히려 고구려가 토번이 했던 짓, 거란과 초원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당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이 국가는 유목적 성격이 강했던 토번처럼 일시적인 강국이 아니라 강고한 방어선과 통치조직을 가진 항구적인 적국이 되겠지요.
그렇기에 고구려는 우리 역사중 존재했던 국가들 중에서 제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흠모했던 국가랍니다.
하긴 당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않았더라면 먼저 멸망한 국가는 신라였을지도 모르져 다구리에 완전 휘청거리고 계셨었으니...
어차피 당으로서도 고구려, 티벳 양국 중 하나라도 정복해서 직할지로 삼기엔 지리적 거리 효용 문제가 큽니다. 실제로 고구려를 완전 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숫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부흥군이 활동하자 바로 요동으로 철수하지 않았습니까? 목표는 정복이 아니라 양국 군사력에 타격을 주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중국의 전형적인 조공 외교 체제에 편입시키면 됩니다.
신라가 망해도 고구려와 백제의 원한 관계를 생각하면 그 둘에게 싸움을 붙일 수도 있지요. 역동적인 신왕조인 당과 달리 7백년 동안 이미 "많이 먹을 만큼 먹어" 지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고구려가 적극적인 군사전략을 추구할지 조차 의문시됩니다. 당과 같은 역동적인 신왕국 티벳과는 또 틀리죠. 수백년에 걸쳐 강고한 방어선과 통치조직을 가졌지만, 그 속에서 안주하는 한계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한 중국질서 편입이 당의 목표가 아니란 겁니다. 세상에 명분만으로 그정도 희생을 감수할 나라는 없습니다. 당의 목표는, 고구려라는 국가의 해체입니다. 고구려가 살살 기었어도 당은 기어코 고구려를 해체했을겁니다. 요동과 중원은 요하와 일련의 산맥을 넘으면 큰 무리 없이 밀고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주에서 흥기한 유목민들도 그랬구요. 그런데 그 방어라인은 고구려의 소유입니다. 이쯤 되면 배후에서 고구려를 견제해줄 세력이 있어야, 즉 한반도에 강력한 견제세력이 상주해야 합니다만, 백제와 신라에게 고려가 거란, 여진에 가했던 이상
의 압력을 요구하기는 어렵겠지요. 더군다나 백제가 신라의 일부를 통합한다쳐도, 지형상 방어라인을 형성하기 어려운 백제는 국력에 우위가 있거나 고구려에 이상징후가 없다면 쉽게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어렵겠지요. 더군다나 항구적인 위협은, 언제 고구려가 당에게 공세로 나올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장보면 토번이 더 공격적이지만, 불교 도입이후 순식간에 취약해진데서 보듯 토번의 흥기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약 안녹산의 난이 벌어졌을 때에도 고구려가 있었다면,그 때도 고구려가 가만히 있어줬을지는 모르는겁니다.
토번의 공세는 감숙회랑에서 우위를 확보하고도 추수기에 일시적인 기습을 하던지,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일시적인 점유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고구려의 공격은 토지를 빼앗고, 그 지역에 성을 쌓은뒤 자기네 지배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이 강성할 때야 토번이 더 귀찮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때는 정주국가가 더 무섭습니다. 당은 고구려든 백제든 신라든, 그들이 중국 세계관에 편입되었든 말든 해체하거나 한반도로 밀어넣어 고립시켜야 했습니다.
하나만 덧붙이면, 중국 본토를 점유한 국가는 동북지방이나 몽골고원에서 나왔지, 서장에서 나온적은 없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어떤 계기로 폭발적인 결집력을 모을 수 있다면ㅡ 그리고 그시기는 일반적으로 중국이 약해졌을 때와 겹치지요ㅡ고구려가 요나 금처럼 토번보다 훨씬 큰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도 있었으니까요
비잔티움도 수백년 묵은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국가였지만 급격한 영토확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도 비슷합니다. 어쩌면 연개소문의 쿠데타도 고구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연개소문의 독재는 당의 연이은 침공에 따라 왜곡되고 기형적인 형태로 진행되어버렸지만, 반대로 당이 고구려를 내버려뒀다면, 어떤 방식의 개혁적 조치가 취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연개소문의 쿠데타 자체가 기존 귀족세력간의 세력균형이 붕괴되생긴 것이니만큼, 상처가 치유된다면 더 집권적인 체제가 구성되었을지도 모르구요
흠... 개소문이의 쿠데타에 대한 평가가 미묘하게 변화하신 것 같군요. 그런데 개소문이의 집권이 기존 권력층의 세력균형붕괴에서 생겼다라면 개소문이의 집권은 고구려 지배층의 분열의 원인이 아닌 결과인 것인가요? 개소문이 이전에 집권층 세력균형 붕괴의 조짐이 있었던 겐가요?
그 전까지는 단순히 대당 노선의 차이로만 봤는데,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든 듯 합니다. 귀족 연립체제란게 원래 귀족들끼리 상호 견제와 균형이 뒷받춰 줘야 하는데, 그 중에서 연씨 가문의 힘이 급격하게 강해진 거지요. 남생 묘비에서도 연개소문의 조상들이 동부를 맡아 가업을 계승하고 군대를 잘 길렀다고 하는데, 연씨가가 동부의 군사력을 독점하며 세력을 키웠던 듯 합니다. 결국 귀족 회의체에선 연씨가를 견제하기 위해 개소문씨가 성질 드럽다는 이유로 동부 대인 계승에 반대했지만, 무릎을 꿇고 사정했든 어쨌든 개소문씨가 직위를 이어받았다는건 귀족 회외체에서도 함부로 견제하기 힘들만큼 연씨가가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구요
사실 귀족연립체제란게 조금 성질이 사납든 뇌물을 깨작거리든 서로서로 봐줘야 돌아가는체제 아닙니까-_- 그런데 그걸 가지고 태클을 걸었다는건 그만큼 연개소문의 세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언젠가 손을 대야 했을 체제고, 쿠데타가 어떤식으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해도, 당의 침공을 눈앞에 두고 극단적인 대립을 낳고, 더불어 쿠데타를 일으켜 고구려의 체제 자체를 뒤흔들었다는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세상에는 변신 로봇이 합체하는 동안 가만히 있어주는 악당은 없으니까요-_-
다양한 의견들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