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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주석/일반자료 예수는 누구인가: (6)비서구(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맥락에서/ 박형진
주의검을보내사 추천 0 조회 37 24.09.19 23:52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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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9.20 01:48

    첫댓글 비서구 지역에서 영향을 미친 지도자들의 모습 또한 서구 교회가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특성을 드러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선다 싱(Sadhu Sundar Singh), 중국의 워치만 니(Watchman Nee),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Uchimura Kanzo), 한국의 조용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의 영성과 신학적 사고방식이 서구적 전통이나 정통신학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선다 싱의 깊은 통찰력과 영적 체험은 매우 독특한 면이 있다. 그는 신학적 방법론으로 일상과 자연의 비유를 들어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를 너무나도 잘 표현했는데, 이는 서구의 교리적인 관점과 매우 다른 것이다.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진 우치무라 간조의 경우도 서구의 교단주의를 배격하여 무교회주의 운동을 펼쳤지만, 오히려 성서를 철저히 강조하고 말씀대로 살려는 진지함을 추구했다. 중국 지하교회의 지도자로 잘 알려진 워치만 니는 서구 선교사들의 간섭을 벗어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삼자교회를 거부하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복역하는 동안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죽었다.

  • 작성자 24.09.20 01:49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일군 조용기는 ‘3중축복’(요삼 1:2)과 ‘5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축복, 재림)을 한국적 상황에 접목하여 엄청난 교회성장을 일으켰다. 이들의 교리, 교회, 인간, 축복에 대한 이해를 서구 정통교리의 잣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 작성자 24.09.20 02:00

    오늘날 아프리카 기독교도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독립교회는 아프리카적인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자생적 교회를 일컫는다. 그들은 신앙고백과 예배의 표현, 교회의 이름 등에서 아프리카적 특성을 그대로 담아낸다. 그러한 특성은 꿈, 환상, 계시, 춤, 치유, 기적 등을 강조하는 이들 교회의 모습에 담겨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성서 중에서 특별히 구약성서가 친아프리카적 특성을 보다 잘 드러내는 책이라 여기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아프리카 기독교는 영적 리더십 면에서 예언자적 특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라이베리아 출신의 해리스(William Wade Harris)에게서 잘 드러난다. 그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를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로 인식하고 백색의 망토와 터번을 걸치고 모세처럼 지팡이를 든 채 라이베리아, 아이보리코스트, 가나 지역을 도는 순회전도자로 활약했다.

  • 작성자 24.09.20 02:02

    한편 남미에서 해방신학보다 더 대중적으로 더 확산된 특징적인 운동이 있는데, 소위 ‘에반젤리코스’(Evangélicos, 비가톨릭 그룹인 개신교와 오순절파 등을 지칭)에서 불기 시작한 오순절(Pentecostal)운동이다. 해방신학과 같이 오순절운동 역시 가난한 자들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었고,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해방신학이 근본적으로 사회의 구조악에 대항하는 입장이라면, 오순절운동은 은사, 치유 등 개인적 체험에 호소하는 운동이다.

    남미에서의 오순절운동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사회적 참여에도 적극적인 성격을 띤다는 특색이 있다. 오랜 정복과 억압, 가난과 질병으로 억눌린 자들에게 사회적·개인적 차원의 ‘해방’을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에 대한 남미권의 화답이라고 볼 수 있다.

  • 작성자 24.09.20 02:08

    인도나 중국과 같이 고대 종교의 전통이 오래된 지역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를 현지인의 전통적이고 토착적인 틀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다.


    인도에서는 우파드야야(Brahmabandhav Upadhyay)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적 속성을 산스크리트어인 사칫아난다(Sat-Cit-Ananda)로 표현했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존재(Sat)-의식(Cit)-행복(Ananda),으로 힌두 베단타(Vedanta)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최고신의 속성으로 스스로 존재하고(Self-Existent), 스스로 알고(Self-Knowing), 스스로 자족(Self-Satisfied)하는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 작성자 24.09.20 02:10

    이러한 시도는 기존의 전통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면서 전통과 기독교 사이의 연속점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의 로고스(요 1:1)를, 도교에서 쓰고 있는 도(道)라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이는 마치 헬레니즘에서 예수를 로고스 개념으로 이해한 것과 유사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 작성자 24.09.20 02:11

    비서구적 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와는 다른 나름의 전통과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3The Next ChristendomThe Coming of Global Christianity이라는 책을 낸 젠킨스(Philip Jenkins)의 지적처럼 비서구적 기독교는 신학적으로 훨씬 보수적이며 문자적인 이해에 기초하여 성서를 바라본다.4 또한 정령숭배의 샤머니즘적 세계관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동하여, 성서에 언급된 초자연적 현상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함으로써 복음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비서구의 보수적인 기독교는 지구촌기독교, 특히 서구 기독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계몽주의적 영향으로 심지어 복음주의권에서조차 소원하게 생각되는 초자연적 기적 사건이나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에 대해 긍정적이고 균형 잡힌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촌 시대의 신학은 상호의존(interdependence)의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 작성자 24.09.20 02:15

    다시 말해 각 시대와 지역과 문화 속에서 이해된 그리스도는 한결같이 구속사적 흐름에서 나름 공헌하여 그리스도를 더욱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확장되고(enlarged), 풍요로워지며(enriched), 증진되어(enhanced)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의 역사 과정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는 바울이 이해한 교회에 대한 비전으로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2:23)에 대한 선교적 해석과 이해이다. 월스는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만물을 충만케 하는 주체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충만케 되는 객체로서 설명한다. 이미 완전하신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라기보다 선교 역사적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더욱 채워져 감으로써 그리스도가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월스는 ‘에베소적 시점’(Ephesian Moment)이라고 명명한다.7

  • 작성자 24.09.20 02:15

    복음은 결코 진공 속을 달려오지 않았으며, 시기마다 특정한 문화권이라는 매질을 타고 역사의 여정을 걸어왔다. 이러한 차원에서 결국 복음의 여정은 ‘문화간 여정’(cross-cultural journey)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결국 기독교의 역사적 과정(historical process)은 역사가 제공해주는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라는 면에서 주목해야 한다. 즉 역사적 과정은 그리스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매질로 이해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리스도는 각 시대와 지역과 문화의 접점에서 우리를 만나주었고, 복음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지나온 역사는 성서 속에 계시된 복음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예수에 대한 이해가 자연스럽게 ‘상황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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