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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일요일 맑음
어제 밤부터 아내는 구토와 설사로 고생을 한다. 소깔로에서 사 먹은 간식이 원인인 것 같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새벽에 잠을 푹 자는 것 같다. 아침에 기운은 없지만 구토, 설사가 멈춰서 감사할 일이다. 아침 8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기온이 쌀쌀하다. 멕시코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기온이다. 가지고 있는 가장 두꺼운 옷을 입고 나왔다. 인류학 박물관과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알라메다 공원 옆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아내는 탈이 나서 먹을 수 없고 할 수 없이 혼자 먹었다. 콩 수프와 고기 타코를 한씩 먹었다.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겠다. 개고기 냄새가 난다. 아침에 식당도 열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이곳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알라메다 공원이 끝나는 곳의 로타리에 섰다. 레 포르마 대로를 만난다. 이글레시아 유다 교회가 2개의 종탑을 자랑하며 세워져 있다. 히달고 메트로 역이다. 알라메다 공원 남쪽 후아레즈 거리를 따라 서쪽 끝까지 가면 남서쪽으로 가로지르는 레 포르마 거리를 만나게 된다. 막시밀리아노 황제가 파리 상젤리제 거리를 모델로 해서 건설한 도로다.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를 따라 고층빌딩이 즐비해 있고 주요 교차로와 로타리마다 근사한 기념물이 서 있다. 그중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동상, 황금색 천사가 아름다운 독립 기념탑, 스페인 정복자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아즈텍 최후의 왕(구아테목)의 모습 등이 있다. 도로 폭이 넓은 로타리에서 볼 것들이 많다. 이 대로는 오늘 웬일인지 차량을 통제하고 자전거와 달리기 하는 사람들만 대로를 활보하고 있다. 우리도 기분 좋게 대로를 걸어간다.
먼저 만난 기념물이 혁명 기념비다. 레 포르마 거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다. 1900년대 초 멕시코의 독재자 디아지가 짓기 시작 했지만 혁명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38년 건축가 오베르곤 산타칠리아에 의해 혁명의 상징물로 다시 만들어졌다. 덕분에 엘레강스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갖춘 거대한 구조물이 되었다. 건물 위쪽의 네 모퉁이에는 개혁, 농민, 노동자, 법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구조물을 바치고 있는 4개의 기둥에는 멕시코 혁명의 영웅인 프란시스코 마데로, 라자르 카르데나스, 카렌자, 판초비야의 유해가 담겨져 있다. 기념비 아래는 국립혁명 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사진과 비디오, 군복과 무기 등이 있는 4개의 전시실을 통해 약 60년에 이르는 멕시코 혁명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혁명 기념비 아래에는 무슨 행사를 했는지 천막이 가득 쳐져 있어 복잡하다. 멕시코 국기가 줄지어 세워진 입구로 나온다.
다시 레 포르마 대로를 걷는다. 차들이 통제되어 편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로타리에서 만난 동상이 컬럼버스 동상이다. 지구본을 옆에 끼고 있는 모습이 탐험가라기보다는 학자 같다. 그 다음 로타리에서 만난 동상이 아즈텍 최후의 왕 구아테목이다.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 꼭 로마 병사 같다. 다음 만난 것이 멕시코 독립 100주면 기념탑이다. 1910년 당시 멕시코 대통령인 디아스에 의해 건립되었다. 중간의 하얀 동상들은 멕시코 독립 운동의 지도자인 이달고 신부, 모랄레스, 게레로 등의 영웅을 조각해 놓았다. 그 밑의 4 모퉁이에는 법, 정의, 전쟁, 평화를 상징하는 여인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사자 밑으로 보이는 네모난 문 안으로 들어가면 위에서 말했던 독립운동의 영웅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는데, 혁명탑의 내용과 겹쳐서 의아스럽다. 36m의 탑 꼭대기에는 천사, 황금색 천사상이 올려져있다. 이 부근에는 한인 교포들이 살고 있는데 5000여명 정도란다. 독립기념탑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에 맞추어 30여명의 사람들이 춤을 주고 있다. 아침체조, 스포츠 댄스다. 구경하니 흐뭇하다. 걸어가니 또 로타리가 나온다. 동상이 있다. 화살을 힘차게 겨냥한 여인상인데 라 디아나 카자도라. 사냥하는 여인상이다. 분수와 잘 어울려 도시를 더욱 멋지게 해준다. 그리스 신화의 다이아나 여신의 조각상인 셈이다. 더 걸어가니 오른쪽에 토레 마요라는 글이 적힌 건물이 있다. 오래된 건물을 품고 올라간 현대식 건물이다. 아토믹 타워라는 밋밋한 높은 탑을 지난다. 1945년 7월 16일 남 멕시코 사막에서 최초로 미국이 원자폭탄을 실험한 것과 관련이 있을까?
우리는 공원에 들어섰다. 광대한 차풀테크 공원에는 구경거리가 가득하다. 시내 중심가인 소깔로 나 알라메다 주변에서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50m 도로 레포르마 거리를 서쪽으로 30여분 정도 걸어가면 디아나 분수가 있는 공원 입구가 나온다. 멕시코 삼나무가 무성한 광대한 넓이의 공원에는 6개의 박물관, 3개의 극장, 보트가 혼잡하게 오가는 3개의 호수, 3개의 야외무대, 동물원, 유원지, 식물원등이 있다. 공원을 달리는 페리페리코 하이웨이에 의해서 2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하이웨이 동쪽을 구 차플테페크, 서쪽을 신 차플테페크라 부른다. 차프테페크는 옛날에 아즈텍 왕의 휴양지였다.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현재의 소깔로를 중심으로 궁궐과 신전이 즐비했다. 당시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위에 떠있는 인구 30만의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활기찼다고 한다. 차플테페크는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종종 아즈텍 왕은 휴식을 위하여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스페인 식민 시절에는 총독이 이곳에 별장을 지었다. 1860년대에 나폴레옹 3세가 멕시코 황제로서 멕시밀리안을 보내었을 때에 카스티요(성)가 건축되었으며 그 후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기도 했다. 녹음이 우거진 멕시코 시민의 휴식처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일요일이면 이 공원은 혼잡하다. 인공호수에는 보트가 오가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길가에는 솜사탕이나 스넥, 주스를 파는 행상인, 민예품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으며 거리의 광대를 둘러싸고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박수를 치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연설을 하는 이도 있어 시끄럽다. 야외무대에서는 아마추어 록 밴드나 극단이 콘서트를 공연한다. 연인들이 곳곳에서 껴안고 있는 모습, 책을 일는 사람, 가족끼리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할수 있다. 조깅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달려볼 수도 있다. 또 천천히 박물관을 둘러보거나 보트라도 한번 저어보고 싶다면, 그리고 잔디 위에서 편안히 뒹굴어 보고 싶다면 평일에 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멕시코적인 일요일을 느껴보는 것도 하나의 일일 것 같다. 먼저 카스티요 성을 찾았다. 공원내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유럽식 궁전으로 이곳에서는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1783년 당시 식민지의 왕이었던 베나르도 데 가르베스가 군대의 성채 겸 별장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본국인 스페인 왕의 방해로 완성하지 못했다. 멕시코 독립 후 인 1840년군인 학교로 완성되었으며, 1847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이곳이 패색이 짙은 멕시코 군의 최후의 요새가 되었을 때 6명의 소년 사관 후보생이 성에 남아 미국군을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이 6명은 니뇨스 에로에스(소년 영웅들)라 불리며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영웅으로서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다. 성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의 아래에서 그들의 기념비를 만났다. 여기서 기념 촬영. 니뇨스 에로에스는 지하철의 역명이기도 하다. 1866년 프랑스 군의 맥시밀리안 황제에 의해서 성은 궁전으로 개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후 역대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어 왔다. 현재는 국립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 독립, 각국의 간섭, 혁명으로 이어지는 멕시코 역사의 흥미 있는 자료와 유품을 볼 수 있다.
성으로 오르는 길에서 다람쥐들을 만났다. 도망칠 생각도 않고 나무를 오르내리며 놀고 있다. 성으로 오르는 열차모형 자동차가 손님을 태우고 올라간다. 성 앞에서니 입장료를 받는다. 자국인은 일요일이라 공짜인데 외국인들은 59페소를 내란다. 여자 경찰들이 통통하게 생겼다. 정원에는 소년상들이 보인다.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내려온다. 아래 작은 건물에는 아동들의 작품이 걸려있는 작은 전시실도 있다. 공원을 걸어서 타마이요 미술관으로 간다. 큰 길을 건너가니 미술관이다. 멕시코의 위대한 벽화가 타마이요의 미술관이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가 보니 그 자신의 작품은 몇 개 없다. 이곳에는 각종 미술 기획전이 열리는데 세계 각 국의 명작이 모인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원목을 이용한 각종 생활 인테리어가 전시되고 있었다. TV 받침대, 침대, 의자, 탁자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둥근 막대기로 만든 실제 크기의 승용차 모형이 참 인상적이었다. 입장료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타마이요 작품은 ‘댄스’ 등 소형 작품이 많이 보인다. 그 옆에는 화선지에 먹물을 이용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숫자와 알파벳을 이용한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규칙성과 질서가 느껴진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카메라에 담았다. 멕시코를 넘어 라틴 아메리카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타마이요(1899.8.26.~1991.6.24.)는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유연하고 어린이 그림 같은 느낌이 들어 거부감이 없이 친숙하게 받아들여진다. 동화적이고 인디언적인 스타일의 화풍이다. 1970년대 활동 작품을 보면 멕시코 고대문명 등 민속적인 요소를 근대적 조형 언어 속에 융합시킨 풍부한 색감과 촉각성이 두드러진 작품을 제작했다.
미술관을 나오니 잔디밭 공터에서 멕시코 민속놀이가 시연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볼라도레스 라는 놀이다. 30m 가까이 되는 전봇대 모양의 기둥위로 줄을 가지고 올라가 발을 묶고 한 사람은 꼭대기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고 네 사람이 거꾸로 매달린 채 회전하면서 내려오는 민속놀이다. 사람들이 원을 이루고 구경하고 있다. 모두 빨간 바지에 하얀 셔츠 그리고 노란 술을 수놓은 숄을 가슴ㅂ에 두른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게다가 머린엔 작은 거울 조각이 사방으로 붙어있다. 마치 우리나라 농악대 상모처럼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하양 등 오색 긴 줄이 달린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 장대를 올라가기 전에는 우에우에 라는 춤을 추는데, 이 춤은 조상에 대한 예우로 ‘불과 세월의 신’ 인 우에우에 떼오뜰에게 바치던 것이란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아찔한데 기둥 꼭대기에 선 사람은 인사한다고 가느다랗고 작은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각 방향으로 돌며 한 발로 서서 나머지 발은 쭉 펴며 머리를 숙인다. 이는 바람의 신과 동서남북 사방의 신에게 인사하는 것이란다. 4명의 볼라도레스는 태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신성한 새들, 즉 앵무새, 독수리, 종달새, 께찰새(과테말라의 국조로 초록색 긴 꼬리가 아름다운 새)로 가장한 사람들이다. 약 10여 분 간 아찔한 공연을 끝내면 직접 구경 값을 받으러 다닌다. 이 놀이는 동부 파판틀라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민속으로 풍요의 신 시페토텍에게 드리는 기우제란다. 꼭대기 1명을 카포랄이라고 한다. 4명이 모두 13바퀴를 돌면서 착지를 하는데 4사람이 회전한 총 52바퀴의 52는 마야 문명에서 회갑을 혹은 한 세기를 의미하는 숫자다. 관중들에게 돌면서 작게 만든 모형을 팔고 있다.
우리는 인류학 박물관으로 향했다. 규모가 생가보다 크다. 우리는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이 일요일에는 무료라는 정보를 갖고 일부러 일요일에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외국인은 입장료를 내야한단다. 기분이 별로였지만 할 수 없이 59페소를 내고, 가방을 맡기고 카메라만 들고 입장을 했다. 외관이 인상적이다. ㅁ ,네모 모양의 2층 건물 구조인데 한면은 입구로 가둥 하나에 천정 지붕을 얹은 특이한 모습이다. 차플테페크의 조용한 숲속에 위치한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서면 비의 신 트롤라크의 거대한 석상이 맞아준다. 멕시코인이 세계에 자랑하는 이 박물관은 1964년 가을, 천재 건축가 페드로 라밀레스 바스케스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독특한 디자인도 전시물과는 별개로 건축 작품으로서도 감상가치가 있다. 건물 중심에는 넓은 정원 Patio 가 있고 3면을 2층 건물의 전시실이 둘러싸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설계의 아이디어는 마야 유적인 우스말의 사원 이미지를 기초로 하고 있단다. 올려다보면 정면의 동쪽 절반은 커다란 지붕으로 덮여 있고 그 지붕은 1개의 원기둥으로 받쳐져 있기 때문에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기둥과 지붕 사이의 구멍에서는 언제나 물이 흘러 떨어지고 있어서 주위에 시원함과 습기를 더해주고 있다. 원기둥은 많은 와이어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므로 마치 커다란 우산 모양이다. 원기둥에는 태양의 신과 재규어 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팔란케의 ‘생명의 나무’를 모방한 것이다. 또 정원의 서쪽 절반은 직사각형의 연못이 펼쳐져 있다.
건물은 고고학 유적이 있는 1층과 민속학 자료가 있는 2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엄청 넓은 공간이라 한 번 둘러보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단다. 주요 전시물을 생각하며 돌아보아도 3시간 이상 걸린다. 박물관은 유적이 있는 현지에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전시품이 많다. 팔란케의 피라밋에서 발견된 왕의 분묘를 비롯하여 유적의 발굴품들이 더 좋은 보존 상태로 감상하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관내의 여기저기에 스케일이 큰 유적군을 조감할 수 있는 모형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지에서는 피라밋과 다른 건축물과의 위치 관계를 분명히 알기 어렵지만 축소된 모형이라면 일목요연하게, 게다가 입체적으로 유적 전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노출되어 붕괴되어 버린 것이라도 복원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 만들어진 당시의 모형과 색조를 충실하게 재현해서 원형에 가깝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테오티아칸의 케살코아 신전의 채색 복원 벽과 보남파크의 채색 벽화는 인상적이다. 더욱이 각 실에 이해의 도움이 되게 하려고 TV영상물로 보여주는데 좋아 보인다. 볼 경기장에서 당시의 볼 경기 모습을 재현해 놓아 한참을 쳐다보았다.
1실부터 둘러본다. 인류학 입문실이다. 멕시코의 학자, 예술가를 총동원하여 만들어진 박물관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표, 그림, 사진 모형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실은 인류학 전반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언어학, 고고학, 민족학, 형질 인류학 등의 입장에서 세계의 인류와 그 문화 분포, 교류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전시되어 있다. 제 2실 중앙아메리카 실이다. 멕시코부터 파나마에 걸친 중앙아메리카에 걸친 많은 고대 문명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제 3실은 기원실, 드디어 멕시코 역사로 들어간다. 구석기 시대의 수렵 민족이 아시아에서 베링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에 도착, 남하해서 멕시코에 정착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토기 조각, 옥수수 이삭, 오래된 인골 등을 주목해서 본다. 제 4실은 고전기실이다. 농경재배가 출현하고 그것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 5실은 테오티아칸 실이다. 테오티아칸은 AD 300~600년에 번영했던 멕시코 최대의 고대 도시다. 실물 크기의 케살코아틀의 신전 일부 복원이 인상적이다. 날개를 가진 뱀 신 케살코아틀과 비의 신 트랄로크 의 두상이 엇갈려 나란히 있고 건설당시의 그대로의 색(적색과 녹색)이 채색되어 있다. 제 6 전시실은 톨테카실이다. 강대한 테오티와칸의 문명은 AD 650년 경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 후 몇 개의 중형 도시가 생겨나서 서로 다투는 혼미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중에서 중앙고원 북부를 정복했던 것이 톨테카 문명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북쪽으로 80km 덜어진 툴가에는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전사 의상과 차크몰 상(산제물의 심장을 바쳤다)이 인상적이다. 제 7실 멕시카, 아즈테카 실이다. 박물관의 백미라고 말해지는 곳이다. 아즈텍 제국의 또 다른 이름이 멕시카 라고 한다. 멕시카족이야말로 스페인 사람에게 정복되기 이전, 대 제국을 세워 이 나라를 지배했던 민족으로 현재의 나라 이름 ‘멕시코’는 이것에서 온 것이다. 아즈텍의 도시 체노치티틀란이 재현되어 있다. 벽에는 체노치티틀란의 조감도가 전시되어 있다. 호수 위의 작은 섬으로 멀리 산들이 보이며 몇 개인가의 섬과 물을 잇는 제방이 뻗어있다. 일찍이 멕시코시티는 호수에 떠 있는 섬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규모가 참 멋지다. 인구 20만이 넘는 대도시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대광장, 2개의 신전이 있는 피라밋, 궁전, 구기장, 제단 등을 볼 수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대한 원형 석판 태양의 돌이다. 아즈텍 캘런더이다. 지름 3.6m의 원반에는 중앙의 태양의 신 주위에 복잡한 모티프 여러 겹이 둘러져 있다. 태양신 주위에 있는 4개의 사각형에 둘러싸인 문양은 우주가 지금까지 지나온 4개의 시대를 나타낸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태양이 생겨나고 또 소멸한다. 그리고 현재는 중앙에 있는 5번째 태양 토나티우의 시대인 것이다. 달력은 거기에 더 섬세한 모티프의 조합에 따라 20일을 1개월로 해서 1년은 18개월로 나눠지고 거기에 플러스 하늘의 5일간 이 있어서 꼭 1년 365일이 된다. 또 이것과 평행해서 260일을 한 사이클로 하는 점성술을 위한 달력도 있었다. 아즈텍인들은 이 캘린더를 기초로 정확한 농경력에 따라서 노동하고 그 절기마다 피의 산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행했던 것이다. 아즈텍 캘린더는 단순히 일월을 새긴 달력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 현재 그리고 영원에 이르는 아즈텍인의 신비적인 우주관을 상징하고 있다. 이 아즈텍 문명의 상징적인 기념비인 태양의 돌은 아즈텍 제국 붕괴 후 멕시코시티의 중앙 광장 근처에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이것을 인디오들이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멕시코 대주교의 명령으로 땅 속에 묻어버렸다고 한다. 태양의 돌이 다시 발견된 것은 1970년의 일이다. 그리고 멕시코 올림픽의 심볼 마크로서 세계인에게 알려졌고, 지금은 인류학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물로서 멕시카실의 중앙에 놓여있다. 홀에는 많은 아즈텍 신들의 석상들이 있다. 그중에 코아투리쿠에 여신은 대지의 여신으로 죽음의 신이기도 하고 또 다른 신들의 어머니이기도 한다. 뱀으로 얽힌 스커트를 입고 짐승의 발톱을 가진 이상한 거상도 볼 수 있다. 진기한 석상들이 아주 많다. 제 8실은 오악사카 실이다. 오악사카 지방의 2개의 뛰어난 문화를 꽃 피웠던 민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몬테알반 유적의 사포테카 족, 미트카 유적의 미슈테카 족이다. 제 9실은 멕시코 만 지방실이다. 웃는 얼굴의 토우와 동적인 레슬러 상이 있다. 제 10실은 마야실이다. 중앙아메리카의 남부 일대로 BC 600년 경부터 싹트기 시작한 마야문명은 아즈텍과 테오티와칸처럼 타민족을 지배하에 두었던 강대한 한 국가의 명칭은 아니다. 그것은 이 지대에 펼쳐진 깊은 정글 안에 산재했던 몇 개의 독립된 도시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생겨난 하나의 문화적 경향이다. 문자와 숫자를 가지고 있던 문명으로 “0”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팔란케 유적과 파칼왕의 비취 가면은 유감스럽게도 1985년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팔란케의 유적, 보남파크 유적, 치첸이사 유적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2층은 인디오들의 색체가 풍부한 생활이 전시되어 있다. 제 13실에서 제 21실까지 멕시코 전역에 걸친 인디오 문화를 체계적으로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색색의 민에품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2층 다볼로(모사세공)에 쓰이는 그림무늬는 피카소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훌륭하다고 한다. 오악사카의 수직 민속의상이 인상적이다. 중간 중간에 그려진 벽화스타일의 대형 그림은 멕시코의 문화유산과 지형 그리고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거의 4시간을 넘게 구경했다. 오후 3시가 넘어 박물관을 나왔다. 정말 규모가 크다. 박물관을 나서니 시원하다. 팝콘을 하나씩 사서 먹으며 전철역에서 두 번 갈아타고 Lagunilla 역으로 왔다. 재래시장 라구니야 시장을 찾았다. 민예품도 좋지만 멕시코인의 생활 모습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시장은 식료품과 일용잡화 그리고 의류점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특히 의류품이 유명한데 민속무용에 입는 의류들이 무척 화려하다. 카니발 용의 가장 의상 등 진귀한 것들도 보인다. 또 시장을 둘러싸고 고서 시장도 서고 있다. 특히 일요일에는 벼룩시장이 서는데 아침부터 노천에 돗자리를 깔고 점포를 준비하기 시작하면 거리에는 봅시 욕심나는 골동품에서부터 어디에서 주워온 것인지, 훔쳐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잡동사니까지 빽빽이 들어찬다. 소매치기도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 조심스럽게 시장을 둘러본다. 지하철에서 나오니 바로 시장이 펼쳐져 있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공산품 시장이다. 구두, 신발, 장난감 등 끝도 없이 가계들이 이어지고 좁은 길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도무지 앞으로 진행하기가 어렵다. 시장의 규모가 엄청나서 어디서 끝이 날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열려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답답하다. 저녁에 먹을 과일이나 좀 사볼까 하는 작은 바램도 이루지 못하고 시장을 빠져나가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물어물어 겨우 템플마요로 방향으로 길을 찾고 걸었다. 겁날 정도로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고 넓다.
우리가 도착한곳은 산토도밍고 광장이다. 특별한 것도 없는 콜로니얼 식 작은 광장인데 눈길을 끄는 것은 대서소들이다. 주문자를 대신하여 서류나 편지를 쓰는 것이 일인데 이것은 멕시코 문맹율이 아직도 30%나 되기 때문이다. 대서소 주인이 갖고 있는 설비는 타자기 한 대, 이곳에는 지방에서 돈을 벌기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나 직장에 내는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찾아온다. 한가한 분위기 속에서도 왠지 서글픔이 느껴지는 분위기다. 대서소 부스들이 줄지어 있고 주변 건물에서도 카드, 편지봉투 등의 문구류를 팔고 있다. 맞은편에는 멕시코 국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아서 관공서인 것 같다. 정면에는 산토도밍고 교회가 있고 동상도 광장에 있다. 날이 저물어 간다. 숙소를 향해 걸어서 막 광장을 빠져 나오는 길목에서 작은 중국집을 발견했다. 멕시코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 고민하던 중에 중국음식이 생각나 들어갔다. 좁고 어두웠지만 볶음밥과 돼지고기 야채 볶음 등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뷔페식이다. 1인분에 65페소다. 먹어보기로 했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실컷 먹었다. 아내는 배탈이라 굶고 쳐다보기만 한다. 먹고 또 갖다 먹었다. 주로 돼지고기야채 볶음이다. 군만두도 먹었다. 6500원에 행복했다. 숙소에 와서 아내를 위해 빵을 사러 나왔다. 어제 갔던 빵집에서 빵을 사고 오다가 작은 가게에서 파파야를 샀다. 편의점에서 콜라와 요플레도 샀다. 저녁 시간은 과일을 먹으면서 쉰다. 밤에 다니기에는 맘이 내키지 않고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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