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세계경제에 관한 논의에는 언제나 몇 가지 화두가 던져져 왔다. 1970년대에는 일본 경제의 급속한 부상, 1980년대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는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의 새로운 신흥개발국들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왔다. 아시아, 동유럽, 그리고 중남미의 신흥시장(emerging market)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어 왔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해 기존의 ‘용’이나 ‘호랑이’들에 대한 신화는 상당부분 퇴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세계경제의 최대 화두는 ‘중국의 부상’으로 옮겨갔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한 세계경제에의 편입은 동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왜 지금, 브릭스인가? 중국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에 들어오며 브라질, 러시아, 인도라는 거대 개발도상국들을 포괄하는 ‘BRICs(브릭스)’라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이들 국가는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 또는 양쪽 모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브릭스에 대한 논의는 2003년 골드만삭스에서 나온 이라는 보고서에 의해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향후 40년 이내에 브릭스 경제는 현재의 6대 경제대국(G6)의 경제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재의 G6 중에서는 미국과 일본만이 2050년에도 계속해 G6에 포함될 것으로 보았다. 또 중국은 현재의 성장추세를 지속할 경우, 2015년쯤 일본의 경제규모를 따라잡고 2040년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릭스의 성장은 새 수요처 창출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소비가 크게 증가하는 구간으로 분류되는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에서 1만달러 수준으로 브릭스 소득이 증가하면서 이들 국가의 구매력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존 선진경제권 사회의 노령화가 확산되고 경제성장속도가 둔화되는 시점에서 역동성을 가진 거대한 생산 및 소비국의 등장은 세계경제의 역동성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이들 국가가 가지는 의미가 크다. 브릭스는 지구상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들 국가의 발전 여부에 따라 지구상의 빈곤과 성장의 문제가 달려있는 셈이다. 또한 이들 국가가 해당 지역 내의 거점국가라는 점에서 이들 국가의 정치·경제적 향방이 인접국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느려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 거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상대적으로 많은 무게가 실리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브릭스는 또 하나의 신화? 그러나 G6를 표방하는 브릭스의 미래가 언제나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브릭스의 외형적 성장은 일정정도 질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 경제가 질적인 면에서 기존의 선진경제권을 능가하기는 힘들 것이며 경제수준의 격차는 상존할 것이다. 또한 이들 국가 내부의 경제 펀더멘털이 자체적인 성장 동력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에 충분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브릭스 국가들이 당면하게 될 정치적 난제들도 지적될 수 있다. 경제성장에 수반되는 시민사회의 활성화, 민주화에 대한 요구,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내부적 반발 등은 모두 정치이슈화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러시아의 경우 현재의 경기호황이 고유가의 지속이라는 변수에 의존하고 있는 바 크며, 유가하락을 초래하게 될 정치경제적인 충격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성장에 있어 고질적인 사회의 분열구조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또한 중남미가 주기적인 경제, 외환위기를 겪어왔음을 고려해 볼 때 향후 브라질이 안정적인 성장기조를 지속할지는 불투명하다. 인도 역시 정치 경제적 불안정성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브릭스는 기대와 가능성이 높은 반면 불안정성을 동반하고 있는 까닭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 브릭스에 대한 높은 관심은 중국의 고도 성장을 목격하고 있는 세계가 중국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 국가 중에서 제2, 제3의 중국을 찾기 위한 열망을 의미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브릭스의 성과는 아직 가시화된 것은 아니며 향후 진전에 따라 브릭스에 대한 기대는 현실이 될 수도, 또 신화로 그칠 수도 있다.
한국외교의 다변화와 브릭스 한국이 안고 있는 과제 중 하나는 외교의 다변화다. 냉전체제 초기부터 한국의 외교는 대북정책과 관련된 주변 4강과의 외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범세계적 경제통합과 상호의존이 증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외교전략도 보다 큰 시각에서 모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브릭스와의 관계 증진은 일차적으로는 경제통상 차원에서, 그리고 나아가서는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중국은 이미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으며, 러시아는 특히 자원, 에너지 외교와 관련하여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인도는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일반 제조업뿐만 아니라 IT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여러 대기업들의 아웃소싱과 관계된 역외 경제중심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브라질은 중남미 최대의 강대국으로 남미공동시장(MERCOSUR)을 중심으로 한 중남미 경제통합을 주도하고 있으며, 중국, 인도 등 거대 개도국들 간의 연계 형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50년에 브릭스가 과연 미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지만, 브릭스의 등장과 급성장은 단지 지켜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목표가 자꾸 지연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브릭스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할 도전의 대상이다. 브릭스와 함께 ‘꿈’을 꾸기보다는 당장 브릭스와 함께 ‘일’을 해야 한다.
외교통상부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기로 소문난 김현종(金鉉宗) 통상교섭본부장. 그는 타고난 ‘일벌레’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통상교섭조정관으로 처음 발탁된 이후 불과 1년4개월 만인 지난 7월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에 올랐다. 본래 미국에서 대학(컬럼비아대 통상법 박사)을 마친 뒤 현지에서도 국제통상 분야 변호사로 일했다. 귀국 후에는 홍익대 교수와 국내 로펌의 변호사로 일하면서 통상자문 변호사, 통상전문관 등의 직책을 맡아 통상교섭본부와 인연을 맺어왔다. 그동안 정통 관료 출신들이 차지해 왔던 통상교섭본부장에 젊은 40대 민간 전문가의 기용은 외교부 안팎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평소 ‘자유무역협정(FTA) 전도사’라고 불린 만큼 취임 후에도 각국과의 FTA 협상으로 동분서주해 왔다.
지난달 말 취임 100여 일에 즈음해 김 본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카자흐스탄, 러시아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코리아플러스>는 귀국 직후 김 본부장을 직접 만나 이들 국가와의 경제협력 문제를 비롯한 통상교섭본부가 맡고 있는 주요 업무 중 하나인 FTA 협상 문제 등 경제통상 분야 주요 현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카자흐스탄 순방 관련 이야기부터 풀어갔으면 합니다. 우선 러시아에 앞서 방문한 카자흐스탄의 경우 수교한 지 12년 만에 이루어진 첫 정상 방문 아니었습니까.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이번 카자흐스탄 방문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카자흐스탄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역시 ‘자원외교’의 다원화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자력 협력 협정’ ‘에너지광물자원협력 약정’ ‘브데노브스크 우라늄 공동개발 양해각서(MOU) 체결’ 등 자원, 에너지 분야에서 양국이 향후 협력을 확대해 가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 특히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우리와의 경제 협력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렇습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한국유전컨소시엄(석유공사, 삼성, LG, SK, 대성)이 카스피해 유전 개발에 참여하는 문제를 비롯해 우라늄 등 광물자원 개발, 플랜트 건설, 인프라 구축 사업 등에 우리 기업의 참여를 환영하고 이를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양국은 상호 보완적 경제 구조를 보유해 호혜적 실질협력의 잠재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말씀하시는지요. “우리에게 카자흐스탄은 에너지자원 문제를 협력해 나아가야 할 주요 상대국이고, 카자흐스탄은 에너지 산업 중심에서 탈피해 산업다각화를 모색하는 데 있어 한국을 정보통신기술( IT), 화학, 제약,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해야 할 국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 카자흐스탄과의 경협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앞으로 카자흐스탄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이를 계기로 양국간 교역 규모가 확대될 경우 그 관계를 더욱 심화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기업의 대 중앙아시아지역 진출 확대 방안의 하나로 카자흐스탄과 FTA 추진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도 경제통상부문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이번 방문의 주요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두 분 간의 굳건한 신뢰 관계가 구축됐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각각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와 ‘극동지역 활성화’라는 미래지향적 비전을 갖고 있는 양국의 대통령이 서로 상대방의 비전이 상호 보완적이라는 데 공감하고 앞으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한 것은 향후 한·러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증대하고 강화시켜 나가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솔직담백했던 통상장관과의 심야 회동 -러시아의 WTO 가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러시아는 내년 12월 개최될 WTO 홍콩각료회의 이전까지는 WTO 가입을 위해 WTO 회원국들과 상품 분야 양자협상을 타결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이번 우리 대통령의 방러 때 정부는 EU 다음으로 러시아와 상품 분야 양자협상을 일찍이 타결하고 서명할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해 러시아측은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 사실 러시아와는 지난 1990년 재수교 이후 경제통상분야의 협력이 미진한 측면이 있지 않았습니까. “한러 경제통상 관계에서 그간 협력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이 미비했던 점이 있습니다. 이를 감안해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한러간 경제통상 분야의 우선협력 분야를 정하고 장기적 협력 비전을 담은 ‘행동계획’을 함께 추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 현재 한러 통상 분야 최대 현안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합니까. “최우선 과제는 교역과 투자의 증대라고 생각합니다. 1991년 이후 한·러 교역량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41억8,000만 달러, 우리의 대러 투자도 3억6,600만 달러에 이릅니다만 양국 경제 구조의 상호 보완성과 경제 협력 잠재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역투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업계가 제기하는 러시아 시장 진출의 어려움을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통상장관 회담에서도 그레프 장관에게 이러한 애로 사항이 해소되어야 러시아가 희망하는 대러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방러 기간중 수행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기업이 나라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까. “러시아는 그간 우리에게 빌려간 경협 차관의 상당부분을 우리 기업 제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는데, 이러한 상황은 결국 러시아 내에서 우리 제품에 대한 광고 효과를 유발해 우리 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됐으며,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와 러시아 국민에게 우리나라를 홍보하고 알리는 커다란 효과를 가져왔다는 말씀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순방 기간중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앞서 언급한 통상장관회담이었습니다. 방러 기간중 그레프 장관의 일정상 회담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레프 장관 측에서 밤 늦게라도 만나자는 의사를 전해와 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회담은 밤 10시부터 시작해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습니다. 평소 그레프 장관이 늦게 퇴근한다는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그 늦은 시간에 회담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이번 회담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대단했다고 봐야겠습니다. 참고로 그레프 장관과 저는 모두 법률학도 출신으로 같은 40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 솔직하고 직설적인 대화 스타일 등 성향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회담이 더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일본과의 FTA 체결, 장기적으로 득 될 것 - 이제 FTA 문제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본부장님은 평소 ‘FTA 전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시장 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FTA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현재 세계적으로 208개(2004년 5월 기준)의 FTA가 발효중이고 2005년에는 FTA 체결국간 무역이 전 세계 교역량의 약 52%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FTA의 사각지대였던 아시아 국가들도 아세안(ASEAN)을 필두로 일본, 중국, 인도 등 대부분의 국가가 FTA 추진에 박차를 가해 대외의존도가 70%나 되는 우리에게 FTA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 중요한 문제임에도 칠레와 FTA 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국민에게 FTA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 수준과 구조를 가진 외국의 경우 FTA 추진 속도나 범위는 어느 정도 단계에 와 있습니까. “지난해까지 우리나라는 몽골과 함께 FTA를 체결하지 않은 유일한 WTO 회원국이었습니다. 지난 4월 칠레와 FTA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이제 첫 단추를 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의 경우는 21개 국가와, 멕시코는 42개 국가와 FTA를 체결했습니다. 또 동아시아 허브 전략을 추진하는 싱가포르 역시 이미 8개국과 FTA를 체결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FTA 체결이 늦어짐에 따라 수출, 건설 수주 등 여러 측면에서 경쟁국들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고 일부 피해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들 나라의 FTA 추진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우리는 여러 국가와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해 나갈 예정입니다.”
- 사실 FTA로 인해 국내 산업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시장 개방을 부정적 측면에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FTA는 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지재권, 상호 인정 등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수출이 증진되고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또 대내적으로는 우리 산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비효율의 문제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시장 확대에 따른 해외 직접투자 증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국 FTA는 우리 통상정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의 상당부분을 한꺼번에 달성하는 종합 패키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국내 산업구조조정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고 민간 사업 보호를 위해 업계와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 현재 FTA 협상 파트너로 물망에 올라 있는 곳은 어느 나라입니까. 또 협상 대상국 선정은 어떤 기준으로 하게 되는지요? “대상국 선정은 경제적 타당성, 정치, 외교적 함의, 우리나라와의 FTA에 적극적인 국가 등 여러가지 요소들을 종합 고려해 결정합니다. 현재 일본, 싱가포르 외에 EFTA갂SEAN 등과는 FTA 협상을 위한 공동 연구가 마무리되었거나 진행중입니다. 아울러 멕시코, 캐나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 인도 등과도 협의를 진행중입니다. 물론 FTA 체결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중국 등 거대 선진 경제권과의 FTA 추진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이는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 일본과의 FTA 협상은 어디까지 진전됐습니까. “2003년 12월 서울에서 제1차 한일 FTA 협상회의가 개최된 이래 지금까지 5차례 회의가 진행돼 왔습니다. 우리의 경우 한일 FTA가 단기적으로 초래할 대일 무역적자 확대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우리 상품 및 기업의 대일 진출을 가로막는 제반 장벽 제거를 추구한다는 기본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현재 양국은 통합 협정문 작성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상품의 관세 양허안을 교환하게 되면 협상은 본격화될 것으로 봅니다.”
FTA는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 대일 무역적자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만, 일부에서는 한일 FTA 협상이 체결되면 적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히 있습니다. “그동안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많은 연구들이 있었어요. 단기적으로는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무역수지가 개선되고 경제성장 및 후생 증진 측면에서도 이익이 크다는 것이 이들 연구의 한결같은 결론입니다. 특히 대일 수입품의 대부분이 고기능 기계류나 부품소재 등 우리 산업의 생산활동을 위한 필수 수입품인 점을 감안할 때 관세가 철폐되면 우리 경제에 긍정적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울러 한일 FTA는 우리 농수산물의 대일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수산물의 경우 일본이 부과하고 있는 수산물 수입수량 제한(Import Quota) 제도가 철폐되면 상당한 수출 증대가 기대됩니다.”
- 앞으로 있을 중국, 미국과의 FTA 협상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전망은 어떻습니까. “한중 FTA의 경우 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고 특히 우리 농수산업 분야와 노동집약적 경공업 분야에서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돼 신중한 검토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미국은 최근 들어 죌릭(Zoellick) USTR 대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주한 미 대사 등 미국 정부 인사들이 한국과의 FTA 체결에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양국 업계 및 민간 연구기관들도 적극적인 지지 입장이기 때문에 FTA를 논의할 여건은 어느 정도 조성돼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시 농업 문제 등 세심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 많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가면서 추진한다는 입장입니다.”
- 마지막으로 최근 주목받는 신흥경제 4강인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대해 본부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이번 러시아 방문을 본격적인 BRICs 외교의 시동을 건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회사의 하나인 골드만삭스는 BRICs 4개국을 합친 경제규모가 앞으로 40년 내에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합친 경제 규모를 능가하며, 2050년에는 미국, 일본과 더불어 BRICs 4개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외 교역은 미국, 일본, EU에 편중된 측면이 있는데, BRICs 국가들은 자원대국이자 거대한 잠재적 구매력을 지닌 새로운 시장으로 우리 경제와의 상호 보완성 측면을 감안할 때 이들 국가와의 통상 관계 증진에 큰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의 지난해 7월 중국 방문을 시작으로 이번 러시아 방문과 10월중으로 예정된 인도 방문 등은 한국과 BRICs 국가와의 관계를 크게 증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1억4,5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인구,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낼 정도로 탄탄한 기초과학, 우주, 항공, 통신 분야 등에서 보유한 높은 기술력 등은 러시아의 밝은 미래를 열어줄 강점들이다. 골드만삭스는 러시아가 향후 연평균 4%대의 경제성장을 계속할 경우 2050년 무렵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달러로 세계 6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6~7%대를 유지하고 있다.
요즘 모스크바에서 1998년 모라토리엄(국가채무 지급 유예)을 선언하며 심각한 경제위기에 내몰렸던 러시아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시내 중심가에는 내로라하는 세계적 명품점이 즐비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버버리, 에르메스, 크리스찬 디오르, 살바토레 페라가모, 구치, 불가리 등 명품 가게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도심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도 절반 이상이 외제차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등 독일제 고급 승용차가 독일보다 모스크바에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모스크바인들이 자동차와 액세서리 등 명품을 사는 데 쓰는 돈은 연 20억~40억 달러로 추정된다. 미국의 명품 소개 잡지 <럭셔리 브리핑>은 올해 초 기사에서 ‘모스크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명품시장’이라고 소개했다.
모스크바 시내의 스카이라인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경제 활황에 힘입어 부동산 경기가 뜨거워지면서 시내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주민들은 아파트 내부 수리에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러시아의 경제 활황은 각종 경제지표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러시아의 GDP 성장률은 1999년 이후 2003년까지 5년 연속 플러스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세계경제의 전반적 침체에도 7.3%라는 눈부신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5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외환보유액도 750억 달러를 넘어섰다. 대(對) 러시아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전년 40억 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5억 달러로 늘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지난해 10월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두 단계 올려 투자적격 등급인 ‘Baa3’으로 상향조정한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올해도 경제성장률은 애초 목표를 초과해 6%대는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놀라운 변신은 1999년부터 계속되는 고유가(高油價)라는 대외적 행운과 2000년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에 바탕을 둔 정치적 안정, 시장경제로의 성공적 개혁 등이 상승 효과를 일으킨 결과다. 기존 통계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는 석유 매장량 세계 7위(690억 배럴),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47조㎥)의 자원대국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84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는 등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원유 생산량을 더 늘릴 계획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배럴당 20~40달러를 유지한 고유가 행진은 국가 수입의 상당부분을 자원 수출에 의존해 온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
러시아는 앞으로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 차원에서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석유 가스자원 개발을 서두를 예정이다. ‘천연자원=국가패권’이라는 인식하에 자원을 무기로 과거 소련 시절의 영예를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고유가와 정치 안정이 경제성장 견인 러시아는 지금까지 외국 에너지 메이저사들과 국내 사기업들에 맡겨 두었던 자원 개발을 국가가 주도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다. 전략산업을 외국이나 사기업 수중에 둘 수 없다는 판단과 국가 전체의 에너지 개발을 정부가 종합적으로 관리,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러시아 정부는 최근 최대 국영 가스사 ‘가스프롬’과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티’를 합병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현재 정부와의 갈등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거대 석유회사 ‘유코스’도 국영기업에 통합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단일화한 거대 국영 에너지사를 통해 정부가 향후 에너지 개발을 주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앞서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장기적 에너지 개발 정책의 청사진에 해당하는 ‘2020년까지의 러시아연방 에너지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말까지 에너지 경제 관련 부처의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거쳐 더욱 구체적인 정책안을 만들고, 곧이어 외국 자본 유치 등을 통해 본격적 에너지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의 정치적 안정은 러시아의 성장 가능성을 밝게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1기에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개혁을 단행해 성과를 거둠으로써 도약의 기초를 닦았다. 지난 3월 재집권에 성공한 그는 “2010년까지 경제 규모를 2002년의 2배로 키우겠다”며 개혁정책을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반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의 개혁 정책은 러시아 국민의 전반적 지지를 얻고 있다.
유철종 중앙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기고 | 정태익 駐러시아 대사>>
한-러 외교의 키워드는 ‘에너지’ 미국과 소련의 냉전적 대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 군사력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 안보 개념이 자원, 에너지, 보건, 테러 등의 요소를 포괄하는 ‘종합 안보’ 개념으로 넓어지고 있다. 특히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외교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산유국이자 천연가스 제1위 수출국으로 부상한 러시아의 에너지 잠재력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미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에너지 협력 관계를 2002년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했다. 테러 근절을 위한 공조와 불안한 중동정세에 대비한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석유화학회사인 엑손(Exxon) 등을 통해 사할린 개발 사업에 투자하고 러시아산(産) 석유 수입 개시 등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에 힘을 쏟고 있다. 세계 제 2위의 석유 소비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경제 성장의 지속과 다변화한 에너지원 확보 차원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보이는 관심이 각별하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거미줄 같은 에너지 수송망을 통해 에너지 수요의 4분의 1을 러시아로부터 충당하며, 일본도 사할린 석유, 가스 개발 사업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전략 차원에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대러 협력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적 에너지 소비국인 만큼 에너지 문제를 둘러싼 세계질서 재편 과정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우리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러·중·일 등 동북아 지역 국가 간의 에너지 협력 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고위 실무 차원의 전략 대화를 갖는 방안이 그것이다. 다자간 에너지 협력 대화 추진에는 많은 외교력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 이전 단계에서 한·러 양자 협력을 통한 에너지 확보 외교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일례로 바이칼 호수 서쪽에 위치한 코빅타 가스전에서 4,238km에 달하는 수송관을 설치해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사업 계획을 지난 수년간 협의해 왔으며, 지난해 타당성 조사를 끝내고 한·중·러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동시베리아 송유관 설치 사업과 사할린 석유 가스 사업에 대한 참여 계획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최근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 유전 지역 중 유망 광구를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앞으로 우리도 엑손, 셸(Shell), BP, 토털(Total), ENI 등 세계적 석유 가스 메이저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거나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내 기업 간 전략적 제휴 강화를 통해 해외 유망 석유 가스전 개발 사업에 대한 지분 참여 등 에너지 자원 확보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세계 에너지 업계의 최신 동향을 적시에 파악해 기민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새로운 에너지 공급처로 부상한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에너지 자원 수급 및 개발 동향을 적시에 파악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에너지 정보 파악 및 자원 외교 강화를 위해 에너지 거점공관을 지정해 본부와 공관 간 상호 유기적 협조 체제를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에너지 자원 거점공관에는 전문 지식과 외국어에 능통한 자원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원외교 강화 체제와 전문가 양성 방안을 제도의 혁신 차원에서 강구해야 한다.
비록 부존 에너지 자원이 없더라도 세계 곳곳의 에너지 자원 개발에 참여해 안정적인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체제를 갖춤으로써 자원 강국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2003년 10월 중국이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것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경제적 실력을 닦아온 중국이 세계 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 사건이었다. 냉전 시기 우주 개발을 주도했던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체제 붕괴 이후 우주 개발의 동기를 상실한 시점에 터져 나온 중국의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 소식은 중국의 화려한 재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04년 4월28일, 세계는 다시 한번 중국의 존재를 절실하게 느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중국의 경기 과열을 잡기 위해 성장 속도를 늦추겠다고 발언하자 세계의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중국 쇼크’에 휘청거렸다. ‘세계의 굴뚝’이라는 중국의 별명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해준 사건이다.
1978년 시작된 개혁개방 초기 덩샤오핑(鄧小平)은 당시 200달러 수준이던 중국의 국민소득(GDP)을 20세기말까지 4배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아무도 10억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이 이런 초고속 성장을 이뤄내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일정을 몇 년 앞당겨 1995년 이뤄졌다.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 16기 전당대회에서 전면에 등장한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를 비롯한 제4세대 지도부는 2020년까지 현재의 경제 규모를 다시 4배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16기 전당대회는 이를 실현할 때 중국은 ‘샤오캉(小康)사회(기초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 중등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2020년까지 중국이 국민소득을 다시 4배로 만들기 위해서는 매년 7.2%의 고도성장을 유지해야 한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이미 매년 평균 10%가 넘는 장기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중국은 앞으로 25년 더 고도성장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중국처럼 인구가 많고 지역차이가 심한 대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시아의 기적을 낳은 ‘네 마리 작은 용’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인구 5,000만 명 미만의 작은 국가들로, 경제 관리와 정책 수단의 동원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이었다. 중국 장쑤(江蘇), 저장(浙江), 푸젠(福建), 광둥(廣東)성 등은 면적과 인구가 이 네 나라를 합친 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 그럼에도 이들 성은 최근 10년 이상 연평균 15~18%의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고도성장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장경제의 도입’이다. 그 본질은 결국 과감한 외자 도입이다. 중국은 저임금과 세제 등의 특혜, 거대한 시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투자할 곳을 잃은 외자를 중국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이와 함께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유혈진압 이후 중국 내 정치논쟁을 완전히 말살해 정치적 불안정 요인을 원천봉쇄했다는 점도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앞으로도 중국의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광활한 국토와 다양하고 풍부한 천연자원, 세계 최대의 인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13억 명의 인구 가운데 9억 명이 농민이라는 사실이 중국의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상징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최근 보도(2004.9.16)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2020년까지 중국의 도시화율이 58~60%로 높아질 것이며, 도시 인구는 8억~9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의 인구 13억 명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치더라도 적어도 5억~6억 명의 농민이 도시로 유입돼 산업노동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수치는 중국이 앞으로도 20년 동안 계속 국유지 개발과 외자유치, 농민의 도시 산업 예비군화 등을 통해 저임금 조립가공에 기초를 둔 ‘세계의 굴뚝’ 지위를 유지해갈 것임을 보여준다.
중국은 이미 세울 수 없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고속성장이라는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한 이상 고속 회전을 유지하지 않으면 엄청난 파멸을 맞을 수 있다. 중국 당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강조해 왔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환경오염, 해결의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 극심한 도농격차와 빈부격차, 석유 석탄 철강 등 고도의 자원 소모 등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폐단을 돌아볼 때 중국이 과연 계획대로 고도성장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찍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경제의 개혁 개방이 심화함에 따라 공산당 일당체제에 대한 도전이 생겨나 정치적 격동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인간관계와 ‘융통성’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기질’로 볼 때 정치, 사회, 경제가 투명하고 합리적인 규칙에 따라 운영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상수 한겨레신문 베이징 특파원
<<기고 - 김하중 駐중국 대사 >>
중국경제 의존 따른 예기치 못한 결과도 주시
지난 1992년 8월 수교 이래 한중관계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수교 6년 만인 1998년 ‘21세기 한중 협력 동반자 관계’를 거쳐 2000년에는 ‘전면적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확대된 데 이어 지난해 7월 노무현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때는 다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진일보했다.
양국 간의 비약적 관계 발전은 우선 경제통상 분야에서 잘 읽을 수 있다. 지난해 양국 간 교역액은 630억 달러(중국측 통계)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8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이미 우리의 제1의 교역 대상국이자 수출 대상국이 되었다. 또한 한국은 중국에 2004년 7월 현재 누계 238억 달러(중국측 통계)를 투자하면서 최대 투자국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매일 평균 13.5건, 1,23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한·중간에는 매일 약 21억 달러의 교역이 이뤄지며, 매주 380여 편의 항공기가 한국의 6개 도시와 중국의 22개 도시 간을 운항한다. 또한 지난 한 해 동안 상호 왕래한 양국 국민은 255만 명에 달한다. 그 중 중국을 방문한 우리 국민은 195만 명으로 하루평균 5,000명을 넘는다. 한편, 현재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 약 7만7,000명 가운데 한국 학생은 전체의 45% 수준인 3만5,000명에 달해 2위인 일본의 1만3,000명에 비해 두 배를 넘는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인구 13억 명의 중국시장은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에는 현재 2만여 개의 한국 투자기업이 진출해 200만 명 정도의 중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상호 보완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 대상국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경제통상분야 말고도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공동 목표로 상호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중 양국 정부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등을 통해 어느 때보다 상호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한중 양국 국민은 상대방 문화에 대해 상호 많은 관심과 친근감을 지니고 있다. 양국은 사람 생김새, 생활습관, 사고방식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고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교류해 왔기 때문에 상대방 문화에 대해 친숙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친근감이 소위 ‘한류(韓流)’와 ‘한풍(漢風)’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최근 양국 간에 발생한 고구려사 문제는 우리에게 한중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한중 양측이 ‘구두 양해사항’으로 합의해 해결의 가닥이 잡힌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중 관계의 미래 청사진은 지난해 7월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합의한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추진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양국 정상은 향후 5년 내에 양국 간 교역액 1,00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삼고 10대 분야 경협 사업과 미래지향적 협력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와 같은 합의사항은 현재 착실히 추진되고 있으며, 교역액 1,000억 달러 달성은 목표보다 1∼2년 앞당겨 향후 2∼3년 내에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교역액 1,000억 달러 2∼3년 내 달성 또한 최근 국제적 경기 침체 속에서 세계 각국이 1∼2%대의 경제 성장을 하는 가운데, 중국은 연 8%가 넘는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우리 경제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이자 우리가 개척해야 할 거대한 시장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물론, 우리 경제가 중국경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미래에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중 양국 관계가 더욱 성숙한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가일층 노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참여정부가 국정목표의 하나로 설정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현’을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협력 기조를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인도는 천(千)의 얼굴을 가졌다고 말한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나라라는 의미다. 한국에서 최근 인도에 관심을 갖는 것은 11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시장이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강하지만,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인도는 ‘상식’이 통하기 어려운 시장이기 때문이다. 인도와 정치 외교적, 지역적으로 긴밀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기업들조차 그동안 인도 진출을 꺼렸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우리보다 2년 늦은 지난 1947년 8월15일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는 정치적으로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취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와 거의 유사한 국가주도형 폐쇄경제 체제를 선택했다. 그런 인도가 개방) 정책의 길을 걸은 것은 1990년 걸프전 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다. 그 뒤 각종 개혁 정책을 내놓으면서 인도경제는 연평균 6%의 성장을 거뒀으며, 지난해에는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고인 8.2%의 성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