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매화마을>
책가방 메고 가슴엔 손수건 달고
어머니 손잡고 입학하여 시작한 국민학교 시절..
토요일 대청소 날이면 모든 걸상 뒤집어 책상 위로 올려 놓고
빗자루 끝으로 흙먼지 밀어내고 양초로 덮은 마루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번쩍번쩍 광택이 나도록 교실 바닥을 문질러댔던 1960년대..
동장군이 무서워 새벽같이 책가방 둘러메고 좋은자리 찾지할 마음으로 등교를 서둘렀던 그 시절
한 겨울이면 난롯가 철망에 삥돌아 도시락 채곡이 쌓고..
교실마다 난로 위에 세겹, 네겹 쌓아논 도시락속 김치가 적당히 냄새를 피울때면
칠판위의 수학 공식 보다는 어서 어서 점심시간 벨소리 울리기만을 침 꼴깍이며
기다리던 빡빡머리 철없던 중학교 시절...
봄 소풍때엔 너나 없이 리쿠사쿠 속에 김밥과 삶은계란..그리고 칠성사이다 한병..
어쩌다 김밥위에 계란 후라이라도 덮어 온 놈이 부러워 몰래 숨어서 먹던 그 시절에도
항상 웃음을 잊지않고 장난치던 우리들의 자화상들.....
그때는 우리의 앞날에 어떤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는줄 모르던 그런 시절이었다.
등교길 버스 안에서 어쩌다 눈 한번 마주친 여학생 따라
괜히 엉뚱한 곳에서 같이 내렸다간 말 한마디 못하고
한참을 되돌아 걸어 오면서도 마냥 좋기만 했던..
체육기구 보관 창고에 서너명이 둘러 앉아 손가락 끝이 뜨거울때까지 담배 한대 돌려 피우며
띵해진 머리 들고 몰래 나오다 걸려서 다같이 생활지도부 바닥에 꿇어 앉아 킥킥대다 출석부로 또 맞고
옆에 놈 반성문 배껴 쓰던 그런 고등학교 시절..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하는 다음 코스이기에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유일한 길이라 굳게 믿고서
이 학원 저 학원 전전 하면서도 좀처럼 올라 가지 않는 성적표가 못내 죄스러워
몰래 감춰 놨던 성적표를 어느틈에 들고 계신 어머님의 한숨 소리에
밤새워 책상 머리에 앉아 이를 악다물던 그 시절에도..
우린 그저 그런 평범한 고등학생들 이었다..
모두가 독재라니 괜히 싫어서 엉겹결에 출정식에 끼었다가는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 흘리다가 경찰봉에 머리 터진 옆에 놈에 눈이 뒤집혀
악을 쓰다 경찰서에 때거리로 잡혀 갔던 그 군사독재 대학시절에도..
뻑 하면 휴교령에 생전 처음 듣는 유언비어 살포 금지란 말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도 속 시원히 속에 말 한마디 못했던..
그저 모든 세상이 암울과 절망 뿐이었기에
앞날의 설계는 애저녁에 꿈도 못 꿔봤던 그런 무시무시한 시절에도..
수업 끝난 텅빈 운동장에서 그래도 내일의 멋진 장교를 꿈꾸며
거꾸로 세운 M1을 머리에 꽂고서 오리걸음으로 꽥꽥 거리던 후보생 시절..
어깨 위의 계급장이 혼자서도 뿌듯하여 거울 보며 으쓱대던 초급장교 시절..
그때만 해도 우린 붉은 피가 펄펄 끓는 그런 청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마누라와 부모님 사이에서 쩔쩔 메다가
잠든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에 몰래 베란다에 나와 담배 한대 품으며 왠지 무능한 것만 같은 자신을 탓하며
내일서부턴 마누라와 부모님께 모두 잘 할것을 혼자서 다짐하면서
이제는 부모님 다 저 하늘로 보내드리고 회한의 한숨을 내 쉬며
어느날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 될 때
이미 피어난 희끗거리는 새치를 애써 뽑아가며
그래도 자신이 아직 청년이기를 소원하다가..
드디어 이미 50대가 되어 버린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미련둥이 됐네.....
선진조국 건설과 근대화의 물결 속에 자신도 모르게 편승 했다가
한때는 자신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역군이라 자부 하면서
선배들의 질타와 후배들의 추격 사이에서 불안해 하다가는
어느날 퇴출과 명퇴라는 명찰과 함께 버려진 늙은 청년.......
쉬기엔 이르고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그래도 아직은 보살펴야 할 가족과 자식들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시대의 늙은 청년...
그나마 건강한 것이 최고라고 애써 자조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을 휘감고 도는 찬 바람결에
나만이 버려진것 같아 혼자 울면서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종착역을 향하여
50대의 늙은 청년은
오늘도 그저 무엇인가 바라보며 마냥 걷고 있다.
牛 步
첫댓글 새 이글을 읽고 보니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게 되네요 공감해요
어린시절 추억어린 글을 보게되니 그시절이 생각납니다..누구나 공감 했을거같은 그시절이었지요~
벗곷이 한창일때 모습이네요~어린시절 고운 추억이 없다면 인생은 무슨 맛일까요~~~`
마냥 걸어가요 소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