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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학자와 예술
2001년 가을 서울에서 개최된 한 문학포럼에 초대되었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올해 1월말 파리 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그는 사르트르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생전에 그의 독특하고 방대한 학문적 성과와 비판적 사회참여 활동은 격찬의 평가와 함께 그의 사회적 명성을 국내외에 드높였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사회학자로서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콜 레주 드 프랑스(Coll ge de France)의 교수이다. 그는 비판적 후기 구조주의 이론가이면서 사회비판의 대열에 나서는 참여 지식인이기도 하다. 학문적으로 그는 프랑스 구조주의자들과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고민해온 행위와 구조의 관계를 통합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그리하여 부르디외는 하나의 학파를 가진 성공한 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또한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명성을 갖고 있다. 90년대 부터 그는 빈곤, 실업, 파업 등의 사회문제에 주목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매스미디어 앞에 혹은 직접 거리에 나섰다. 이 글에서는 그의 사상을 간략히 소개한 다음, 주로 예술분야에 한정하여 그의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 다. 예술 분야에 있어서 부르디외는 문학, 연극, 영화, 사진, 회화, 건축 등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보이 면서 연구를 하였다. 그 가운데에서도 문학에 할애한 연구가 많은 편이지만, 여기서는 될 수 있는 한 미술에 관한 그의 접근법을 발췌하여 설명하도록 노력하였다.
2. 사상과 주요 개념의 이해
부르디외는 기존의 철학 및 사회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적 전통을 독창적으로 종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칸트주의의 유산인 주체의 비판철학과 레비 스트로스, 미셀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의 구조주의를 뛰어넘기 위하여 마르크스, 베버와 뒤르켐의 사회학 바탕 위헤 후설, 사르트르 그리고 메를 로 퐁티의 현상학을 바슐라르와 캉기옘의 비판적 인식론과 함께 규합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사회학에 있어서 실증주의적 경향을 경계하고 직관주의와 초경험주의와도 단절한다. 그의 사회학은 전체주의적 (holiste) 사고방식의 철학이나 실증주의적 경험주의를 배격하는 한편 구조주의, 마르크시즘, 현상학과 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부르디외는 개인/사회, 행위/구조의 관계분석에 있어서 주관주의/객관주의, 의식/무의식, 유심론/경험론, 미시분석/거시분석, 방법론적 개인주의/전체주의 등의 이분법을 변증법적 으로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과 방법은 "구성주의적 구조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창안한 장(Champ)과 아비튀스(Habitus) 및 문화자본(Capital culturel), 상징폭력(Violence symbolique) 등의 주요 개념과 이론은 이러한 학문적 노력의 소산이다. 이 주요 개념과 이론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방대한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설명되고 현실분석에 적용되 었다. 부르디외는 장의 이론화를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을 경제자본, 문화자본 등 다양한 자본으로 유형화하 고, 베버가 종교분석에 이용하였던 경쟁, 독점, 정당화 등 일련의 개념들을 수용한다. 그가 말하는 장 이란 행위자와 제도들간에 벌이는 일종의 힘 겨루기의 공간이다. 즉 장이란 상이한 자본과 권력을 가 진 행위자들이 정당성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의 공간인 것이다. 부르디외는 예술의 세계를 이같 은 하나의 장으로 생각한다. 한편, 장과 상보적 관계를 가지면서 또 다른 개념인 아비튀스는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획득되어 진 성향,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의 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사회적 환경에 의한 사고와 행위를 단 순히 기계적으로 재생산하는 메카니즘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개념이다. 아비튀 스는 사회제도, 구조가 인간 행위의 산물이자 동시에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하여주는 조건이기도 하다. 예술의 장에 있어서 아비튀스는 예술가와 작품의 위치(계급적, 미학적, 공간적, 소비적 위치 등)를 생 산,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비튀스가 학교같은 제도를 통해 행위자에게 하나의 미 학이나 불평등한 문화를 강제한다면 그것은 상징폭력이라고 불릴 수 있다.
3.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
과연 예술작품은 순수하고 비이해타산적이며 경험과 합리적 이해를 벗어난 것인가? 부르디외는 예술을 설명할 수 없다는 가정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가다머적인 지적 패배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다. 그는 예술이 무목적성을 표방하고 자율적이고 초월적 지위를 누리게 된 배경으로 인간의 신념과 행위의 구조 그리고 제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예술계는 예술에 대한 사회과학 적인 접근에 거부감과 반발을 보인다. 사회과학적 지식이 예술의 신비성과 예술가의 예외적인 지위에 대해 치명적인 상처를 줄지 모른다는 경계심과 오해 때문이다. 물론 사회학자는 예술가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소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보다 그는 보고 느끼는 감각적인 여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명료한 관계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하여 부르디외가 의도하는 바는, 예술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으로 역사와 아카데미즘의 성소에서 물신화되어 죽은 예술작품과 작가들을 꺼내 어 자유 속에, 즉 감상자의 이해와 숭배 속에 안치하기 위한 것이다. 예술가 및 예술작품의 생산과 수 용 조건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결코 예술품을 파괴하거나 수용자의 예술적 경험을 축소시키는 일 이 아니다. 맹목적인 사랑보다는 상대를 알고 이해하는 사랑이 더 바람직하다. 부르디외는 예술작품에 대한 감각적인 사랑은 일종의 지적인 사랑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4. 문학 속에 보여진 예술의 사회적 규칙
부르디외의 예술 사회학적 발상은 먼저 문학텍스트 속에서 보여진다. <<예술의 규칙>>이란 그의 저 서에서 그가 분석하는 대로 따라가 보자.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에서 프레데릭은 두 세계, 즉 예술 과 돈, 순수한 사랑과 금전적인 사랑 사이의 양립불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한편 아르누는 예술 세계 속에서 돈과 사업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플로베르는 순수한 예술의 세계와 사업의 세계를 대비하는 구도를 설정한다. 그리고 사랑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 서로 상응하는 형식을 취한다. 두 가지 상반된 가치의 세계에서 줄타기를 하던 프레데릭처럼 예술과 사랑에 광적인 사람은 사업의 세 계에서 보자면 진 사람이다. 그러나 예술의 세계에서 보자면 "진 사람이 승자"인 게임이기도 하다. 그러 나 프레데릭은 예술이나 사업의 게임 그 어느 한쪽에 완전히 자신을 투자하는데 이르지 못했다. 부르 디외에 의하면, 플로베르가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분석한 것은 놀랍게도 객관화된 사회관계의 구 조이다. 즉 순수한 사랑이 결합되어 있는 순수예술과 부르주와 예술 사이의 대립 관계이다. 그리고 당 시 보헤미안들의 생활과 인간 관계의 조건 및 사회 공간 구조룰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적 텍스트가 독자를 문학적 환상 속에 몰입시켜 드러내지 않는 사회적 사실들의 구조를 사회학적 눈은 잘 포착하여 나타나도록 한다. 플로베르가 소설 속에서 묘사한 것처럼, 부르디외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원리가 지배하는 예술의 세 계를 양극화된 구조로 인식한다. 즉 부르주아 세계에 반대하여 그와 단절하고 대립하는 순수 예술의 세계의 존재이다. 순수 예술, 독립적인 예술의 세계를 위해 당시 부르주아 예술과 맹렬히 저항하고 싸 우던 예술가들은 플로베르, 보들레르, 마네 같은 새로운 예술의 예언자, 창조자, 순교자들이었다. 이들은 시장 경제나 정치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반대의 축에 위치하여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하였다. 이들은 시장과 권력으로부터 독립과 자율성의 획득을 위해 기존 예술계와 윤리적, 미학적 단절을 표방하면서 그들과 상징 투쟁을 벌였다. 새로운 질서 확립을 위해 개인으로서 취해야 할 단절의 어려움은 있다. 고독한 혁명가들은 부르주아 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기대에 주저하기도 한다. 보들레르는 한때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으려고 했고 한 극장의 관리를 맡으려고 했다. 또한 마네의 "죽은 토레로"같이 개혁자의 도발 적인 위배가 역량의 부족함이나 실패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개혁가들은 "저주받은 예술가" 혹은 실패한 예술가로 상징적 혁명의 잠정적인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마네와 "낙선전"살롱처럼 적어도 새로운 미학 적 체제가 권력의 장안에 설정되기 전까지는. 결국 플로베르는 <<감정교육>> 속에서 프레데릭과 여러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 구조 속에서 권력 의 장을 구성하는 여러 위치들의 세계와 연결된, 또는 문학의 장 속에서 권력의 장을 구성하는 위치들 의 세계와 연결된 관계구조를 객관화 한 것이다. 플로베르는 프레데릭을 통하여 장의 세력들에 의해 조종되는 한 존재의 무력함을 극화시킴으로써 창조자의 창조적인 단절을 상징화하였다. 그리고 프레데 릭의 모험을 통하여 이러한 무력함을 극복하고 권력의 장 속의 경쟁과 갈등의 객관적인 사실을 환기한 것이다.
5. 예술세계의 자율성
위의 문학 텍스트에서 보여진 것처럼, 예술의 장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경제, 정치적 요소 로부터 독립되길 원하는 문화자본 등 상징자본을 많을 갖고 있는 예술인들과, 예술 외적인 요소에 의 존을 많이 하여 경제 자본과 권력을 갖고 부르주아 예술인들이 있다. 순수 예술가들이 부르주아적 요 구를 멀리하면서 순수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치뤄야 할 대가는 경제적 궁핍이다. 그들이 부르주아 예 술가들과 투쟁하기 위해선 부르주아 예술 행위의 의미와 기능과 차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르 주아 고객과 시장을 포기하고 상업적 가치가 없는 예술작품을 고집해야만 한다. 그들은 이러한 고통스 러운 예술시장 경제의 메카니즘을 스스로 초래하고 그 필연성을 충족시켜야 했다. 예술의 자율성을 증 가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은 이 새로운 도치된 경제 원칙안에서 자유롭고 고상해지는 "사치스런 노동자" 가 되길 원한다. 19세기 말, 쿠르베를 제외하고 화가들이 대중적인 정당화를 추구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대중적인 확산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유일한 작품은 대중이 접근하기에 상대적으로 값이 비쌌을뿐더러, 그들이 알고 있는 성공이란 사교계적인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이 돈이나 권력에 종속되지 않고 그 어떤 형식과 치환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예술 생산의 장의 자 율성 주장과 분리될 수 없다. 이로써 예술이 기존 규칙에 의해서도, 그 어떤 초월적인 기준에 의해서도 평가될 수 없고, 예술 그 자신의 규칙을 생산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의 평가 척도를 삼는다는 "예술을 위 한 예술" 의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6. 예술의 재생산, 아비튀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다. 화가나 화랑마다 고유한 아비튀스가 있어 독특한 예술 전시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화랑은 계급, 교육, 세대, 취향, 기질 등으로 구별되고 차별되는 화가와 작품의 미적 기준을 생 산, 재생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화랑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은 화가의 명성과 작품의 소장 기간, 상업적 가치에 따라 미학적, 경제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자기 고유의 작가군이 없는 보부르같은 상업적 화랑들은 당시대와 아주 다른 시기의 학파, 연령의 화가들(추상화가, 후기 초현실주의자, 극사실주의자, 신사실주의자)의 작품을 전시한다. 화가들은 좀 알 려졌거나 장식적 가치 때문에 일반인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그리고 이미 주목받고 있는 아방가르드 화가들을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영입한다. 반대로 소나방, 드니즈 르네, 뒤랑 뤼엘과 같은 화랑들의 소장품에서는 체계적인 구상으로 각기 시대의 유파를 끌어 모아 예술 발전의 논리를 볼 수 있다. 즉 미국의 팝아트에서 미니멀아트, 아트 포브르, 개념예술, 통신예술 등에 이르는 최근의 경향들을 볼 수 잇다. 마찬가지로 드니즈 르네 화랑은 기하학적 추상과 시네틱 아트 사이를 연결하여 유명하게 되었다.
예술 장의 구조는 적대적인 위치들의 공시적인 대립으로 구별되고 차별된다. 장은 즉 지배/피지배. 인정된 자/신참자, 후위/전위, 늙음/젊음 등 사회적 관계의 분화와 대립이 생성되는 곳이다. 또한 장 속 의 이러한 대립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산, 재생산되는 것으로서 다름 아닌 아비튀스의 효과이기도 하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아비튀스란 어떤 계급이나 집단의 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인지, 판단, 성향, 행위의 주형 체계이다. 장의 구조는 아비튀스의 재생산적 기능에 의해 성립되기 도 한다. 또한 역으로 아비튀스는 장의 조건하에서 작동한다. 즉 아비튀스는 예술 생산의 장 안에서 행위자들의 투쟁에 의해서만 사실상 존재한다. 아비튀스는 아비튀스는 구체적으로 작품에 제도화되 거나 동시에 정신구조와 신체 속에 내면화되어 나타나면서 작품의 생산과 유통 가능성의 사회적 조건 을 한정한다. 아비튀스는 예술그룹 성원들의 세대, 사회적 출신, 학력, 성향 등을 동질적으로 구조화하 면서 재생산한다. 부르디외는 화가와 화랑의 예를 든다. 화가들의 생물학적 나이와 예술적 나이에도 아비튀스적 차이 가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아방가르드 화랑의 화가들은 세느 강 우안 화랑의 나이든 화가나 작고한 화 가들과 대조된다.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경우에 생물학적 나이와 예술적 나이는 일치한다. 또한, 화랑에 소속된 화가의 나이 구조를 비교해 보면, 화가들의 나이와 생산의 장 속에 화랑의 위치 사이에는 뚜렷 한 관계가 보인다. 1930-1939 년 사이 출생 화가들은 아방가르드인 소나방에, 1900-1909년 사이는 인정 된 아방가르드인 드니즈 르네 또는 프랑스 화랑에, 1900년 이전 화가들은 드루앙 또는 뒤랑 뤼엘에 속 해 있다. 반면 보부르나 클로드 베르나르 화랑은 아방가르드와 인정된 아방가르드 사이의 중간에 위치 한다. 드루앙이 전시하는 화가들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모든 점에서 반대되는 특징들을 지닌다. 지방 출신들로서 파리에 뿌리를 내리려고 이 화랑이 발굴했으며 드루앙 상에 의해 띄워졌던 사람들이다. 아 방가르드 예술가들보다 훨씬 더 많이 국립미술학교 보자르를 졸업하고 아카데미적인 예술(후기 인상주 의)을 실천하며, 아카데미적인 주제(바다, 초상화, 알레고리, 농촌풍경, 나체와, 남프랑스 풍경 등)를 선 택한다. 화랑은 그들에게 여러 상과 메달을 주고 커다란 살롱 등 단체 회원으로서 후진 양성과 행정적 으로 합법화된 심급의 권력적인 위치(보자르 교장, 파리대학 교수 등)에 접근해 있다.
그러면 예술 세계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부르디외에 의하면, 예술작품의 변화의 원칙은 예술 생산의 장 속에서 행위자들과 제도들의 투쟁 속에 있다. 예를 들어, 화랑들은 매순간 예술적 나이, 예 술 양식, 제도적 인정의 정도에 따라 구분되어지고 경쟁하는 투쟁의 장에 속하게 된다. 아방가르드는 매순간 인정된 아방가르드와는 다른 하나의 새로운 예술 세대로 구분된다. 1975년 아방가르드 예술 취 향과 부르주아 취향 사이에 설정된 대립과 유사한 구도가 반복된다. 즉 소나방, 드니즈 르네, 뒤랑 뤼 엘 화랑들에 의해 상징화된 대립 구도는, 1945년 드니즈 르네가 아방가르드를 대변했던 공간의 대립구 도와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이보다 훨씬 전 1875년 뒤랑 뤼엘에 취했던 전진적인 위치의 공간 구도와 도 유사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문학이나 연극, 음악 등의 예술의 장과 비평의 장에서도 마찬가 지로 상동적 구조로 보여진다.
예술가들은 고유한 예술적 게임의 규칙에 따라 예술행위의 사회적 인정인 정당성의 독점을 위한 내적 경쟁을 한다. 그들은 위치와 기능에 따라 자신들이 갖은 특수한 자산의 배분 구조를 보존하거나 변형, 전복시키는 데에 따르는 이해관계에 종속되고 투쟁에 가담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이런 투쟁 자체에 대한 이해관계와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문제삼지 않은 것처럼 장 속에 몰입하는데, 이것은 그 들이 이런 장의 게임에 투여해 놓은 신념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게임의 생산과 재생산에 기여하는 이 보이지 않는 공모의 효과를 일루지오(illusio)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현실적인 환상이다. 즉 작품 창조의 카리스마적 이데올로기를 작가에게 돌리고, 화랑상인이 그것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소비자가 작품을 감 상하고 사게 되는 일련의 게임 과정에 대해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들이 갖는 일종의 마술적 환 상을 말한다. 공장에서 만든 완제품에 제목을 달고 서명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되어 비싼 가격에 팔리 게 되는 것은 바로 예술가를 인정해 주고 있는 예술 장의 논리의 효과 때문이다. 즉 그런 예술적 행 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예술가, 비평가, 예찬가, 소비자들이 믿는 인식과 평가 범주의 전통 때문인 것이 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만초니가 "예술가의 똥통조림"으로 그 위에 올려진 모든 것들을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나, 뒤샹이 "샘"이라고 제목을 달고 서명함으로써 변기를 예술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모두 예술적 게임에 대한 일루지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예술사회학에 의하면, 예술 작 품의 가치의 생산자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가 창조자로서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생산하면서 페티 슈로서 예술작품이 가치를 생산하는 신념의 세계인 생산의 장인 것이다.
예술사회학의 분석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전통적인 연구가 아니다. 마르셀 뒤샹식의 타격처럼, 예술 가라고 명명하고 그의 작품을 전시해주고 예찬하고, 사고 파는 과정에 관여하는 예술의 가치는 장 속 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데 사회학은 바로 그 조건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행 위자(예술가, 화랑상인, 비평가, 수집가) 전시 장소(화랑, 미술관 등)와 인정의 심급들(아카데미, 학교, 살롱) 등이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학교의 예술 교육의 불평등성과 상징 폭력은 부르디 외에게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예를 들어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미술 작품의 이해는 감상 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코드의 습득을 요한다. 예술작품의 이해에 필요한 코드는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 다. 교육제도는 강제된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기제이다. 학교는 문화에 있어서 사 회적으로 조건지어진 불평등을 재능의 불평등으로 해석하여 성공의 불평등으로 전화시키는 제도이다.
끝으로 상동관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기로 하자. 독립적인 예술의 세계도 정치사회적인 요소와 관계 에 있다. 즉 예술의 미학적 대립은 정치적 대립과 같이 상동적 위치에 놓여져 있다. 부르디외는 , <<국 립현대미술관지>>잡지에 실린 "아노미의 제도화"(1987)라는 글에서 작가와 화가들은 각기 자신의 독립 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서로가 처한 상동한 구조 속에서 서로가 가진 것들을 이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다. 정치적으로 드레퓌스 옹호자는 아카데미, 살롱, 부르주아 어조에 반대하여 마네를 옹호했던 사람과 동일하고, 예술적으로 프루동은 화화의 인간적, 도덕적, 사회주의적인 독서에 반대한 사람과 동일한 것 이다. 작가 졸라는 언제나 정복당한 사람들의 편에 설 것임을 천명하고 마네를 옹호하였다. 졸라는 외적 요구에 대해 반발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정치와 지배적 화단에 대해 적대감 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졸라는 쿠르베와 프루동이 형식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림에게 뭔가를 의미하라고 강제한다고 비난하고, 예술은 모든 사회적 규칙 밖에서 사회를 부정하고 개인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 정치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사회를 부정하는 강한 주 장이 정치 권력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졸라나 마네의 "상징적 투쟁"은 궁극적으로 "상징적 혁명"을 가 져 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