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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7월 26일 주일
[(녹)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신앙의 전수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였다.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와 함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월 26일)과 가까운 7월 넷째 주일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지낸다(주교회의 2021년 추계 정기 총회 결정).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 나라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는 비유 말씀을 듣습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보물을 얻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듯이, 우리가 참으로 복음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언제나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복음에 따른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시어,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고,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는 분별력을 청하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3,5-6ㄱ.7-12
그 무렵 5 주님께서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7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8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9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10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2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28-30
형제 여러분,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44-5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서 13장에서만 소개되는 보물과 진주 상인, 그물의 비유는 이야기의 소재는 다를지라도 모두 ‘하늘 나라’라는 공통 주제로 연결됩니다. 이 세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하늘 나라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늘 나라는 숨겨져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보물, 진주, 물고기는 밖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그 곁을 스쳐 지나가거나 바라보지만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는 이처럼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이미’ 존재하지만(루카 17,21 참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부재’가 더 강하게 그 ‘존재’를 증명하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그것을 발견하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려면 땅을 파는 노력이, 값진 진주를 얻으려면 열심히 찾아 다니는 고생이, 좋은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가만히 앉아서는 결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를 찾은 이는 기쁨을 얻습니다. 이 내용은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나오지만 다른 비유 이야기에도 분명 그러하였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늘 나라를 발견하고는 돌아가서 모든 것을 겁니다. 기쁨이 그토록 크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걸 만큼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그 나라는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생각지도 않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때 곧바로 응답할 수 있도록 우리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추한 노인과 품격 있는 노인!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젊은 시절 그런 기대를 참 많이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유로워지고 부드러워지겠지. 노인이 되면 지혜로워지고 내려놓게 될거야.” 그런데 저 자신을 바라보고, 또 주변을 돌아보니, 그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공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설가 현기영 님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탐욕스러운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노련해지고 오만한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후안무치해진다. 젊은 날의 상처는 더욱 예민한 치부로 남아, 겹겹의 가시 울타리를 두른 채 윤색되고 포장된다. 연륜을 무기 삼아 삿되게 목청을 높이고, 권위를 지키려고 옹졸하고 편협해진다. 자신을 비우고 성찰하지 못하는 노년은 추하고 고독하다.”
반면 참으로 존경스러운 노인, 성숙의 극한에 도달한 노인의 모습을 우러러봅니다. 그들은 노화로 인해 다가오는 고통을 유심히 바라보고 성찰합니다. 그러나 너무 심각하게 응시하지도 않습니다.
깨달음에 도달했기에 내 것 네 것에 대한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높은 시련의 파도가 다가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저 허허로운 마음으로 달관한 미소로 넘깁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며 모든 인연이 다 소중하며 모든 것이 다 감사거리입니다.
오늘 조부모와 노인의 날입니다. 노년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정표가 되어줄 모델을 꾸준히 찾아나가야 하겠습니다. 성경 속에 여러 모델이 등장합니다. 대표 인물이 시메온 예언자입니다.
그는 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이 들어가면서, 육적인 삶을 줄이고 영적인 삶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매일 같이 성전으로 출근했습니다. 루카 복음 사가에 따르면 그는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던”(루카 2,25) 사람이었습니다.
이토록 잘 준비된 영적 노인 시메온에게 마침내 주님께서 풍성한 은총을 선물로 주십니다. 평생토록 염원했던 소원, 지복직관의 은총,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팔에 안아보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시메온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 29-32)
바야흐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백세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80에 세상 뜨면 너무 빨리 가셨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길고 긴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건강 관리도 잘 하고, 재정 관리도 튼튼히 해놓고, 즐기고 만끽할 취미활동도 준비하고...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지혜롭고 충만한 노년을 살기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되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 기력도 떨어지고, 세상의 무대에서 점점 뒤로 물러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는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 여름밤이면 텔레비전에서 ‘납량특집’을 방영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서 더위를 식히라는 뜻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납량특집으로는 ‘구미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한 이야기였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면서 어릴 때 읽었던 동화도 생각납니다. 그중 하나가 ‘금도끼와 은도끼’입니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그만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습니다. 가난한 나무꾼에게 도끼는 생계의 도구였습니다. 나무꾼이 상심하여 울고 있을 때 산신령이 나타나 은도끼를 보여 주며 묻습니다. “이것이 네 도끼냐?” 나무꾼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산신령은 다시 금도끼를 보여 주며 묻습니다. “이것이 네 도끼냐?” 나무꾼은 다시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마침내 산신령이 쇠도끼를 보여 주자 나무꾼은 말합니다. “그것이 제 도끼입니다.” 산신령은 나무꾼의 정직함을 보고 쇠도끼뿐 아니라 은도끼와 금도끼도 함께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삶에서 진짜 보물은 금도끼도 아니고 은도끼도 아닙니다. 진짜 보물은 양심입니다. 진짜 보물은 정직입니다. 거짓과 욕심은 잠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양심과 정직은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흥부는 어느 날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보았습니다. 흥부는 제비를 불쌍히 여겼고, 정성껏 다리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듬해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흥부에게 박씨 하나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흥부가 그 박씨를 심었더니 큰 박이 열렸고, 박을 타자 그 안에서 보물이 나왔습니다. 욕심 많은 놀부는 동생 흥부에게 그 사연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놀부는 흥부의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놀부는 제비의 아픈 다리를 치료한 행동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놀부도 박씨를 얻었지만, 그 박에서 나온 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비 다리를 치료했다는 겉모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흥부는 보상을 바라지 않고 불쌍한 생명을 돌보았습니다. 놀부는 보상을 바라며 선행을 흉내 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마음이 달랐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겉모습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특별한 은총을 청합니다.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장수를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원수들의 죽음을 청하지도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청했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의 청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솔로몬이 청한 것은 바로 식별의 지혜였습니다. 식별의 지혜는 무엇이 더 이익인지 계산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식별의 지혜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알아보는 마음입니다. 식별의 지혜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참된지, 무엇이 영원한지 알아보는 눈입니다. 세상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먼저 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흥부의 자비보다 놀부의 계산을 더 영리하다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는 다릅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양심을 선택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정직을 선택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자비를 선택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이 더 귀한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았지만, 그는 잃은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 나라보다 더 앞세우지 않습니다. 재물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필요합니다. 명예도 필요합니다. 인간관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느님보다 앞서면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그것들이 복음보다 앞서면 우리는 양심을 잃습니다. 그것들이 사랑보다 앞서면 우리는 자비를 잃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에게 진짜 보물은 무엇이냐?”
오늘 시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는 당신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순금보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오늘 제2독서에서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정직하게 살면 때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면 때로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양심을 지키면 세상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삶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양심을 지키는 사람의 삶 안에서 선을 이루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의 눈물을 기억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의 손길을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청해야 할 은총은 솔로몬이 청했던 바로 그 은총입니다.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금도끼와 은도끼 앞에서도 양심을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제비를 이용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재물보다 하느님 나라를 더 귀하게 여기는 복음의 지혜입니다. 조부모님과 어르신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분들의 신앙과 희생을 감사히 기억하는 사랑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 지혜를 간직한다면, 우리의 가정은 하느님 나라의 밭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본당은 숨겨진 보물을 함께 발견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선으로 이끄시는 은총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하늘나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나라는
숨겨진
보물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찾는
길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하늘나라인
사람이
걸으니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를
찾아
하늘나라를
걷는
사람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인
사람인
하늘나라를
걸어
찾으니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찾아진
보물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품은
사람입니다
하늘나라는
보물을 나누는
길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녀 안나 (Anne)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성모의 모친
지역
같은 이름 : 낸시, 니나, 애나, 애니, 앤
성 요아킴 (Joachim)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성모의 부친
지역:
같은 이름 : 요아힘, 조아킴
성모 마리아(Maria)의 부모인 성 요아킴(Joachim)과 성녀 안나(Anna)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이외의 전승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170-180년경에 쓰여진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elium Jacobi)는 비록 교회에서 위경(Apocrypha)으로 간주되지만, 마리아의 부모에 대해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실제 이 책은 초대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작품일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어 마리아에 대한 공경에 한몫을 하였다. 물론 교회에서 위경으로 간주한 만큼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이 역사적으로 실제 벌어졌던 일들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성 요아킴은 부유하고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성녀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이들에게 흠이라고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에, 요아킴은 시무룩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로 하느님께 단식하며 기도드리기로 결심하고는 광야로 갔다. 그 동안 집에 홀로 남겨진 성녀 안나 또한 주님 앞에서 울며 탄식 기도를 바쳤다.
이 부부의 간절한 기도는 곧바로 응답을 받았다. 한 천사가 성녀 안나에게 나타나 그가 잉태하여 낳은 아이는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예고해 주었다. 이에 성녀 안나는 그 아이를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광야에서 기도하던 중 이와 비슷한 환시를 본 성 요아킴 역시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는 딸을 낳았고, 안나는 아기에게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이가 3세가 되었을 때,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는 하느님께 약속한 대로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양육받도록 맡겼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축일과 함께 마리아를 하느님께 봉헌한 어머니 안나와 아버지 요아킴의 축일도 생겨났다. 그리고 많은 교부들이 “야고보 원복음서”를 즐겨 인용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고조되었다. 원래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를 기념하는 축일은 9월 9일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전례가 6세기 동방 교회를 거쳐 8세기 이후에 로마로 도입되었고,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과 예루살렘에 성녀 안나를 기념하는 성당이 건축되었고, 중세 시대 유럽에 성녀 안나에게 봉헌되는 성당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성모 마리아의 부모에 대한 공경을 확산시켰다. 그 결과 1584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가 7월 26일을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의 기념 축일로 지정하였다.
이처럼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가 일반인들에게 특별한 공경을 받는 성인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가정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모범을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의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예전에는 대가족 제도였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함되지 않는 가정상이 낯설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마리아의 부모까지 포함시켜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교회 미술 작품에서 성녀 안나는 주로 영원하고 신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초록색 망토와 빨간 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며,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반면, 성 요아킴의 상징은 성전에서 행하던 그의 경건한 제사와 관련되어 어린 양, 백합, 새장 속의 비둘기 등이다.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 (Bartholomea Capitanio)
활동년도 : 1807-1833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바르똘로메아, 카피타니오
성녀 바르톨로메아 카피타니오와 성녀 빈첸시아 제로사(Vincentia Gerosa, 6월 28일)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의 로베레(Lovere) 출신으로, 서로 힘을 합쳐서 고향 땅에 ‘로베레의 애덕회’를 설립하였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주민들이 무지와 게으름 속에 사는 것에 대하여 큰 충격을 받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간호하는 수녀회를 세웠다. 이 수녀회는 성 빈첸시오 데 바오로의 수도 규칙을 기초로 삼았다. 성녀 빈첸시아가 성녀 바르톨로메아를 알게 되었을 때의 나이가 40세였으나 성녀 바르톨로메아는 불과 2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놀라운 자제력과 이해력의 표상이 되었고, 그들이 세운 수녀회는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