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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제네바의 주교님이 저렇게 선(善)하다면 하느님은 얼마나 더 선하실까?
많은 분들이 제게 묻습니다. 돈보스코 성인이 설립한 수도회인데, 왜 돈보스코 수도회가 아니라 살레시오회인가요?
돈보스코가 활동하던 1800년대 당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쪽 대세 성인이 한분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이십니다.
살아 생전 돈보스코는 사랑의 박사, 친절과 온유의 성인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진행 중인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 사업의 주보 성인으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수도회를 설립하면서 이름조차 살레시오회로 명명한 것입니다.
1593년 갓 서품된 순간부터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성소 여정은 범상치 않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서품과 동시에 제네바 교구 참사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는 서열상 교구장 다음가는 위치였습니다.
1594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샤블레라는 험한 산간 지방에 칼뱅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가톨릭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목숨 건 선교를 자청했습니다. 그가 샤블레에 최초로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들의 냉대와 박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불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회심자들의 수는 극히 미미했습니다. 칼뱅파 신자들의 집회가 끝난 예배당에서 홀로 쓸쓸히 미사를 봉헌해야만 했습니다. 도우미로 따라왔던 사촌은 2년 만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돌아갔습니다.
혹독한 시절이었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자, 칼뱅파로 넘어간 신자들을 위해 팔이 아프도록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복사기도 없던 시절이라, 같은 내용을 쓰고 또 썼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대문 밑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는 이른바 ‘미디어 선교’를 일찌감치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그의 부단한 노력에 더해 1598년 프랑스와 사보이아 간에 이루어진 평화 협정에 힘입어 샤블레 지역의 칼뱅파들이 서서히 가톨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4만여 명에 달하는 양들이 다시금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1602년 35세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제네바 교구장에 착좌하게 됩니다. 알프스산맥과 안시 호수가 멋지게 어우러진 안시에 거처를 정한 그는 600여 개의 본당을 두루 다니며 사목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부드럽고 달콤한 품성의 소유자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을 각별히 사랑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큰 환영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모습과 삶에 홀딱 반하고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 돌 정도였습니다.
“제네바의 주교님이 저렇게 선(善)하다면 하느님은 얼마나 더 선하실까?”
틈만 나면 분노하고, 여차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은 부드럽고 자상한 어투로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한 말의 식초보다는 꿀 한 방울로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참으로 설득력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고,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하느님을 갈망하며, 하느님에 대해 말하기를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그가 남긴 불멸의 명저 신심 생활 입문을 통해 영성 생활에 대한 그의 선구자적 시각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창조하실 때, 초목들은 종류에 따라 각기 자기 열매를 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당신 교회의 살아있는 초목인 그리스도인이 각자 자신의 품위와 신분, 성소에 따라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신심은 귀족, 노동자, 왕족과 노예, 과부와 미혼녀, 기혼녀 등에 따라 각각 다른 방법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실천은 각자의 능력과 일, 직무에 알맞아야 합니다. 신심 생활은 군인들의 막사, 수공업자들의 점포, 왕족들의 궁정, 부부들의 가정에서도 활짝 꽃 피어나야 마땅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마르코 3,13-19
신앙생활 오래 해도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
라이언 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목사로서 약 20년 동안 신앙과 사역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2013년, 그는 “하느님 없이 보낸 1년”이라는 실험을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신앙에 대한 점진적인 의심과 불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벨은 자신의 갈등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제 신앙을 더 포용적이고 자비롭게 만들고자 했지만, 그럴수록 기독교가 감당할 수 있는 경계가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속한 교회가 동성애자나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과 타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 실험에서 벨은 기도와 교회 출석을 포함한 모든 종교적 관행을 중단하고, 마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무신론의 세계로 들어가고 무신론자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1년간 기도도 하지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하나님을 어떤 일의 근원이라든지 나 자신이나
어떤 이의 삶을 바꾸어줄 희망이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기대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을 때,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는 이 여정을 기록하며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솔직하게 나누었습니다.
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깊은 불안감도 들었습니다.
단순히 신념 체계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식을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이성, 연민, 정의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회상했습니다.
“제가 신앙 안에서 소중히 여겼던 많은 가치들 — 친절, 관대함, 평등에 대한 헌신 — 이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여전히 실천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1년이 끝난 후, 벨은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책도 읽고, 깊이 생각하고, 신앙과 무신앙 양쪽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제가 믿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라이언 벨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벨은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며 다시 거의
무신론자가 되는 수많은 냉담자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둘을 뽑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가 열둘을 임명하셨으니, 그들이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낼 권한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뽑으시는 세 가지 이유는
a. 함께 있게 하시고 = 기도하게 하시고,
b.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 선교 사명을 주시며,
c.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성령의 선물을 주고자 하심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라이언 벨의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분명 뽑혔으니 주님과 함께 머물렀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 사명으로 ‘파견’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파견받으면 주님께서 성령의 힘을 주시는데 이를 통해 주님을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성 요한 보스코의 삶을 돌아봅시다.
그는 1815년 이탈리아 베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그의 가족은 생계를 위해 애썼습니다.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그에게 강한 신앙심을 심어주며, 어려운 시기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밝고 쾌활한 성격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요한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능했지만, 그는 훗날 자신의 부르심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참새 같았다.
내 마음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목적에 따라 계획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아홉 살 때 꾸었던 생생한 꿈을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싸우고 소리치며 욕설을 퍼붓는 소년들로 가득 찬 들판을 보았습니다.
그때 흰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친절과 사랑으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이 꿈은 그의 삶 내내 그를 떠나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이해와 사랑으로 인도하고 돌보겠다는 그의 사명을 형성했습니다.
그는 이 사명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이라는 확신을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들을 내 손에 맡기셨다. 그분은 내가 이들을 인도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가길 원하신다.” 그의 이러한 목적의식은 그가 어려움을 견디고 자신의 사명을 지속하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힘을 깊이 믿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열쇠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우리의 노력은 어둠 속의 화살과 같습니다.”
그는 성체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사역을 위한 힘과 지침을 얻었습니다.
그는 소년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체와 마리아께 가까이 있으십시오. 그러면 여정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의 은총은 보스코의 삶에서 놀라운 사건들과 열매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오라토리오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보스코는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부유한 후원자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와 필요한 금액을 기부했습니다.
또 다른 일화로, 보스코는 한 중병에 걸린 소년이 나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말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느님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소년은 회복되었고, 이는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돛을 채우는 바람과 같습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한 모든 것 안에서 성령의 힘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파견받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성령으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면, 기도할 것이고, 기도한다면 그 부르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사명을 찾으려 할 것이며, 사명에 순종하면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0,10-12)
주님께 파견받았다고 믿어야만 성령의 도우심이 주어집니다.
라이언 벨처럼 목사로 살아도 매일 기도로 파견받지 못하면 목사가 되어도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매일 미사를 하거나 기도를 마칠 때,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나의 사명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결심하고 나가서는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에서 파견이 빠지면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3,13-19: 제자들을 부르셔서 당신 곁에 있게 하시다
주님께서는 제자들 열둘을 부르시어 사도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주셨다. 예수께서 이제 그들과 깊은 친교를 나누며, 당신이 하시는 일에 협조자가 되게 하신다. 공생과 파견이라고 할 수 있다(6,6-13). 예수께서 열두 사람을 가려 제자단을 만드신 것은 그분과 함께 살고, 함께 사귀고 또한 그분이 하신 것같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흠뻑 젖어 세상에 전할 말씀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선발하신 열두 제자들은 어부, 세관원, 혁명당원도 있었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여러 가지 부족한 사람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보아도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이끌어 갔다. 이것은 교회가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모여온 것을 말하고 주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는 보편적인, 가톨릭적임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가르침, 복음은 받아들이려 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임을 제자들을 보아서 알 수 있다. 사도들의 이름들이 나오는데, 새로운 이름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시몬은 베드로라 불렸고, 사울은 회개하고 나서 바오로가 되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천둥의 아들들이라 하였고, 레위를 마태오라고 불렀다.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것은 신원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들은 이제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살아가며 그분과 함께 그분의 여정을 함께 하는 그분의 친구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사도들이 복되다는 것은 예수님의 친구로 함께 간다는 것이다. 주님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님을 제자들의 부르심에서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을 닮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그분과 함께 그분의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분과 같이 되는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현재 인간은 생태계 피라미드 최상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이빨도, 강력한 발톱도, 뭐든 부술 수 있는 턱도 없는데 말입니다. 모든 동물 중에서 최정상에 군림할 수 있는 이유를 학자들은 ‘직립보행’ 때문이라고 합니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동물들이 직립보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직립보행을 할 때 발바닥에 가해지는 압력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몸의 무게를 두 발로만 버티기가 힘들어서 대부분 사족보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떻게 두 발로 몸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움푹 팬 발바닥 때문이었습니다.
건물 입구, 다리, 터널을 보면 곡선 형태의 구조인 아치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치 형태가 별도의 지지대가 없어도 엄청난 하중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치가 우리 발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평발이라서 군대에 가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래 서 있어야 하고, 행군도 해야 하는 군인에게 평발은 군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 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너무나도 중요했던 부분이라는 사실, 하느님께서는 세세히 신경 쓰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판단만을 내세우고, 세상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볼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지금이야 이 열두 사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요.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나 사제 무리에 속한 사람들처럼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을 팔아넘기고, 수난과 죽음에 뿔뿔이 흩어지는 나약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실수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에 중요한 당신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당신의 선택을 받아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죄를 범하더라도, 나약함과 부족함이 넘쳐나더라도 상관없이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세세하게 신경 쓰시는 주님의 사랑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영원히 여기 머물 것처럼 일하고, 내일은 떠날 것처럼 준비하겠다(브뤼기에르 주교).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히브8,10)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생각과 마음속에
성령을 통하여
주님의 법을 새겨주신다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바람이 불적마다
새록새록 기억나는
주님의 법을 떠올리며
우리를 지켜주시는
그분의 법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사제는 누가 뭐래도 하느님의 위임을 받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이 헌신은 특권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사제를 존경하는 게 아니라
헌신적으로 사랑의 책무를 다할 때
존경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제의 마음에 가난한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교우들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이 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갈망과 사랑으로 가득 차
기도하는 마음이 심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이 흘러흘러 바다까지 이르고
그 사랑이 제가 만나는 이들에게 가득해지면 좋겠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그리스도는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8,6-13
형제 여러분, 6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7 저 첫째 계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8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9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10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1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