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남녀를 짝지어 주시며, 에덴동산을 주셨지만, 슬프게도 인간은 그 낙원을 상실하였으니 밀톤의 말대로 실낙원이 되었고, 에덴 동편의 가인의 문명은 반기독교 및 적그리스도적 행위가 속출되었다.
성경에 나타난 사탄의 유혹은 지금도 형태와 용어는 달라도 성격과 동기는 변한 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하고(창 3:1, 하나님이 참으로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인의 불확실하고 정직하지 않은 말에(3절에 만지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없음) 사탄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눈이 밝으리라.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선과 악을 알리라…”고 했다.
유혹을 받은 여인은 나무를 보았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실과를 따먹게 되었다. 남의 돈을 따먹는 경우나, 명예나, 지위를 따먹는 순서나, 시대의 환경은 달랐어도 같은 수법이요 과정이며, 같은 상황임을 고찰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조상은 스스로 피하였고(8절),
자기의 수치를 발견하였고(10절), 동산 나무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비극은 에덴의 과실을 마음대로 먹지 못함이 아니요, 에덴의 땅을 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가는 반역의 심사가 비극”이다.
이렇게 속절없이 죽은 심령을 하나님은 찾아오시고(21절) 천사를 시켜 에덴을 차단한 것은 최초로 계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행복을 기대하는 것은 무지나 불신앙의 소치이며, 하나님의 눈 밖에서 기쁨을 발견하려는 것은 에덴동산의 가인의 장난이다(에덴의 뜻은 기쁨이란 뜻). 그러기에 잉태의 고통이 있고, 땀 흘리는 노동이 있고, 땅이 저주 받으며, 흙으로 환원(죽음)하는 신음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비극배우를 희극배우보다 더 좋아하고 성공자를 치하함보다 불행자를 동정하는 실존으로 타락되었다.
인간의 비극의 극복은 실낙원을 되찾는 복락원의 발 돋음만이 가능하고 이 복락원은 자아노력이 아니라 절대타자이신 영원한 당신 예수님만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절대자이신 그분께 절대의존적인 존재인 인간이 절대귀의 하는 것이 신앙이요, 종교다. 신앙을 통해서 인간은 불행을 행으로, 실낙원에서 복낙원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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