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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7일(화)
* 시작 기도
(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주님...
모압과 암몬이 세일 산 사람들과 함께 유다를 치러 올 때 유다 왕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으로 그들을 막으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여호와의 얼굴을 구할 뿐입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맞서 나가라고 하시되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이 없으며 오직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대하 20:17).
이에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함께 찬양대에게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 행진하며 찬송을 하게 합니다.
찬송의 내용은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이렇게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에게 복병을 두어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셨습니다.
결국 유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지나간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 실제 역사입니다.
아무나 여호사밧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돌아봅니다.
정말 주님 앞에서 부끄럽기만 한 죄인이요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나의 믿음 없음을 도우소서.
이 시간 주의 얼굴을 구하오니 주의 은혜로 덮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순간순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게 하소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정치의 현장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잃은 돛단배와 같습니다.
이 나라가 주님 안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17:7-18
제목 :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 나의 묵상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중 하나가 와서 요한을 향하여 이리로 오라고 부른다.
그리고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여기서 큰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곧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인데 이는 곧 온 세상을 뜻한다(15절).
천사는 성령으로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간다.
거기서 큰 음녀와 그를 지배하는 짐승의 실체를 보여준다.
큰 음녀는 ‘큰 성 바벨론’으로 팍스로마나가 주는 세속적 안정과 풍요 그리고 사치와 향락이다.
이 음녀는 땅에 있는 사람들을 그 포도주에 취하게 할뿐 아니라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도 미혹한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과 같은 풍요와 안락, 번영과 사치 그리고 향락의 배후에는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삼켜버리는 악마적인 권세인 짐승이 실재한다.
그런데 그 짐승의 운명은 이미 멸망당하기로 결정되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고전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음녀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매력을 보고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짐승과 큰 음녀의 운명이 어찌 되는지 더욱 밝히 계시된다.
이것을 이해하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한이 본 짐승의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언덕(산)과 일곱 왕을 뜻한다.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언덕이란 3절에 나오는 여자가 탄 붉은 빛 짐승을 묘사한 것이다.
일곱 산 곧 일곱 언덕은 헬라어로 ‘헵타오레’라고 하는데 로마의 저술가들 사이에 일곱 언덕인 헵타오레는 ‘로마’를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
게다가 실제로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일곱 언덕의 도시로 발달했다.
따라서 지리적으로 일곱 언덕은 로마를 상징한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서나 예레미야서의 말씀과 같이 언덕 곧 산은 힘과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종말에 나타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인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렘 51: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온 세계를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나는 네 원수라. 나의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바위에서 굴리고 너로 불 탄 산이 되게 할 것이니
그런데 일곱 언덕은 다시 일곱 왕으로 불린다.
따라서 일곱 언덕 곧 일곱 산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권세에 대한 상징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 권세는 일곱 왕들과 동일한 의미이다.
천사는 계속 이야기한다.
(10-11)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기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분분하다.
역사적으로 로마의 일곱 황제를 의미한다거나 또는 일곱 나라를 의미한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종말의 때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감안하면 로마시대의 황제나 로마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다스렸던 대제국들을 의미한다는 말은 좀 지나친 해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본서가 종말과 관련된 계시의 책이란 점과 관련하여 일곱 왕은 짐승의 권세를 구체적으로 역사의 현장에 투영시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이는 전에 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이 일곱째 왕 이후에 나타난다고 11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는 여덟째 왕으로서 그 역시 일곱 왕 중에 속한 자이다.
그런데 그도 멸망으로 들어갈 자이다(11절).
이 짐승은 8절에 기록된 대로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로서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여덟째 왕은 종말 때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이며 무저갱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가는 짐승이다.
그리고 요한이 본 열 뿔은 열 명의 왕을 가리킨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 짐승과 함께 한 동안 왕노릇할 권세를 받을 것이다.
이 왕들은 한 목적을 가지고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양을 대적하여 싸울 것이지만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어린 양이 결국 그들을 이길 것이다.
게다가 어린 양과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입은 신실한 자들도 어린 양과 함께 이길 것이다.
15절에서 천사는 요한에게 다시 말한다.
요한이 본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곧 백성과 무리와 나라와 방언들이다.
그리고 그가 본 열 뿔과 그 짐승은 그 음녀를 미워하여 그가 가진 것을 다 빼앗고 벌거벗겨서 그 살을 먹으며 그녀를 불로 태워죽일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것인데, 열 왕들이 짐승에게 권력을 넘겨주어 한 마음이 되게 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요한이 본 그 여인은 곧 세상 임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큰 도시를 의미한다.
여기서 요한이 본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1절에서 천사가 말한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에 대한 해석이다.
이는 물 곧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으로 대변되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백성 곧 온 세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큰 음녀인 바벨론은 이런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온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큰 음녀가 열 왕과 짐승의 미움을 받아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당하고 열 왕과 짐승이 그녀의 살을 먹을 것이며 불로 그녀를 아주 살라 죽일 것이라는 것이다.
열 뿔 곧 열 왕과 짐승 그리고 큰 음녀의 관계는 세상의 그 누구도 허물 수 없는 아주 공고한 관계이다.
그런데 이처럼 공고한 불가분리의 운명공동체인 그들 중에서 열 왕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불로 완전히 살라서 죽게 한다는 것은 사뭇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악 곧 사탄의 존재 자체를 알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악의 존재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이며 진리가 없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이들은 그들의 뜻이 서로 부합할 때는 하나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언제든지 서로를 물고 뜯는 자로 변하고 만다.
마치 빌라도와 헤롯처럼 말이다.
(눅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하지만 이와 같은 친구는 사실 친구가 아니다.
그 속에 음흉한 목적을 가지고 서로 친구가 된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 왕과 짐승 그리고 큰 음녀가 아주 공고한 공동운명체와 같은 관계라 할지라도 그들 안에는 악이 지닌 자기파괴적인 면모를 감출 수가 없다.
자기에게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그의 진액만 빨아먹고 던져버리는 개미귀신과 같은 존재가 바로 악이다.
악의 공동체가 하나가 된다 한들 그들의 화합은 결코 평화의 화합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이들 열 왕과 짐승은 큰 음녀에 대한 증오를 가감없이 행한다.
16절에서 망하게 한다는 말은 사막과 같이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벌거벗게 한다는 말은 그를 온 세상의 수치스런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골 2: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죄의 세력을 의미한다.
이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무력화되고 벌거벗긴 것처럼 세상의 부끄러움이 되어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살을 먹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이리와 승냥이 떼가 그의 먹잇감을 잡았을 때 게걸스럽게 먹는 것처럼 그렇게 먹을 것이다.
이는 그녀를 먹는 존재가 바로 짐승이라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게 그 악랄함이 연상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불로 아주 사를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음녀인 바벨론이 불로 완전히 멸망당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처럼 악이 악을 멸하는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오늘 본문은 말한다.
다시 말해서 열 왕과 짐승은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한 악한 도구이지만 그들 역시 멸망당할 것이다.
(잠언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결국 짐승이 자기가 한동안 부리던 음녀를 멸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음녀가 상징하는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도시이다.
그 도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종말을 맞이하지만 그 심판의 도구 또한 악한 짐승인 것이다.
물과 기름이 하나 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하나 될 수 없듯이 선과 악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고후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계시록의 일관된 말씀은 땅에 사는 자들과 하늘에 사는 자들을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하늘에 사는 이들이란, 예수 믿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이들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이는 두 발은 비록 이 땅을 딛고 살지라도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성령 안에서 영생의 교제를 나누는 영생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외적으로는 예수를 믿는 것 같이 교회에 나간다고 해서 모두가 영생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들 가운데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말을 하며 땅에 사는 이들이 많이 있다.
복음이란 이런 이들에게 증거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들은 주의 말씀이 아닌 큰 음녀가 치장하고 있던 자주 빛과 붉은 빛깔 옷을 입고 금과 보석 그리고 진주로 꾸몄으며 그 손에는 금잔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진리 안에서는 결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가증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계 17:4).
예배당의 크고 작음, 성도 숫자의 많고 적음, 교회 재정의 많고 적음, 자신의 명예와 자기 義는 결코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큰 음녀가 치장하는 그런 세상적 풍요와 안락 그리고 번영과 사치와 향락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얻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이 떠나갔다고 생각하는 극히 일차원적 신앙에 함몰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님의 뜻은 영생에 있다(요 6:40).
그 영생 곧 아들의 생명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 또한 큰 음녀가 치장한 그런 풍요와 안락 그리고 성공에 붙들려 살아온 자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인 줄 알고 말이다.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셨고 그 심판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복음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떠한 경우에도 복음만 전한다.
그 복음을 통해서 흑암의 권세 아래 있는 영혼들을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며 그들이 날마다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것 같은 회색지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은 결국 그런 회색지대가 구별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벨리알과 조화되지 않는 분이시며 양과 염소를 구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말을 현재로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종말에 이루어질 일이라면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 안에서 오늘 그 일이 이루어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를 주님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신 그 은혜 앞에 영원히 찬양드리기 원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 아멘.
* 묵상 후 기도
주님...
죽기에만 합당한 나를 주님의 십자가로 구원하시고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면서 지은 모든 죄를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해주시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나의 죄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은 줄 알면서도 내가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이 명하신 파레시아(담대함)로 인함이오니 영광을 받으소서.
나의 능력은 아무 것도 아니나 오직 주님이 행하시는 그 능력으로 나를 받으소서.
주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입니다.
이 사귐 안에서 참된 영생 곧 아들의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이 땅에서 회색지대에 거하여 숨은 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거짓된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비록 부끄럽고 수치스러울지라도, 세상의 구경거리가 될지라도 그것이 주님께서 생명을 주기 원하시는 심판이라면 달게 받게 하옵소서.
이 땅의 교회들이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 되게 하시고 큰 음녀의 치장에 매몰되지 않도록 힘을 더하소서.
하나님의 성전된 자로서 세상의 것과 구별되도록 거룩한 주의 성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