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은 23일부터 25일은 모든 교사에게 조퇴를 허용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조퇴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조회 시간에 마이크 잡고
"저는 오늘 전교조 공식 집회, 집회 허가가 난 집회에 참석하고자 합니다. 노동조합의 기본권인 단체 교섭을 위해 전교조 조합원으로 조퇴하고자 합니다. 많은 선생님들도 관심 가지고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말을 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아래 글을 선생님들께 나누어 주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 글은 전교조 홈페이지 조합원 전용 게시판에 올라 있는 글인데 많은 사람들이 읽고 공감했답니다.
그리고 교섭 내용은 홈페이지 처음 켜면 오른쪽에 단체 교섭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내용이 뭔지 알아야 주장을 하지요.)
잊지 못할 하루, 2002년 10월 22일 교육청
- 여러 선생님들께 드립니다.
지금 시간은 11시 10분, 조금 전에 귀가하여 막 세수를 마쳤습니다. 내일 아침 0교시 수업이 있으니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지요. 그러나 이 편지를 쓰지 않고는 도저히 잠들지 못할 것 같아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만만찮은 굴곡 속에서 살아온 저의 삶에서 또 하루 결코 잊을 수 없는 날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9일째 진행되고 있는 전교조의 교육청 농성에 하루 참여하기 위해서 0교시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왔습니다. 지회장 분회장들을 중심으로 전교조 조합원들이 릴레이로 연가를 내고 2001년도(작년 교섭안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단체교섭을 올 10월 안에 타결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선생님들도 아시지요. 우리학교 분회장을 맡고 있는 저도 최소한 하루는 연가를 내고 투쟁에 동참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가, 마침 3학년 모의고사가 있어 수업결손을 피할 수 있겠다 싶어서 오늘을 농성 참여일로 택했습니다. 1학년 특기적성 보강은 미루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 출근은 했습니다. 어제 교장선생님께 연가결재를 받으러 갔더니 아침에 학교를 나온다면 연가보다 외출로 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서류처리를 했더랬습니다.
농성장(교육청 2층 로비)에 도착하니 10여분 남짓의 조합원 선생님들이 성취도 평가 등 이런저런 쟁점에 대해 이야기들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제 후배 선생님 한분은 학생들의 글 뭉치를 들고 앉아 채점을 하고 있더군요. 처음 온 저는 좀 머쓱하였습니다만 노란 조끼를 걸치고 함께 대열에 끼었습니다. 그런데 와서 들으니 오늘 학부모 집회가 2시부터 있다 하더군요. 우리 전교조는 4시부터 결의대회를 계획하고 있었구요. 웬 학부모 집회? 학부모학교운영위원회 총연합회, 새교육학부모연합회 이런저런 명칭을 붙인 학부모들의 집회랍니다. 말하지 않아도 교육청이 뒤에서 사주한 관제데모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하나둘 모여드는 학부모들 중에는 식당에서 만난 저희들보고 오늘 무슨 일로 모이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교장이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왔다고요.
2시가 넘으니 교육청 문밖에서 집회하는 소리 - 여자분의 날카로운 구호소리가 들리더군요. 뒤에 오신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니 그들의 구호가 열댓개가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산교육 망치는 전교조는 자폭하라!
농성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구속하라!
학업성취도 평가를 예정대로 실시하라!
진행되고 있는 국민감사를 중단하라!
교장에게 학교경영 자율권을 주어라!
이런 내용들이었답니다. 참 안타깝고 씁쓸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3시가 좀 지나니 집회를 마친 학부모대표라는 사람들이 2, 30명 떼지어 농성장으로 몰려왔습니다. 우리랑 대화를 나누러 온다하기에 저희도 자리를 정리하고 대표 몇 분을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루루 복도를 몰려온 그들은 바로 욕부터 하더군요.
" 이새끼들이가!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아 처묵고 가르치라는 애들은 안 가르치고 이 짓하고 있는 놈들이?"
당장이라도 우리를 덮쳐 칠 기세더니 교육청 공익요원들과 직원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부교유감실인가, 무슨 국장실인가를 들어가서 한동안 얘기를 하고 박수도 치고 하더니 다시 우루루 몰려나와 우리가 붙여놓은 벽보들을 찢기 시작했습니다. 플랭카드를 뜯어내고 집기들을 집어던지고 한 흥분한 여자는 나무의자를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로 던져 제 다리가 맞았습니다.
"너거가 선생이가!"
"정년도 62살까지나 되면서 뭣이 부족해서 이 지랄들이고! 가르치기 싫으면 당장 학교 나가라!"
"너거가 설쳐 갖고 우리 부산아들 성적을 다 꼴찌로 만들 작정이제"
"아아들 시험은 와 못 치게 하노. 이런 짓을 할라먼 강남에나 가서 해라"
"어디를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노? 눈 감아라"
다 옮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도 제 가슴을 떨리게 하는 그들의 말들입니다. 대화를 하겠다고 경찰을 밀고 들어왔다더니 완전히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제까지 전교조와 인연 맺어오고 이런 저런 일을 겪어 보기도 했지만, 솔직히 저는 오늘같이 무지막지한 일은 태어나서 처음 겪었습니다. 저희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지만, 우리의 투쟁대상은 학부모가 아니었기에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몰려온 것도 결국 교육청의 사주란 걸 알기 때문에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두분 흥분해서 일어서려는 선생님들을 저희 스스로 주저앉혔습니다. 학부모들의 행패(이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가 도를 넘자 교육청 직원들이 말리는 척 하면서 내려보내더군요.
그들이 가고 나자 참지 못하고 선생님들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저는 눈물이 흐릅니다. 어쩌면 저 어머니들은 저렇게까지 이성을 잃고 광태를 부릴 수 있을까. 어떤 초조함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저 부모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우리는 정말 이런 수모까지 겪으며 싸워야 할까. 도대체 이 세상은 어찌 된 것일까..
학부모들을 가장 흥분하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교섭내용 중에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초3, 중학교학업성취도 평가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우리는 학교에 딴 건 아무 것도 안 바란다. 시험 잘 쳐서 대학만 좋은 데 가게 해 주면 된다. 학부모들 중에는 이렇게 우리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학업성취도평가를 거부하는가에 대해서 이 글에서 새삼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창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을 하겠다는 7차 교육과정을 만들어놓고, 아이들을 한 줄이 아니라 여러 줄에 개성껏 설 수 있는 제도를 만들겠다 해 놓고 웬 일제고사입니까. 그런 시험이 관례화되어 영국같은 나라에선 얼마나 교육현장이 황폐화되고 교사들의 노동강도가 높아져서 교직이 기피직종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다른 지역은 대부분이 그 시험을 애초에 치르지 않거나, 치르더라도 표집해서 시행하려고 하는데, 유독 부산은, 설동근 교육감의 '교육은 오로지 학력'이라는 철학아래 전집으로 강행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겪은 많은 일들을 다 전달하지는 못하겠습니다. 4시로 계획되었던 전교조의 결의대회는 학부모들 때문에 5시 넘어 진행되면서 몇 번 교육청 안마당으로 들어가려고 몸으로 밀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어마어마한 전경들의 병력에 밀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교육청 안 농성장에 남아있던 몇 분 선생님들은 직원들에게 들려나오면서 9일째 지켜오던 농성장마저 결국 침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수 없지요. 지난 주 수요일 여섯 분의 일차 삭발에 이어, 다시 열분 선생님들의 이차 삭발은 또다시 저희를 눈물겹게 했지만, 이후 약 5시간 가까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의 집회는 참 아름답고 흥겹기조차 했습니다. 내일부터는 텐트를 치고 정문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퇴투쟁, 거리시위 등 보다 강도 높은 싸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합법노조를 상대로 정당한 단체교섭마저 무성의한 태도로 장난질을 치는 교육감과 관료들을 묵과한다면, 노동조합의 존립이유가 없지요.
전교조가 합법화된 뒤 우리도 이제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았지만, 단체행동권이 빠진 절름발이 노조로는 차가운 시멘트바닥에서 다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지요.
이 편지를 조합원만이 아니라 전 선생님께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우리들의 싸움이 전교조라는 단체의 혹은 조합원만의 관심사와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안에 따라 생각을 달리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줄 알지만, 적어도 교사들을 이렇게 무시하는 교육청을 용납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교육감 이하 교육관료들은 교사들이 보다 좋은 조건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교사들 위에 군림하고 우롱하려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했는데 글만 장황해져 버렸군요. 남은 말들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시고, 조합원이든 비조합원이든 전교조의 싸움에 많은 선생님들의 관심과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다 많은 교사들이 노조에 가입한다면 우리들의 싸움은 훨씬 가볍고 부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마음을 내셔서 전교조에 함께 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하여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마음을 맞추어 즐겁고 신명나는 교육현장을 만들어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외람되고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2년 10월 23일 0시 20분
조향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