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드리는 기도(정규한 신부님)
(52회 주최로 열린 8월 24일의 일일 피정이 서강대 이나시오 성당에서 동대학의 교목이신 예수회의 정규
한(레오나르드)신부님의 지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피정의 시간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
하고 실천하는 당신의 제자 될 수 있는 은총 주소서” 라는 지도신부님의 기도로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떻게 제대로 된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피정을 하고 나면 은총과 열의로 충전
되지만 얼마 안가서 그 에너지는 방전되어버리고 또 무슨 좋은 피정이나 강연회 등이 없나 기웃거리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의 효과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과 공동체 내의 불화가 그렇게
만듭니다. 효과를 유지하기 위한 특효약은 신약과 구약을 합하여 조제한 약으로 식사전후와 횟수에 관
계없이 많이 복용할수록 좋은 약 이 될것입니다.
신약성서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장면을 여러번 만납니다. 이른 아침과 저녘, 그리고 피땀의 기도
를 바치심을 봅니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대화는 상호적인 것인데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고 끝내면 대화가 되었을 가요? 상대가 체험이 되어야 대화입니다. 하느님 존재가 체험이 안 되었으면
대화가 아니므로 기도가 안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현존의 체험, 그러나 누구나 원하는 이 체
험을 하기 위하여는 일정한 조건이 요구됩니다. 즉 하느님과 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channel 6
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사랑과 야망’을 channel 11을 틀어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볼수 없습니다. 우리 생
활의 보통의 상태 즉 생각하고 추측하고 잡념을 갖는등의 상태는 거의 14-21 cycle에 속하고 화났을때
는 30-50 cycle 이라고 하는데 이런 cycle 에서는 하느님을 만날수 없고 7-14 cycle 인 잠심, 침묵의 상
태 에서만 하느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이 잠심의 상태는 단순히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이 들어
오든 그 생각을 흘러가게 놓아둘수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잠심의 상태에 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거나 무엇을 감각하거나하더라도 그것들에 잡혀서 추측이나 생각
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이 드는 구나 그런 소리가 들리는구나 하면서 그대로 놓아 두는것 이 잠심의 상태
입니다.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란 감정적인 기도라는 뜻이 아니며, 이성과 감성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즉
thinking 이나 feeling 과 상관 없는 것입니다. 인식차단 은 내 틀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내 시각으로 보며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내가 기쁘거나 슬퍼도 그렇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화가나고 내가 슬프고 내가 기쁠 때, 나는 그 감정들과 나를 동일시 하지 않으면
서 그감정들의 밖에 나와서 자신이 기쁘거나 화내고 있음을 볼수 있고, 즉 자신을 객관화 시켜서 볼수 있
어야 합니다. 그 감정들에 잡히지 않으면서... 만일 누구의 칭찬을 듣고 기뻐하거나 비난에 흥분한다면
우리는 남의 말에 좌지 우지 되는 것입니다. 비난이라는 바람이 불어올 때 그래서 나와 부딪칠 때 화가
나는데 화냄과 기쁨은 현상이며 본질은 체험하고 있는 나입니다. 나에게 열등감 과 같은 상처가 있을 때
화내게 되는데 이러한 열등감 을 치유하여 정화시킬 때 최상의 상태가 됩니다. 기도생활은 수도생활이며
자신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즉 내안에서 부딪치는 요소들을 알아내어 정화시킬 때 자유롭게 됩니다.
그 옛날 공자가 안회를 포함한 제자들과 국내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음식이 떨어져서 안회가 다니면서 탁
발하여 얻은 곡식으로 밥을 지어 스승에게 올릴즈음 새로지은 밥냄새의 향기가 퍼질때 공자가 우연히 부
엌을 보게 되었는데 그 훌륭한 제자 안회가 밥을 집어 먹고 있었습니다. 제자를 의심한 공자는 안회의 말
을 들어보려고 제사를 먼저 지내고 식사를 하자고 하였는데 안회가 밥을 먼저 집어먹은것은 먼지묻은 밥
을 버리기 아까워서 였고 스승을 공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것을 믿었던 공자는
본것도 생각도 믿을 것이 못됨을, 즉 인식의 오류를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2000만 광
년 떨어진 성운의 모습은 지금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보고 듣기 위하여는 잠심하여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내려놓는것 ... 그렇지 않으면 내식대
로 보고 듣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놓아두는것...내가 하려는 것을 멈추고 그 분이 오심을 기다
립니다. 멈추고 놓아두고 제대로 보고나서 최선의 행위를 하여야 합니다. 보이는 것이 확신으로 올 때 하
느님께서 내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안에서 강도당한 사람에게 다가
가고 그냥 지나간 사제와 레위인의 속에 있는 뿌리가 무엇이었나? 그들은 바쁘고 부정탄다는 생각 때문
에 피해 갔었고 사마리아 사람도 사업상의 여행길에 있던 바쁜 사람이었으나 그 바쁨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으나 그 영향을 받지 않고 즉 바쁨에 잡히지 않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측은한 마
음이 들어서 도와줍니다.
그는 잠심상태에 있었으며 그것은 기도를 하고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먼저포도주로 상처를
소독하고 기름을 발라주고 옷감으로 상처를 덮고 싸매어 주었습니다. 포도주 기름 옷감등 아까운 재물을
쓰면서도 그 아까운 생각에 잡히지 않고 그 생각들을 흘러가게 한것입니다. 그가 만일 재물이 없는 사람
이었다면 함께 있어만 주어도 위안과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내가 어떠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이러한 잠
심상태에 있을 때 나는 기도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관상과 활동은 동시에 할 수 있고
기도와 활동의 통합은 가능합니다. 기도하면서 잠심하고 실천하면서 잠심합니다. 이렇게 잠심의 기도를
할 때 계속해서 실천이 따릅니다. 잠심은 멍청이가 되는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차리면서 하는것이며 재물
이 고가임을 알지만 거기에 잡히지 않고 사랑을 위해쓰는 것입니다.
대상을 인식하는 단계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경험이라는 필터가 작용하게 되므로 과거의 경험에서 해
방되어야 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과거경험의 노예가 되므로 상처가 되는 경험을 알아내고 치유해야 합니
다. 인식의 독재성은 내식대로 보고 들으려고 하는 것이며 상대의 말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것입니다.
인식의 독재성(자기식의 인식변형 or 인식차단)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가능합니다. 물위를 걷
는 예수님께 다가가면서 베드로는 파도를 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의 존재를 잊고 두려움에 물속으
로 빠집니다
사랑하라 고 한다면 능동적인 일이기 때문에 힘이 들고 에너지가 고갈 됩니다. 그러나 기도와 실천 안에
서 잠심이 이루어 지도록 노력한다면 의식이 높아지고 모든 행동이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저 나옵니다.
우리는 기도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30세 이후에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
은 30세가 되어야 랍비로서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3년동안 제자들과 빵
을 나누며 여러 가지 경험을 공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 여러번 제자들에게 나타나고 사라지
심을 반복하심으로서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 시키셨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 막달
레나는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슬픔에 꽉 차서 예수님 그대로를 인식하지 못하였으나 호명하시는 친근
한 음성에 주님의 현존을 확신하였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돌아가신 슬픔에 알아보지 못 하였으나 함
께 식탁에 앉아 늘 하던 친근한 방법으로 빵을 나누실 때 현존의 확신을 체험 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확
신으로 닥아오는 것은 어떤 방법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사도 토마스 처럼 “나의주님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도들은 공생활을 통하여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하여 부활하신 하
느님을 체험하였으나 우리는 성서안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하여 확신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러므로 성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잠심인데 이에 필요한
것은 1 여유, 2 인내, 3용서 4 열망(갈망)입니다. 우리는 fast food 를 떠나서 slow food를 들며 삶의 의
미를 음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판기식 사고방식을 떠나서 인내로이 기다리며 나는 기도하고 하느님이
결정하신다는 나와 하느님의 역할 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내로이 기다려야 합니다. 용서에 대하여 설명
한다면 나에게 해를 가한 사건이 가해한 사람을 내가 대할 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
하는데 그러므로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줄 지향을 가지고 그를 대하는 것이며 그 나머지
는 하느님께서 하시게 됩니다. 생각이 사라지면 잠심의 상태가 되고 하느님께서 다 하시며 사랑의 행위
를 하더라도 의식하지 않으면서 사랑의 행위가 되어져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갈망이란 하느님의 현존을
잘 경험하도록 잠심에 들기위하여 열망을 가져야 함을 의미하여 내 방법 내 식을 내려놓기에 최선을 다
하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차분하고 깊이있는 내용의 정규한 신부님의 강의가 끝나고 52회 장흥순 동문의 아드님이신 임민균 그
레고리오 신부님이 미사집전과 새사제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당의 12사도의 조각을 설명
하시면서 새 사제로서의 의욕에 찬 모습을 보여주신 임 민균 신부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격려와 힘을 느
끼게 하셨습니다. 피정지도 해주신 정 규한 레오나르도 신부님과 미사집전과 안수 해주신 임민균 그레고
리오 신부님께 감사드리며 더위에 지친 양들을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여 맛있는 파란 풀을 뜻게 해주신 ,
영양가 있는 하루피정을 허락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첫댓글 좋은 강의 내용 정리해 주신 마리아 선배님 늘 감사드리는 거 잘 알고 계시지요 IU 건강 조심하시기를
항상 강의 요점을 너무나 잘 이해되도록 정리하여 올려 주시는 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 우리 53마당에 가톨릭 친구들에게 읽도록 옮기고 싶은데 허락 바랍니다.
대단하신 선배님,다시한번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정리할수 있게 해주셨습니다.감사드림니다. 좋은시간 갖도록 해주신 주님 은총에 감사드리며,함께 할수 있었던 선 후배님들께도 감사드림니다.52마당에도 함께 읽게 옮겨가게 해주세요.
좋은 피정에 저희53회도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마음에 깊게 느끼게 해주신 강의, 또 새 신부님의 미사와 강복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명진, 김영숙 윤영숙님 감사합니다. 말씀의 케이크를 나누는데 인색할 필요 있나요? 필요하면 누구나 옮겨가셔도 됩니다. 그러나 그 케이크의 재료를 제공하신분은 정규한 신부님이심을 잊지마시기를...
병숙에게 강의에 지각했는데다 카메라 들고 기회를 노리느라 놓진 부분이 많으면서도 네가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보며 '병숙이가 있으니까'하고 안심했지. 낙제할 사람에게 학점을 딸 수 있게 구해주는 병숙에게 감사 참 사진은 기소식란에 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놓아두는것...내가 하려는 것을 멈추고 그 분이 오심을 기다 립니다. 멈추고 놓아두고 제대로 보고나서 최선의 행위를 하여야 합니다....." 피정에 참석하지 못했어도 피정을 그대로 느끼게 해 주시는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번 읽고 마음에 새깁니다. 늘 감사합니다. 찬미회에도 스크랩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그 피정에 참석했던 것에 감사드립니다. 신약 구약 섞어서 많이 복용하고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잠심에 이르면 이런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지 않을까? 나누고 비운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그분을 체험할 수 있으니... 병숙아 ,또 한번 짧은 시간에 좋은 피정하게 해주어 고맙다. 그리고 피정준비로 애쓰신 윤영숙 후배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피정한 것과 다름없는 감동을 받도록 강의 내용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보고 듣기 위해 잠심하여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것은 내려 놓고 하느님께서 하시도록 놓아두며 그 분이 오심을 기다립니다.~용서해줄 지향을 가지고 그를 대하며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시게 됩니다"
'하느님 존재가 체험이 안되었으면 대화가 아니므로 기도가 안되었다..잠심,침묵의 상태에서만 하느님을 만날수 있다..기도생활은 수도생활이며 자신을 연마하는 것..제대로 보고 듣기 위해 잠심해야한다..인식의 독재성은 내식대로 보고 들으려고 하는 것이며 상대의 말을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것..성서안에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확신을 체험..잠심에 필요한 것은 1 여유, 2 인내, 3용서 4 열망(갈망)..나는 기도하고 하느님이 결정하신다(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줄 지향을 가지고 그를 대하는 것이며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시게 된다)..내 방법 내 식을 내려놓기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 유병숙님, 감사합니다.
최영희, 호원숙,이애자, 심경진 후배님, 그리고 변혜경 선배님과 항상수고하는 작은모임의 백종혜친구와 아픈 몸으로 달려와 함께해준 조성옥 친구 반갑고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잠심의 상태에서 사랑의 하느님과 대화하며 위로받는 행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