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찾은 해운대
정의륙
해운대는 부산의 명소다. 전국에서 으뜸가는 해수욕장이요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있는 브랜드다.
옛날은 해운 팔경이 유명하였다. 첫째가 해운대상(海運臺上)으로 동백섬 남단의 해운대 석각 위에서 바라보는 절경이고, 둘째는 오륙귀범(五六歸帆)으로 만선한 배가 영도에서 오륙도를 거쳐 미포로 귀향할 때 오륙도와 함께 어우러진 석양의 황홀함이다. 셋째는 양운 폭포(장산폭포라고도 함)로 장산 계곡으로 내린 물이 모여 폭포사 위쪽에서 폭포를 이루는 장관이고, 넷째는 구남온천(龜南)으로 해운대 온천의 옛 이름이다. 다섯째는 우산낙조(牛山落照)로 송정으로 넘어가는 달맞이고개가 있는 와우산에서 보는 석양이며, 여섯째 봉대점화(烽臺點火)는 위급상황 시 해운대 주변지역의 안위를 중앙에 보고하는 통신수단이다. 일곱째 장지유수(萇旨流水)는 장지천(川) 맑은 물줄기의 곡류(谷流)이고, 여덟째 춘천귀어(春川歸漁)는 큰 하천을 이룬 장산 폭포의 춘천에서 밝은 달밤에 물고기가 유영하는 비경이다.
회센터로 유명한 광안리를 바라보며 광안대교를 타고 해운대를 거쳐 청사포로 해서 송정으로 가는 길은 자연이 준 큰 선물이다. 해수욕장마다 특색이 있고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이 길은 기장을 지나 동해안 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끝없이 이어진다. 뭐니 뭐니해도 해운대의 상징은 해수욕장이다. 너른 백사장과 많은 위락시설 등 자연과 인공이 합작한 흡인력은 대단하여 여름에는 하루에 해수욕장을 찾는 인파가 백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백섬 없는 해운대는 생각할 수도 없다. 해운대와 동백섬은 원래는 분리돼 있었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장산 폭포수와 좌동 동쪽 부흥봉 하강류(下降流)가 합류한 춘천천의 퇴적작용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울창한 동백이 섬을 덮고 정상에서 보는 만경창파에다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동백섬이 없었다면 오늘의 해운대는 없었을 것이다. 요새는 동백섬 해안 절벽에 나무로 길을 만들어 바다와 해안의 아름다움을 잘 볼 수 있게 됐고 APEC이 해운대에서 열리면서 누리마루를 동백섬에 새로 지어 명물이 되었다. 해운대가 절경을 자랑하고 이름이 나서 외지인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반면에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났다. 나는 번잡함과 상혼의 아귀다툼이 싫어 여름엔 거의 해운대를 찾지 않는다. 또 동백섬에서 바라보는 와우산의 달맞이고개도 약간은 실망이다. 정책입안자의 탓이든 개발업자들의 농간이든 술집과 장삿집 그리고 아파트가 뒤엉켜 난개발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낭만적인 문화의 광장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쉽다. 그때의 정책론자들이 관광 선진국을 둘러보고 참고해서 더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정책론자나 개발업자, 그 일대 주민으로 끼어서 이익 보려 했던 사람들도 바로 우리가 아니었던가.
아름다운 경치를 지키고, 인간 심성에 윤택과 여유를 주는 훌륭한 자연을 후손에게 고이 물려주는 것도 문화적 안목과 인간성 회복이라는 교양이 있어야 되는가 보다. 밥 먹기에 급급했던 당시의 우리에게 이렇게 주장하는 나도 옛날을 잊어버린 배부른 흥얼거림이나 정신적 호사는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달맞이 고개에도 자생적으로 많은 화랑가가 생겨 미술전시회도 자주 열리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고, 카페도 나름대로 분위기를 갖춘 휴식 공간이라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새해 벽두 해운대 동백섬을 찾은 것은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을 만나뵙기 위해서였다. 동백섬 정상에는 최치원 동상과 시비(詩碑), 해운정이란 정자가 있다. 고운은 신라 말엽 어지러운 정국과 속세를 떠나 가야산 해인사로 입산하러 갈 때 해운대를 들러 간다. 자연경관의 수려함에 감동하여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을 음미하면서 거닐다가 암석에다 해운이란 자기의 자(字)를 따서 석각을 남겨 놓으니 '해운대'라는 지명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고운은 자신의 자(字)처럼 외로이 떠다니는 구름으로 살았으니 화려한 삶을 살진 못하였으나 많은 저서를 남겼다. 비록 현존하는 저서는 거의 없어지고 계원필경 20권과 시 몇 수만이 전해지나 계원필경은 최초의 문학사상 집이라 할 수 있다. 고운은 12세에 바닷길로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라 6년 후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여 관료생활을 하며, 황소의 난 때에는 “토(討) 황소 격문”을 지어 난을 평정하는 등 관리와 문장가로 명성을 날렸다. 고국이 그리워 16년 만에 귀국하여 뜻을 펼쳐보려 했으나 신라의 완강한 골품제도의 벽에 막혀 좌절하고 말았다. 난세를 만나 귀국 10년째 진성여왕에게 시무책10여조를 올려 여왕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았으나, 진골들의 반대에 거부당하고 견훤과 궁예의 난 등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은둔을 결심한다. 청운의 뜻을 품고 유학길에 올라 경험과 학문을 쌓아 입신양명의 기회로 삼았으나 알아주지 않고, 제도적 불합리를 진언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최상위 계급에 대항할 방법은 오직 은둔이었을 것이다.
고운이 유(儒) 불(佛) 도(道) 삼 교에 두루 통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상적으로 자유로움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그 시대의 조류가 삼 교를 고루 접할 수 있는 시기였다. 신라와 당은 그 당시 유불도의 삼 교가 겉으론 융합하였다. 그러나 고운은 윤리를 외치면서도 권력을 좇던 유가, 청정의 수행을 강조하면서 미래의 희망을 외면하던 불가, 방관자적 삶을 추구하며 현실을 외면하던 도가 등은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할 수 없다고 보고, 3도를 통털으며 동시에 전통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도인 풍류를 주창하였다. 풍류도는 궁극적으로 천(天), 인(人)을 포함한 만유의 선(善)으로 향하는 혼연합일의 정신이라 할수 있으며 풍류는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고유의 심성을 실현하는 도이며 풍류도와 선도(仙道)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운이 처음 당나라로 유학할 때는 입신양명의 뜻을 품었을 것이나 뒤에는 물질적인 풍요나 권력이 아닌 정신적인 면을 추구했던 것 같다.
화려하고 번잡함과 상혼에 찌든 해운대가 한편에 있지만, 또 한편엔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의 언약, 이별의 슬픔, 옛날의 추억을 곱씹게 하는 낭만이 있어 매력적이다. 또 치열하게 살다간 고운이 있어서 더 좋다. 새해 첫날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동백섬의 상쾌한 바람과 시야가 확 트인 푸른 바다는 심장 열을 꺼주는 치자향과 닮았다. 동백섬 정상에 빼어난 철학자이자 문장가 정치가인 고운과, 섬의 정상 전체를 고운의 숨결로 가득 채운 정신적 후예들의 열성이 불현듯 보고 싶어서 올 새해 벽두에 해운대 동백섬을 찾은 것이다.
첫댓글 " 동백섬에서 바라보는 와우산의 달맞이고개도 약간은 실망이다, 그때는 그때대로 개발논리가 있었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알수밖에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정책입안자의 탓이던 개발업자들의 농간이던 난개발로 술집과 장사집 그리고 아파트가 뒤엉켜,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낭만적인 문화의 광장으로 만들지 못한것은 두고 두고 아쉽다. 그때의 정책론자들이 스페인이나 터키를 가봤더라면.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 화려하고 번잡함과 상혼에 찌든 해운대가 한편에 있지만, 또 한편엔 사랑의 언약, 이별의 슬픔, 옛날의 추억을 곱씹게 하는 낭만이 있어 여전히 매력적이다. 또 치열하게 살다간 고운이 있어 더 좋다. 새해 첫날 폐부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동백섬의 상쾌한 바람과 시야가 확 트인 푸른 바다는 심장열을 꺼주는 치자향과 닮았다.."
해운 팔경을 잘 공부했습니다. 최치원선생님의 내력도 많은 공부가 됬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십시요.
새해 새날에 폭포수 같이 거침없이 쏟아놓으시는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다음글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그 옛날 신혼여행가서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던 생각이 납니다. 해운팔경. 동백섬. 광안대교. 태종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느 역사소설에서 최치원선생님에 대한 짤막한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국땅에 유학하면서 천재라 일컬어졌지만 이방인으로서의 그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는 그가 느꼈을 마음이 어찌했을까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갔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닿으면 최치원 선생님의 흔적을 찾아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지난번에 동백섬에 자료관이 있다는 정보와 아울러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시니 너무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좋은 글 올려주시는 선생님을 뵈니 너무도 좋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부지런한 교수님 격려 감사합니다, 여러 선생님들 댓글로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리선생님, 지금 고운자료관이 있는 해운정은 해운대구청이 아니라 최씨종친회에서 관리를 한답니다. 종친회사무국장님 말씀으로는 동절기에는 자료관이 찾는사람이 없어 제구실을 못하나봅니다, 다만 1층 매점을 여는 날은 자료관이 3층이므로 매점으로해서 자료관을 구경할수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간 두번은 매점이 닫혀 있었습니다. 자료관의 자료는 일반자료로서 고급의 자료를 원하시면 다른방법을 찾는것이 좋을듯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정보를 이렇게 또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3월쯤 되어서 그곳을 찾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2월에 귀국하는 딸아이와 가려고요. 그동안 저도 자료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꿈만 꾸던일이 실체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만 설레입니다.
해운대와 동백섬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으로 많은것을 배우고, 좋은 글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얼마전, 지인들과 함께 겨울바다를 보러 해운대에 갔었습니다. 모두다 내려 놓은듯이 빈 손처럼 고요한 겨울 바다...가슴을 적시는 추억이 흘렀습니다. 언젠가는 글을 만들어 보려고 구상 중인데요 제가 신혼여행 갔었던 추억이 있는 곳이랍니다. 수십년이 흐른 지금 주변환경들과 나의 모습은 변해 있었지만 해운대를 둘러싸고 흐르는 바다는 그대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식지않고 두근거리는 저의 마음처럼요. 선생님의 글에 빠져서 감사히 읽고 갑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필 하십시오.
임선생님 해운대 오셨군요, 추억이 어린곳에 왔다 가셨군요. 겨울바다를 보고 가신 선생님 올해도 좋은 작품 많이 부탁 드립니다
청옥당 선생님의 글을 이제사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해운대는 많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어린곳이지요. 그옛날 해운대의 추억도 되살아 났습니다. 또한 동백섬의 고동은 참으로 맛이있었는데요. 지금도 고동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다가 없는 충청도 태생으로 늘 바다를 그리며 살았답니다. 그래도 지금은 교통편이 좋아 일년에 두어번이상 바닷가를 찾을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요. 해운대에 대한 백과 사전입니다. 선생님.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