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아파트 1층에 있는 체육관에 운동하러 내려가 보니 뒷문 쪽으로 반딧불이
수십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길 건너 공원 연못에서 흘러내린 물이 아파트 바로 옆 개울로 흘러들고 주변이
나무와 풀로 둘러싸여 있으니 반딧불이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은 갖추어진 셈이다. 한국에서는 농약을 많이 쳐서
반딧불이가 많이 사라져 요즘은 구경할 수 있는 데가 흔하지 않은가 보던데. 우리 어릴 적에 고향 읍내 한복판을
강이 가로지르며 흘렀고 여기저기 개울이 흘렀으니 밤이면 어디서든 깜빡깜빡 불을 밝히던 반딧불이는 흔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여섯 살 될 때까지
살던 집은 읍내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다. 집 옆으로 나지막하고 그리 길지 않은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면 내리막길로 바뀌고 거기서부터 우지리라는 산골까지 ‘골안’이라고 불리던 골짜기 안에는 조금조금 한 논 자락과 밭 자락이 펼쳐져 있었고 게딱지처럼
조그만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골짜기 가운데로는 실개천이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흘렀으니 거기도 반딧불이는 흔했을 것이다. 골안은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함경도 말로서 그런 지명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니 지도상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기 전이라서 아무
때고 생각나면 동네 조무래기들과 함께 비탈길 넘어가 골안에서 자주 장난을 치곤 했다. 나뭇가지를 꺾어 칼싸움한다고 설치기도 하고, 큰 아이들이
우산대를 잘라서 만든 총으로 새 잡으러 갈 때도 쫓아다니고 복숭아, 오디, 자두, 감 같은 과일도 몰래 따먹느라 온종일 쫓아다니다 저녁이면 밥 먹자마자 곯아떨어지기가
예사였다.
우리가 살던 집 건너편에는
왕기네가 살았는데 왕기 부모는 두 분 모두 목소리가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처럼 우렁우렁하고 늘 성난 얼굴로 싸우듯이 소리 지르며 말해서인지 동네
사람 모두 그 집 식구를 보면 슬슬 피했다. 왕기네 옆에는 딸 많은 집이 있었는데 딸들 이름이 바구니, 동구리, 광주리, 소쿠리, 그러니까 모두 뭔가를 담아두는 물건
이름이어서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참 우스웠다. 계집아이들이 모두 오래 써서 찌그러진 바구니처럼 생겨서 아무리
예쁘게 봐 줄래야 그럴 수 없어서 이름과 얼굴이 잘 어울렸다고 생각될 정도다. 호적에는 숙자,
명자… 같은 한자 이름을 정식으로 올렸겠지만, 가족이나 동네 사람은 바구니, 동구리…로만 불렀다.
그래도 딸들 이름을 일관성 있게 그것도 한글로 지어 준 그들 부모의 빛나는 아이디어는 높이 평가해 줄 만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이 덜
깬 채 눈비비며 이웃집, 태웅이네 집으로
내달렸다. 그 집 대문 앞에서 “태웅아”하고 소리 지르면 우물가에서 세수하거나 운동하던 고등학생인 태웅이가 나와서 “행기냐?”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반가워했다. 그는 나를 동생처럼 귀여워해서 같이 놀아
주곤 했다. 언젠가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 때는 눈사람도 만들어서 보여 주고 눈으로 에스키모 집도 만들어서
자랑했다. 어린아이가 겁 없이 까불어도 늘 어린 친구로 대해주던 태웅이도 지금은 나이가 여든 가까이 되었겠다.
어려서는 나이 든 큰 형님뻘 되는 분들에게 이름을 마구 부르며 함부로 대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조그만 놈이 참 버릇없이
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살던 집의 주인은
우리 아버지와 4촌 형제간이었으니 그
댁 아이들은 모두 나와는 6촌 간이었다. 성격이 까칠하던 나는
4촌 형제 중에서도 동갑내기인 형용이와 자주 싸웠는데 힘이 달리던 나는 으레 그를 꼬집어서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낼
때가 잦았는데 그 댁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 모두 성격이 매우 좋은 분들이어서 아이들이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거니 하고 대범하게 넘기셨다고
한다. 형용이 말고도 그 댁 누님 셋과 아래로 동생뻘이 넷 더 있었으니 그 댁 식구와 객 식구 그리고 우리
식구 모두 합쳐서 스무 명이 넘게 한집에 살았어도 집이 워낙 엄청나게 커서 그리 좁은 줄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휴전 직후였던 그 당시에는 형편이 나은 집이 어려운 친척과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던 듯싶다.
내가 여섯 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그 댁 큰 누님이 수도회에 입회하던 해에 우리 가족은 집을 사서 바로 옆 동네로 이사했어도 그 댁과는 계속 가까이 지냈다. 내가 미국에 온 이후 그 댁의 다른 가족은 전혀 만나지
못했고 셋째 딸과 둘째 아들은 뉴저지 주에 있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뉴욕에 살고 있는데 다들 사는 게 뭔지 여러 해 동안 어쩌다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을 뿐 만나 보지 못했다.
골안 입구 근처 집에서 이사한
후로는 그곳에 갈 일은 별로 없었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때 거기에 살거나 거기를 거쳐서 오가야 하는 우지리, 마달리에 사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희일이, 현택이, 석인이, 해석이가 골안에 살았거나 거기를 지나서 학교를 오갔다. 고향을 떠난 지 50년이 지나서 연락이 닿은 친구 석인이가 “나 생각나는가? 골안 살던 석인이야.”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이 메일을 읽는 동안 골안 풍경이 눈앞을 스쳐 갔다. 태어나서 여섯 살 될 때까지 그 부근에서 살았으니 내
삶의 연대기를 쓴다면 당연히 골안 얘기를 첫머리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골안 출신 석인이와는 한
동안 어린 시절 얘기를 주고받는 재미에 이 메일도 자주 오갔는데 좀 지나니 함께 나눌 수 있는 화제가 바닥나서 이 메일이 끊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모태 가톨릭 신자인 초등학교 친구 강 안드레아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서 나이 60이 넘어 세례받았다니 석인이는 나이 들었어도 어릴 적 착한 성품이 그대로인 것 같다.
그 나이면 옹고집이 되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데 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으니 내
눈앞에 어리는 골안 풍경도 지금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생각난 김에 석인이에게 요즈음 골안 소식 좀 들려 달라고 해야겠다. 반딧불이와 실개천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겠지만, 그 좁은 지역에 멋대가리 없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소식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내 기억 속의 골안도 하도 오래전 것이라 사실과 다른 점도 많을 것이다. 어릴 적에 골안에 살던 친구들이 모여서 옛 기억의 조각을 모아서 연대순으로 기록하여 골안 연대기를 남기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제목은 ‘골안 연대기(The Chronicle of the
Valley)’로 하고. 그게 어려우면 한국 핸드볼 중흥에 밑거름된 석인이 자신의
얘기를 기록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 제목은 ‘골안의 전설(The
Legend of the Valley)’로 하면 어떨까?
첫댓글이 글을 읽고 네이버 지도에서 "삼척읍 우지리 마달리"를 찾으니 나오지 않고 "삼척시 우지동 마달동"으로 나오는군. 마달동(마을회관 일대)은 동남쪽에 강원대 삼척캠퍼스가 위치할 정도로 번화해졌지만, 우지동은 지도에 우지마을로 표시돼 있고, 삼척시의 서북 산지 속에 위치해 있어 아직도 시골풍이 엿보이는군. 역시 글대로 동서로 뻗은 긴 계곡을 지나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임을 지금의 지도에서도 잘 설명해주는군. 그런 움직이지 않는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이 일생을 윤택하게 하는 정서의 산실이기도 할테니 참 행복한 일이로군,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 뚜렷한 고향이란 게 없는 나로선 부러운 일일세
오랫동안 읍으로 있다가 시로 승격되었지. 미국은 행정 구역에 면, 읍, 시...이런 구분이 없어. 그냥 동네 이름만 표기하고 주민도 살고 있는 곳의 주거 환경과 학군이 좋은 지에 관심을 갖지 Town의 규모에는 관심을 안 갖는 것 같드만. 물론 town 이름에 city를 붙인 것도 있지만 한국의 시와는 좀 다른 개념이지. 이상하게도 city라 이름 붙은 곳은 주거 환경이 나쁘데.
첫댓글 이 글을 읽고 네이버 지도에서 "삼척읍 우지리 마달리"를 찾으니 나오지 않고 "삼척시 우지동 마달동"으로 나오는군. 마달동(마을회관 일대)은 동남쪽에 강원대 삼척캠퍼스가 위치할 정도로 번화해졌지만, 우지동은 지도에 우지마을로 표시돼 있고, 삼척시의 서북 산지 속에 위치해 있어 아직도 시골풍이 엿보이는군. 역시 글대로 동서로 뻗은 긴 계곡을 지나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임을 지금의 지도에서도 잘 설명해주는군. 그런 움직이지 않는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이 일생을 윤택하게 하는 정서의 산실이기도 할테니 참 행복한 일이로군,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 뚜렷한 고향이란 게 없는 나로선 부러운 일일세
오랫동안 읍으로 있다가 시로 승격되었지. 미국은 행정 구역에 면, 읍, 시...이런 구분이 없어. 그냥 동네 이름만 표기하고 주민도 살고 있는 곳의 주거 환경과 학군이 좋은 지에 관심을 갖지 Town의 규모에는 관심을 안 갖는 것 같드만. 물론 town 이름에 city를 붙인 것도 있지만 한국의 시와는 좀 다른 개념이지. 이상하게도 city라 이름 붙은 곳은 주거 환경이 나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