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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6일 월요일 맑음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서서 산 라자로 역으로 갔다. 아내를 숙소에 남겨두고 TAPO(오리엔테 버스터미널)를 찾아간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터미널에 들어서니 엄청 사람이 많다. 내려가는 사람보다 큰 가방을 들고 올라오는 사람이 더 많다.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가 바로바로 들어와 손님을 실고 가는데 택시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터미널에는 버스 회사들이 많다. 버스터미널은 웅장하게 규모가 크고 현대식이다. ADO 버스를 선택했다. 내일 아침 9시에 출발하는 오악사카 행 버스다. 약 6시간 30분 걸린단다. 다시 숙소로 향했다. 정말 사람들이 엄청 많다. 가리발디 역에서 내렸다. 가리발디 동상이 있는 광장은 광장 같지도 않고 지저분하다. 숙소에서 파파야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은 테오티와칸을 방문하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니 30대 젊은이들이 엄청 줄을 서 있다. 신년을 맞아 어린이들에게 기념품을 나누어주는 사무실이 보인다. 선물도 작은 인형이나 장난감인데, 엄청 사람들이 와 있다. 이어진 줄은 블록을 돌아가며 서있는데 끝이 없다. 멕시코시티에 와서 사람들로 인해 깜짝 깜짝 놀란다. 전철을 타고 북부 버스터미널을 찾아간다. 9시45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끊었다. 요금은 왕복 84페소, 편도로 끊었다. 6,7번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멕시코시티의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거의 한 시간을 달려간다. 버스에 앉아서 가는데 좀 지겨울 때 쯤,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왔을 때 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귀를 즐겁게 해준다. 서 너 곡을 부르는데 아주 잘 부른다. 목소리가 아름답다. 후원금도 많이 걷게 되었다. 다 왔다고 알려주어 모두 내렸다. 날씨는 건조하고 맑다. 뜨거운 길이다. 입장표를 샀다. 두당 59페소다. 기념품 가게를 통과하니 드디어 유적들이 보인다. 멕시코 최대의 종교도시국가, 인간이 신이 되는 거대도시 테오티와칸에 왔다. 멕시코시티의 북쪽 약 50km 되는 곳에 있는 테오티와칸의 피라밋 군은 기원전 2세기경에 건조된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도시국가였다. 이 거대한 피라밋 도시를 건설한 것은 테오티와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리고 7세기경 의문의 쇠퇴와 함께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하는 것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테오티와칸 문명은 멕시코 분지를 중심으로 AD 350~650 년 사이 번영의 절정기에 도달했다. 도시면적은 20만 ㎢ 이상이 되지 못했지만 인구는 20만 명 이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당시 유럽과 비교해 보면 유럽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제외 한다면 인구 2만 이상의 도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테오티와칸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유럽문명이 미치지 않은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으며 국가라고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회, 정치구조, 문명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영위한 정치형태는 모든 행정을 관할하는 신관을 정점으로 군인, 상인으로 계급이 나누어져 있었으며 최하층인 직인들도 직종별로 각각의 바리오(지구)에 정연하게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관 그룹은 잠시도 쉬지 않고 피라밋 건조를 지도하고, 종교제례를 정확히 결정하기 위하여 수학, 천문학의 지식을 탐구하고 있었다. 후에 폐허가 된 테오티와칸을 방문한 아즈텍인들은 장엄한 피라밋 군을, 이것이야말로 신들이 지은 도시라고 믿고 그들의 우주관이라고 하는 태양과 달의 신화의 무대로 삼았다. 테오티와칸은 고대인들, 그리고 현대의 여행자인 우리를 감동시키는 장엄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유적을 돌아볼 때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타르 타볼레로라는 건축양식이다. 경사진 기반 위에 수직으로 판면을 끼워 넣은 기단, 그것의 중첩이 거대한 피라밋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거의 모든 건축물의 공통된 특징이다. 또 현재는 석면이 드러나 있는 피라밋도 전에는 회반죽으로 덮여 있었으며 안료로 벽화가 묘사되어 있었다 하니 화려함은 대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먼저 위치도를 보고 살펴볼 순서를 정했다. 먼저 태양의 신전, 달의 신전을 돌아오며 케살코아틀의 피라밋을 보기로 했다. 사자의 길이라는 대로가 4km, 폭 45m의 당당한 메인스트리트에 섰다. 테오티와칸을 거의 남북으로 관통하는 큰 길은 정확히는 북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15도 30분 정도 기울어 있다. 이것은 태양의 피라밋이 테오티와칸 회귀선(연 2회 태양이 피라밋의 바로 위에 오는 날)에 맞추어서 건조되었으며 거기에 맞추어서 사자의 길도 조성된 때문이다. 길은 북단과 남단이 2.7m의 낙차가 있으나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또 남북으로 뻗은 사자의 길과 거의 직각으로 교차하는 동서의 길이 있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 남북, 동서의 길은 별과 관계가 있다는 설을 발표한 학자도 있다. 북쪽은 북두칠성의 가장 밝은 별인 알파성, 동은 시리우스, 서쪽은 스바르의 방향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큰개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으뜸가는 별이다) 도로 양쪽 건물의 터를 고대왕의 분묘로 생각했기 때문에 아즈텍인은 이 길을 죽은 자의 길이라 불렀다. 일각에서는 신에게 바칠 인간제물을 운반했다는 주장도 있다. 길의 양편에는 신전이나 주거지역으로 사용했던 건축물과 광장의 잔해가 남아있다. 햇볕이 뜨겁다. 이렇게 넓고 곧은 도로를 갖고 있다니 그들의 생각이 존경스럽다. 거의 3분의 2를 걸어가서 태양의 피라밋을 마주했다. 멕시코의 피라밋에 올라가보려면 우선 이 태양의 피라밋부터 시작한다. 먼저 인증 샷을 하고 피라밋을 오르기로 했다. 규모가 상당히 크다. 뜨겁지만 어찌 안 올라가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다. 숨이 차다. 상당히 경사가 급하다. 248계단이란다. 높이 65m, 밑변의 한 변이 225m의 거대한 피라밋이다. 테오티와칸 중에서 최대의 건물이고 세계에서도 3번째 크기이다(1위는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밋, 쿠푸왕의 아들인 카프레 왕의 피라밋이 2위)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개 쌓아올린 엄청난 무게를 4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견디어 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돌 무게는 약 300만 톤이란다. 종교의식을 위하여 건조된 것으로 평평한 정상에는 옛날에 신전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일려졌다. 연 2회(춘분과 추분) 태양이 이 피라밋의 바로 위에 오는 날이 있다. 그 날이 되면 마치 후광이 비치듯 빛난다고 한다. 테오티와칸인들은 이것을 계산해서 피라밋을 건조한 것일까? 또한 거대한 피라밋의 내부에는 오래된 신전이 묻혀있다. 드디어 정상에 섰다. 정상에 서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이 밀려온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경관이 멋지다. 특히 달의 피라밋이 근사하다. 이집트의 가자 피라밋보다 규모는 작다고 하지만 계단과 함께 단을 이룬 피라밋은 더 정교하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가장 크다. 기원전 200년대에 시작해서 기원 후 150년에 완성된 것으로 기존의 피라밋 위에 새로운 피라밋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거친돌이 튀어나와 있지만 이전에는 흙으로 덮어 색을 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발견 당시에는 태양신에게 바친 커다란 신전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주변을 둘러싼 3m 넓이의 해자와 신에게 재물로 바쳐진 아이들의 무덤, 그리고 피라미드 내부에 동굴 등이 발견되면서 이곳에서 섬기던 신이 비의 신 톨라록 이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수십km 땅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태양의 정기를 받기위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여행자들이 보인다. 태양의 정기를 받기위해 춘분과 추분 때 제일 많이 올라온단다. 숨을 돌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사진을 찍으며 쉬고 있을 때 한국말이 들려온다. 우리나라 성균관대에 유학했던 이곳 멕시코 대학생들이 유학시절 사귀었던 기계과 이군과 함께 올라온 것이다. 한국어가 서툴지만 미소가 능숙해 쉽게 친해져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젊어진 기분이다. 정상에서 쉬다가 이제 내려간다. 내려갈 때는 여유가 있어 계단 수를 세면서 내려가는데 정확히 248계단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236계단이 나온다. 다시 세볼 수도 없고 그냥 간다. 이제 다시 사자의 길을 걷는다. 1/3 정도 더 걸어가면 북단에 있는 달의 신전을 만난다. 걷던 중 하과레스의 사원 부근의 벽에서 벽화를 발견했다. 흙을 발라 마무리된 벽면에 붉은색 위주의 벽화, 동물그림이 보인다. 재규어 같은데 유난히 발톱 4개가 강조되어 그려져 있다. 여기서 또 한국 여학생을 만나, 아까 만났던 총각들과 함께 또 사진을 찍었다. 흥겹다. 함께 사진을 찍는 아내가 20대로 보인다. 태양이 강한 탓인가 보다. 달의 신전은 좌우대칭이 약간 어긋나 보인다. 드디어 달의 신전 앞에 도착했다. 보호대로 가려져 있는 커다란 석상, 세월이 많이 흘러 형태가 지워져 이제는 바위덩어리로 보인다. 너무 뜨거워 아내는 양산을 쓰고 올라간다. 아내를 찾기 쉽다. 달의 신전은 검은 현무암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테오티와칸 전체를 제압하듯이 당당하게 서 있는 피라밋이다. 높이 46m, 밑면 150x 120m, 350년경에 건조되었다. 태양의 피라밋 보다 약간 작지만 조금 솟아오른 당위에 세워져 정상의 높이는 거의 같다. 그러나 앞에 펼쳐지는 달의 광장의 규모로 보면 중요도는 태양의 피라밋 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종교의례는 달의 피라밋을 중심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이 정상에도 역시 신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달의 신에게 도대체 몇 백 명의 인간이 제물로 바쳐졌을까? 계단을 오른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을 막아놓았다. 계단 끝에 앉아서 내려다보니 왕이 된 기분이다. 사자의 길이 눈앞에 쭉 뻗어있고 왼쪽에 태양의 신전이 보인다. 눈 아래는 작은 피라미드들이 줄지어 있는데 윗부분이 평평하게 되어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테오티와칸 유적 전체를 관장했던 이곳의 역할이 직접 느껴진다. 검은 돌에 파란 하늘이 너무 멋지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와 케찰파발로틀 궁전으로 갔다. 달의 신전 오른편에 있다. 달의 피라밋에서 제례를 관장하던 신관이나 왕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추정되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아직도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안뜰의 기둥에는 나비와 새의 무늬가 새겨진 프레스코화와 부조가 남아있다. 이곳의 이름인 케찰파발로틀도 그 모습에서 유래된 것이란다. 궁전 옆에는 깃털달린 재규어 벽화가 선명한 재규어의 뜰도 있다. 건물 내로 들어가니 시원하다. 건물 안을 이곳저곳 살펴본다. 이제 다시 사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천천히 돌아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태양신전 앞에서 한국 교민들을 만났다. 꼬마들도 있고 어르신도 있는 3대가 보이는 대가족이다. 시원한 물을 한 통 주신다. 검게 그을은 어르신의 얼굴이 이곳에 오래전에 정착한 교민 1세 같다. 태양신전 건너편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준비해 온 빵과 파파야로 점심을 먹었다. 꿀맛이다. 주변엔 큰 선인장이 많다. 선인장 잎이 내 얼굴 만 하다. 건조한 지역이라 나무들도 잎이 가늘고 늘어져 특이해 보인다. 편안히 그늘에 앉아서 태양의 신전을 바라보니 참 멋지다. 다시 사자의 길옆의 샛길로 걷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되지 않아서 좋다. 지하 사원 유적도 만났는데 구경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 이제 마지막 케살코아틀 신전이다. 이 신전은 사방이 사우다데라(성벽)로 둘러싸여 있다. 신전은 장식미로 보면 테오티와칸 중에서도 눈에 띄게 우수한 것으로 전면이 케살코아틀(깃털이 달린 뱀으로 물과 농경의 신)과 트랄로크(비의 여신)의 조각, 기타의 릴리프로 싸여있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석면에는 적색이나 녹색이 남아있어서 극채색으로 채색된 옛날의 테오티와칸을 생각게 한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었던 사제들과 관리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신전의 가운데 공터에는 2개의 작은 피라밋이 세워져 있다. 그 중 뒤편에 있는 것이 케살코아틀 신전이다. 아즈텍인들이 하늘과 창조의 신인 케살코아틀을 섬기던 곳인데 계단 좌우나 기단마다. 깃털이 달린 뱀의 조각이 만들어져 있다. 첫 피라밋을 올라가 두 번째 피라밋을 마주보기위해 내려갔다. 계단에 앉아서 두 번째 피라밋을 보니 편안하다. 이번 여행에서 꼭 보고 싶은 것 1순위가 테오티와칸이다. 별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둘러봐서 기분이 좋다. 버스를 타기위해 들어왔던 입구로 나간다. 기념품 가게에는 정면 가득 모자가 걸려있다. 모자이크 그림 같다. 버스는 별로 기다림 없이 도착했다. 갈 때는 키타맨이 없어서 조용히 간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가다가 3호선으로 갈아타고 멕시코 대학의 벽화를 찾아보려고 간다. Copilco 역에서 내렸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고 페스트푸드점도 많이 있다. 분주해보이고 활기가 있어보인다. 대학을 물어 서둘러 찾아간다. 가이드북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고 오늘이 멕시코시티에서 마지막 날이다. 드디어 대학에 들어섰다. 처음 만난 벽화가 의학부 정면에 있는 “생과 사의 4원주”라는 제목의 벽화이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깃털이 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영원의 심벌로 묘사되어 있다. 본관은 시케이로스의 5개의 벽화로 덮여 있으며 각각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1520년은 아즈텍족이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해, 1810년은 독립전쟁, 1857년은 멕시코 57년 헌법 공포, 1910년은 멕시코 혁명, 최후로 19xx년 이라는 것은 멕시코의 공산화 실현의 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와 달리 그 구도 중에 우주복을 입은 인디오 청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케이로스는 아마도 그것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규어와 근육질의 남자들을 표현한 벽화를 지나 부지런히 걸어서 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멕시코시티 남쪽에 위치하는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의 캠퍼스는 넓이가 700만㎡,학생수가 40만 명, 교수가 25000명, 노벨상 수상자가 3명이나 되는 족히 하나의 도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스케일이다. 그 넓이에 연유하여 통칭 C.U(시유=대학 도시)라 부르고 있다. 캠퍼스에 산재해 있는 각 학부의 건물 사이에는 푸른 잔디로 이어져 있으며 곳곳에 서 있는 나무 밑에는 시원함을 즐기며 독서와 대화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찾은 목적은 벽화다. C.U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건물의 측면에 그려져 있는 대벽화군이다. 모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멕시코의 인류 급 예술가들이 그린 것으로 작은 야외 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각각의 작품은 서로 작풍이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아즈텍 문명에서부터 시민혁명 시대, 혁명을 거쳐 면면히 이어져온 민족의 피와 혁명과 함께 태어난 새로운 멕시코의 정신과 접점을 모색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C.U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도서관의 F. 오고르만의 모자이크 벽화를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 벽화로서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 도서관 북쪽에는 커다란 태양과 아즈텍의 비의 신 트랄로크와 케살코아틀 등이 그려져 있어 아즈텍 문명의 세계관을 상징하고 있다. 정면 남쪽의 벽은 강렬한 크리티시즘으로 멕시코 식민 시대를 풍자한 그림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왕가로서 식민지를 지배한 합스부르크가의 문장이 인디오 문화를 나타내는 건축위에 묵직하게 놓여있다. 동쪽은 현대를 테마로 하여 만물을 형성하는 원자, 생과 사를 상징하는 태양과 달, 게다가 동시대의 3개의 심벌로서 붉은 별(사회주의)문화에 관한 한 권의 책과 네셔널리즘을 상징하는 인디오의 영웅 쿠아테모크가 그려져 있다. 서쪽은 현대의 멕시코가 주제가 되어 있으며 특히 대학 자체가 거론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올림픽 스타디움의 벽화다. 거장 리베라의 작품인 입체 벽화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메인 스타디움으로 건축되었으며 전 라틴 아메리카를 나타내는 콘도르와 멕시코의 상징인 독수리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제 3 세계의 리더십을 장악하려는 멕시코의 패기가 잘 나타나있다. 외관만 본다면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스타디움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걸어서 전철역으로 향하는데 제법 멀다. 힘든지 아내의 얼굴이 어둡다. 전철을 타고 가리발디 역에서 내렸다. 숙소 방향으로 걷는다. 가리발디 광장을 만났다. 늦은 오후 해가 막 넘어간다. 광장에는 마리아치 음악(멕시코 전통음악)을 연주하려는 무대 복장을 입은 연주자들이 모여 있다. 복장도 검은색, 흰색, 붉은색으로 다양하다. 들고 있는 악기도 기타, 트럼펫, 하프, 어코디언, 더블베이스 등 다양하다. 손님이 원하면 즉석에서 연주해준다. 약간의 팁이 있으면 된다. 광장 주변에는 식민지 시절에 세워진 예쁜 건물들이 둘러져있다. 초록, 주황, 연노랑으로 색칠되어 장난감 같은 건물들이다. 노천카페의 작은 의자들도 귀엽다. 화려한 식당들도 보인다. 광장 입구 양 옆으로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남, 여 가수, 악기 연주자들의 모습이다. 날이 어두워진다. 좀 더 둘러보며 즐기지 못해 아쉽다. 통닭 한 마리 사고 콜라를 사가지고 간다. 문을 닫으려는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싱싱한 파파야도 슈퍼에서 구해 흐뭇했다. 정말 진하게 둘러본 하루다. 파파야를 깎고 치킨에 콜라........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기온은 제법 쌀쌀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멕시코시티를 둘러본 것이 기쁘다. 다 보지 못해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보려고 계획했던 것은 대충 둘러본 것 같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오악사카로 가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