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문인데
지나간 겨울방학 어느 날 도시락을 싸 구산 갯가를 걸은 적 있었다. 옥계에서 난포를 돌아가는 인적 드문 해안선이었다. 마산가톨릭교육관이 자리한 봉화산 일대는 더러 찾아간 곳이었다. 옥계에서 새로 뚫린 임도를 따라 걷기는 처음이었다. 뒤돌아보면 마창대교가 가로지르고 저 멀리 진해만 밖 거가대교 연륙교도 아스라이 보였다. 바로 앞 호수 같은 쪽빛 바다 건너편은 거제도였다.
그날 난포를 돌아가는 바닷가에서 도시락을 비웠다. 나는 가까운 물체를 보거나 집을 때는 안경을 벗으면 깨끗했다. 도시락을 먹을 때는 안경을 벗었다가 배낭을 짊어질 때 안경을 다시 꼈다. 그때 안경다리가 왼쪽 눈에 살짝 스쳐 지났지만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는 듯했다. 이후 개학하고 봄방학과 함께 설을 넘기고 삼월 신학기를 맞았다. 그런 속에 나의 들길 산길 걷기는 계속되었다.
집안일도 일이지만 틈이 나면 들녘을 걷거나 산자락을 올랐다. 봄이 오는 길목 피어나는 들꽃을 찾아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었다. 한겨울 냉이는 물론 쑥이나 달래를 캐 우리 집 식탁에는 봄내를 일찍부터 맡고 있다. 때로는 북면 지인 텃밭을 찾아 일손을 보태거나 말벗이 되어주었다. 봄방학 때 경주 산내 친구 농장을 찾아가 매실나무 가지치기를 돕고 밤이 이슥하도록 곡차를 나누었다.
하루가 어찌 가는지도 모르고 한 주나 한 달도 금방이었다. 그런 속 신학기를 맞아 수업에 들어갈 교재 연구도 소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내 눈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지 제법 되었다. 원인이 뭘까 헤아려보니 난포 바닷가에서 안경다리가 눈을 스친 이후인 듯했다. 눈에 이물질이 낀 듯 불편하고 따끔거려도 꾹 참고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려니 여겼다.
그런데 눈이 불편함은 날이 갈수록 더했다. 이제는 왼쪽 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른쪽 눈도 따끔거려왔다. 자고 나면 눈곱이 끼고 눈동자가 토끼 눈처럼 빨개졌다. 집사람이 내 눈을 보더니만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권해도 나는 미련하게 미적거렸다. 언젠가 안경다리가 스쳐 그런 것이니 며칠 지나면 괜찮을 질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가끔 반주도 곁들였으니 상태는 더 나빠졌다.
바쁘게 지나는 삼월 중순이었다. 그새 음력 정월에는 조부님과 조모님 기제사가 있어 주중에는 근무 마치고 바삐 고향을 찾아가기도 했다. 삼월 중순 주말도 예식장과 산행으로 빠듯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불편한 눈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차 악화되는 듯해 병원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다. 월요일 출근해 수업이 빈 시간 이름이 떠오르는 어느 안과에 진료 마감 시각을 알아봤다.
사실 그 안과보다 예전 다닌 안과가 있긴 해도 그 안과는 예약 환자가 많아 갈 형편이 못 되었다. 전화로 문의한 안과는 일과 끝내고 서둘러 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을 듯했다. 내가 처음 들린 그 안과는 대기 환자가 적어 진료실에서 금방 찾았다. 젊은 의사는 무엇에 쫒기는 듯 서둘러 진료했다. 나름대로 뭐라고 얘기는 하는데 전문 용어를 써서 그런지 나는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분명한 것은 안경다리가 눈에 스친 것과는 무관한 안질이었다. 망막에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하루 이틀 지나면 절로 풀려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는 무슨 안과진료 장비로 양 눈동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곁의 간호사에게 안약을 한 방울 넣도록 했다. 피로가 누적되면 눈동자가 건조해지는 안질의 일종이란다. 처방전 따라 약을 먹고 눈에도 안약을 넣고는 일주 뒤 다시 오라했다.
의사는 잠을 푹 자고 물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술도 물인데 먹어도 되느냐고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진료실을 나서 약국에 들려 처방전을 내밀었더니 약이 한 보따리였다. 내복약 외에 인공눈물에다 염증과 충혈 점안액이 두 종이었다. 약사에게 알약 효능이 무엇이지 물었더니 눈 혈관에 도움을 주고 염증을 낮추어 준다고 했다. 씻은 듯이 나아 일 주뒤 다시 가지 않았으면. 1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