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허물벗기
--- 시 / 리 울 김 형 태
장맛비 무섭게 쏟아지던 밤
보잘 것 없는 벌레 한 마리,
벌서고 있는 광야 같은 나무를,
아니 여름의 사타구니 부여잡고
야곱처럼 하늘과 목숨 건 씨름을 한다.
헉헉, 가쁜 숨 몰아쉬는 전투적인 기도
홍해가 갈라지듯 등이 쩍 갈라지고
마침내 푸르스름한 오지그릇이
용오름하듯 잿빛 세상 향해 기지개 펴고,
알을 깨고 나오는 한 마리 멋진 새처럼
이륙자세 취하는 반짝이는 날갯짓
쉼 없이 호흡하는 시간의 심장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참으로 눈물겨운 산고...
귀 있는 자들, 말씀을 알아들었다는듯
요란하던 천둥과 번개도 순간 잠잠하다
단지 거추장스런 옷 벗어던졌을 뿐인데,
손꼽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듯
아침햇살이 성큼 다가와 악수 청한다
무릇 낡은 허물을 벗어야
더 큰 삶 영위할 수 있는데,
방황 끝내고 여행할 수 있는데
왜 이깟 빛나는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는 것일까?
허공의 무게 하나 이기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절망은 또 다른 희망 잉태한 디딤돌이라는데
산에서 벗어나야 산이 보이고
꿈에서 벗어나야 꿈이 보이는 것처럼
나를 탈피해야 내가 보일 텐데
나는 왜 여전히 나에게 사로잡혀
꼼짝없이 스스로 갇혀 있는 것일까?
정말 환도뼈 내준다는 각오로
본토 친척 아비 집 떠나듯
훌렁 허물을 벗어버리기만 하면
검붉은 땅속생활과 결별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삶 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