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할례 언약
1. 불신앙의 결과는 단지 가정적 불화와 역사적 적대감(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예들 사이에 벌어진)만이 아니었다.
아브라함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계산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앞당겨 이루어보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행동은 13년 동안의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지연을 가져왔다.
물론 성경이 명시적으로 이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을 때 아브라함이 86세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고(16:16) 이어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쓰는 것은(17:1) 그런 암시를 충분히 드러낸다. 불신앙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침묵이었다. 그것은 신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2.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말씀하심으로써 깨졌다.
하나님은 당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신다(1). 이것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내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해서 너희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했지만 나는 전능하여 능치 못한 일이 없으며 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을 성취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흠과 티를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서 합당하게 행할 것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가지고 살라는 말씀이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새 이름을 주신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그 이름을 바꾸어주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대한 암시를 나타낸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로, 사라는 열국의 어미로 삼으실 것이다. 또 하나님은 주실 약속의 아들의 이름도 이삭으로 계시하심으로써 정확하게 약속을 이루실 것을 확인해주신다(19).
하나님께서 약속한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이스마엘을 가리켜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웃음이 불신앙의 웃음이라고 본다면 이런 태도는 지난 13년 동안 아브라함이 줄곧 견지해온 태도였을 것이다. 불신앙은 영적 무감각을 가져온다.
4. 하나님께서는 할례라고 하는 언약의 표징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약속을 확증해주신다(9~14, 23~27).
이 할례가 일종의 성인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아 할례였다는 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고 아브라함의 집 안에 직계 혈통 외에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가장을 머리로 하는 연합의 원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약 시대로 오면서 할례는 율법의 행위라는 차원에서는 거부되었으나 그 의미는 존속하였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는 것은 믿음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신약에서도 유효하다. 할례가 아브라함 한 사람과만 맺으시는 언약의 표징이 아니라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우시는 언약이라는 말씀대로(7) 족장 아브라함 아래 있는 모든 사람과 맺으시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유아 세례와도 연결점을 가진다.
5. 자비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오셔서 침묵을 깨시고 관계를 회복하시고 다시 새 이름을 주실 뿐 아니라 자비로운 언약을 상기시켜주시고 그 표징을 주심으로써 깨어진 믿음을 회복시켜주신다.
우리는 불신앙과 불순종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를 볼 수 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모든 약속을 바라볼 뿐 아니라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라. 그리고 범사에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써 행하라.
6. “하나님 아버지, 불신앙과 불순종의 결과가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비참함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자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림으로 주를 바라는 하루를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