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어린이에게 그림책 300권을 보낸 작가들>>
-그림책이 만든 위대한 예술 퍼포먼스로 ‘글로벌 대한민국에 일원’으로 환영하는 뜻이 전해지길.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다른 나라끼리 벌이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기여자가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생중계화면은 결코 다른 나라 일이 아니었다.
낯설고 물설다는 말이 이만큼 절절할까?
인종도, 언어도, 기후도, 문화도, 그 어느 것 하나 비슷하지 않은, 너무나도 다른 땅에 뚝 떨어진 이 상황이 얼마나 불안할까?
그 상황에서도 눈이 번쩍 뜨인 장면은 어린이가 모두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몇 배로 더 불안할 상황이다.
자칫 커다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 불안감을 보드라운 인형으로 크게 상쇄시켰다.
어둡지 않은 표정에서 큰 안도가 느껴졌다.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글로벌 대한민국에 일원'으로 보였다.
우리나라가 진출한 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과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은 국적과 인종에 구분 없이 '우리'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우리를 돕는 사람이니까.
아프가니스탄 기여자는 잠깐 온 상황이 아니다.
당분간은 돌아갈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아주 온 상황이다.
분명한 위기 상황이다.
어린이는 더 위기다. 진천에 있는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8주가랑 정착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그럼 어린이는? 어른이야 교육도 받고 그러겠지만 어린이는 뭐하지?
위기에는 예술가가 먼저 나서야 한다.
'글로벌 대한민국에 일원'으로서 어린이책을 쓰는 작가로서 이 어린이들을 도와야한다는 생각이 그림책으로 이어졌다.
그림책을 모아서 보내자는 뜻을 이달 작가와 의논했다.
모든 작가가 우리와 같은 뜻일 거라는 공감을 했다.
그림책이란 그림만으로도 이야기가 구성되도록 만든 책을 말한다.
그림책에서 글은 그림을 보조할 뿐이다.
그림으로 이야기가 구성되는 게 먼저다.
어린이는 그림을 보면서 어른이 읽어주는 글로 된 이야기를 듣는 책이다.
글을 모르거나 글을 알기 시작하는 연령대 어린이가 독자다.
읽어주는 어른과 그림을 보는 어린이가 같이 누리는 책이다
우리 말과 글을 모르는 아프가니스탄 기여자 어린이라도 그림책을 보는 데에는 장애가 크지 않다.
우리 아동문학계에는 수많은 작가 단체가 있으니 큰 힘을 발휘해 주겠지만 이 정도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의논 자리를 만들고, 뜻을 모아 결정하고, 널리 알리는 복잡한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작가가 책을 보내주면 모아서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나에게 사무실과 창고가 있으니 받아서 모으기만 하면 된다.
보내는 비용과 노력 정도는 나 혼자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벅찰 정도가 되면 둘레에 절친 작가 몇 명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작가가 직접 사인한 책을 받는 일은 우리나라 어린이게도 쉬운 경험이 아니다.
작가와의 만남이나 도서전 같은 행사에 직접 가야 받을 수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차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이 어린이들이 성장한 뒤에 좋은 추억하나가 되기만 해도 충분하다.
다만 작가가 직접 마음을 담은 그림책을 전하는 뜻 말고 다른 일은 끼어들면 안 된다.
그래서 책 모으자는 제안문에 '출판사가 보내오는 책은 받지 않겠다'를 비롯해 '후원금도 받지 않겠다'는 취지를 넣었다.
SNS와 연락처가 있는 그림책작가에게 널리 퍼트렸다.
작가와 작가단체에도 자연스레 공유가 되었다.
많은 작가가 보낸 응원글이 책보다 먼저 왔다.
이달 작가와 나는 50권이라도 모이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보다 훨씬 많으리라 기대는 하고 있었다.
25년여 동안 한국아동문학계에서 겪어온 내 경험이 모두가 하나로 먹고 있는 마음이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우체국집배원과 택배노동자 분들께도 미리 양해를 구했다. 택배량이 많아지는 수고를 음료수 두어 병으로 퉁치기는 참 미안했지만.
책은 속속 도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어린이에게 보내는 환영과 응원글, 그리고 사인이 책마다 적혀 있었다.
이제는 전달문제가 닥쳤다.
모으기는 25년 아동문학가 경력으로 되었지만 전달은 길을 모른다.
우리는 선의지만 우리와 문화가 다른 사람이니 그 쪽에서 안 받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일단 진천공무원인재개발원에 전화를 했다.
어렵게 통화가 되었지만 연결될 길을 알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진천군청에 전화를 했다.
지원부서가 꾸려져 있었다.
이런 일을 할 때면 늘 맞닥뜨리는 장면, 이제는 많이 사라진 장면이 있다.
"아동문학가가 이런 일에?" 다. 아동은 미숙한 존재라는 편견이 적용된다.
'순수하다'라는 포괄언어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 순수는 상대가 경계하지 않는 아주 큰 강점으로도 작용한다.
아동문학가니까 불순한 뜻이 없을 거라는 편견 같은 이해는 관계를 좁히는 시간을 훨씬 줄여준다.
진천군청에 정준호 지원담당자는 "기부물품이 들어오면 업무 공무원인재개발원에 법무부 담당자와 의논해서 수령 여부를 정한다"고 했다.
일단 협의를 부탁해 놓았다.
절차를 따르는 방법이 가장 편하고 좋지만 책이니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바로 닿는 수가 없을까 해서 법무부 난민담당부서에 직접 전화를 했다.
법무부도 적십자를 통해서 기부물품을 받지만 적십자도 진천군청을 통해서 전달한단다.
진천군청이 단일창구라는 말이다.
진천군청으로 통한 전달로 길을 정하고 보니 그 쪽에서 우리 책을 받을지 안 받을지 정할 기준이 전화통화 한번이 다였다.
뭘 알아야 받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
우리는 누구이고, 그림책은 무엇이고, 어떻게 모았는지, 왜 전달하려하는지 정도는 알려야겠다 싶어서 제안서를 쓰기로 했다.
내 소개를 쓰고, 책을 모으기로 한 뜻과 모으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쓰다 보니 12쪽이나 되었다.
충분히 설명되었기를 바라며 진청군청 지원 담당자에게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마음을 졸이며 며칠을 기다렸다.
아무리 순수한 장르인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작가가 최대한 걸렀다 하더라도, 종교와 문화, 동물에 대한 선호까지도 다르니까 우리가 모은 책을 선뜻 받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안 받는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살아가야하니까 우리를 이해하는 지렛대로라도 여기고 받아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받겠다고, 어린이 놀이방 공간을 만들어 책을 놓겠다고.
다행이고 기쁜 소식이었다.
공간을 따로 만들 수 없다면 연령대별로 구분해서 나누어 주라고 했는데 그 수고는 덜었다.
나에게 모인 책은 260권, 이달 작가에게 전해 달라고 해서 받은 책을 비롯해 따로 40여권이 모였다.
나누어 담으니 모두 열 상자나 되었다.
보내주신 작가는 물론이고 우체국집배원, 여러 택배기사님 노고로 이룬 일이다.
추석을 앞두었으니 택배로 보내기가 망설여졌다.
진천군청 담당자에게 군청으로 싣고 가겠다고 하자, 바로 전달할 길을 터서 일정을 잡아 주었다.
"직접 가셔도 그 분들을 만날 수는 없고 앞에서 전해주기만 하고 오셔야 합니다."
했지만 그 정도로 충분하다.
9월 17일 금요일 오전으로 전달 일정이 잡혔다.
추석연휴 앞이니 교통상황이 어떨지 몰라 이달 작가와 아침 일찍 나섰다.
빗길 운전을 참 좋아하지만 물이 책에는 치명적이니 걱정만 되었다.
다행이 빗줄기는 굵어지지 않았고 무사히 도착했다.
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경비실에 내려 주고와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원을 담당하는 공간까지 들어가서 법무부 담당자와 잠깐 대화도 나누었다.
종교와 문화가 지나치게 이질적인 책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선별해도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교육 중에 한글을 배울 테니 어른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법무부 담당자 말이 너무도 반가웠다.
그림책은 '글자를 모르거나 배우기 시작하는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던가?
그림책을 모아서 보내기로 한 목적이 어린이를 넘어 어른에게까지 이어지게 될 것 같았다.
온가족이 모여서 우리 그림책을 읽으며 우리 글과 우리 문화를 익히며 우리가 전한 정을 느끼게 되기를 바라본다.
더하여 타국에서 살아갈 날에 대한 불안을 그림책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내려놓는다면 더욱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달작가는 이 모든 과정이 '그림책으로 펼쳐낸 예술행위'라고 했다.
그림책을 만든 작가가 자기 책을 사거나 챙기고, 받을 사람을 위해 환영과 응원 글을 쓰고, 사인을 하고, 택배 포장을 하고, 우체국이나 택배사에서 접수를 하고, 택배노동자를 통해 배송이 되어 김하늘에게 오고, 김하늘은 전달하는 길을 열고, 이달과 김하늘이 진천에 가서 전달을 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어린이와 어른이 그 책을 읽고 안정과 평화를 얻는 이 과정 모두가 그림책으로 이룬 예술적 퍼포먼스라고 했다.
나도 이 말에 적극 공감한다.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한 물결을 이루어 흘렀고, 이달작가와 나는 종이배 하나를 접어 띄워서 물이 흐른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 위대한 예술 퍼포먼스에 한 조각을 담당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많은 작가단체와 시민단체가 또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어린이와 어른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기를 바란다.
첫댓글 (짝짝짝)
어린이는 스펀지
언어,문화가 달라도 교감능력의 무한함이 있기에
사슴처럼 눈맑은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그려집니다.^^♡
와.해내셨군요
세상은 빛입니다
환하게 웃는 빛이 되어 주신 모든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애쓰셨습니다.^^
귀한 마음이 흘러갔군요,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