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마지 올리는 시간에
문득 전화가 와서 받습니다
절에 축원을 올려 놓고
일년에 초파일과 정월달등
몇번 절에 오는 보살님 댁
며느리의 전화인데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배가 아파서 절에 오겠다 합니다
나는 지금 법당에 기도 중이니
시내로 가서 치료해 주라 하여도
어제 다녀 왔는데
별 무소용이라 오늘은
스님께 가야겠다고 합니다
나는 기도중이어서
열한시 반이나 되어야 한다
하고 끊었는데
열한시가 되기 전에
보살님과 전화를 한 며느리와
아프다는 딸이 같이 왔습니다
법당에 절을 하고 나가기에
신중단 축원과
영단에 무상게를 한편 하고 나오니
세사람 외에도
아이의 아버지가 방에 앉아 있습니다
공연히 심사가 약간 불편한 것이
아니 아이가 아파 데려 왔으면
가족들이 부처님 전 절을 하는데
아빠는 방에 앉아만 있느냐 싶어
얼른 법당에 들어 가
삼배 올리고 나오라 소리를 합니다
근데 일어 날 생각을 하지 않으며
하는 말이
나이 오십 되도록 한번도
절을 해 본적이 없어서
못하겠다 합니다
나는 부처님 전에
삼배를 할 마음이 없으면
아이를 그냥 데리고 가라
나도 아이를 보아줄 마음이 없다
하고 아는체를 않으려 하자
아이를 데려온 보살님과
부인되는 사람이
얼른 들어가 절을 하고 나오라
달랩니다
그래도 꿈쩍 않고 앉아 있기에
나 역시 아이를 보아줄 생각은 않고
내 할일만 하고 앉았으니
이랬다가는 안되겠다 싶은지
슬그머니 일어나 법당으로 갑니다
나도 아이를 보고
약간의 도움을 주고 나서
처사에게 하는 소리가
누구에게나 언제나
처음이라는 말은 있는 법
오늘을 처음으로 하여
앞으로는 부처님 전에 오면
예배를 잘 하라 하고는
한마디 덧 붙이기를
처사의 부모가 자식의 축원을
아무리 부탁하면 무엇 하느냐
자식이 그 축원을
받아 들일 마음이 없으니
마치 방송국에서 방송을 보내도
내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모두 헛일인것처럼
평생을 자식위해
보살님이 부처님 전 축원을 하였는데
절을 안해 보았다는 말로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며
처사도 자기 자식
낫기고 싶은 마음만 있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ㅎㅎ
특별히 이같은 말을 하는 것은
오늘 데리고 온 아이의 일로
온 가족들이 조금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처사나 아이나 가족들이
귀에 조금은 거슬리더라도
한전 들어 보라고 작정하고
바른 말을 한 것입니다
어머니와 부인은
평생을 벌에 다니며
남편과 자식 가족위해
축원을 하여도
대체로 남편이나 자식들은
그런 부인과 어머니를
절에 태워다 드리는 기사 노릇으로
자기 할일을 다했다는듯
스님에게 대한 인사나
부처님 전 참배는 소홀한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절에서는 스님들이
모처럼 오는 처사분들을 위해
자리 마련하고
거리감 없이 한다면
좋아 지기도 할것이지만
그렇게 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일
어려서는 엄마 따라 절에 가면
그놈 참 신통하다 소릴 들을만큼
절도 잘하던 꼬마들이
조금씩 커가며
웬지 어색해 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한번쯤 주의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회적인 이름을 얻거나
고위직에 이른 사람
아니면 학식이 많은 사람등등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합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우바리라는 제자는 출가전에
왕궁의 왕자들 머리를 깎는
이발사였다고 전해 집니다
우바리는 어느 날
일곱 왕자들이 와서
평소처럼 머리를 해 달라지 않고
삭발을 하여 달라 하고
자기들끼리 말하는 소리에
부처님 전에 출가하여
불법을 배우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우바리는 웬일인지
부처님이라는 말과
불법을 배운다는 말에
마음이 황홀해 져서
왕자들이 머리를 깎고 돌아 간 다음
자신도 출가하겠다는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나아 갑니다
그렇게 부처님으로 부터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 부처님 옆에 앉았을 때
일곱 왕자는 부처님 전에 와서
계를 받고 스님이 됩니다
먼저 스님이 된 분들에게
인사로 절을 하다가
일곱 신참 비구는
자신들이 절 하려는 대상이
이발사 우바리인 것을 알고는
멈칫 거리니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절하는 것을 머뭇거리는가
사대강이 바다에 들어 가면
각각의 이름이 없어 지는 것처럼
불법의 바다에 들어 온 이는
이전에 갖던
각각의 신분상의 차별이나
직분 이름 명예 등등이 없어 지는 것
다만 지금같이
먼저 스님이 된 사람에게
후에 스님이 된 사람은
선배에게 올리는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만약에 그만한 정도의
아상도 버리지 못한다면
어찌 불법을 배우는 사람이라 하리요
하시는 걱정을 듣고
비로소 우바리 스님에게 절을 합니다
부처님이나 달마 조사나
대각 국사 의천이나
보조 국사를 따라 동토로 온
담당 국사등은
왕자의 지위를 헌신발 내버리듯
하신 분들이요
법화경에 나오는 어느 왕은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는 이발사에게
흰 머리가 보이거든
자신에게 알려 줄 것을 말하고
어느 날 이발사에게서
흰머리가 생겼다 소리를 듣고는
왕위를 물려 주고
출가를 하기도 합니다
그처럼 세간의 일을
어느 정도 이룬 연후에는
모든 인연을 놓아 버리고
구도자의 길을 향해 나섰던
옛사람들을 생각하면
놓을 때를 알아 놓을 줄 알고
떠날 때를 알아 떠날줄 아는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 하겠습니다
절 할 때를 몰라
한마디 들은 8단짜리 처사나
안해도 좋을 소리를 한
9단짜리 스님이나
장군멍군이요 피차일반이며 막상막하요 난형난제로 바보짓을 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후에는 가까운 사찰로
대불련 지부장을 태우고
인사를 시키며
올 한해 재정적인 후원을
부탁하고 돌아 오는데
우리 스님들 모두가
대불련이나
학생회등의 법회에 대해 우리 불교의 최상의 꽃이 왔다고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시며 적극적인 성원을 약속하시어
참으로 고맙고
보람된 하루가 되었습니다
봄입니다
생기발랄하게 약동하는
생명의 대 교향곡 앞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보세요
쏙쏙 삐져 올라 오는
새싹들의 소리가
툭툭 튀어져 피어 나는
매화의 꽃 향기와 함께 어우러져
꽃샘 추위 속에 오시는
봄 빗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억지 춘향이 소리에
처사의 첫번째 참배도
부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싹을 틔웠을까요
알수 없어요
알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