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숙의 노래'의 기막힌 사연
1960년도 어려운 시절에 가난했던농부의 딸로 태어난 동숙은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한채 서울에 올라와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월급은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시골 부모님에게 모두 보냈다.
동생들 학비와 가사에 보탬이 되라고 그러기를 십여년 후에 가난했던 시골집 생활이 나아졌다.
그녀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으나 이미 서른 가까이 노처녀의 나이로
지나간 세월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국어 선생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여 중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그러든 그녀에게 변화가 생겨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모하게 되었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자취방까지 찾아가 선생님 밥도 해주고 옷을
빨아주며 행복을 느꼈다.
장래를 약속하며 몸과 마음을 그리고 돈까지도 그에게 모두 바쳤다.
그런데 가발공장은 전자산업에 밀려서 감원과 부도로 직장을 잃은
그녀는 학원비 때문에 학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할 수 없이 부모님 도움을 얻으려고 시골에 내려와 공부를 하겠다고 돈을 요구하였다.
부모님은 '얘야, 여자가 공부는 무슨 공부냐? 있다가 시집이나 가그라!' 하였다. 10년 동안 가족을 위하여 희생하였던 그녀는 부모님이서운하였다.
그녀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울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그녀를 만난 친구들은 '박 선생 그가 약혼자도 있고이번에 결혼한다더라. 순전히 너의 등을 처먹은 기라, 가시나야.' 말하였다.
동숙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고 그를 만나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이미 싸늘하였다.
“너와 난 학생과 제자야. 니가 좋아서 날 따라 다녔지. 고등학교 검정고시나 잘 보라구...”
더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이미 농락 당한 여자임을 알게된
동숙은 복수를 결심하였다.
동생들과 부모님에게 희생만 당하고 그렇게 살아온 동숙은 '어차피 내 인생은 이런 거야!' 하며 비관을 하였다.
그녀는 동대문 시장에서 비수를 하나 사서 가슴에 품고 왔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를 마악 쓰고 돌아서려는 찰나 원한에 찬 동숙은 선생님 가슴에 복수의 비수를 꽂았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선생님은 비명 소리에 쓰러지고 학생들과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달려와 동숙은 경찰에 잡히게 되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동숙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어찌 되었어요? 잘못했어요. 형사님! 제발 선생님만 살려주세요.”
자신을 탓하면서 선생님 안부를 더 걱정하지만 동숙은 결국 살인미수죄로 복역을 하게 되었다.
가난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살아온 그녀가 뒤늦게 얻은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살인미수자라는 비극으로 마무리한 '사랑의 생활수기'가 여성 주간지에 살려서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었고, 그를 모델로 하여 영화와 '동숙의 노래'도 만들어졌다.
한산도 선생이 사연을 노랫말로, 백영호 선생이 작곡을 하여 1966년 신인가수 문주란이 '동숙의 노래'로 데뷰를 하였다. 그때 문주란의 나이는 10대를 벗어나지 않은 앳된 소녀였다.
결국 대힛트하였다. 그래서 문주란은 가수의 길로 들어 낙조, 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등 힛트곡을 냈다.
'동숙의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마음, 원한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죄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때는 늦으리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못가는 서러운 마음, 저주 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뜨거운 눈물.'
💿 동숙의 노래 (문주란 노래)
https://youtu.be/gDeBtwDUchU
⭐ 찟어지게 가난했던 우리의 60년대 당시 우리의 많은 10대 여공들은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냉대 속에 동숙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숙명이었습니다. 동숙의 일생이 잘 표현된 이 노래를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