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표면을 떠나는 순간 길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표면에 계속 집착하고 있다. 실제로는 표면에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가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깊은 곳에는 암흑이 있고, 우리는 그 어디에도 굳은 땅을 볼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표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명상은 용기를 부여하고 강해지게 하고 모험을 무릅쓰도록 해서 표면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는다. 어둡고 끝이 없는 심연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존재’라는 굳은 바탕이다. 표면, 즉 주변부를 버리고 떠나는 순간, 중심에 서게 된다.
이렇게 중심에 서는 것이 바로 명상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중심에 서게 되면, 주변부로 움직여가도 전혀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그때 의식은 전혀 다른 특질을 갖게 된다. 그러면 주변부로 움직여 가더라도 예전의 그 주변부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게 된다. 중심에 머물게 된다. 주변부의 활동에 참여하는 동안에도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면 그것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놀이가 될 것이다. 그때 갈등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놀이가 된다. 그러면 주변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내면에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며, 주변에는 어떠한 고뇌와 근심도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큰 짐,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원천으로 돌아갈 수 있고, 자기 존재의 중심에 깊게 빠져들 수 있다. 그때 다시 생기와 활력을 되찾고, 주변부로 다시 움직여갈 수 있다. 그대가 이런 방법을 알게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내면 이외의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길은 그리 길지 않다. 그것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유일한 장벽은 주변부에 매달리고 집착하면서 그것을 떠나는 순간 길을 잃을까봐 두려운 상태이다.
그 두려움은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뜻한다. 어느 면에서, 내면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주변부와 동일시하던 지각은 죽을 것이고, 자기 존재에 대한 새로운 지각이 일어날 것이다.
<오쇼의 액티브 명상> 중에서
첫댓글 명상의 긍극적인 목적은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진솔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내면의 충만함으로 간결하게 사는 것이겠지요. 인간이 최고의 경지에 다달을 때가 기독교에서는 천당, 불교에서는 천국 또는 극락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곳은 지정된 어떤 곳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내가 담아 놓은 것이기에 누구라도 가고자한다면 가능한 곳이지요. 명상을 생활화 하면 보다 쉽게 다달을 수 있겠기에 '마음챙김'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도 그런것이겠지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