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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동자의 눈으로 본 소련사>
시간은 바야흐로 41년 5월 1일, 소련은 독일의 소련침공을 예상하고 육군편제와 전쟁준비를 마치게 되는데, 예상과 달리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지 않는 기행을 보이게 됩니다 (...) 사실 이때가 소련군이 약한 타이밍이기도 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일본, 진주만을 기습하다!>
태평양 전쟁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DHR에서 Ai들이 태평양 전쟁을 하는 꼬라지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답답할 뿐이죠.
<니가 싫다면 내가 가겠어>
42년 5월이 되도 전혀 소련을 공격할 생각이 없는 독일을 위해 소련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이때, 소련은 42년 교리까지 완성한 상태이긴 한데... 그래도 절대로 먼저 공세를 퍼부으면 안됩니다. 잊지 마세요. DHR의 독일군은 세계 최강의 육군이라는 사실을
<42년 5월 6일, 독-소전쟁 발발>
역사가 꼬여서 1년 늦게 소련의 선전포고로 독소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실 독일로 할때는 40년 개전이든, 41년 개전이든, 42년 개전이든, 45년 개전이든 소련을 잡는 레퍼토리는 동일합니다 -.- 빠른 기동력으로 소련군을 초전박살 와해시키는 것이죠.
<핀란드 전역>
핀란드 17개 사단은 전선의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트롬소로 전진합니다. 산악사단의 구성이 많고, 노르웨이는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이정도 병력으로도 충분히 고착화를 시킬수 있습니다.
<랜드리스 프로그램>
프랑스와 영국에는 공업력도 퍼주는데 소련에겐 고작 TC 주는게 다입니다. (...) 독소전 자체는 소련이 다 한것은 맞지만 그래도 미국의 랜드리스 도움이 적지 않았던것이 분명한데, 겨우 이거밖에 안되네요 -.-
<소련군 초기 방어계획>
독소전에서 중요한건 기갑&차량화 사단의 절대적인 양이 얼마나 많은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DHR에서 기갑이 너무쎈건지 보병이 약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보병은 약점이 너무 크거든요. 물론 소련의 경우에는 전선이 워낙 넓다보니 기본적인 보병사단의 양도 꽤나 중요하긴 하죠.
독일군은 보통 기갑&차량화 비중이 꽤 높기 때문에 방어 라인을 구축할 때 이런식으로 후방에 예비대를 깔아두는게 좋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선에 구멍이 뚫리면서 순식간에 포위 또는 기동섬멸을 당할수 있거든요. 물론 전선의 소방수라고 불리우는 후방에 기동사단이 넉넉하다면 좋겠지만, 상대방의 공격이 어디로 집중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동방어가 그렇게 효율적인 방어가 되는건 쉬운게 아니죠.
<첩보 보고서: 42년 5월 22일>
소련군 첩보보고서에 따르면 적의 보병사단은 약 400여 사단, 기갑사단이 약 28개 사단을 보유한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오차범위가 얼마나 될지 알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것은 육군에서 소련군이 열세라는 사실입니다. 서부전선과 노르웨이에 배치된 독일군을 제외하고도 동부전선에 전개한 독일군의 병력은 300사단이 넘을것으로 추산됩니다.
<남부전선: 적 기갑군과의 조우>
소련의 방어 효율은 독일보다 낮은 편입니다. (이벤트효과가 턱없이 낮거든요.) 이렇게 독일 기갑부대와 전투를하게 되면 조직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전투를 오래 끌어선 안됩니다. 조직력을 절반정도밖에 소모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전투교환비는 3배가량 차이가 나버렸습니다. 전투을 오래 끌었다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겁니다.
<북부전선: 다우가스필즈 전투>
아직 조직력도 충분하고 방어에 유리한 지형(강+숲)이긴 하지만 단순 보병으로만 이루어진 병력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큰 인력손실과 함께 패배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전선의 불을 꺼줄 기동사단은 중부전산의 오르샤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이대로라면 북부전선의 방어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중부전선: 빌레이카, 글레보키에 전투>
그래서 소련군은 간접적으로 다우가스필즈를 구원하기위에 글레보키에와 빌레이카를 공격했습니다.
<노르웨이 전역>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기 때문에 전선고착화를 해줍니다. 상대도 노르웨이에 병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분명 큰 손해는 아닙니다.
<첫번째 방어선 붕괴>
<북부전선: 라트비아 방어선 붕괴>
남부와 중부보다 전선이 훨씬 얇았던 북부전선은 순식간에 위기에 봉착합니다. 리가주변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15개 사단이 포위의 위기에 빠지자 전부 후방으로 이동시켜 주었습니다. 이때 중부전선에 가용중이던 기갑부대들을 이용하여 북부전선에 포위망을 형성해 보려고 했지만, 빌레이카와 글레보키에의 적의 방어가 너무도 튼튼했기에 성과 없이 끝나고 맙니다.
<남부전선: 체르카시 전투>
남부전선 역시 북부전선보단 낫지만 중부전선에 비해 방어라인이 얇았던 탓에 역시나 전선돌파를 쉽게 허용해주고 맙니다. 그러나 북부전선과 다른점은 충분한수의 기동사단이 후방에 있던 탓에 전선의 불을 끌수 있었습니다. 다만 독일의 빠른 기동으로 1~2개 야전군 규모의 보병사단들이 섬멸되어 버립니다.
<중부전선: 글레보키에 전투>
압도적으로 많은 기갑부대를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글레보키에를 사수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리투아니아 방면을 돌파하여 라트비아에 포위망을 만드려는 계획이 수정될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발트국가의 공업단지를 시베리아로 이동한다>
이 디시젼이 사기인 이유는 상대가 점령중인 땅에도 공업력이 이동한다는 것이죠. 해도 공업력이 깍이는 것도 아니니 부담없이 실행해 줍니다.
<북부전선: 병력의 공백기>
라트비아 방어선의 병력이 재배치되는 기간 동안에 북부전선은 한동안 병력의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그럼에도 독일이 미친듯이 진격하지 못하는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순전히 Ai가 멍청해서가 아닙니다. 이때쯤 독일은 석유부족에 허덕이게 됩니다. 개전초기 5월에 석유는 43k 밖에 없었고, 석유를 수입할 곳도 매우 제한적이죠. 게다가 가용중인 전차사단, 차량화사단, 그리고 공군은 엄청나게 많았으니 당연히 석유부족에 빠질수 밖에 없죠.
<중부전선의 패퇴, 대조국전쟁>
하지만 이런 기름난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소련의 중부전선에 파상적 공세를 시도하여 소련군이 뒤로 물러서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쯤에서 독일은 공세 종말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중부전선 : 소련의 반격, 스몰렌스크 포위>
7월달에는 스샷이 없는 것을 보니 조금 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독일은 고질적인 석유부족, 공세종말점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7월말부터 소련이 반격을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다시금 비텝스크를 탈환함으로써 중부전선의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부전선이 붕괴되면 끝장나는 거였거든요. 북부전선은 전선이 다소 붕괴되긴 했어도 중부전선에서 차출한 구원병력들로 커버할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중부전선: 스몰렌스크 포위전>
스몰렌스크를 남겨진 12개 사단의 선택지는 죽음과 항복뿐입니다. 그러나 독일군 역시 포위된 스몰렌스크를 구원하기위해 비텝스크에 공세를 시작하게 되죠.
<중부전선: 비텝스크 공방전>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비텝스크에서 버텨준 덕분에 스몰렌스크의 포위된 병력을 모두 섬멸시킬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텝스크를 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북부전선: 라트비아-에스토니아 공세>
상대적으로 소련군 비중이 적었던 북부전선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독일군의 비중도 적었습니다 (...) 땅은 많이 빼앗겼지만 독일군 비중이 적었던 탓에 쉽게 탈환할수 있었죠.
<남부전선: 북부전선을 비워둔 이유는 남부에 힘을 실어두기 위함이다!>
소련군은 중부-북부의 급한불을 끄기위에 남부에 있던 기갑사단까지 다끌어 모아서 공세를 했죠. 그러니 남부가 부실해진 것은 당연한 일. 이런 회전문 효과로 인하여 남부전선엔 독일의 돌출부가 생겼고 소련군은 이 돌출부를 깍아내릴 작전을 수립하게 됩니다.
<남부전선: 9월 공세>
네진과 크레멘추크를 공격하여 포켓을 형성하려 했으나, 독일군도 바보는 아닌지라 병력을 온존한 상태로 후퇴하였고, 소련군은 전선을 안정화 시킨 것을 위안삼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북부전선: 9월 공세>
북부전선의 독일군의 밀도가 크게 낮아진것을 알게된 소련군은 북부전선에 공세를 시작하여 리투아니아 지역을 수복하는데 성공합니다.
<중부전선: 포위를 당하느냐! 포위를 하느냐!>
독일군은 리투아니아에 생긴 소련의 돌출부를 도려내기위해 다우가스필즈를 지나 발트로 진격을 하였고 소련군은 중부전선에 포켓을 형성하기 위해 민스크 방면으로 진격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중부전선 저항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소련군은 리투아니아에 진출한 기갑부대들을 전략적으로 후퇴시킵니다.
<남부전선: 동유럽 해방작전>
북부전선과 중부전선의 전투가 심화됨에 따라서 남부전선에 병력의 공백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부전선의 기갑군은 오데사를 함락시키고 루마니아로 쇄도하여 동유럽 3국(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를 해방시킬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중부전선 : 겨울은 소련의 계절>
민스크에 포켓을 형성하기 위해 빌레이카를 돌파하게 됩니다.
<불가리아의 항복>
<루마니아의 항복>
동유럽 3국을 밀어내는건 타이밍만 잘잡는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VP가 적고, 인프라도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느낌으로 달려주면 되죠.
<중부전선: 12월 공세>
남부전선에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이탈하게 되고, 발칸반도에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인지 전선에 독일군의 밀도가 낮아진 모습입니다. 또한, 소련의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떼34가 모이고 모여 어느새 엄청난 양의 기갑사단이 편성되었습니다.
<세르비아 합병>
<헝가리 합병>
<슬로바키아 합병>
<43년 2월, 붉게 물든 발칸>
사태에 심각성을 깨닫고 이제서야 독일군이 발칸반도에 병력을 투입하기 시작합니다. 소련군도 전선에서 병력들을 차출해서 발칸을 지키는 선택을 할수도 있었지만, 회전문효과를 이용하기로 결정합니다.
<2월 공세>
많은 수의 예비대와 병력이 독일남부로 빠지게 되자 독일의 동부전선군의 방어병력이 얇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맞춰 소련군은 총공격을 시작합니다.
<크로아티아 합병>
이로써 독일은 발칸의 모든 동맹국을 잃었습니다. 적의 동맹국을 무력화시킨 기갑사단들은 모두 이동시켜 전선을 축소화 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독일은 남쪽으로, 소련은 서쪽으로>
2월 공세와 함께 소련은 폴란드 동부를 수복할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진격으로 사르니-모지리, 빈니차-프로스쿠로프에 포켓이 형성되었습니다.
<독일군의 혈로를 뚫기위한 부단한 노력>
쭉쭉밀린다고 너무 달린탓에 18개의 기갑사단이 역포위가 되어버립니다. 프로스쿠로프의 독일군을 구원하기위해 타르노폴에 독일군의 공세가 이어졌고, 포위망이 뚫려버렸죠. 아무리 탱크를 쭉쭉 뽑아내고 인력도 무진장많은 소련이라지만 이정도의 기갑사단이 섬멸되는건 정말 뼈아픈 타격입니다.
<구원된 소련 기갑사단>
정말 아슬아슬하게 구원에 성공했습니다. 이때 독일군의 공세로 인해 사르니 포켓도 퇴로가 확보되죠.
<그러나 독일군이 후퇴에 성공하는 일은 없었다>
다시금 몸을 추스린 소련 기갑사단이 독일군이 온전하게 후퇴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었습니다. 스트리 방면으로 진격을 하여 다시금 포위망을 구축하게 됩니다.
<리투아니아-동프로이센 포위망>
그리고 4월 북부공세로 동프로이센과 리투아니아를 포위시키기에 이릅니다.
<개전 1년만에 일반동원령 선포>
네.. 그렇습니다. 개전 1년만에 3000가까이 있던 인력을 모두 소모해버렸습니다. 대략 1일간 상승하던 인력이 0.7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충 대전기간동안 3300 정도되는 인력을 소모했군요 (...) 인력 1당 사람수가 1000명이라고 가정했을때 증원-생산으로 소모된 인력만 300만이 넘네요 -.-
<동프로이센 점령>
이제 독소전에 끝도 머지않아보입니다. 솔직히 여기까지 왔을때 이제 그냥 공격 공격 공격 하면 끝날줄 알았습니다. -.-
개전한지 약 1년이 지난 모습입니다.
독일의 입장에서 소련을 상대할때는 미친듯이 뿜어져나오는 말도안되는 소련의 물량과 넓은 땅덩이 때문에 고전했던 반면에, 소련의 입장에서 독일을 상대해보니까 독일군 왜이렇게 쎈지 모르겠습니다. -.- 상대적으로 소련군이 훨씬 유리몸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교전비만 봐도 그렇고... 특히 독일군 기갑사단 뜨면 보병은 '갈린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미친듯이 죽어나갑니다; 보통난이도도 이정도일진데 하드이상의 난이도로 소련으로 독일을 상대하는건 정말 끔찍할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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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노무 지면방어능력때문에 한계가 있습죠.
절대로 동수의 비율로 전투를 이끌어가면 안됩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력과 사단숫자의 힘으로 힘겨운 방어전을 해냈다면,
한방의 반격으로 많은걸 이루어야합죠.
따라서 압도적인 군세와 다방면전투로 유리한 전선을 강조해야만합니다.
같은 세력의 군세로 밀어붙이면 어느새 그 많은 인력이 갈려들어가는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비등 육전만 강조할필요없이 공업력이 남는다면 공군의 도움을 얻어도 됩니다.
여유만되면 대규모 공수강습을 통한 입체포위전술을 노려도 상관없구요.
다만 현재 소련의 여건상 대규모공수강습이나 공군운용은 무리지 싶네요.
소련은 교전비가 좋게나오기가 힘들죠
교리가 후달린건가...
교리가 공격력을 깎아먹는게 많죠 대신 생산속도 증가로 41~2년 지나면 물량으로 찍어 누를수 있죠
200보병에 올전차 가시면 됩니다. 살인적인 교환비 가능합니다.
1936년 시작 기준 40년까지 공장찍고 남부에 요새지어서 버티다가 42에 보병으로 버티면서 살살 후퇴해주면서 대조국 전쟁 띄우고
올전차 웨이브 가시면 일반동원령 안해도 엄청난 교환비로 독일군을 녹일수 있습니다.
인력전 교리 자체가 소모율이 엄청나므로,
소련이나 중국, 브라질처럼 인구가 많은 국가가 아니고서는
함부로 선택할 교리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