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맑은 화창한 봄날 오후
호밀 호두과자 한 봉지와 커피를 사들고
고향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늙은 몸, 입가는 처지고 총기를
잃은 눈은 흐릿하고 손등에는
군데군데 검버섯으로 얼룩이 졌다.
그러니 뭘 어째봐야 별 폼이 안난다.
그래도 오랫만의 고향 나들이라
가지껀 멋을 내고 향수까지 뿌리고 나섰다.
그냥 내 하는대로 놔뒀으면
언제 입어봤는 지도 까마득한
새 하이얀 셔츠에 화사한 꽃무니
넥타이 매고 봄 양복을 차려입고
새 신랑 마냥 휘파람 불며 나섰을 게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나이와 때에
맞게, 분수에 맞게,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백수 15년 동안
귀에 따다구가 앉도록 집 사람
잔소리를 들은지라 이제는 지레
그럴 엄두를 못내곤 한다.
더 늦기 전에 불나방처럼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고 싶다고 하소연 해봐도
소용이 없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가슴 설레이다가도 옷을 차려
입을라 치면 쓸쓸한 기분이 든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릴 때 잘 못먹은 탓인지 머리카락이 워낙에 가늘어 산들 바람에도
맥을 못추고 이리저리 쓸려 봉두남발이
되는데 늙으니 색깔도 희희죽죽한 게
그야말로 보기가 가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염색약을 칠하면 좀 빳빳해지고
까매져 생기가 날텐데 언제부턴가 집사람이
집안의 실권을 잡더니 이제 더 이상 염색을
해서는 안된다고 선언을 했다. 이유는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보다도 건강 상 아주 안 좋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랫만의 고향 방문이라 정성을
다해야 한다.한번 추레한 모습을 보이면
누가 저 집 맏아들도 소시적에는 좀똘똘해 보이더니 잘 안풀렸나 참 안됐다며 혀를
끌끌 차기 시작하면 금방 동네방네 소문이
퍼지고, 그건 늙으신 부모님 욕보이는
일이라 싫어도 부모님 생각해서 신경을
쓰고 또 쓰게 된다.
정장 차림은 못하지만 그래도
오늘 고향 나들이는 다르다.
적어도 고향 사람들에게만은 겉모습이나마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서다.
경로 할인을 이용하기 위해
주로 평일에 기차를 타는데
코로나 방역 완화 때문인지 평일인데도 기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기차 여행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묘령의 아줌씨와
나란히 앉아갈 수 있으까 상상하고
소망하면서 히죽 웃으며 지정석으로
가보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곤 했다.
그때마다 가슴 깊숙히서 한숨이
새어 나오면서 아, 신은 내게 여복은
허락지 않으시나 보다 하고 탄식을
내뱉곤 했다.
그리고는 몇 년전부터는 아예
포기하고 그러려니 한다.
몇년 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엄마랑
이모와 함께 원준가, 제천까지인가 타고 간
바질은 초등생한테 시달리고부터지 싶다.
안내 방송이 나오고 열차는 출발한다.
아버님 96세 생신을 맞아
오랫만에 사정상 혼자서
고향 길에 나섰다.
양평, 원덕, 용문
그림같은 봄날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곱다.
차창으로 스쳐지나가는
푸르른 산과 들에 봄볕이
쏟아지고 강물은반짝인다.
오랫만에 찾아가는 고향,
연로하신 부모님, 그리고
정겨운 친구들.
어느새 마음은 옛날로 돌아간다.
가진 거 없어 많이 누리지
못했어도 티없는 마음으로
까르르 웃어대던 우리들.
까까머리, 흰 실로 기운
검정고무신, 산과 들에 메아리치던 왁자지껄
웃음소리들...
먼 길 돌아와 정겨운 것들을 찾아
은발의 머리, 몽롱한 눈 비비며
고향을 찾아간다.
그 수많은 세월 흐르고
이제 우리 몸은 비틀거리고
마음은 세월의 흔적 찾아
하염없이 헤매인다.
차창 밖 아늑한 풍경에
정신 팔려 마음은 하염
없는데 어느새 원주역.
아득한 옛날 짧은 정차시간에 급히 내려
플랫홈 각기우동 후루륵 들이키던
그 정겨운 맛 생각나 눈을 감고 입맛을 다신다.
도대체 이제 그 맛을 어디서 맛볼 수 있으까?
내 삶 끝나고 천국에 가면 다시
맛볼 수 있으까?
호두과자를 꺼내 먹고 커피를 마신다.
오랫만에 맛보는 호두과자
달아도 너무 달다.
늙은 입맛은 이제 자극적인 맛이 싫다. 은은하고 은근한ㅈ있는 듯 없는 듯한 맛을 찾게 된다.
고향 역까지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데 오고가는 시간은 여덟시간에서
두시간, 사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젊었을 때는 너무 느려서 싫었는데
늙으니 이제는 너무 빠른 게 싫다.
남겨진 세월은 얼마나 될까?
나를 실은 세월의 열차도
쉬임 없이 이렇게 빨리 달리기만 하니
현기증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하마나 했는데 느닷없이 어느날 우리에게 종착역에 왔음을 쇳소리로 알리면서 내리라고 하면 그때 우리는 또 얼마나 황당해질까?
삶의 종착역 아직도 멀었다고 여겨 내릴 준비
하나 하지않고 지나가는 풍경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벌써 내려야 한다니 봄날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허무하지 않을까?
짧디 짧은 인생
매정한 세월은 정신없이 달려가겠지만
우리 애태우지 말고, 안달하지 말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ㅈ옆도 보면서
천천히 살자.
우리 어디서나 언제나
건강하자.
그리고
우리
오늘을 살자.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첫댓글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님 뵈러 고향길 달리듯 합니다 지금은 일년에 두번정도 고향길 가는데
언제까지 갈수있으려나요 고르비님 건승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답글이 늦었습니다.
본가에서 이틀 머무르고 난후
이제 시내에 나와 와이파이
서비스 되는 커피숍에서 인사
드립니다.
이제 코로나의 속박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으니
조만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공감이드는 좋은글 동병상련 심정으로 감명깊게 잘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날 되소서
꾸미커님
안녕하세요?
이제야 답글을 씁니다.
이국이지만 정들었을 남국에서
기쁨과 보람차게 지내시리라
믿습니다.
고수 듬뿍 넣은 쌀국수가
먹고싶어지네요.
늘 건강하시고
즐거움 많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고르비님~
고향은 언제나 따스한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지요
저는 고향 가 본지 꽤나 오래 됐네요
친 인척이라곤 아무도 살지 않는 내 고향인지라
발걸음 끊은지 벌써 십수년이 흘렀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시인감정래님
안녕하세요?
코로나로 지난 설에도
찾아뵙지 못한 부모님을
이제서야 찾아뵙고 고향의
흙냄새를 맡고 사투리 어린
새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도시냄새에 흠뻑 젖어든
시골이라 추억 속에서나 정겨움
느껴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청도
푸른 깨끗함 그리고 꽂꽂한
선비가 연상됩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많기를 바랍니다.
고르비님 중앙선 열차에 몸을싣고 노부모님 계신
고향에 다녀 오셨군요 장문 이지만 찬찬이 읽어
보니 나에 옜날 고향에 초가지붕 정겨운 모습이
아련한 꿈속을 헤매는 듯합니다 고향 생각 나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시골이라 데이터 사용을 자제
하다가 이제 시내에 나와
인사드립니다.
도시화에 따라 그 옛날의순수한
빛이 많이 사그라들어 아쉬움이
많은 시골입니다.
골목 가로등과 집집마디
전깃불빛으로 이제는 마당에서
밤히늘의 빛나는 별을 볼 수가
없어 어젯밤에는 친구와 삼십 분
거리의 못둑으로 갔지만 흐린 하늘에 별들이 숨어버려 볼 수가
없었고 개구리 소리만
요란했습니다.
고향 집에서 오래된 장맛을
음미하며 문득 오래 묵은
사람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묵은 사람 축에 속한다는 생각에서겠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욕심은 적고 좀 더 너그러운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기쁨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정든교향 추억에 동산
가끔씩 꿈속에서 볼수
있는곳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곳 다녀오셨군요 ~
조은희님
안녕하세요?
6박 7일간의
고향 부모님 방문어 이어
대구 친구 둘과 오랫만의
즐거운 시간 보내고
이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답글을 씁니다.
이제 코로나 눈치보지 않고
즐거움 함께 나눌 시간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기지개를 꼅니다.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환한 미소지으며 어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