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첫우승했다는 기쁨속에서 99년 12월 스포츠조선서 물난리님께서 올리셨던 글입니다.저도 물난리님의 팬(?)이라 제 메일에다 복사해서 올린건데...지금은 99년당시 스포츠조선 게시판을 찾을수 없는게 아쉽습니다.약간은 틀리신 부분도 있지만 저역시 이글을 읽으면서 왜케 감개가 무량했는지...에궁...이거 물난리님께 조금은 실례가 되지 않을는지여^^
우리 이글스는 어떤 길을 걸어왔낭?...^^;
밑에 다이너마이트 타선과 투수진의 역사를 쓴 물난리임당.....^^;
생각해보니 먼저 우리 이글스의 역사에 대해서 썼었어야 하는뎅.....올해 우승에 만족하지 말구 명문구단으로 자라나야 할것입니당.....그럴려면 우리 팬덜도 좀더 열성적인 분들로 꽉채워져야 하겠져....전 골수 빙그레~한화팬으로써 앞으로도 우리 이글스에 대해서 팬들과 여러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당. 딴팀 게시판에 사람들이 많던데(삼성게시판 난리 났음) 우리 이글스 게시판도 연중무휴로 많이들 이용해주세여...^^;
제가 이글을 올리는 이유는 팬들도 우리 이글스에 대한 것들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딴 분들도 우리 이글스에 대해서 많은 글 올려 주세여....
빙그레~한화 이글스의 역사.........^^; (빵빠라라라밤~~~~)
제 1 기 (86,87 : 창단기)
대전에 잠시 머물고 있던 두산 곰탱스가 도망치듯 떠나버리고(내 이넘들 안 믿었당), 프로야구 제7구단으로서 이글스가 창단되었다.(허영만 선생님의 제7구단이라는 만화도 있는데 이걸 별칭으로 해도 되지 않을까 할만큼 멋진 표현이당... 제 7 구단이라....^^;). 창단할때 이름을 공모했는데,웬일인지 이글스라구 될거라는 애기가 떠돌더니 정말 이글스가 되었당.
(머 그때 나온거중에 "빙그레 양반님들"도 있었당...^^;)..
당시 첫 감독은 배성서 감독이었다. 이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것이다.적어도 신생팀을 불과 2년후에 전성기를 누릴만큼의 토대를 닦아 놓은 분이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들로서는 투수진에 이상군,한희민 쌍두마차, 외야진에는 이강돈,이정훈, 내야진에는 유승안,김성갑,전대영 같은 선수들이 있었다.당시 신생팀의 한계로서 당연한 것이었지만, 성적은 밑바닥권이었다.86년에는 7위, 87년에는 6위, 선수수급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성적은 기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성기를 앞둔 빙그레 이글스의 등장을 알리는 시기였다..
여담이지만 예전의 대전구장에는 외야에 좌석이 없었당.. 기억나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외야에 좌석이 없었으면 머가 있었을까? 쿠쿠 지금생각하면 참 대단하지만 그냥 흙으로 된 언덕이 있었구, 거기에 플라타너스(?)도 몇구루 심어져 있어 관중들이 그 그늘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자 구경하구 구랬당.. 머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괜찮은데 그냥 나둿으면 대전구장의 명물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건 언제 없앴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 2 기 (88~92 : 전성기)
참으로 말도 많았던 우리 이글스의 전성기다. 프로야구 역대 최강의 타선이었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앞세워 프로야구판을 장악했지만, 번번이 한국시리즈에서 좌절을 맛보았던 시기, 어쩌면 우승한 올해보다도 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이글스 최고의 전성기다.
먼저 전성기의 시작은 풍운아 김영덕 감독이 제2대 감독으로 부임한 88년부터 시작한다. 당시 86,87년 2년동안 신생팀으로서 하위권에서 맴돌았던 이글스가 이상군,한희민 쌍두마차의 막강 투수진, 이강돈,고원부,이정훈의 최고의 외야진, 급성장한 장종훈을 앞세운 유승안, 김성갑등의 내야진을 앞세워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을 격파하구 창단 3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최강이었던 해태에 3패후 2승까지 따라붙었으나, 신생팀으로서의역부족을 느끼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당.
그러나 담해인 89년도에는 더욱 막강해진 전력(장종훈,이정훈이 주전선수로 매김하기 시작) 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여 해태와 맞붙었당. 이때 1차전에서 이상군선수가 선동열과 맞대결을 벌여(4:1??) 승리를 거둠으로서 거의 대전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T.T
2차전에서 2점차로 앞서고 있던 4회초.. 주자 1,3루 상황에서 병살타성 타구를 장종훈이(이때 유격수였당) 그만 알을 까고 말았다. 그때 당시 난 야자 시간이어서 라디오 중계를 듣고 있었는데 정말로 아나운서가 이렇게 말했당..
아 유격수앞!! 병살타 코스입니다! 아!아! 알깠습니다!!! 오죽하면 아나운서가 알깠다구 그랬을까...T.T 이 에러 하나로 한희민은 연타를 얻어맞고 역전을 허용했구, 내리 4판을 져서 1승4패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햇당...
그리고 90년.. 구래도 이글스는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고 잇었다. 장종훈이 이때부터 홈런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글스의 전성기를 전반기(88,89)와 후반기(90,91,92)로 나눌수가 있는데 일단 투수진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이상군,한희민에서 한용덕,송진우로 이어졌구, 이강돈,고원부,유승안 선수의 뒤를 이어 이정훈,장종훈,강정길,강석천,김상국,황대연 선수들이 막강 타선 즉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90년도에도 이글스는 1위를 질주하고 잇었다. 그런데 막판 후반기에 사건이 터져서(김영덕감독의 종신 계약설이 이때 애긴가?) 하였튼 무슨 사건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거의 선수들이 태업하듯이 경기를 하는 바람에 후반기에 추월을 당했고, 3위로 내려앉자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해야 했당.. 사실 90년도에도 한국시리즈 진출 할수 있었던 전력이었는데 아쉬웠당..
그리고 91년 또다시 한국시리즈에 진출, 한용덕,송진우의 투수진과,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앞세운 이글스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또다시 해태와 맞붙었다. 광주에서의 1,2차전 역저패했당...T.T 그리고 대전에서의 3차전 당시 송진우는 방위로 근무중이었구, 근무지였던 대전에서만 경기출전이 가능한 상태였당(지금은 상상도 안됨), 하였튼 3차전에서 송진우는 8회2사까지 퍼펙트로 막고 있었당.. 근데 왜 이글스 타자들이 10안타 치구도 1점만 뽑은건지 참 원망스럽당.. 송진우는 8회 결국 2점을 내줘.. 3차전도 역전패..
담날 스포츠신문 1면 제목이 아!송진우! 였당...T.T
그리고 4차전 엎치락 뒤치락 하는 가운데, 강석천이가 8회말에 선동렬로부터 역전 쓰리런을 뽑았다. 정말 그때 대전구장 난리가 났었당..근데 또 이게 웬지랄이람..9회에 한희민이 역전을 내주었당....T.T 4경기 모두 역전패..
개인적으로 91년도 한국시리즈가 젤 가슴아프다고 생각한다. 92년도는 좀 어이가 없었징...^^;
하였튼 이때부터 우리 이글스가 삼성하구 같이 취급되기 시작했당.. 이번에 우리는 그 오명을 벗었지만.. 하였튼 91년도 한국시리즈는 이글스 전성기의 최대의 가슴아픈 사건이었당..
그리고 맞이한 92년도.. 사실 개인적으로 이당시의 전력이 역대 최강의 이글스가 아니였을까 한다. 투수진에는 한용덕(9승),정민철(14승),장정순(14승),이상군(10승),송진우(19승/17세이브)등이 주력이었고, 타선은 정말 이해의 타선이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었당, 장종훈이가 41개를 치고 이정훈이가 타격왕해먹으면서 홈런 25개로 홈런 4위를 할정도로 미치게 잘치던 때이당..
이강돈,강정길,강석천 등도 두자리 홈런을 쳐대고,김상국,황대연도 펑펑 쳐대던 때이다..이해에 아마 14연승을 했던거 같은데.. 하였튼 페넌트레이스 1위를 질주한것은 당연하구, 하도 타자들이 펑펑 쳐대서 홈런후유증을 앓을 정도였당.. 그리고 한국시리즈에 진출.. 아 이애기가 나오면 또 가슴 아프다
당시 이글스 전력은 최고였고 롳데는 그냥 돌풍을 일으켜 올라올 정도였는데,그게 송진우가 운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일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대전에서의 1차전 롳데킬러인 송진우가 무척 얻어마져서 진다. 운명의 2차전 여기가 정말 장난 아니다, 정민철이 8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냄, 그런데 롳데는 무영의 윤형배를 내보냈는데, 우찌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한점도 못내구 잇냐..T.T
운명의 9회,, 김영덕은 송진우를 마무리로 내보냈당..이래서 욕먹지..나가자 마자 3연타를 맞는다.. 그것도 똑같은 바가지 안타로 똑같은 코스인 좌전안타,정말 그때 미치는줄 알았당.. T.T 결국 만루상황에 한용덕이 나가서 불을 껏지만 이미 3점을 내준 상태,, 그리고 9회말 또 여기도 장난이 아니다,
1점을 만회한 상태에서 주자 2루에서 대타 양용모, 양용모가 친공 정말 높이높이 올라갔당.. 다들 홈런인줄 알았당.. 오죽하면 양용모는 손 들고 환호하는 바람에 1루빡에 못갔당(나중에 욕 직사리 먹음).. 근데 펜스맞고 떨어졌당.. 아 홈런이 되서 동점이 되었어야 하는데... 하였튼 1점차 까지 추격
하였으나, 그 큰 안타를 치구도 양용모는 손 흔드느라구 1루빡에 못감..T.T정말 안될려니까 별거 다 안되더라.. 그리고 롳데에서 윤학길이 나와서 겜은 그대로 끝.. 92년도 한국시리즈는 이글스의 전성기에 치명타를 가져온 사건이었당.. 이것으로 김영덕 감독은 더이상 설자리를 잃었고, 장종훈도 최진실하구 잘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깨야 했당....
나중에 전성기만을 따로 집중적으로 분석하겟지만 사실 한국시리즈에 그렇게 집중적으로 나간 팀은 해태,삼성과 우리 이글스 빡에 없다. 당시 이글스는 5년동안 4회씩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할정도로 최강의 전력이었당..
제 3 기 (93~98 : 침체기)
이글스는 전성기에 한국시리즈를 제패하지 못한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
삼성과 같이 큰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안게 되고 달이 차면 기울듯이 5년간의 전성기를 지나자 약간의 침체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시기의 성적을 보면 플레이오프에 단 2번진출 할정도로,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태평양에게 참패할 정도로 극심한 성적 부진을 겪었다. 이 때 유일한 팬들의 위안거리로는 94년도 준플레이오프에서 지긋지긋한 해태를 이겼다는 것이다. (군대있을때 일병의 신분으로 감히 내무반에서 환호성을 지름..^^;)
우선 김영덕 감독이 더이상 입지를 찾지 못해 93년도를 끝으로 물러나고,강병철 감독이 제 3 대 감독(94년)으로서 침체기를 이끌어 나간다.
투수진의 경우는 한용덕과 송진우가 전성기의 위력을 찾지 못했구,기대 했던 지연규,신재웅,이성갑의 실패, 노장진의 트레이드 등, 전반적으로 정민철과 구대성만 제몫을 해주었을뿐 투수진이 많이 약화되었다..
공격진의 경우도 장종훈,강석천 등이 공격진을 이끌어 갔을뿐, 이정훈,이강돈,강정길,김상국,황대연등의 뒤를 잇는 송지만,백재호,이영우,임수민 등이 아직 제활약을 못해주었고, 오죽하면 용병들까지도(부시,치멜리스) 맥빠진 선수들로 채웠졌던 시기이다.
제 4 기 (99~??: 제2의 전성기? or 침체기의 계속?)
올해는 정말 감격의 한해였당.. 참 이런글을 쓸수 있었던 원동력도 올해의 우승 땜이 아닐까 한다.
올해의 이글스의 행보에 대해서는 머 다들 아실테니까 활약상은 쓰지 않음.
먼저 우승의 원동력을 분석해보면 제3기 침체기를 이끌었던 강병철 감독이 물러나고 제 4대감독(이상하게도 이글스 시기구분하구 감독하구 거의 일치하네여....^^;)으로 이희수 감독이 취임하였당.. 사실 첨에 이희수감독에
대해서는 비난이 많았으나 14년만의 우승을 일구어 냄으로서 더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는 이글스의 명장으로 기록 될 것이다.
투수진으로서는 기존의 정민철, 구대성 콤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송진우,괄목상대한 이상목이 더해짐으로서, 선발(3인)+마무리 로서는 8개구단 최고의 투수력을 유지했당.. 거기다가 이상군 코치님의 중간계투에서의 활약도 빼놓을수 없당.. 사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이상군 코치님이 던질때 정말
눈물이 났당...^^;
공격진으로서는 기존의 장종훈,강석천에 송지만,백재호,이영우가 더해졌고,최대 성공작인 로마이어,데이비스의 가세, 그리고 임수민과 조경택이 안정된 수비가담으로서 짜임새 있는 베스트 나인을 형성 할수 있었던 것이 큰 강점이었당..
머 올해 애기는 더이상 할수 없고,, 문제는 앞으로 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내년부터 우리 이글스가 또다시 비상할수 있다면 올해는 제2의 전성기의 첫해가 될것이지만, 올해 한번 반짝한게 된다면 침체기의 계속의 이변의 한해로 기억 될 뿐이다. 현재의 전력은 적어도 8개구단 최강은 아니지만 8개구단의 전력이 평준화(하향평준화?) 되었기에 언제든지 우승도 노릴수 있는 때이다. 우리 이글스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여 내가 또다시
제2의 전성기의 역사를 쓸수 있는날이 오기르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