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에서 들은 일화
송암 지원
2000년 1월 26일, 나는 우리 절의 인도 성지순례 불자들과 함께 네팔 룸비니 대성 석가사에서 머물고 있었다. 평소 부처님 성지마다 한국절이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가졌는데 부처님 성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곳 룸비니에 대성 석가사가 우람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처음 절 지을 터를 마련할 때부터 관계했던 주지 법신 스님이 현지인들의 우상이 되다시피 열렬한 지지를 받아가며 절을 짓는 곳이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의 절 공사보다 안정된 분위기에서 순조롭게 불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불사는 돈의 힘보다 사람의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법신 스님을 보면 깨닫게 된다. 기왕 법신 스님의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의 미담이랄까, 덕담을 하나 더 곁들여야겠다.
법신 스님은 우선 출가 수행자로서 자비롭고 매우 친절하다. 누가 오더라도, 다시 얘기하면 절 짓는데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대성 석가사를 찾아오는 사람이면 설혹 밤중이라도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고 손수 공양상을 돌봐주는 타고난 자비와 친절의 인간미가 넘치는 분이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대성 석가사를 다녀간 사람은 그를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절 짓는 좋은 협력자가 되곤 한다.
혼자서 절 살림 다 꾸리면서 또 한쪽에서는 절 지어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지만 그런 중에서도 잠시 시간이 나면 단체 순례객들에게 룸비니 주변을 직접 안내하기도 한다. 수행자로서 신심이 깊다고 할까, 아니면 삶에 대한 열성이 이만저만 아니라고나 할까, 아무튼 남들이 어떻게 흉내내 볼 수 없는 곳까지 도달한 인생의 친절과 근면의 최고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라고 해야겠다.
사실 여행은 본인이 원하여 떠나는 일이긴 해도 때로는 고달프고 힘들 때도 많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법신 스님. 그는 여러 단체들이 한꺼번에 밀어 닥쳐 무척 바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에 대한 특별 안내를 자담하고 나섰다. 룸비니 주변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성지를 함께 돌며 차를 타기도 하고 때로는 걷기도 했다. 차안에서는 직접 마이크를 들고 부처님 생애에서부터 주변 이야기와 네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까지 얼마나 구수한 입담으로 진솔하게 잘하는지 나와 신도들은 연신 숙연해지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와 함께 했던 하루가 나와 일행들에게는 무척 뜻깊었다. 법신 스님이 유적지를 찾아 논두렁 밭두렁을 앞장서 걸으며 나에게 들려 준 얘기는 값으로 치면 천금으로도 비교되지 않을 소중한 내용이었다. 그때 나와 같이 다니며 틈틈이 자기가 느낀 광덕스님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얘기 중 나를 움찔하게 했던 내용은 바로 용성조사 전집을 만들 때의 이야기였다.
용성 조사께서 입적하신 뒤 51주기를 맞이하여 당시 대각사 주지였던 도문스님께서 용성조사 전집 간행 발원을 하여 출판에 착수했을 때였다. 법신 스님은 당시 대각사 총무를 보면서 주지이신 은사 도문 스님의 전집 간행불사를 받들었을 때였고 절 내의 대소사를 모두 책임 맡았을 때였다. 도문 스님의 원력과 담당자들이 노고에 노고를 거듭하여 전집이 계획했던 대로 용성 조사의 기일에 맞추어 출판되었다. 대각회로 보면 가히 대작불사인 용성 조사 전집이 출간되면 순서상 이사 스님들과 문중의 어른들께 먼저 드리는 것이 도리였기에 당연히 대각회 이사장이었던 스님께도 책을 올리게 되었다. 간행의 실무 주임을 맡았던 소임자가 이사장 스님께 책을 가지고 가서 여러 가지 말씀도 드리고 경과를 설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담당자가 바로 총무였던 법신스님이었다.
그래서 법신 스님은 불광사에 미리 전화를 하여 방문 사유를 스님께 여쭈었더니, 다 듣고 난 스님은 책 만들 담당자들에게 우선 노고를 위로하고 불사의 높은 뜻을 설명하고 칭찬과 찬사를 아낌없이 베풀었다고 한다. 어찌나 은근하고 자상하신지 듣고 있던 법신 스님이 감격의 눈물이 솟아났다고 했다.
그 동안 법신 스님은 책 내느라고 동분서주하여 미처 출간의 참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 지냈는데 스님의 각별하신 찬사를 듣고서야 비로소 불사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법신 스님은 불사를 함께 기뻐함에 대한 보현행의 숭고한 뜻을 그때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어 그 후부터는 누가 무슨 불사를 했다고 하면 스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들이 떠올라 똑같이 함께 기뻐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도 고백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당시 소임자였던 법신 스님이 잠실까지 책을 가져다 드리려고 했는데 한사코 스님께서 몸소 대각사로 가겠노라고 하여서 스님 뜻을 거스리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스님은 몸이 불편하여 거동이 무척 힘든 상태에서도 앉아서 가져다주는 책을 받지 않고 꽤 먼 거리를 단지 책 가지러 허위단심 용기를 냈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를 나는 법신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스님의 할아버지 스님에 대한 공경심과 사상을 계승하겠다는 굳은 결의였으리라고 믿어졌다. 평소 스님의 설법 가운데 영성 조사의 가르침과 조사가 이룩하신 불사의 위업을 자주 현양하였다.
스님이 펼치고 있는 새 불교운동의 뿌리를 용성 조사의 가르침에 두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었으니, 그러한 뜻에서 용성 조사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용성 대종사 전집을 받으러 직접 찾아갔던 것이라 여겨졌다. 몸도 불편한 입장에서 웬만하면 못 이기는 척 아랫사람의 청을 받아주고 편히 있어도 되었는데 스님은 결코 당신의 마음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듣고 보니 다시금 놀라운 일이다.
어느덧 벌써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고 법신 스님이 룸비니에서 절 짓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을 텐데도 얼마나 감동적인 교훈이었으면 그때 나에게 그렇게 신명나게 전해 주었을까. 좋은 향기는 멀리 퍼져 나간다고 하더니만 역시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스님의 오분향이 여기까지 이른 것을 보면 말이다.
법신 스님은 그때의 일이 무척 감동적이었고 깊은 감화를 받았다는 것을 내게 충분히 전해 주었다. 부처님 강생의 성지에서 스님의 깊은 일화를 다시 들으니 나 역시 크게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많았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2권 징검다리, 송암 지원 지음
첫댓글 이번 주 부터 2권을 복습합니다.
용성큰스님의 전집을 검색을 하니 절판이 되었나봅니다. 다시 대각회에서 5개년 계획으로 불사를 한다는 기사가 있네요.
큰스님의 일화들 속에, 큰스님의 법문 속에 있는 각사상과 반야 사상은 용성큰스님의 사상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은 우리 카페 회원님들이라면 다 아실 것입니다. 이번 일화에서도 큰스님께서 할아버지 용성큰스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공경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들은 마음으로만 공경한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직접 전집을 받기 위해 먼 걸음 하시면서 기뻐하셨을 큰스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참으로 따뜻합니다.
공경의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방일한 마음을 다잡게 되는군요. 보문님,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