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 (宿住)
삼라만물(森羅萬物)상(象)인 삼라만물상의 숙주(宿住)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런 말씀이에요.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이 이제 삼라만물을 대표한다 할 것 같으면 사람의 심신이 흐르는 시간을 말하자면 숙주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런 말씀이지 흐르는 시간이 그려놓는 게 공간화(空間化)된 세상의 삼라만물 여러 현상이거든.
그러니까 그 시간이 말하잠 이렇게 동영상을 촬영하는 그런 촬영기처럼 되어 있어서 거기 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필름 테잎이 되어 있어가지고 다 찍혀가지고 있다.
이런 말씀이여. 그런 것이 머리에 기억되는 거 그것을 갖다가 숙주 박힌다 하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논리 질서 정연하게 나아가는 거, 이론 전개되어 나가는 거 이런 것은 말하자면 삼라만물 현상의 모든 만물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간단히 간추려서 이어놓는 것이 바로 연가시 이론 논리 전개가 된다는 것이지 말하자면 글을 읽는 거 책을 써가지고서 논리
정연하게 만들어 놓는 거 이런 거와 같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된 것은 사람의 정신 두뇌가 정보 입력 시스템이 되어가지고 모든 삼라만상(參羅萬像)의 만물(萬物)을 시간 테잎에다가 집어넣고선 그려놓는 것이다.
그려놓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야. 그러니까 사람 심신 정신 상태 이런 것이 말하자면 숙주라 할 수밖에.
일단 머릿속에 각인(刻印)된 것 이런 것이 정보 입력된 것이 서로 어울리다가 보면 여러 가지 말하자면 생각을 창출해낸다 이런 말씀이에요.
서로 그 정보(情報)들이 어울려 가지고서 이 입자(粒子) 는 파동(波動)이라 양자(量子) 이론에서 그렇게 말하잖아.
그와 마찬가지로 깨알같이 박히는 여러 각인된 것이 파동 현상을 일으켜서 연결을 지어보면은 굴곡 흐름 그런 레파토리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말.. 그래서 거기서 이제 중요한 정보 이런 것을 모아가지고서 몽사(夢事)라든가 또 생각 같은 것으로 지어내서 보여주는 게 오감관(五感管)으로 보여주는 거 그렇게 해서 사람의 그 생각을
따라서 육신(肉身)도 움직여주게 하는 거 행동이 쫓아오게 하는 것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각인된 여러 정보인데 그것이 곧 영각(靈覺) 형성(形成)을 한다.
신령영자 깨우칠 각자 해서 그래가지고 정신 계통에 그렇게 말하자면 덧칠을 하듯 그림을 그려서 정신(精神)이라는 도화지(圖畵紙)에 그림을 그리듯 해가지고서 덧 씌워가지고서 말하자면 영각 형성이 돼가지고 그것을 정보로 해가지고 경험으로 해가지고 여러 가지 생각을 창출해서 사람의 육신된 그 집 숙주를 견인(牽引)유도(誘導) 이리 끌고 저리 끌고 그 생각대로 말하자면 제어도 할 수도 있고 움직이게도 할 수 있고 이렇게 된다.
잠을 자기도 하고 편안하게 쉬게도 하며 또는 때로는 그렇게 막 들고 뛰게도 하고 오욕칠정 흥분으로 말이야 도가니 속에 들게도 하고 침울하게도 하고 하는 것 생각조차 뭐 유치한 발상도 하고 기발한 발상도 하며 기복이 심하지 않아 호불호(好不好)로 의해서 좋고 나쁨에 의해서 그러니까 생각이 말하자면 그렇게 정보 입력된 것에 그것을 갖고 와서 그 정보를 갖고서 그려낸다.
그러니까 육신과 정신은 영각의 숙주가 되고 영각이 그렇게 저절로 그 각인된 정보에 의해서 저절로 형성되는 거에여.
그러니까 과거서부터 현재 또 미래까지 쭉 흘러가면서 시간 테잎이 감겨서 풀리는 것처럼 또 풀리는 것이 감기는 것처럼 그렇게 거기에 다 깨알처럼 박혀가지고 말하자면 그것을 이용하게 된다.
영각들이 거기 영각이 저절로 형성이 되다시피 해서 달리 또 저런 외계에서 온다든가 뭐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지 갖다가 찍어다 붙인다 할 것 같으면 뭐 이티 이론 이라든지 뭐 우주에서 오는 곳이 있다든지 뭐 외계인이 온다든지 온갖 것을 다 갖다 가다 말해 볼 수가 있고 무슨 음양(陰陽)학적으로나 뭐 이런 거 이분법적 다분법적 비례적 반비례적 기계적 절대적 온갖 공교롭고 우연의 일치 이런 걸 다 보태가지고 말을 하게 되며 논리를 전개하게 된다.
그중에서 음양학자들도 많고 여러 가지 학설을 막 만들어내고 주장을 하고 제창을 하게 되는 거 아니여 그러니까 뭐 하필 주역 64괘 연산역 귀장역 이런 거만 있겠어
온갖 학설이 난무하고 후대에 잘났다 하는 학자들이 여러 가지 학설을 새로 말하잠 발견하고 발명하고 말하자면 창제하다시피 해가지고 만들어 놓잖아.
그러니까 뭐 예전 것만 굳이 옳다고만 할 것도 없고 그렇게 돼 있다 이런 말씀이지.
세상은 점점 비약적으로 발전이 되다 시피 해서 1년이 옛날 100년만큼 빨리 발전이 점점 더 속도는 더 심하게 발전이 될 거고, 어제가 옛날이 되다시피 이렇게 만들어 놓는 세상이 된다.
이런 말씀이여. 오늘 참 날씨 좋은데 이래 한강가에 산책 나와서 벤취에 앉아서 이렇게 이렇쿵 저렇쿵 오다가 생각나는 것을 정리 삼아 이렇게 강론을 펼쳐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뚱아리 정신 상태는 숙주(宿住)이다. 거기에 숙주 박힌 것은 바로 영각인데 그것은 연가시 이론으로 모든 논리를 전개해서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도 이제 한번 생각이 들어서 여러분들에게 강론를 펼쳐봤습니다. 연가시 서술 뿐이겠어 삼라만상이 그려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그런거지 ...
아 뭐 한 마디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할 것 같아서
여기쯤에서 이렇게 강론을 끝이고 말까 합니다. 아 --물은 잔잔하고 여기는 이제 무인문진(無人問津) 광나루 다리 밑에 있어 남에게 건너갈 나루를 묻지 말라.
장저와 걸익이 경작지에서 그렇게 자로가 와 나루를 물으니까 그렇게 말하잖아.
너 저기 옆에 서 있는 분이 누구냐니까 얘 공구라 하옵니다.
그 작자가 더 잘 알 거다. 뭐 하러 우리한테 막 와서 물어보느냐
너 그 사람 따르는 거 보다 차라리 우리하고 여기 경작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에는 거둠질하고 여름에는 말이야 길러가지고 이렇게 먹고 사는 게 더 편안하지 않겠느냐 뭣하러 그렇게 세상을 말하자면 도를 펼치겠다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파느냐 이렇게 비아냥 거리면서 그렇게 밭 갈기를 말지 않더라 하는 것 아니여 .. 씨뿌리고 밭갈기를 장저와 걸익이.... 장저 걸익에 무인문진의 이야기를 이렇게 한번 보태봅니다.
여기까지 강론하고 마칠까 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다 말야.
득도성불식으로 깨달아서 나아가라. 뭐 장삼봉이도... 장삼봉이가 장군보 아니여
길 가다가 글쎄 그렇게 말하잠 두 내외 가면서 말싸움하는 거 왜 그렇게 인척한테 신세만 지려고 하느냐고 바로 혼자 서질 못하고 어디 가서 의지만 하려고 그러느냐고 그러면서 두내외 싸움질하는 걸 보고 깨달아.
그렇구나. 나도 뭐 하러 양양 가가지고 곽양이 아버지 곽정이한테 가서 뭐 하러 의지할 필요 뭐 있나 여기서 나도 그러면 이 무당산에다가 내 혼자 의지간을 만들어 가지고 한 번 또 살아볼 것이다.
그래 거기서 그렇게 도를 펼쳐가지고 삼봉이 앞에 있어서 자기 호를 삼봉이라 짓고 그렇게 무당파를 만들었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장삼봉이= 장군보가 말하잠 각원 대사의 제자가... 그래 그 김룡의 소설 짓는 것도 그 무언가 역사에 약간 의탁해가지고 그렇게 말하자면은 소설을 지었을 거다.
무당파라는 거 예전에서부터 조금 근거라도 있었을것.
소림파식으로 소림사 식으로 여기까지 이렇게 또 김용의 소설도 첨부해서 강론해 봤습니다.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