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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페주스 공 알렉시오스 콤네노스, 콤네노스 왕조의 마지막 후계자.
CK DVIP
2 시나리오 3차 십자군
난이도 : VH/F
치트 사용 없음
에디팅 : 알렉시오스의 군사 교육 특성 제거, 알렉시오스와 동생 다비드의 성장이 가능하도록 수정, 알렉시오스의 얼굴 수정, 조지아 왕국의 정치 지도 색깔 수정.
1185년 9월.
(황제 안드로니코스 1세 콤네노스)
알렉시오스 1세 이래 5대 104년간 가장 고귀한 로마인들의 제국을 통치하던 콤네노스(Komnenos) 왕조는 그 종말을 고하였다. 제국의 중흥을 이룬 영명한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손자인 안드로니코스 1세는, 위대한 황제의 피를 이어받았을 뿐 그 능력을 이어받지는 못하였다. 2년이라는 짧은 그의 통치는 내부의 폭정과 외세의 끊임없는 침공으로 얼룩졌다. 성급하고 억압적인 황제권 강화는 군사 귀족들의 반감을 샀고, 연이어 제국의 영토를 유린하는 외적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황제의 추태는 제국 신민들의 불만을 샀다.
1185년, 콘스탄티노플은 지쳤다. 신민들은 현 황제의 피와 새 황제의 등장을 동시에 갈구했다.
(황제 이사키오스 2세 앙겔로스)
당장이라도 터질 듯 흉흉한 분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사키오스 앙겔로스.
군사 귀족 출신의 이 사나이는 황제권을 강화하고 군사 귀족을 탄압하는 안드로니코스 1세의 미움을 받고 있던 터였다.
황제의 밀명을 받고 자신을 암살하러 온 자객을 쓰러뜨린 뒤, 이사키오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반역이었다. 반역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난폭한 황제에게 죽게 된다, 그는 이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는 찾아왔다. 외적의 침공에 대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황제가 황궁을 비운 것이다.
폭군의 부재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폭군에게 죽음을!" 분노에 찬 함성이 황제가 없는 콘스탄티노플에 울려퍼졌다. 봉기를 일으킨 시민들의 뒤에는 이사키오스의 밀명을 받은 공ㅈ들이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본래 그럴 운명이었는지, 시민들의 추대를 받으며 이사키오스는 황제를 칭할 수 있었다. "주께서 폭군을 벌하셨다!" "새 황제 이사키오스 만세!" 그렇게 시민들은 새 황제의 등장이라는 첫 번째 갈망을 채울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두 번째 갈망이 채워질 때였다.
주의!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드로니코스의 비참한 죽음)
안드로니코스 1세는 사력을 다해 달아났지만, 이미 예순이 넘은 노인은 멀리 달아날 수 없었다. 그는 포박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왔다. 황제가 아닌 죄수의 신분으로. 그의 오른팔이 곧 잘려나갔고, 이어서 두 눈이 뽑혔다. 불구가 된 폐제(廢帝)는 그 우스꽝스러운 꼴 그대로 시민들 앞에 조리돌림 당했다. 사실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다. 광기에 찬 시민들이 그를 보자마자 떼지어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성난 시민들 사이에서 그는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은 폭군의 몸을 잘라 먹으며, 피의 갈망을 배부르게 채웠다.
(안드로니코스 1세의 아들, 마누엘 콤네노스)
안드로니코스를 죽여 제위 찬탈에 성공한 이사키오스는 그 피로 얼룩진 자리를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안드로니코스가 군중들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마친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아, 이사키오스의 명령을 받은 간수들이 감옥에서 한 사람을 끌어내었다. 끌려나온 사람은 전 황제 안드로니코스의 아들인 마누엘 콤네노스였다. 감옥 으슥한 곳, 햇빛조차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그는 끌려갔다. 잠시 후 절망과 고통이 뒤섞인,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가 그 암흑을 뒤흔들었다. 그날 이사키오스의 명령에 따라 마누엘은 두 눈이 뽑혔다. 그리고 얼마 뒤 잔인한 형벌이 가져온 후유증과 깊은 절망 속에서 마누엘은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마누엘의 죽음으로도 이사키오스는 안심할 수 없었다. 아직 콤네노스 일가는 멸족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지아의 타마르 여왕)
마누엘의 아내 루스단 바그라티오니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조지아의 공주였다. 그녀의 언니는 바로 조지아의 위대한 여왕 타마르이기도 했다. 마누엘과의 사이에서 루스단은 두 아들을 낳았고, 이 아이들은 각각 알렉시오스와 다비드라는 고귀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사키오스 2세가 가진 불안의 원인은 바로 이 아이들이었다. 이들이 장성한다면 이사키오스 자신이 축출한 이들의 조부와 부친의 원수를 갚고 제위 계승권을 주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사키오스는 고심했다. 이 어린 아이들의 피를 꼭 자기 손에 묻혀야 할지? 또한 조지아의 여왕이 자기 여동생과 외조카들이 받을 핍박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지? 약간의 동정심과 죄책감, 그리고 불안함이 그를 흔들었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자신이 세운 앙겔로스 왕조의 평안을 위해서는 콤네노스 일족을 멸망시키는 길 밖에는 없다고 다짐하며, 이사키오스는 루스단과 그녀의 아이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서에 사인했다.
이사키오스에게는 불행하게도, 혹은 공정하신 신께서 콤네노스 일가를 아직 버리지 않으신 것인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루스단은 새 황제의 비정한 계획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달아나야 했다. 그날 밤 그녀는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급히 챙긴 채, 각각 세 살과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을 업고 안아 콘스탄티노플을 빠져나왔다. 항구에는 이런 일을 대비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콤네노스 가문의 사람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스단과 두 아이를 태운 배는 유유히 바다를 가르며 동쪽으로 나아갔다. 목표는 흑해 연안의 트라페주스. 일찍이 콤네노스 가문이 쌓아놓은 인망과 세력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조지아와의 국경에 위치해서 조지아의 원조를 받기에 유리했다.
이사키오스가 이 비밀스러운 탈출을 깨달은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황제는 격노하였으나 이미 새는 그물에서 빠져나간 뒤였다. 이사키오스는 그 새를 다시 잡으러 갈 수 없었다. 아직까지 전 황제의 치세에 침공해온 시칠리아군이 분탕질을 치고 있었고, 황제는 그것을 막는 것도 버거웠다. 게다가 얼마 후 날아온 조지아의 국서는, 루스단과 두 아이를 추격해서 끝을 보려는 황제의 계획을 꺾어버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여걸 타마르 여왕은 자신의 동생을 핍박하려 한 이사키오스를 비난하며, 콤네노스 일족의 후계자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조지아의 전력을 기울여서 황제를 가로막겠다는 결의를 전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이사키오스는 콤네노스 가문의 장자 알렉시오스를 트라페주스 공으로 임명하는 조서를 내렸다.
콤네노스 왕조의 후계자들은 결국 살아남았다.
(트라페주스 공 알렉시오스 콤네노스)
악마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을 보면 꼭 그에 상응하는 나쁜 일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기쁨도 잠시, 알렉시오스와 다비드 형제는 곧 어머니를 잃는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다. 루스단은 트라페주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눈을 감았다. 형제의 이모인 타마르 여왕은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며 두 형제의 후견인이 될 것을 자처했다. 그럼에도, 이제 겨우 네 살이 된 장자 알렉시오스는 어떤 친족의 직접적인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콤네노스 가문을 재흥시켜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콤네노스 가문을 재흥하는 것, 찬탈자를 벌하고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에 돌아가는 것. 이것이 알렉시오스가 이루어야 할 목표였다.
(콤네노스 가문을 섬기는 충성스러운 궁정 신하들)
알렉시오스의 모친 루스단이 사망함에 따라 트라페주스 공국의 통치는 궁정 신하들의 합의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콤네노스 가문은 몇 대에 걸쳐 군사 귀족의 자리를 누린 명문인 만큼, 다행스럽게도 능력이 있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들은 콤네노스 가문의 희망 알렉시오스를 교육하는 한편, 정무를 처리하기에는 너무 어린 공작을 보좌하며 그럭저럭 공국을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적자. 프로빈스 하나의 설움)
이런 신하들의 노력에도 공국의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어린 공작의 재위는 필연적으로 행정의 비효율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를 틈타 활동하는 부패한 세관들이나 교회의 횡포가 고개를 들었고, 타마르의 명령을 받고 조지아에서 오는 외교관들이나 귀족들을 대접하는 비용도 재정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공국의 수입은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세수를 늘릴 수는 없다. 대신 과감히 교회 기부를 줄인다)
"국고에 있는 자금은 얼마 되지 않는데 수입마저 적자라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어서 어떤 수단을 취해야 하지 않습니까? 방법은 강구하셨습니까?"
중신 회의에서 재무 관리를 맡은 테오도로스를 향해 비판과 추궁이 쏟아졌다.
"그것이…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올시다."
"그럼 이대로 두고보자는 말이오? 세율을 높여서라도 이 상황을 타개할 수밖에 없잖소?"
이렇게 몰아붙이는 사람은 대장군 에반겔로스였다. 그는 콧대 높은 오만한 성격과 비판적인 시각으로 중신들 사이에서 이름난 사나이였다.
"세율을 높이는 것은 안 될 말이올시다. 지금 어린 공작 저하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과 불신이 퍼져 있어요. 또 조지아의 힘을 빌리는 것과, 조지아에서 오는 귀족이나 상인들의 공공연한 횡포에 대한 불만도 있기 때문에……세율을 높였다가는 이게 다 터져버릴 수 있다, 이 말이올시다."
"그럼 대책이 없다 그거요? 일국의 재무를 맡는 사람으로서 그게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이오? 한심한 소리 집어치우고 지금이라도 세율을 높여야 하오!"
"잠깐만."
격화되는 논쟁에 재상 아르세니오스가 끼어들었다.
"대장군, 그대의 분노를 억누르시오. 테오도로스 공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세율을 높이는 것은 주민들의 불만을 살 뿐이에요. 그렇다고 재정 문제를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대장군의 말에도 공감합니다. 그러니 세율을 늘리기 보다는 지출을 줄이도록 합시다."
"어떤 식으로 말이오?"
"교회 기부금을 줄여야지요."
재상의 대답은 명쾌했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불만을 가질 텐데?"
"아예 안 내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재정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덜 내겠다고 하면서 합의를 보면 큰 문제 없이 해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내가 나서서 처리하도록 하지요."
그 의견에 반대할 사람도 명분도 없었다. 교회에서는 약간의 불만을 표시했지만, 재상의 뛰어난 수완에 그 불만은 별 문제 없이 처리되었다. 물론 어린 공작의 신심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분열의 시작)
그렇게 공국이 운영되는 사이 제국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새 황제 이사키오스 2세의 인기는 겨우 몇 년 사이에 급속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시칠리아인들을 막고 서부 국경을 위협하던 헝가리와 강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곧이어 일어난 불가리아의 독립 운동과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황제의 모습은 신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를 진압할 여력이 없던 황제는 결국 불가리아의 독립을 승인하고 말았고, 제국은 또다시 다뉴브 강 일대의 영토를 상실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사키오스 자신이 반역으로 황제가 된 만큼, 그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이사키오스 2세는 이러한 반역의 움직임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고, 마침내 첫 반란의 불길이 아드리아노폴리스를 근거지로 한 마케도니아 공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편 트라페주스의 궁정에는 트라키아에서 온 밀사가 재상 아르세니오스를 만나고 있었다. 재상은 밀사가 품 안에서 꺼낸 서신을 건내받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재미있는 제안입니다."
다 읽고는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트라키아 공작 저하께서는 무엇이 필요하신 것입니까?"
"읽어보지 않으셨습니까. 트라페주스 공과의 상호 협약과 우호일 뿐이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재상의 입끝은 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정말 협약과 우호 뿐입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질 않습니다. 트라키아 공께서 필요하신 것은 우리 주군의 이름과 가문의 후광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것이……."
"나는 동맹의 협약을 맺자는 그 문장에서부터 트라키아 공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제국 내에서 귀족들끼리 연합하는 것은 모반의 물밑 준비를 위한 작업이라는 것은 이미 오랜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요. 트라키아 공께서는 곧 모반을 일으키실 것이고, 그 명문을 위해 우리 주군의 이름을 팔려는 것이 아닙니까? 황제에 대한 단순한 모반을, 옛 제관의 주인인 콤네노스 가문의 후손에게 돌려주겠다는 명분 말이오! 어디 한 번 대답해 보시지요."
"……."
대답하지 못하는 밀사를 재상은 싸늘하게 비웃을 뿐이었다.
"이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미안하게 되었지만 빈 손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군요. 아, 혹시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으시다면 그건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밤까지만 말이지요."
(뻔뻔류 甲 이사키오스 2세)
과연 재상의 예상대로 몇 달 되지 않아 트라키아 공작의 모반 소식이 들려왔다. 마케도니아 공작의 반란을 겨우 평정한 이사키오스 2세는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궁한 상황의 황제는 자신이 한 일도 잊고 트라페주스로 칙사를 보냈다. 병력 동원을 요구하는 칙사에게 재상 아르세니오스는 거절의 뜻을 분명히 전했다. 거절의 명분은 공국 주위에 있는 이교도 무슬림의 침공이 우려된다는 것이었으나, 실제 이유는 콤네노스 왕조를 무너뜨린 장본인인 이사키오스 2세를 위해 병력을 동원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던 것 때문이었다.
"우리 주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여놓고 무슨 낯짝으로 병력 동원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입이 걸고 성급한 대장군 에반겔로스는 대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또다시 내분)
트라키아의 반란을 진압한 황제에게 이번엔 테살로니카 공작이 반기를 들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이사키오스 2세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트라페주스로 보냈던 칙사가 전해온 소식에 노발대발한 황제는 이 소식에 분을 참지 못했는지 들고 있던 유리잔을 황궁 벽에 던져버렸다. 던져진 유리잔은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마치 제국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이.
(타마르 여왕의 첫 회임)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이 우울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것과는 달리 조지아의 궁정은 축제 분위기였다. 타마르 여왕이 드디어 임신한 것이다. 남성 후계자가 없는 바그라티오니 왕가는 현재 단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궁정 사람들은 입을 모아 사내아이이기를 기원했고, 누구보다 여왕 자신이 아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트라페주스 공국에서도 축하 사절을 보냈다. 사절로 간 재상의 얼굴은 그러나 썩 쾌활하지 않았다.
'아들이 아니어야 할 터인데.'
재상을 비롯한 트라페주스의 궁정 신하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남자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마르 여왕이 죽는다면 현재 조지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트라페주스 공작 알렉시오스이기 때문이었다. 저절로 떨어질 왕위에 대한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부디 여왕이 딸을 낳게 해 주시옵소서, 가장 공정하신 우리의 주님.'
재상은 남몰래 조지아의 궁정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기도를 올렸다.
(꿈★은 이루어진다)
새해 첫 달부터 급보가 들어왔다. 타마르 여왕의 출산 소식을 듣고 조지아 궁정에 심어놓았던 첩자가 보낸 소식이었다.
"아들이라더냐 딸이라더냐?"
보고를 전하러 온 밀사에게 재상이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다급한 질문을 들은 밀사의 만면에 함박웃음이 꽃피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딸이란 말인가?"
밀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 하느님!"
두 팔을 한껏 벌리며 기쁨을 못 이긴 재상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도중에 왼팔이 벽에 세게 부딫혔음에도 재상은 득의양양한 웃음보를 터뜨릴 뿐이었다.
(또 분열, 분열…)
콘스탄티노플의 황궁은 새해의 시작에도 여전히 어두웠다. 희망 없는 보고만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새해 벽두부터 파플라고니아 공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황궁에 당도했다. 토벌군이 파플라고니아로 짓쳐들어가자 이번엔 트라케시아 공작이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황제는 당장 토벌군을 편성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연이은 반란으로 끝없이 부과되는 군역에 각지의 영주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앙겔로스 왕조의 그림자는 더욱 길어질 뿐이었다.
(본격적인 교육의 시작)
서유럽에서 알렉산드리아 해방의 기치를 들고 십자군이 조직되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정세 가운데에서도 트라페주스 공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공작 알렉시오스의 나이가 정규 교육을 받을만한 다섯 살의 나이가 되었던 것이다. 신하들이 앞다투어 그들의 주군을 가르치려고 했고, 그에 따라 알렉시오스의 교육은 궁정에서 이루어졌다.
(꺼지지 않는 반란의 불길)
제국의 내분은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파플라고니아 공은 겨우 진압되었지만, 트라케시아 공에 이어 이번엔 아나톨리아 남부에 만만찮은 세력을 가진 Cibyrrhaeot 공작이 거병을 선포했다. 이사키오스 2세는 이제 분노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리고 제국의 영주들 역시 싸울 기력조차 없었다.
(둘째도 딸이라니)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이 조지아의 궁정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타마르 여왕이 두번째 자식을 출산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왕에게는 불운하게도, 그 아이는 사내가 아닌 계집아이였다. 트라페주스의 중신들은 소리없는 환성을 질렀다.
(다비드의 군사 교육)
알렉시오스의 동생 다비드도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다. 다비드는 또래 아이들에 맞지 않을 정도로 몸이 튼실하고 몸집이 컸으며, 타고난 지도력이 있어 또래들과 놀 때는 언제나 대장 역할을 하였다. 중신들은 상의 끝에 다비드에게 군사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기로 결정하고, 대장군 에반겔로스가 책임지고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결국 터졌다, 렐름 듀레스)
폭군이라고 불리던 안드로니코스를 폐위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지 어언 4년만에 이사키오스 2세의 입지는 지극히 줄어들었다. 시민들의 지지는 바닥을 쳤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무리하게 동원령을 내린 결과 지방 영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 하였다. 흔들리는 기반 위에 황제가 꿈꾸었던 앙겔로스 왕조의 평안은 이미 몽상에 불과하게 되었다. 마침내 분노한 영주들이 이사키오스 2세가 전임 황제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했던 점을 걸고 넘어지자, 황제의 통치권과 명분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제국은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혼란과 내전 상태로 치달았다.
(알렉시오스, 야심을 품다)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이제 갓 일곱 살이 된 공작 알렉시오스도 어렴풋하게나마 웅비의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알렉시오스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웠고 총명했다. 자신의 부모와 할아버지가 황제의 손에 파멸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어린 알렉시오스의 마음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으리라.
(1189년 말엽의 알렉시오스)
참고로 체르손 공작과의 동맹은 실수로 체결한 겁니다 -_-; 저걸 왜 체결했는지 원...
첫댓글 우.. 연대기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잘 보고 갑니다 + +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실제 플레이와는 약간 다릅니다. 무엇보다 알렉시오스가 성장이 가능하도록(즉 나이 먹음에 따라 능력치가 상승할 수 있도록) 수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 알렉시오스로 하신다면 교육 효과를 통한 능력치 상승밖에 바랄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기본 능력치가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니 플레이가 힘들어지고, 왜인지 몰라도 시작부터 군사 교육 트레잇 달고 있습니다 -_-; 즉 군사 관련 교육밖에 못 바란다는 소리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샬 능력이 군주에게 가장 필요 없는 능력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DVIP에서 해보시면, 이 알렉시오스가 그닥 할만하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야말로 혈통 개선이 절실한 상황.
삭제된 댓글 입니다.
Silvery_Wing님의 연대기도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