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마당 없고, 새벽미사 참례자 많아 놀라" "남성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만 14개, 5300여 명 중 500여 명이 성경공부 시골 본당 사목자로서 부러운 신앙촌
광주대교구 장흥본당 최민석 주임신부는 조용훈(안드레아) 사목회장 등과 함께 5~11일 서울 도곡동본당으로 교환사목을 왔다.
도곡동에 도착한 최 신부는 눈이 휘둥그레해 졌다. 말로만 듣던 대한민국 최고 부자들만 산다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밀집지역에 첫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시야가 탁 트인 농촌, 논과 밭, 산과 들이 펼쳐진 곳을 다니던 시골 신부가 국내에서 가장 높은 69층 타워팰리스 등 초고층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도곡동성당에 와보니 장흥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울에서 차로 5시간 반 거리인 장흥이 시골 중의 시골이라면, 도곡동은 도시 중에서도 도시였다.
▲ 장흥본당 최민석 주임신부가 7일 도곡동본당 신자들이 대절한 대형승용차를 타고 서울나들이게 나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승용차 유리창과 지붕에 초고층 빌딩들이 비친다.
|
최 신부는 도곡동성당에 와서 두 번 놀랐다. 우선 성당 건물 대신 초고층 아파트 1층과 5층 등 건물 일부를 쓰는 점과, 성당에 마당이 전혀 없는 점이었다. 장흥성당보다 열악한 구석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부터 매일 오전 6시에 봉헌되는 새벽미사를 집전하고, 성무일도를 바친 최 신부는 남성ㆍ여성 레지오 주회합에서 훈화를 하는 등 일상적인 주임신부 일과를 충실히 수행했다. 최 신부는 "남성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만 14개가 되고, 새벽미사 참례자들이 많은 데 놀랐다"며 "5300여 명 신자 중에 500여 명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어 시골 본당 사목자로서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도곡동 신자들의 신앙과 공동체에 대한 열정에 대해 "신앙촌이 따로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일상적인 도시 신부 역할
"우리 신부님 참~ 멋지지요잉?"(장흥본당 신자) "멋지지요잉? 잉? 하하하~"(도곡동 본당 구역장들) 7일, 건물 5층에 있는 회합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도곡동본당 구역장들과 장흥본당 관계자들이 만난 간담회에서 자기소개 시간에 한 장흥본당 신자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최 신부를 소개하자 사투리를 따라 하다 웃음보가 터진 것이다. 최 신부와 장흥 신자들은 이날 도곡동본당 여성구역장 11명과 사목회 임원 등이 모인 자리에서 최 신부 약력을 소개한 후에 농촌 현실과 생명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 신부는 서강대에서 환경생태학을 공부했으며, 전국 가톨릭농민회 담당신부를 지낸 농촌ㆍ자연생태 전문가다. 이날 만남은 구역장들이 유기농 농산물 우수성을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 본당 전체에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최 신부와 장흥 신자들은 생명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도시 신자들에게 전했다.
▲ 최민석 주임신부가 7일 도곡동본당 여성구역장들과 만나 딸기를 집어들고는 유기농 농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최 신부는 "농산물은 결과(상품)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한데, 소비자들은 과정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생산물로만 평가한다"며 "농약과 각종 약품으로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농산물은 생명과 환경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접시에서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딸기를 집어든 최 신부는 "딸기는 따면 몇 시간만 지나도 풀이 죽는 게 정상인데 윤기가 나는 것은 시들지 않게 하는 코팅제를 뿌렸기 때문"이라며 "참 먹을거리를 구분할 줄 알고, 농사가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일임을 알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또 먹을거리와 농촌, 생명,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마인드 변화부터 필요하다면서, "하느님 안에 한 형제자매인 우리는 서로 믿음으로써 교류하며 함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준비한 딸기를 보고 흠칫 놀란 구역장들은 "알고 보면 먹을거리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걱정하면서 "장흥본당 신자들이 기른 유기농 먹을거리를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광주가톨릭농민회 김창화(프란치스코, 장흥본당) 회장은 "장흥은 전국에서 표고버섯이 제일 많이 나고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자랑하며 "버섯이나 쌀부터 조금씩 교류의 물꼬를 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기도와 나눔, 영적 교류도 도곡동본당 정원경(베드로) 도농협력분과장은 "도곡동과 장흥이 자매결연을 하면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본당 및 가족단위 생태체험과 여름 신앙학교, 기도와 나눔 등 물적ㆍ영적 교류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 구역장은 "올해가 본당 설정 10주년이 되는 해라 묵주기도 365만 단을 바치기로 했는데, 지난해부터 열심히 했는데도 100만 단을 조금 넘겼다"며 "장흥 신자들이 조금 도와주면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다시 웃음바다로 이끌었다.
11일 주일미사는 아주 특별하게 봉헌됐다. 두 본당은 같은 날 교중미사 시간에 자매결연 협약식을 갖고 협약서에 서명하며 교류할 것을 약속했다.
같은 날 교중미사 때 자매결연 협약식 가져
▲ 도곡동본당 양경선(프란치스코, 왼쪽) 사목회장이 11일 교중미사에서 최민석 주임신부와 함께 자매결연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
최 신부는 이날 미사가 끝난 뒤 거행된 자매결연식에서 도곡동 양경선(프란치스코) 사목회장과 제대 앞에 나란히 앉아 신자들이 보는 가운데 서약서에 서명했다. 서명에 앞서 장흥본당 신자들은 몇몇 공소 선교사 및 공소회장 등이 등장하는 본당 소개 동영상을 상영해 도곡동 신자들이 장흥공동체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했다. 서명 뒤에는 최 신부, 도곡동 정수용 보좌신부 등과 함께 자매결연 현판식을 거행했다. 신자들은 시루떡과 빵, 음료수 등을 나눠 잔칫집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곡동 김명희(스텔라) 총구역장은 "자매결연을 함으로써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더 편하게 구할 수 있게 됐다"며 "누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지 생산현장 모든 과정에 우리가 직접 참여하고 도우며 배울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이힘 기자
▲ 도곡동성당 정문 앞에서 열린 자매결연 현판식에서 도곡동본당 신자와 장흥본당 신자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