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방금 말씀드린 그런 항복하기 어려운 마음이 우리의 극락왕생을 장애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다음과 같은 관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고 아직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불가피하게 범부의 마음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권속을 탐착하고 심지어 모든 걸 탐착할 수도 있는데요. 이른바 견혹사혹(見惑思惑)이라는 탐진치와 또 미세한 진사혹(塵沙惑)과 근본무명(根本無明)을 항복하거나 제거하지 못했지만, 어찌 됐든 간에 우리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한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탐착이 있을 수 있지만, 임명종 시 양자택일해야 할 때 우리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걸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계속 이 사바세계에 체류하는 걸 선택해야 할까요? 당연히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걸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걸 선택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하는 이런 결정된 마음은 본래부터 이미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매우 깊은 원생심(願生心)이 있긴 하나, 아직도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시종일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지금 당장 나더러 왕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나는 인간 세상을 떠나기를 몹시 아쉬워할 수도 있는데요. 왜냐하면 자기는 아직 늙지 않았고, 자손들을 양육해야 할 책임도 다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녀들 모두 이미 결혼하여 자립했음에도 여전히 손자가 크는 걸 지켜봐야 한다거나 기타 각종 소원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략히 말해서, 우리가 비록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려 하지만, 어쨌든 아직 모두 범부이므로 틀림없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물론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예를 들어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거나, 병이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거나, 가정형편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되도록 빨리 왕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염불인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극락정토에 왕생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그런대로 순탄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아직 탐착하는 마음이 남았을 텐데요. 이러면 왕생을 장애할까요? 장애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왕생을 장애합니까? 본래 아미타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중생을 구제하시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본래 우리가 바로 이런 중생이기에 극락세계에 왕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꼭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할 필요 있을까요? 꼭 아미타부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 있을까요? 우리는 자기 자신만 의지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임종 시 양자택일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다시 세간의 일체에 대하여 조금도 탐착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지금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고 이 세상은 이미 당신과 무관하며 당신이 아무리 미련을 갖고 아무리 집착하고 아무리 이 세상에 남아있고 싶어 한들 전부 헛수고이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육신을 이제 우리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하고 이미 임종에 이르렀다면, 이때 우리의 집착하는 마음은 반드시 전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결정코 왕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순간까지 여전히 집착하여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건 평소 극락세계에 왕생하겠다고 하던 마음이 거짓이지 진짜가 아님을 증명해 주고, 이러면 퇴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데요. 당신에겐 당신 본인의 업이 있고, 당신의 자손들에겐 자손들의 업이 있는데, 우리가 죽은 뒤에 아직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하였고, 아직 지옥에 떨어지지도 않았으며, 아직 천상계에 태어났거나 즉각 환생하지도 못했다면 지금의 이 상태가 바로 중음신 상태입니다. 중음신의 수명은 기껏해야 49일인데, 이 49일 이내에 지난 과거 생들과 금생에 지은 선업과 악업에 따라 윤회 환생하기 때문에 중음신(세간에서 보통 영혼이라 부름)이 영원히 이 가정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을 집착하여 권속과 이별하기 아쉬워하고 이 환경을 떠나기 서운해하거나 재산(동산, 부동산)에 미련을 갖더라도 절대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아야 하니까요. 자손들과 영원히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신식(神識)이 세세생생 이 집 안에 머문다거나, 나아가 세세생생 환생하여 나의 자손들과 권속이 되려고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업보의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맨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양자택일할 때, 우리는 극락세계를 선택하고 다시는 사바세계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항상 이 사바세계에서 금생의 배우자와 부부가 되려고 하거나, 세세생생 자손들과 권속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업이 각자 다 다르므로,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도윤회가 무상하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요. 무상의 본질이 바로 고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 공, 무상, 무아”입니다. 따라서 임종 시에는 반드시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려놓았다곤 하나 실제로 잃어버린 건 아닙니다. 왜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한 후에는 도리어 신통력이 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후손들을 찾아 보고 싶으면 즉각 돌아와서 후손들과 과거 세세생생의 부모 권속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육도에서 육회하고 계실 텐데, 그때 우리에겐 신통력이 있으므로 그들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서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권속들을 떠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이렇게 해야만 그들을 볼 수 있고 신통력으로 그들을 구제할 수 있으며 후손들을 보살펴 줄 만한 충분한 공덕을 갖출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결정코 극락세계에 왕생할 사람으로서, 이러한 결심은 지금부터 임종 시까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자손들의 곁을 떠나기 아쉬워하지만, 이런 마음은 자연스레 무의식중에 나타난 마음이므로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극락세계로 귀순해야 합니다. 어쨌든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결정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고, 왕생에 있어서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이래야만 진정한 염불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