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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프리뷰] 국립현대미술관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여성조선 기사 입력 : 2024.06.18. 21:53
기자명 임언영 기자
주목 덜한 1960-70년대 구상회화
이건희컬렉션 104점 포함...‘기증’의 의미 되새기는 자리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다.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렇게 양과 질이 확장된 미술품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근 5년간 기증된 작품 중 한국 화단의 형성과 성장에 자양분이 된 1960-70년대 구상회화를 재조명하는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전시다. 추상화가 한국 현대미술의 대세가 되면서 아카데믹한 그림이 구시대의 미술로 여겨지거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포착해서 기획한 자리다. 출품작들은 최근 기증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 많다.
전시는 1부 ‘한국 구상미술의 토양’과 2부 ‘새로운 의미의 구상’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1부는 국전을 통해 아카데미즘 미술의 초석을 다진 1세대 유화 작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서양화 양식의 사실주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자연주의적 발상을 토대로 엄격한 사실성을 보인 이병규, 도상봉, 김인승, 이종무, 김숙진, 김춘식 등의 작가들이 포함된다.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인상주의적 색채를 구사하여 주변 풍경과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병규의 <고궁일우(古宮一隅)>(1961)와 <자화상>(1973), 작가의 취향이 스며든 정물을 자연스럽고 안정되게 화면에 채워 나간 도상봉의 <국화>(1958), <포도와 항아리>(1970), 어촌 풍경이나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한국적인 인상주의 화풍으로 담아낸 김춘식의 <포구(浦口)>(1977)등이 대표적이다.
2부에서는 구상과 비구상의 완충지대에 속했던 작가들을 망라한다. 자연에 바탕을 둔 조형적 질서를 추구했던 윤중식, 박수근, 황염수를 시작으로 황유엽, 이봉상, 최영림, 박고석, 홍종명 등 1967년 구상전을 발족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야수주의와 표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대담한 요약과 강렬한 색채의 구사를 특징으로 하는 윤중식의 <금붕어와 비둘기>(1979), 모래나 흙을 화면에 첨가하여 독특한 질감을 만들며 민담이나 설화로 해학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최영림의 <만상(滿想)>(1975), 특유의 마티에르와 대담하고 거친 화풍으로 전국의 명산을 다뤄 ‘산의 화가’로도 불렸던 박고석의 <도봉산>(1970년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장 복도 공간이 흥미롭다. ‘기증, 모두를 위한 예술’을 주제로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 보고자 마련된 복도 공간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5년 여간(2018년-2023년) 기증받은 작품의 경향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동시대 회화 등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대량 수집되어 소장품의 양과 질이 상향된 부분을 도식화하여 보여준다. 이병규, 윤중식, 김태 유족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기증의 뜻과 공유의 과정을 만나볼 수도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예술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기증자의 뜻이 전시장을 찾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향유의 즐거움을 주고 한국 미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번 전시가 다채롭게 전개되어 온 한국 구상회화의 바탕과 여정을 살펴보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MMCA 기증작품전: 1960-1970년대 구상회화]
관람기간 : 2024. 5.21~2024. 9.22
관람시간 : 화~일: 10:00-18:00(월요일 휴관)
전시실 : 과천 2층, 3, 4 전시실
관람료 : 2,000원
문의 : 02-2188-6000
이건희 컬렉션 그 후···대중의 품에 안긴 역사적 작품들
서지혜 기자
서울경제 기사 등록 : 2024. 6. 5. 21:36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전
국현에 기증된 구상작 중 153점 엄선
2021년부터 기증품 비중 급격히 늘어
전시 다양화 등 공익적 순기능 이어져
1960년대 이후 추상화가 현대 미술의 대세가 되면서 구상화는 구시대 미술로 여겨져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구상화의 영역에서 착실하게 독자적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소중한 작가들이 많다. 어렵고 난해한 추상화 대신 현실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구상 작품으로 자신의 취향을 채우는 컬렉터들도 여전하다. 공공 미술 기관은 추상화 일색인 미술계에서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한 기획을 통해 소개해 전시의 다양화에 기여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쉽진 않다. 학술적 가치를 가진 구상 작품은 대개 가격이 비싸 대여나 구매가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와 소장자들의 작품 ‘기증’이 중요한 이유다.
지난달 2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전은 미술관에 기증된 1960~70년대 구상회화 153점을 작가별로 소개하는 기증의 순기능이 잘 드러난 의미 있는 전시다.
전시된 작품 153점 중 104점은 2021년 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소장작이다. 지난 2021년 이건희 컬렉션 1488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증품 규모는 크게 늘어났다. 이건희 컬렉션에 영향받은 작가, 소장자들이 연이어 기증 행렬에 나선 덕분이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195점, 한운성 등 작가들의 기증 173점, 작가 유족의 기증 183점 등 2021년 한 해 총 2134점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모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3년 12월 기준 전체 소장품 1만1560점 중 절반이 넘는 6429점(55.6%)을 기증품으로 채웠다. 이병규와 윤중식의 유족들은 이건희 컬렉션에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것을 알고 같은 해 하반기에 각각 13점, 20점을 추가 기증하기도 했다.
전시의 1부는 ‘한국 구상 미술의 토양’, ‘새로운 의미의 구상'으로 구성된다. 해방 전에는 서양화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 기관이 없었다. 국내 1세대 유화 작가들은 일본의 근대식 미술학교에서 배운 서양 미술을 국내에 전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1950년대 한국 화단에 추상 미술을 표방하는 서구화 물결이 밀려오면서 작가들은 불안을 느끼지만, 구상 회화가 한국의 사회적 토대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취향을 채운다고 여기며, 고집스럽게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부에 전시된 작품에는 이 같은 작가들의 고뇌가 그대로 묻어있다. 세밀한 관찰과 데생을 바탕으로 ‘여인좌상’을 완성한 김인승은 “무엇보다도 인물화의 본질은 인간 성격의 표현에 있다”며 얼굴 묘사에 정성을 쏟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붉은 원피스의 여인’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물이나 정물에서 벗어나 당대의 현실과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며 구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들도 있다. ‘그림은 생활에서 우러나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풍경을 과장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김형구(어부의 가족)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 지방의 특색이 담긴 산천초목의 모습과 각 지역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상을 화면에 담아낸 김춘식(포구)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2부 ‘새로운 의미의 구상’에서는 학술적 화풍의 구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구상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이들은 강한 자의식 아래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개척하며 주체적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BTS의 멤버 RM이 여러 점의 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윤중식(1913~2012)의 작품에서 특히 이러한 특성이 잘 나타난다.
재료비가 부족해 미군 천막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김태의 회화도 기증 덕분에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함경남도 홍원 출신의 김태는 생선을 줄에 엮어 해풍에 말리는 건어장 풍경을 즐겨 그렸다. 생전에 그는 “어촌에서는 서당 수업료를 어물로 대신하곤 했다. 펴서 말리는 물고기가 새가 날아가듯 신기해 보였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국립현대미술관으로의 미술품 기증은 1971년에 시작되어 2023년 12월 기준, 전체 소장품 11,560점 가운데 기증 작품은 6,429점으로 전체 대비 55.6%를 차지한다.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근 5년 여간(2018년-2023년) 기증받은 작품의 경향을 분석하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21년 이건희컬렉션을 기점으로 미술품 기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개인 소장가나 작가 유족 등이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예로, 이병규와 윤중식의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되어 각 5점, 4점이 기증된 후, 유족들에 의해 2021년 하반기에 각 13점, 20점이 추가 기증으로 이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5년간 작가, 유족, 개인소장가 등으로부터 2,400여 점의 작품을 기증받았다. 회화, 조각, 사진, 판화, 공예 등 전 장르를 망라한 기증작들은 미술관의 부문별 소장품 보강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사의 심화 연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미술관은 이병규(1901~1974), 윤중식(1913~2012), 김태(1931~2021) 등의 작품을 수증함으로써 한국 구상회화를 보강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기증작 중에서도 비교적 미술사에서는 소홀히 다루어진 1960~70년대 구상회화를 소개한다. 아카데미즘의 초석을 다진 이병규, 도상봉, 김인승을 비롯하여, 현대미술의 조류를 수용하면서도 독자적 형식을 보여준 박수근, 황유엽, 박고석, 김태, 김영덕 등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주요 작가 및 작품을 선보이고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제고할 것이다.]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전] 1부. 한국 구상미술의 토양
일본의 근대식 미술학교는 한국의 서양화 양식의 유입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방 전까지 조선에는 서양화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었고, 이에 일본 유학생들은 서양 화단의 도입기에 활발하게 활동했다. 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등 1세대 작가들은 일본에서 배운 서양미술을 국내에 전하며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이들은 석고상 연습, 나체 연구, 해부학 학습을 중심으로 하는 도쿄미술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5년간의 사생 기술을 습득하여 아카데믹한 화풍을 구현했다. 1부 초입에 선보이는 이병규, 도상봉, 오지호, 김인승의 정물, 풍경, 인물 작품에서는 이들이 일본에서 체득한 자연주의 화풍을 엿볼 수 있다. 대상에 비치는 미묘한 빛의 변화를 포착해서 온화한 표현과 색상을 사용하고, 그림자는 보라색, 청색으로 보색효과를 냄으로써 대상의 색채를 강조하고 선명히 보이게 만들었다.
1950년대는 한국 화단에 불어닥친 새로운 경향의 추상미술을 표방하는 서구화 물결이 정통적 화법을 지켜나가던 작가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고조시켰다. 상대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구상계열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다시 돌아보며 하나둘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1958년 이종우, 이병규, 김인승, 도상봉, 이동훈, 김형구 등이 주축이 되어 ‘우리의 미술은 아카데미즘의 토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뜻을 같이하면서 목우회 창립에 이른다. 목우회는 한국의 구상화단을 본격적으로 가꿔간 단체로 초기부터 한국적인 아카데미즘을 계승하였다. 목우회의 결성은 우리나라 구상회화가 체계적으로 성장하고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실제적 형태를 지향하는 구상회화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과 시선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해하기 쉽고, 상식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재현하는 예술로 주목받았다. 때로는 ‘국전 스타일’로도 불리며 당시 한국의 사회적 토대 위에서 살아가던 대중의 취향을 채우고 아카데미즘의 초석을 굳혔다.]
[MMCA 기증작품전: 1960~70년대 구상회화전] 2부. 새로운 의미의 구상
다른 한편 1960년대에 작가들은 종래의 고식적인 아카데믹한 화풍에서 벗어나 구상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자연, 사물의 형태, 인간의 이야기 등을 왜곡과 변형을 통해 심상적인 풍경으로 그려나갔다. 뿌리는 구상 영역에 두되, 비구상의 중간 영역을 취하는 절충적 작품들이었다. 이 영역의 작가와 작품들은 하나의 특정한 범주에 집어넣기 어려울 만큼 여러 복합적인 요소의 상보관계로 얽혀있다. 2부를 구성하는 작가들은 도쿄미술학교의 초창기 유학생들과는 달리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대부분 미약하나마 한국에서 기초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이미 강한 자의식 아래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을 개척해 가는 주체적인 사고가 밑바탕에 있었다. 이들의 그림은 대개 사실성을 추구하되, 풍경화에서는 인상주의의 빛의 효과를, 인물화나 정물화에서는 후기 인상주의 혹은 야수주의의 형태 왜곡을 보인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국화단에서는 갖가지 새로운 미술사조가 전개되었고, 특히 추상미술이 확산하였다. 이제 국내 화단은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회화 양식에 몸을 실었고, 다수의 구상계열 화가도 속속 이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1967년, 그들 중에는 추상양식과 결코 혼혈되지 않는 자신의 구상주의적 체질을 깨닫고 돌아서는 작가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창작미술협회, 모던아트협회 등에 가담했던 중견, 기성 작가와 신예들은 ‘새로운 의미의 구상을 지향한다’는 목표로 구상전을 결성하게 된다. 김영덕, 박성환, 박고석, 박돈, 박항섭, 이봉상, 최영림, 홍종명 등이 창립 작가이다. 이들은 특별히 창립 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구상’이라는 개념을 화두로 삼고 추상미술의 범람으로 그 입지를 위협받던 구상계열의 화풍을 진작하는 한편, 수동적 태세를 지양하고 내면의 이미지를 독자적으로 표출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층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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