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뿌리는 그냥 두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암암리에 나무를 보호하며 새봄에 밀어 올릴 생명의 불씨를 도닥거린다. 눈밭에 뿌리를 캐어 보면 새싹이 움터 올라오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새싹이 봄날 갑자기 올라오고 꽃망울이 터지는 것이 아니다. 목련 나무는 여름부터 꽃자리를 전구처럼 매달고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야 봄날 꽃을 피운다. 나무는 살아남으려고 끊임없이 꼼지락거려야 한다. 냉이는 눈밭에서 뿌리가 통통하게 굵어져 상큼한 밥상에 오른다. 이처럼 얼음 밑 차가운 흙 속에서 한 치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 멎은 듯 멎지 않고 숨 쉬고 있다. 오리는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떠가지 싶어도 그게 아니다. 물속에 잠긴 다리의 물갈퀴는 노를 젓듯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한 무리의 새들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면 위로 날렵하게 내려앉는다. 저 수면 위에 조용하게 앉아있는 것 같은 새들도 물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물갈퀴를 움직여야 한다. 하늘을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새 같아도 연신 날갯짓을 하여야 한다. 새라고 그냥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다. 어디고 삶의 현장은 외관상으로는 아주 조용하지 싶어도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치열하다.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남에게 미루거나 핑계를 대며 가만히 있으면 나 하나 잘못으로 순식간에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어 망가질 수 있다. 오리의 물갈퀴가 평화로운데 나만 힘들게 움직여야 하느냐며 멈추면 오리는 금방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물속에 빠져들면서 평화로움은 오간 데 없게 된다. 비록 일부분이지만 각자의 기능이 있으므로 그 기능에 맞게 제때에 제대로 작동하여야 한다. 그래야 전체가 무난해질 수 있다. 때로는 한없이 자랑스러우며 아름답고 넉넉해 보이다가 갑작스레 무너져 안타깝다. 그러나 쉽게 굴하지 아니하고 그때그때 잘 견뎌내는 성숙한 모습을 보며 경외감을 지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