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래를 위하여 *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디 푸른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 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바다가 아름다운 까닭 *
자정이 넘은 시각, 잠이 오지 않아 텔레비전을 켜자 바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뭘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뉴스나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화면에 눈길을 고정했다. 화면에는 향유고래 떼가 망망대해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방영돠고 있었다.
'고래는 원래 육지에 살던 발달린 포유동물이었는데 왜 바다로 갔을까,아마 육지보다 바다에서 먹이를 사냥할 수 밖에 없는 어떤 환경이 주어졌을 거야.'화면에 눈길을 둔 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향유 고래의 삼각형 꼬리가 수평선 위로 힘껏 솟아오르는 장면이 비쳐졌다.
순간, 바다의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듯했다. '아. 바다가 아름다운 까닭은 바다에 고래가 살기 때문이다. 만일 바다에 고래가 살지 않는다면 바다는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그날 밤, 나는 잠 못 이루며 내 인생이라는 바다를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내 인생이라는 바다에 고래 한 마리 살아왔는가. 살아왔다면 어떠한 고래가 살아왔는가 그럼으로써 내 인생이라는 바다는 진정 아름다웠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인생이라는 바다에 어떤 고래가 사는지 알 수 없다. 내 인생이라는 바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아무런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갈수록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면서 내 인생이라는 바다에 그래도 사랑이라는 고래 한 마리, 시라는 고래 한 마리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고래 때문에 그 동안 내 인생이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비로소 잠이들었다.
물론 시와 사랑이라는 고래가 내 인생의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 많은 고통의 과정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통 없는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고통은 아름다움의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내 인생이라는 바다가 사막처럼 황폐화되지 않은 것은 바로 시라는 고래 한 마리 때문이었다.
나는 가끔 강연 자리에서 청년들에게 '고래를 위하여'를 낭독해주고 바다와 고래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때가 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 고래를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인생을 바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래는 강이나 내나 연못에 살지 않는다.
고래가 강에 사는 것을 보았는가. 자기의 인생을 강이라도 생각하면 그 인생이라는 강에는 민물고기밖에 살지 못하고 연못이라고 생각하면 그 인생이라는 연못에는 잉어밖에 살지 못하고 어항이라고 생각하면 그 인생이라는 어항에는 금붕어밖에 살지 못한다.따라서 무엇보다 내 인생을 푸른 바다라고 생각해야 그 바다에 고래가 살 수 있다. 꿈이라는 고래, 목표라는 고래, 열정이라는 고래, 미래라는 고래, 이래라는 고래가 살 수 있다.
나도 젊은 시절부터 시인이라는 꿈의 고래, 문학이라는 고래 한 마리를 늘 키우며 살아왔다. 만일 그 고래를 키우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젊었을 때와는 달리 내 인생이라는 바다에 연민이라는 고래, 용서라는 고래, 사랑이라는 고래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야 말로 사랑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을 늘 푸른 바다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한 마리 고래가 되어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다가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가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늠름한 한 마리 고래가 수평선 위로 솟구쳤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솟구치는 모습은 내 청춘의 꿈의 구체적 모습이었다.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다면 푸른 바다가 아니듯, 내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았다면 청년이 아니었다. 밤의 바다에 그토록 오래도록 별들이 찬란히 빛나는 것은 잠들지 못하는 내 꿈이라는 고래의 드높은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청년기 때의 내 꿈은 장생포나 구룡포 어느 산중턱,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는 거였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쓰고 국어를 가르치는 한 마리 고래 같은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내 청춘의 가장 큰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장생포에 가서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정박해 있는 포경선을 바라보기도 하고, 부두에 끌어 올려져 힘없이 누워 있는 고래를 오랫동안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1970년 대에 고래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상징이자 민주화라는 꿈의 은유였다.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숨막힐듯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고래 사냥'을 떠남으로써 자유와 민주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을 은유했다. 당시 젊은이들은 고래를 찾으려 동해로 떠나거나 서울이라는 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고래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만일 그들이 고래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는 오지 않았을 것 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대구시 동구 신천동 골묵에는 고래고기를 팔러오는 한아저씨가 있었다.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 정도 전봇대가 높이 서 있는 우리 집 대문 앞에 고래고기를 실은 리어카을 세워놓고 "고래고기, 고래고기이!" 하고 굵고 길게 이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난는 그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도 팽개치고 구경 나갔다. 처음에는 고래 한 마리를 온전히 싣고 와서 파는 줄알고 얼른 달려갔으나 그게 아니었다. 토막 낸 고래의 어느 한 부위를 리어카에 싣고 와서 조금씩 잘라 팔았다. 고래고기는 쇠고기보다 더 선연하게 붉은 빛을 띠었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유난히 고래고기를 즐겨 사 먹었다.
바다를 떠나 도시 변두리 어느 가난한 골목에서 한 줌 고깃덩이가 되어 인간에게 팔리던 고래, 그 불쌍한 고래의 고기를 사 와 어머니는 쇠고깃국을 끓이듯 국을 끓여 주셨다. 명절 때가 아니면 고깃국 한 그릇 먹기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그 고래고깃국을 얼마나 맛있게 비우곤 했는지 모른다.
내 비록 고래의 육체를 먹었지만 고래의 영혼만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수평선 높이 떠 있는 별들처럼 깃들어 있다. 고래! 너의 이름을 가만히 소리 내 불러보면 왠지 가슴이 따스해진다. 고래라는 말 속에는 어머니가 계시나 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