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강
목성균
아버지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손바닥만한 검붉은 반점(斑點)이 있다. 그 반점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기조차 어려운 아버지의 완강한 힘과 권위(權威)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반점은 선천적인 것이지, 병리적인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나이 팔십이 넘도록 건강하게 사셨고, 지금은 비록 중풍 든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시고도 병객인 체를 않고 지내시는데, 나는 그 반점이 원자로의 핵처럼 당신을 지탱한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버지의 그 반점을 처음 본 것은 <육이오 사변>이 나던 해 여름, 낙동강 상류의 어느 나루터에서다. 아버지와 나는 피난을 가는 길이었다. 그때, 열네 살인 나는 산모퉁이를 돌아서 엄청난 용적(容積)으로 개활지(開豁地)를 열며 흐르는 흐린 강을 아버지의 등뒤에 움츠리고 서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강을 반드시 건너야 할 아버지의 이념(理念)을 내 어린 나이로는 짐작 할 수 없었지만, 등뒤에서 점점 다가오고 있는 포성에 마음은 쫓기고 있었다.
그 나루터에는 피난민들이 가득 모여서 아비규환(阿鼻叫喚)을 이루고 있었다. 나룻배는 이미 피난민들이 떼거리로 덤벼들어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다가 요절을 내버렸고, 흐린 강을 건널 길은 직접 몸으로 강물을 헤쳐서 건너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계셨다. 이윽고 옷을 벗으시고 내게도 옷을 벗도록 이르셨다. 그리고 꼭 필요한 옷가지만 바랑에 담아 머리에 이고 허리띠로 턱에 걸어 붙들어 매셨다. 그리고 나를 업으셨다. 강을 건너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신 것이다.
"아버지 목을 꼭 잡고, 얼굴을 등에 꼭 붙여라. 어떤 일이 벌어져도 절대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아버지의 그 반점을 그때 처음 보았다. 아버지 신체의 비밀을 발견하고 나는 당혹감에 내 얼굴을 아버지의 등에 대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얼굴을 아비 등에 꼭 붙여라."
나는 엉겁결에 얼굴을 아버지의 등에 꼭 댔다. 내 얼굴이 반점에 닿지는 않았지만 바로 눈앞에 화난 아버지의 검붉은 얼굴 같은 반점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강을 건너기 시작하셨다. 강 한가운데로 한 발 한 발 꿋꿋하고 조심스럽게 내딛으시며 나가셨다.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 사람들에게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시며 건너셨다.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부딪치면 같이 쓰러져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강 한복판에 도달하였을 때, 아버지는 강바닥의 모래가 패인 곳을 밟으셨는지 키를 넘는 물에 잠기셨다. 나는 물을 먹고 엉겁결에 얼굴을 들다가 아버지의 불호령이 생각나서 아버지의 목을 더욱 꼭 잡고 얼굴을 등에 댔다. 아버지는 쓰러지지 않으시고 꿋꿋하게 모래 웅덩이에서 헤어 나오셨다. 거기서 아버지가 쓰러지셨으면 다시는 바로 서지 못하고, 우리 부자는 흐린 강물에 떠내려갔으리라.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뚜렷하게 그때가 되살아나서 등골이 오싹해지곤 한다.
아버지의 그 초인적인 의지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할 뿐인데, '내 힘이니라'는 듯이 눈앞에 아버지의 반점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드디어 강을 건넜을 때, 아버지는 모래 바닥에 나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으시고, 모래 바닥에 엎드리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양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우셨다. 내가 아버지의 우시는 모습을 본 것은 그때 한 번뿐이다. 아버지의 그 울음은 죽음의 강을 건넌 감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변 모래 바닥에 엎드려 오른쪽 어깻죽지의 검붉은 반점이 들썩거리도록 소리 없이 우시던 아버지의 아픈 한 시대는 그 흐린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아버지의 반점은 그때 그 아픈 강과 더불어 분명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후, 나는 아버지의 그 반점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어깻죽지의 그 반점을 다시는 내게 보여주지 않으시고 인생의 전성기를 거쳐 노년으로 달려오셨고, 나는 성장기를 거쳐 중년에 이르렀다.
그 강을 건너서 참 오랫동안 우리 부자는 각자의 인생을 나이 차이만큼 떨어져서 걸어왔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확신을 갖지 못하시고 불쾌하신 얼굴로 돌아보시며 저만큼 앞서 가시고, 아버지에게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 나는 주눅이 들어서 그 뒤를 따라 왔다. 그 까닭은 아버지의 힘에 대한 위압감 때문인지 모른다. 그때마다 그 강이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로서 그 필연의 강에 열네 살 먹은 내 자식을 데리고 섰다면, 과연 나는 내 자식을 건사해서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아버지는 그런 내 의지의 박약함을 눈치 채시고 나를 '못난 놈'하고 나무라시는 것만 같아서 아버지 앞에서 나는 늘 움츠러드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와 나는 다시 아버지의 강에서 만났다. 중풍에 드신 아버지는 그 흐린 강가에 앉아서 건널 엄두를 내지 못하시고 뒤따라오는 자식을 기다리신다. 아버지는 의타심(依他心)이 간절한 눈길로 뒤따라 온, 나를 바라보신다. 이제 비로소 내 등에 업혀 강을 건너가시려고 못난 자식에게 기우는 아버지가 가엽고 고맙다. 그 강에서 아버지가 나를 소중히 건사해서 건네주셨듯이 이제 내가 아버지의 숨찬 강을 건네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등만큼 완강하지 못한 내 등을 감히 아버지께 돌려 대 드린다. 그 빈약한 내 등에 기꺼이 업혀 주시는 아버지가 나는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의 목욕을 시켜 드리는데, 아버지의 그 반점을 마음대로 만져 볼 수 있어서 기쁘다. 자식 된 도리 한다는 자부심(自負心) 때문이다. 그 것은 비로소 아버지의 위압감에서 해방 된 자유로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점은 아직도 완강하고 고집스러워서 내게 '임마, 교만 떨지마-. 도리면 도리지 무슨 자부심이야….' 하시는 것 같다.
몇 달 전, 나는 하회 마을을 다녀오는 길에 그때 그 나루터였지 싶은 낙동강 상류 어디를 가 보았다. 아버지의 극적인 강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육중한 콘크리트 다리가 가로놓인 강 양안에는 생선 매운탕을 해서 파는 '무슨, 무슨 가든'이라는 간판이 달린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강은 넓은 모래 바닥에 턱없이 적은 강물이 흘러갈 뿐, 경이로운 아버지의 강에 대한 이미지는 찾을 길이 없었다.
건너편 강기슭에서 포크레인이 모래를 덤프트럭에 퍼담고 있었다. 아버지의 생사(生死)의 발자국이 사금(砂金)같이 침전(沈澱) 되었을지 모르는 강바닥을 포크레인이 무심하게 덤프트럭에 퍼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한 생애가 마침내 해체(解體)되는 것 같은 덧없는 강일뿐이었다.
첫댓글 목성균의 누비처내 유고수필집에서 읽었던 기억이 스치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