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5월의 일기, after all
미국 영화계의 전설 같은 존재인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 감독에,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가 주연했던 1939년 미국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나로 하여금 아침 태양에 푹 빠져들게 했던 영화다.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뜨는 그 찬란한 풍경으로도 그랬지만, 그보다는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압권의 문장이 더 큰 이유였다.
그 문장, 곧 이렇다.
‘Tomorrow is Another Day’
낱 단어의 뜻을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내일은 또 다른 날’일 것 같은데, 그 영화에서의 한글 자막은 그 풀이가 아니었다.
이런 풀이였다.
‘내일의 태양은 내일 또 다시 떠오른다.’
우여곡절의 삶 끝에, 남편 레트 버틀러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외톨이로 전락해버린 스칼렛 오하라가, 불타서 잿더미가 된 농장의 흙 한 줌을 쥐고 일어서면서 강인한 의지로 외친 독백이었다.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이 그 한 마디에 처절하게 녹아있었다.
내가 그 영화를 만나게 된 것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내 아직 조무래기 검찰수사관 때의 일이었다.
그 즈음의 내 삶도 참 처절했다.
엄마 잃은 7남매의 맏이로서, 쫄딱 망해버린 집안을 새롭게 부흥시켜야 할 책임감에 얽매여 힘겹게 살 때였다.
그 무거운 등짐을 감당해내기 어려워, 때론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처절한 삶의 길목에서 내 그 영화를 만난 것이다.
오하라의 그 독백 한마디가 내게 큰 힘이 됐고, 그때 살아남아 늘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는 내 지금의 삶에 이른 것이다.
결국 그 영화는 나로 하여금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꿈과 희망의 삶을 살게끔 그 이정표가 되어준 셈이었다.
오하라가 마지막 그 독백에서 앞세운 말이 한마디 있었다.
그동안 살아봤더니, 결국 그렇더라는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곧 이 말이었다.
‘After All’
2022년 5월 16일 월요일의 아침이 밝았다.
오전 5시쯤의 이른 아침에 해변으로 나갔다.
부산 해운대 해변이었다.
곧 있을 아침 태양을 맞을 요량에서였다.
그래서 이날의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과 함께, 지난날 내 가슴에 감동으로 담겼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압권의 그 대사를 다시 한 번 추억할 작정이었다.
이날의 아침태양은 먼 바다에서 곧장 솟지 않았다.
해운대 동쪽 끝자락의 고개 위로 솟을 참이었다.
바로 달맞이 고개였다.
문득 떠오르는 또 다른 추억이 있었다.
18년 전으로 거슬러 2004년 한 여름에, 하얀 담장에 빨간 나팔꽃이 피어있던 그 고개 초입의 어느 레스토랑에 남겨둔 추억이었다.
당시 나는 대검찰청 감찰부 제 2과 소속의 감사담당 검찰수사서기관으로 부산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 업무감사에 임하고 있었는데, 수감기관의 일반직 간부들 상당수가 평소 나와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어서, 그들과 어울려 그 레스토랑을 찾아 달빛 밝은 날의 운치에 매료되어, 그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는 색소폰 반주로 노래 한 곡을 불렀었다.
클리프 리처드의 ‘Vision’이라는 곡이었다.
아련한 그 추억이, 돌이켜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