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성탄절 행사 준비로 교회가 들썩이며 분주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이런저런 즐거운 추억이야 되겠지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에 대한 진지한 묵상과
재림의 주님을 기다림에 대한 소망은 희미한 듯합니다.
깨어 있는 성도들이 많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불타 없어질 세상에서 참으로 헛될 뿐인 자존심을 내세웠던 것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사흘간 누가복음을 묵상합니다.
성령님, 진리를 밝히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본문 주해)
26~30절 :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을 고지한 천사 가브리엘이 6개월 후에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소식을 전한다.
그 인사말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가진 조건이나 행한 행위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나타난다. 즉 예기치 못한 은혜이다.
천사의 문안을 받은 마리아는 당혹스러워하며 놀란다.
그것은 남자가 유다 여인에게 인사했기 때문이요, 또 비천한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구약의 위대한 인물에 버금가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표현(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때문이다.
31~33절 : 마리아가 받은 은혜의 내용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은혜의 고지가 아니라, 죽음의 고지나 마찬가지였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로 하라고 한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은 이사야서의 인용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아하스 왕에게 책망으로 주신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남의 소식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킨다.
이 말씀은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드리려고 하였다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어 주시겠다는 약속에서 나온 말씀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고 너의 왕위를 영원하도록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왕위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으로 역사적으로는 끊어졌다. 하지만 다윗의 후손은 끊어지지 않고 요셉으로 이어진 것이다.
34~37절 : 유다 관습에서 결혼은 정혼(약혼)과 결혼의 두 단계로 이루어졌다. 대개 12살 이후에 정혼하고 그 기간은 보통 1년이다. 이 기간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집에서 따로 살았다. 정혼 기간이 지나면 남자가 여자를 데려오는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정혼 상태에 있어 아직 요셉과 동침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은 다윗의 후손 요셉에게서 태어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에게 나신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에게서 ‘육적으로’ 나지 않으셨다.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것은 유다 지파의 다윗 가문을 통해 오신다는 뜻이다. 예수는 하늘로부터 오시되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천사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될 것과 그 증거로 엘리사벳의 잉태를 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전능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란 인간들의 소원을 이루고자 할 때 쓰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일에 전능하신 능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 약속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졌고 그 약속들을 이제 마리아를 통하여 이루어내시겠다는 것이다.
38절 :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새번역)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는 그 약속을 마리아가 믿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입는 것이다.
(나의 묵상)
창세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다.
그 일에 마리아를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천사가 전하자, 마리아가 그 자리에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한다.
그래서 이 장면으로 ‘우리도 말씀에 순종하자’는 식으로, 결단과 결심을 요구하는 설교를 많이 들어왔고 거기에 ‘아멘!’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아의 반응은 그저 결단이나 결심으로 되어지는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는 것처럼, 성령에 의해 그 마음이 휩싸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고백인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로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자리가 바로 자기 자신이 죽어야 되는 자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요, 내가 죽어야 함을 아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수님을 믿어 내 나라를 확장하고자 했으나, 이제는 내 나라라는 것 자체가 부인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반항했지만, 이제는 나로서는 힘겨운 일이 되겠지만 그렇게 되어지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 마리아의 고백을 진심으로 따라 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자가 된 것이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나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운전대를 주님께 맡긴 자요,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내가 쓰임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창세전 아들에게 주신 그 영원한 생명을 내게도 주신다는 그 약속을 이미 이루신 분이고, 장차 다시 오신다는 그 약속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고백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백이 되는 것처럼, 나의 고백 역시 주님과 함께 죽은 자의 고백이 되는 것이다.
다가오는 성탄절 행사 준비로 교회가 북적거리고 바쁘다.
마지못해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일은 기쁨으로 준비한다.
어떻게 준비하든 문제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깡그리 잊고 행사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이 우리의 고착된 습관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 없는 성탄절이 되었다고 비꼬는 말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가진 자로 주님과 교제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린다.
인간이 정한 날짜로서의 주님의 생일이지만, 굳이 그러한 것을 따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만 2024년의 기쁜 성탄절을 맞이하며, 나의 죽음을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시길 기도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묵상 기도)
주님,
마리아의 고백이 너무도 좋습니다.
죽는 그 자리가 좋다니......
세상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다 흠모하는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주님께서 쓰시는 도구로서,
언제 어디서든 이 고백을 하면서 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저의 죽음의 자리에서 주님 영광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