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 당신은 돌의자에 앉아서 웃습니다
권혁남
아파트 정문으로 양손에 짐을 들고 걸어오는 노부부
한껏 차려입은 옷 태에서 꽃향기가 납니다
잠깐 짐을 내려놓고 평평하지 않은 돌 위에 몸을 부립니다
봄 무처럼 바람이 숭숭 들어있을 것 같은 무릎을
쓸어내립니다
무릎 안에도 꽃향기가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명절이 코앞이라 자식 집에 오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어’
‘아들이 70평짜리에 살어 허 허’
볕 좋은 나무 아래 고양이들이 늘어져
노부부의 대화에 귀를 기울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겨울을 입고 있어 검고 무겁습니다
발을 옮기지 못한 딱딱한 눈더미가 담벼락 밑에서
걸음을 붙잡고 있습니다
보자기에 싼 음식 온기가 촉촉하게 젖어 내립니다
노부부의 대화가 봄볕에 쪼글쪼글해지는 시간입니다
당신들은 돌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더 웃었습니다
(권혁남『김포문학』36호 146쪽, (사) 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2019년)
[작가소개]
권혁남 김포문인협회회원, 김포문학상우수상(2011), 헤이리여성백일장입상(2012), 마로니에여성백일장입상(2016), 월간『시see』추천 시인상(2016).
[시향]
권혁남 시인의 시적 안목은 남다르다. 이는 대체로 겹눈으로 벼린 사회적 시선으로 날카롭다. 시인은 어느 날 아파트 정문으로 양손에 짐을 들고 걸어오는 노부부를 앵글에 잡는다. 노부부는 일상을 넘어 차려입은 꽃향기 나는 옷 태를 지녔다. 노부부는 잠깐 짐을 내려놓고 아파트 화단 돌 위에 몸을 앉힌다. 꽃무늬 옷자락을 쓸어내린다. 아마도 무릎은 봄 무처럼 바람이 숭숭 들었을 듯, 그러한 무릎 위에 꽃향기 스며들듯 한껏 차려입고 나섰을 것이다.
명절이 바로 코앞인지라 자식 집에 오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아들이 70평짜리에 살아서 자못 기분 좋은 듯 허 허, 웃음소리를 낸다. 봄날의 고양이들이 노부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언 눈더미가 담벼락 밑에서 걸음을 붙잡고 있다. 보자기에 싸 온 음식의 온기가 촉촉하게 식어 내린다. 노부부의 대화가 봄볕에 힘을 잃어 쭈그러들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당신들은 돌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더 웃었다.
이 발문에 가까운“방문”이라는 시인의 열린 시에, 당신은 가히 발칙한 답변 한마디쯤 준비되었을 것이다. 차마 입에 올리기보다 혹여 일어날지도 모를 일의 우려와 그에 대처하는 위로를, 노부부는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로 웃음에 웃음을 더하여 언 눈더미를 궁굴려 주고 있다. 평평하지도 않은 차가운 돌의자에 앉은 노부부의 웃음소리가 애써 푹신하다.
심상숙 (시인)
첫댓글 누구나 인생 이렇게
살고싶다 평범함속에
스며있는 부부애 노란
은행잎이 바람결에 꽃나비
처럼 떨어지는 풍경을
생각으로 덧씌우며
아!좋다세상. 하고 싶네요
김포문학 책을 책상에 쌓아두고 한 권 한 권 펼쳐 회원님들의 작품을 보고 계실 선생님이 그려지는 시간입니다. 권혁남시인의 시는 언제 읽어도 따뜻하고 삶이 있어요. 시인의 포근하고 한결같은 마음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