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 심히 가는 것인데 고구려가 멸망후 신라의 영토확장이 대동강 하류 원산만선으로 한정한것이 신라의 실질적 능력의 한계가 그정도인지 아니면 의지가 부족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원인이 무었인지입니다.
이 영토한계까 김춘추가 당과의 협상에서 정해진 것이라고 하였는데 결과론적으로는 고구려 멸망후 당의 야욕에서 온 나당충돌이라는 사건을 감안하다면 꼭히 이 협상에 신라가 고분고분 순응해야할 이유가 있을지 문제입니다.
특히나 나당전쟁이후 평양의 도독부가 요동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신라가 좀 의지가 있고 그 지역(평양중심 현 북한의 고구려영토) 유민들을 잘 포섭하고 또 유민들도 이에 합세했다면 대동강 원산만보다 좀더 북진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유민들의 포섭을 제외하고서라도 당시 신라의 국력이 그냥 대동강 하류선으로만 끝날 수준에 그쳤는가가 심히 의문이죠.
일부 학설은 신라의 평양지역까지 흡수를 하여 청천강까지 올라갔다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시 다루고 싶은 현상은 당의 고구려 유민의 이동정책입니다.
추측컨데 당의 고구려 유민 이주정책의 원인은 혹 신라와 고구려 유민과의 연합의 가능성을 차당하기 위한 것일 것으로 봅니다.
만일 신라가 고구려 유민과 연합하여 반기를 든다면 적어도 북한지역에서의 당의 세력은 위협받을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고구려유민 이주정책의 중요한 이유라고 판단합니다.
일단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신라의 당시 국력을 감안하고 좀더 의지만 있었다면 대동강 하류지역보다 더 북진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평양을 흡수하고 청천강 하류권역수준이거나 좀더 확대해서 고려시대초기에 형성된 국경선 수준인 압록강 하류에서 함흥지방수준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죠.
당이 평양의 도호부를 요동으로 이전한것을 감안하고 티벳지역 토벌에 신경을 쓸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정도 북진이라고신라에 무리한 수준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은 신라의 북진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한 이유로 귀족층의 진취성 없는 사고방식이 주 원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