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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음악감상 스크랩 No woman no cry/Bob Marley
불나비33 추천 0 조회 26 09.08.27 22: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Say say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 town
Over over starving the hipocrites
And they would mingle with the good people we bring
Good friends we've had or good friends we've lost along the way
In this great future you can't forget your past
So dry your tears I say....and

우리가 트렌치타운의 정부기관 앞마당에 앉아서

위선자들 앞에서 단식하며

시위하던 때를 난 기억하고 있어.
우리는 함께 모여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뒤섞였어.

좋은 친구를 가졌었고, 또한 좋은 친구들을 잃었지.
이 위대한 미래 속에서 우린 과거를 잊을 수가 없어.
그러니 눈물을 닦으라고 말하는 것이지.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Dear little darling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사랑하는 작은 누이여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Say say said I remember when we used to
sit in the government yard in Trench town
And then Georgie would make the fire live
As it was like wood burning through the night
Then we would cook oatmeal porridge of
which I'll share with you?

My feed is my only carriage
So I've got to push on through
But while I'm gone I mean it

우리가 프렌치타운의 정부기관 앞마당에서
그 위선자들을 주시하며 앉았던 때를 난 기억해.
조지는 밤새껏 통나무에 불을 붙여 불을 밝혔었지.
그리고 우린 당신과 함께 나눌
옥수수 오트밀 죽을 요리하곤 했지. 
날 이동시킬 수 있는건 오직 내 다리 뿐.
그러니 난 더욱 노력하고 앞으로 나가야만 해.
그러나 그렇게 가는 한..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모든 일은 잘 될거야

No woman no cry
No woman no cry
Oh my little sister don't shed no tears
No woman no cry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내 소중한 작은 누이여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말아요 
여성들이여, 울지말아요

 


 



절망의 밑바닥을 차오른 영혼의 노래

 

당김음이 담뿍 들어가 평화롭게 비틀거리는 듯한 리듬에 진중한 메시지를 실어내는 레게는 고통과 저항의 음악이다.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평전이 나이지리아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의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고통은 창조적이어야만 한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탄생시켜야만 한다.”


서아프리카에서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온 노예들은 투쟁 끝에 1838년 해방을 맞았다. 이들은 세인트앤에 ‘자유의 마을’을 세웠고, 이곳에서 밥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밥은 1945년 쉰 살에 가까운 영국계 육군 대위와 ‘아름답고 대담한’ 열여덟 흑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밥의 외할아버지는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을 다룰 줄 알았고, 외삼촌은 자메이카 토속 음악인 쿼드릴 밴드에서 바이올린과 기타, 밴조를 연주하는 전문가 수준의 음악가였으며, 외할머니의 노래는 들판을 가로질러 뙤약볕 노동에 지친 이들을 어루만졌다고 하니 자메이카 토속 음악에 흠뻑 젖은 유년기를 보낸 셈이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어머니를 따라 열두 살이 되던 해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서부의 빈민가 트렌치타운에 정착한 그는 그곳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날카로운 눈빛에 세상을 경멸하는 듯한 입술을 지닌 밝은 피부의 비쩍 마른 십대 소년”은 옆집 아이와 어울려 전기선에서 뽑아낸 구리선 기타줄에 통조림 깡통을 덧댄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연습에 열중했다. 열다섯 살, 다른 자메이카 소년들처럼 학교를 그만둔 밥은 생계를 위해 용접 공장 수습공으로 취직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노래 연습을 했다. 쇳조각이 왼쪽 눈에 튄 사고 뒤에는 공장도 그만두고 노래에 전념했다. 그렇게 노래에 열중하던 소년들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지은이는 “그들의 통곡과 울부짖음이 지난 세기의 가장 놀랍고 주목할 만한 문화 현상인 라스타파리(자메이카 토속신앙) 운동과 레게를 낳은 (밥 말리의) 반란의 영혼에 불을 지폈다”고 적었다.


떠돌이 생활 등 거친 삶이 ‘저항’잉태


열여덟이 된 그는 어머니가 일자리를 찾아 미국에 간 사이 여기저기 얹혀 살다가 “거리의 떠돌이, 트렌치타운의 떠돌이, 킹스턴 서부 지역의 떠돌이”가 됐다. 남의 집 주방 귀퉁이에서 잠을 잤고, 다른 쪽 귀퉁이에서 잠을 자던 청년과 함께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꼬르륵 소리를 잠재우려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노래 <노 워먼 노 크라이>의 가사에는 ‘모닥불을 피워주는 조지’가 나오는데, 조지는 당시의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였다.


1962년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그 다음해 밥은 함께 노래하던 친구들과 3인조 보컬 그룹 ‘웨일링 웨일러스’를 결성했다. 그들은 “외국의 일자리에 부모님을 빼앗긴 자메이카의 젊은이들,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여유조차 가지지 못하는” 그들에게 노래로 말을 건넸다. 영국에서는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그들의 새로운 세대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아들’ 크리스 블랙웰이 이끄는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을 맺으면서 밥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1978년에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자메이카 수상과 야당 당수를 무대로 불러내 화해를 주선하는 등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1981년 36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해 전설로 남기까지, 그는 경쾌하고 단순한 리듬에 전세계 흑인들의 단결과 투쟁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밥 말리-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는 밥 말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방대한 인터뷰, 자메이카의 현대사와 당시 세계 청년문화 흐름까지 끌어들여 한 인물의 삶을 빈틈없이 구성한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아쉽다.

 

박은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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