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3.화요일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 동정(660-720) 대축일
이사35,1-4ㄷ.5-6.10 1코린7,25-40 루카11,33-36
“빛나라!”
-루멘체치스(Lumen Caecis;맹인에게 빛을!)-
-만나라! 초연하라! 기뻐하여라!-
오늘은 우리 연합회의 수호자 성녀 오딜리아 동정 대축일입니다. 루멘체치스, 맹인에게 빛을! 바로 우리 연합회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선교 수도원의 특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눈떴다하나 무지에 눈 먼 영적 맹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함으로 눈이 열려 주님으로 빛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빛이신 주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이 모토의 기원은 성녀의 생애에 기인합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성녀는 673년 레겐스부르크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중에 바른 성유가 그녀의 눈에 닿자마자 눈이 열려 시력이 온전하게 되는 기적이 발생합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겪은후, 성녀는 두 번째로 세운 니더뮌스터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고 수녀원 옆에는 신자들을 위한 병원도 세웠습니다. 여기서 성녀는 아버지의 변화에 기뻐하며 남은 생을 봉사하며 지내다가 720년 선종해 몽생트오딜 수녀원에 묻힙니다.
16세기 이전부터 성녀 오딜리아는 알자스 지방과 맹인들, 그리고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마침내 교황 비오 7세는 공식적으로 오딜리아 성녀를 알자스 지방과 시각장애인 및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합니다.
그후 성녀가 살던 몽생트오딜 수녀원의 샘물은 눈병을 치료한다고 여겨지면서 샤르트르와 루르드와 함께 프랑스의 유명한 순례지가 됩니다. 그러니 “루멘체치스”(맹인에게 빛을!)는 그대로 성녀의 삶을 요약할뿐 아니라, 우리 오딜리아 연합회에 속한 선교 베네딕도회 수도원들의 모토가 됩니다.
오늘은 성녀 오딜리아와 더불어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빛을 의미하는 “룩스(Lux)”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성녀 루치아는 313년경 순교했으며 모진 고문을 받을 때 눈알이 뽑히는 형벌까지도 받았으나 천사의 도움으로 뽑힌 눈알을 돌려받아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녀 루치아는 이름 그대로 어둠을 밝히는 동정순교자로서 시력이 약하거나 시력을 잃은 이들과 눈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졌으니 성녀 오딜리아와 아주 흡사합니다.
똑같은 날 축일을 지내는 두 성녀에게 이름을 붙여드린다면 오늘 강론 제목 그대로 “빛나라!”가 되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아름다운 본기도가 생각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밤의 어둠을 모두 몰아내시고, 외아드님께서 오실 때에 저희가 빛의 자녀로 드러나게 하소서.”
성녀 오딜리아와 성녀 루치아의 전구에 힘입어, 은총의 대림시기 “빛의 자녀”로 “빛나라!”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시기 바라며 그 구체적 처방을 나눕니다.
첫째, “만나라!”
삶은 주님과 만남의 여정입니다. 언젠가의 결정적 만남에 앞서 매일 우리를 찾아 오시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에서 주님과 만남의 그때를 오늘 여기서 지금 앞당겨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도와줍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35,5-6).
주님을 만날 때 온전한 전인적 치유입니다. 우리 눈은 몸의 등불입니다. 우리 눈이 맑을 때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는 몸도 어둡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온몸이 환하면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우리를 비출 때처럼 우리 몸이 온통 환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그대로 빛이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뤄짐을 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마음의 순수요 마음이 밝을 때 눈도 몸도 저절로 밝아지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치유에 이어 눈도 몸도 치유되어 온마음이,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둘째, “초연하라!”
오늘 제2독서 코린토전서에서 바오로는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길수 있도록 독신을 권하는 경향입니다만 중요한 본질적인 것은 삶의 초연함입니다. 기혼자든 미혼자든 삶에 애착하지 말고, 무집착의 이탈의 초연한 삶, 지유로운 삶, 종말론적 삶을 살라는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아픈 사람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쪽같이 평범한 일상에 지극히 충실하는 것,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세상 것들의 무시가 아니라 오히려 욕심을 비운 초연한 마음일 때 내적자유를 누리며 참으로 하느님의 선물인 세상 것을 소중히 여기고 선용하며 이탈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2월6일 영성체후 기도중 “지상 것을 슬기롭게 헤아리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대목도 참 좋은 도움이 됩니다.
셋째, “기뻐하여라!”
빛의 주님을 만날 때 저절로 초연한 삶, 지혜로운 삶, 자유로운 삶에 저절로 샘솟는 순수한 기쁨입니다. 순수한 마음의 샘에서 샘솟듯 순수한 기쁨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전반부가 이런 주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기쁨을 쏟아냅니다. 기쁨은 힘이자 빛입니다. 기쁨의 빛입니다. 저절로 두려움은 사라지고 빛으로 충만한 삶, “빛나라!” 삶의 실현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너희는 맥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굳세어 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주님을 만날 때 초연함과 더불어 샘솟는 순수한 기쁨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니라 매일 평생 만나야 하는, 살아 계신 빛의 주님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온몸과 온맘을 빛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우리 모두 초연한 삶, 기쁨으로 빛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