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장량 편: 제2회 스승의 예언에 따라 유방을 만나다
(사진설명: 장량묘의 일각)
제2회 스승의 예언에 따라 유방을 만나다
10년이 지나자 진섭(陳涉)의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진나라를 반대하는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장량은 초가왕(楚假王)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하게 패공(沛公) 유방(劉邦)을 만났다. 유방은 아름다운 여인처럼 예쁘장하게 생기고 우아한 기품을 가진 장량을 심히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기골이 장대한 유방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우아한 기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량도 유방을 보니 외모가 우악스럽기는 하지만 얼굴에서 넓은 도량이 느껴지고 위인의 풍채가 엿보였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유방은 후에 박랑사의 그 진시황제 습격사건이 바로 장량의 걸작인줄 알고 마음 속으로 감탄하여 마지 않으며 즉시 장량을 구장(廐將)에 임명했다.
한편 장량은 그에 앞서 다른 사람들과 <소서>에 나오는 지략을 논의했는데 모두들 알아 듣지 못했으나 유방은 금방 깨닫고 지략을 실천에 옮겼다. 그로부터 장량은 유방이 바로 황석공(黃石公)이 예언한 제왕이라고 인정하고 그를 따르기로 작심했다.
유방이 항우(項羽)보다 먼저 함양(咸陽)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장량의 공로였다. 그 때 유방은 완성(宛城)을 공략한 후 서쪽의 무관(武關)으로 향하려고 했다.
유방이 장량에게 물었다.
“2만명의 군사로 무관을 공격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보시오?”
“진나라 군사는 여전히 용맹스럽습니다. 무력으로 공격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무관 관문을 지키는 장수가 백정의 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장사치들은 모두 재물을 탐하고 이익을 따라 움직입니다. 5만명의 군사를 무관 주변의 여러 곳에 주둔시켜 군기를 날리며 대규모 공격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나서 역이기(酈食其)를 시켜 거금으로 수비 장군을 매수하면 됩니다.”
무관의 수비 장수는 과연 역이기가 보낸 후한 예물을 받자 진나라를 배반하고 유방과 협력해 함양 공격 의사를 밝혔다. 이 때 장량이 말했다.
“이는 수비 장수의 일방적인 생각입니다. 병사들은 장수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지로 병사들이 장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니 아예 진나라 장병의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경계가 해이해진 틈을 타서 기습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유방은 장량의 계책에 따라 성공적으로 무관을 탈취하고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여 단숨에 함양에까지 이르렀다. 진나라의 삼세(三世) 황제 자영(子嬰)이 목에 밧줄을 걸고 천자의 국새를 받쳐 들고 백마가 끄는 하얀 마차를 타고 신하들을 거느리고 성문을 열고 나와 유방에게 항복했다. 장량은 자영을 잘 대해주고 진나라 백성들과 약법삼장(約法三章)을 하라고 유방에게 조언했다. 결과 유방은 진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크게 얻었다.
진나라 궁궐에 이르니 화려한 전각이 높이 솟고 준마가 떼를 지으며 황금과 보석이 산처럼 쌓여 있고 미녀가 구름처럼 많아 패공은 눈이 어지럽고 넋이 나갔다.
번쾌(樊噲)가 물었다.
“패공께서는 천하를 얻으시겠습니까? 갑부가 되시겠습니까?”
“물론 천하를 얻고 싶소.”
“보십시오. 여기에는 진귀한 보물이 수도 없이 많고 후궁에 미녀가 천 명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생활이 바로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원인입니다. 패공께서는 궁중에 머무르지 마시고 패상(㶚上)으로 돌아가십시오.”
유방은 개백정 출신의 동서 말을 무시하고 솜이불 위에 누웠다.
“너무 편안하구나. 여길 떠나지 않고 오늘 밤 이 곳에서 지내야겠다.”
유방의 혼잣말에 곁에 있던 장량이 말했다.
“진나라 황제의 잔학무도로 인해 패공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천하를 위해 남은 도적의 무리를 제거하려면 검소해야 합니다. 진나라를 공략하자마자 안일함에 빠져 인생을 탐닉한다면 그것은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옛말에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 이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패공께서는 번쾌의 말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유방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진나라 왕실의 창고를 봉하고 궁에서 나와 군대를 패상에 주둔시켰다.
며칠이 지나자 항우도 관중에 들어와 홍문(鴻門)에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날 밤 장량은 항우에 대응할 묘책을 생각하느라 온 밤을 하얗게 샜다. 장량은 함곡관(函谷關)에서 유방군사의 제지를 받은 항우가 분명히 불같이 화를 내며 유방을 찾아 결판을 낼 것이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불 같은 성격의 항우가 잘못하면 두말 않고 유방을 죽일 수도 있으니 장량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방의 병력은 겨우 10만이고 항우는 40만의 군사를 거느렸으니 항우가 유방을 멸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장량이 대책을 생각하느라 골몰해 있는데 항백이 뛰어 들어왔다.
“얼른 나와 같이 갑시다. 패공을 떠나지 않으면 함께 죽는 길밖에 없소.”
항우가 날이 밝으면 유방을 멸하러 온다는 것을 안 장량은 자신의 안위도 생각지 않고 즉시 유방을 만나러 갔다. 꿈속에서 놀라 잠이 깬 유방은 항우의 대군이 곧 도착한다는 말을 듣자 혼비백산했다.
장량이 말했다.
“항백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장량은 유방에게 항백과 아들딸을 혼인시켜 사둔을 맺은 다음 항백을 항우에게 보내 유방 대신 사정하게 하라는 계략을 내주었다.
항우는 삼촌인 항백의 속임에 넘어가 유방을 죽이려던 생각을 거두고 홍문에서 유방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홍문연에서 항장(項庄)이 유방을 노리고 검무를 추자 항백이 나서서 유방을 지켰다. 장량은 또 번쾌를 시켜 격앙된 일장연설을 발표해 항우가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또 범증(范曾)의 암시도 무시하고 유방을 죽이려던 생각을 말끔히 가시게 했다. 이어 장량은 유방더러 작별인사도 없이 홍문을 떠나라 하고 자신이 남아서 항우와 대적했다.
항우는 땅을 나누고 제후들을 책봉할 때 유방에게 파촉(巴蜀)의 땅을 주고 한(漢) 왕으로 봉했다. 유방이 파촉으로 출발할 즈음에 장량이 이렇게 권고했다.
“항왕(項王)은 지금 기세가 한창이기 때문에 대왕께서는 그 예봉을 피하셔야 합니다. 촉으로 가는 길은 아주 험난해서 잔도(棧道)를 통해서만 파촉의 땅을 출입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파촉으로 가면서 잔도를 모두 불태워 파촉을 나와 천하를 다툴 야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항왕은 대왕을 경계하지 않고 눈길을 다른 제후들에게 돌리며 우리의 행동을 유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량을 깊이 신뢰하는 유방은 그의 계책을 모두 따랐다. 그리하여 후에 한신(韓信)이 겉으로는 잔도를 고치는 척하면서 몰래 기습해 진창을 탈취하는‘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의 묘계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