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요한의 죽음 자체는 아주 간략하게 서술됩니다.
그가 죽을 때 무슨 말을 하였는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는지도 일러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처구니없는 죽음입니다.
요한의 입장에서 생각하였을 때 차라리 헤로데가 처음부터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면
죽는 이유가 더 명백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요한의 주장이 더 두드러지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고 싶어 하였을 때까지도 헤로데는 요한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헤로디아가 헤로데를 설득해서 요한을 죽게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약속한 선물을 주려고 요한의 목을 가져오게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 나서 반지 하나를 달라고 하였든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하였든 헤로데는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을 죽일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헤로디아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주려고 죽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경비병은 감옥에 가서 마치 반지 하나를 가져오듯이 담담하게 요한의 목을 베어 들고 옵니다.
그러나 경비병이 감옥으로 요한을 찾아간 날 요한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그가 맞게 될 예언자의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명분으로는 요한을 죽일 수 없었기에
불의는 어떻게든 진리의 목소리를 죽이는 길을 찾습니다.
요한은 그에게 걸맞지 않은 이유로 소리 없이 죽임을 당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그가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예레 1,19)
요한은 헤로데에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