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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가, 나는 꽤 마음에 드는, 그러나 차가 없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평소 남자의 직업이나 능력 등 조건을 따지지 않는 나였기에 ‘차가 없으면 뭐 어때?’라며 ‘차의 효용’을 가볍게 무시했다. 두 번째 데이트에 나서면서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평소엔 잘 입지도 않는 블랙 펜슬 스커트에 스틸레토 힐까지 신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한껏 차려입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차가 없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다 보니 저녁을 먹고 커피숍에 갈 때까지, 커피숍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뚜벅 뚜벅’ 걸어야 했다. 무려 12cm 스틸레토 힐을 신고서 말이다!
데이트 내내 나는 다리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빨리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 나의 마음은 <섹스 앤 더 시티>에서 ‘흡연녀’를 싫어하는 에이든을 만나 담배를 끊은 척하다가 흡연 욕구를 참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가는 캐리 브로드 쇼보다 더 간절했을 것이다. 세 번째 데이트를 나설 때는 당연히 스틸레토 힐을 벗고, 그래도 적당히 나의 각선미를 살려줄 수 있는 로 힐을 신었다. 그날도 물론 밥을 먹고, 커피 대신 칵테일을 마시러 바에 가는 동안 1km쯤은 걸어야 했다. 얼마만에 만난 킹카인데…, 그쯤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헤어질 때 즈음, 그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직 지하철이 안 끊겼죠?” 그날 이수역의 긴 환승 구간을 걸으면서, 그는 “내가 빨리 차를 사야하는데…”라고 변명하듯 말했고, 나는 그에게 점점 호감이 떨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연애 스피드 업시키는 카 데이트
그와의 데이트가 시들해진 것은 이동할 때의 불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차 있는 남자’와의 데이트에 익숙했던 나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카페에서의 데이트가 전혀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술을 마시거나, 한 마디로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그와 단둘이 얘기를 나눌 만한 공간조차 마땅치 않았다. 집까지 바래다 준 그와 헤어지기 싫어도 집 앞에 서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피곤해져서 ‘그를 빨리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1분이라도 더 있고 싶은 연애 초기에 1분이라도 빨리 헤어지길 원했으니, 연애가 진척이 될 리가 없었다. 연애를 하다 보면 가끔은 두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싶은 때가 있지 않나.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연인에게 차는 이동수단일 뿐 아니라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는 데이트 장소의 역할을 한다. 특히 연애 초기에는 더욱 그렇다. 둘만의 공간에서 서로의 어깨가 닿을락말락 할 정도로 가깝게 앉아 있다 보면 괜스레 서로의 눈을 바라보기도 쑥쓰러워진다.
얼마간의 어색함은 그리 친하지 않은 남녀에게 짜릿한 긴장감을 주고, 이때의 스킨십은 그때까지 ‘연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어설프던 둘의 관계를 ‘공식적 연인’관계로 급발전시켜준다. 카페에서의 데이트열 번보다 차에서의 데이트 한 번이 ‘연애 진도’ 나가는 데 더 효과적인 것만 봐도 차는 연애에 있어 확실히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해준다. 나 자신이 속물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 ‘차 없는 남자’와의 데이트를 점점 피하게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3년 동안 나는 변변한 연애 한번 못한 상태. 이렇게 되고 보니 은근히 그가 아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그가 차가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그를 사귀고 있었을까?
그의 리드를 기다릴 것인가, 내가 리드할 것인가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기동성이 중요한 현대사회에 운전면허가 없다는 사실이 커리어에서는 흠이 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연애를 할 때만큼은 예외라고 생각했다. 나를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는 남자에게 ‘대접 받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연애를 하는 동안 차나 운전면허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연애가 끊긴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최근에는 ‘내가 차를 사면 데이트가 쉬워질까?’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반적으로 드라이버인 남자가 연애를 주도하듯, ‘내가 차가 있다면 연애를 주도하는 쪽도 내가 아닐까’하는. 내가 차가 있다면,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처럼 깜짝 파티를 준비하여 그를 감동시킬 수도 있고, 스킨십이 간절할 때는 으슥한 곳에 차를 대면 그만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후배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쑥스러움이 많은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스킨십 진도가 안 나가는 거예요. 매일 그가 우리 집까지 바래다 주었는데, 그는 환한 곳에 차를 세우고는 대화만 나누다가 집에 가버리더라고요. 한 달이 지나도록 키스 한 번 하지 않는 그가 하도 답답해서 내가 ‘저 쪽 으슥한 곳에 차를 세워보라’고 했어요. 그날 간신히 첫 키스를 했다니까요”라며 가슴을 치던 후배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만약 후배가 차가 있었더라면? 그녀는 가슴을 치는 대신 “오늘은 내가 차를 가지고 나갈게”라고 말하고 그의 집 앞 으슥한 곳에 차를 대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차가 있는 사람은 데이트에 있어서 헤게모니를 가진다. 그의 우위에 서기 위해 차를 구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내가 차가 없으면 어때? 차가 있는 남자를 만나면 되지’라는 수동적인 생각은 버리는 것이다. 적어도 차 때문에 오랜만에 발견한 킹카를 놓치거나, 그의 어설픈 리드에 답답해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를 무기로 당신의 연애를 빨리 앞당기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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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건그래..거의 일주일에 한 5번정도 만나고,, 200일이상 사귀었지만.차없이 만난적은 단 2번.
담아갑니다